II. 기주(冀州)는 산서성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송사>의 기록에 “고구려는 우가 9주 땅을 나눌 때 기주에 속했으며 요동에 있었고 평양에 도읍하였다”라 적고 있다. 즉 기주가 고구려이고 요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주가 어디인지를 확인하면 고구려와 요동의 위치는 자동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고대(古代)에 나타난 구주설(九州說)은 <상서/우공>, <여씨춘추/유시람>, 그리고 <회남자/지형훈>이다. 함께 살펴보겠지만 이 지리서들을 검토해보면 오늘날의 산서성 특히 산서성의 황하변을 따라 기주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주는 하나라 시대 9개의 행정구역의 하나로 기주를 기록하고 있는 최초의 1차사료는 <상서/우공>인데 우(禹)는 하나라를 세운 우임금이며 공(貢)이란 당시 제후들이 자신의 관할 지역에서 나오는 토산품을 조정에 바치는 것으로 <우공>이란 우임금의 토지정비와 공물제도로서, <우공>은 동양 최초의 지리서이다.
<상서/우공>의 구주는 기주(冀州), 연주(兗州), 청주(靑州), 서주(徐州), 양주(揚州), 형주(荊州), 예주(豫州), 량주(梁州), 옹주(雍州)를 일컫는 것으로 ‘기주(冀州)’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禹)는 땅을 나누고 산에 이르러 나무를 베고 높은 산과 큰 강에 제사지냈다. 기주는 호구산(壺口山)에서 시작하여 양산(梁山)과 기산(岐山)까지 다스렸고, 태원(太原)땅을 닦고 악산(岳山) 남쪽 기슭에 이르렀으며 담회(覃懷)땅의 일을 마치고 장수(漳水)가 가로지르는 곳에 까지 이르렀다. 그곳 흙은 희고 부드러웠고 부세(賦稅)는 일 이등이 섞였고 밭은 오등 정도였다. 항수(恒水)와 위수(衛水)가 잘 다스려지자 대륙 호숫가는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섬나라 오랑캐들은 여러 가지 옷을 바쳐왔다. 그들은 갈석산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黃河)로 들어왔다.”고 하였다.
<상서>의 기주에 나타난 지명들인 태원, 호구산, 양산, 장수, 악산, 항수 등은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이 명시하고 있듯이 산서성에 있는 지명들이고, 기산은 섬서성과 산서성에 있는 지명이며, 담회와 위수는 황하북부 하남성 일명 하내(河內)에 있는, 산서성과의 경계에 있는 지명이며 이들은 모두 황하와 인접한 지명들임을 알 수 있다. <상서/우공>의 기주지역인 오늘날의 산서성을 청나라 때인 1785년에 제작되었다는 <대청광여도>의 산서성과 비교하여 이들 지명들의 위치를 표시하면 다음 <그림 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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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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