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 맺음말
고구려는 하(夏)나라의 우(禹)가 9주로 나눌 때 기주(冀州) 땅에 속했으며 요동(遼東)에 있었다는 <송사>의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최초로 9주설이 서술된 <상서/우공>, <여씨춘추/유시람> 그리고 <회남자/지형훈>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이들 세 문헌들이 언급한 기주가 황하변의 산서성 남부임을 밝히고 그림으로 설명하였다. 또한 이곳 산서성과 산서성 남부를 요동이라 하였음도 확인하였다.
기주이며 하동이고 요동인 이곳 산서성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 일명 하내(河內)를 함께 하북(河北)이라 하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또한 산서성 남서부에 있었던 노룡, 수양산, 고죽국, 갈석산, 창려 등이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으로 지명 이동이 된 내역도 알아보았다.
요동이란 지명이 나타난 1차사료로 <관자>, <사기>, <한서>, <수서>, <구당서>, <신당서> 그리고 <송사>의 기록들을 주밀하게 살펴보았다.
기주, 유주, 요서, 고죽국, 수양산, 고구려의 영토, 요동은 모두 산서성에 있었으며 산서성 남부를 한때는 북연이 차지하고 있어 “연(북연)나라의 요동에는 구운 소금(煮)이 있다.”라고 한 <관자/지수>편의 기록도 문헌자료를 통하여 확인하고 그림으로 제시하였다.
결과적으로 요녕성 요하(遼河)의 동쪽으로 비정한 요동(遼東)에는 산서성 남부의 운성염지처럼 소금이 생산되는 천연염지가 없고 황하변도 아니며 고죽국에 있는 수양산인 오늘날의 중조산도 없을뿐더러 이곳을 하동이나 기주라고 부른적도 없음으로 기존 학계의 통설로 굳혀온 요하 동쪽이 요동이라는 학설을 비판하며 오류임을 지적한다.
<양서>, <남사>, <신당서>에 “고구려에는 요산이 있어 요수가 발원하다.”는 내용을 살펴보고 요산, 요산현, 요주 란 ‘요(遼)’자가 들어간 지명들은 오직 산서성에만 위치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요동에 관한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의 내용을 종합하면 기주가 산서성이며 산서성이 하동이고 하동이 요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의 요동은 오늘날의 산서성임을 제시한다. 요동과 대칭되는 요서는 산서성 남서부, 하남성 서북부 그리고 섬서성 동북부를 지칭한다.
비록 수많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을 세심하게 검토하고 교차 확인하여 기존 학계의 통설과는 판이하게 다른 이론을 제시하였으나 본고가 100% 완벽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 작은 연구가 밑거름이 되어 가장 왜곡되고 날조된 한민족고대사에 등장한 지리지명들의 정확한 위치를 밝혀 왜곡으로 점철되어온 역사 강역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학자들의 많은 연구가 기대된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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