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43~46부
12. 요동군과 요동속국
김육불은 “요서군의 설치가 연(燕) • 진(秦)나라에서 시작되었고, 한(漢)나라에 와서 군현제(郡縣制)가 비로소 갖추어졌다. 전한(前漢) 시대의 14현을 관할하였는데, 그 중 차[저]려(且慮) • 신안평(新案平) • 유성(柳城)은 지금의 열하성(熱河省) 조양현(朝陽縣) 일대에 있었고, 해양(海陽) • 영지(令支). 비여(肥如) • 빈종(賓從) • 양락(陽樂) . 유[누]현(絫縣)은 지금의 산해관(山海關) 안쪽 하북성(河北省) 경계에 있었고, 교려(交黎) • 호소(狐蘇) . 임[유]투(臨渝)는 지금의 산해관 밖 요령성(遼寧省)의 금의(錦義) • 흥성(興城) • 금서(錦西) • 수중(綏中)현 등 여러 곳에 있었다.
이것은 그 시대에 요서군(遼西郡) 땅이 지금의 하북성(河北省)과 요령성(遼寧省)과 열하성(熱河省) 세 성(省)의 사이에 끼어 동북구역의 중요한 지위를 점유하고 있었던 것이니, 자연 다른 설명은 필요 없다”라고 자신만만하게 억단(臆斷)을 하고 있다.
김육불은 그의 억단의 논거로 <속한서/군국지>, <후한서/화제기>, <후한서/환제기>, <삼국지/위지/ 오환전> 주, <후한서/오환전>, <한서/백관공경표>, <속한서/배관지>, <삼국지/위지/오한전> 주, <삼국지/위지/제왕기>, <후한서/조포전>, <이아/석지>, <한서/지리지>, <사기/백이전>, <사기 색은>, <여씨춘추/성렴편>, <설문/산부/「양자하>, <관자/대광편> 등 무려 9종의 사료에서 17차례를 인용하고 있으나 김육불이 인용하고 있는 차[저]려 (且慮)를 비롯하여 13곳의 지명 위치를 밝히는 것과는 전혀 관련성이 없는 내용들을 상점에 물건 진열하듯 나열하면서 “...자연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라고 단정하는 아집과 오만과 만용을 부렸다.

제1절에서 유주의 위치에 대해 <그림 3>과 함께 산서성 남부를 유주라 하였다는 사실과 요서군에 설치된 7개군을 <그림 15>와 함께 이미 고증한 바 있으나 요서군에 설치된 14현에 대하여 다시 논하고자 한다. 경우에 따라서 중복이 불가피함을 인정하면서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요서군의 위치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자세한 내용은 www.cpreanhistory.com 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44부
<漢書(한서)/地理志(지리지)>의 요서군(遼西郡)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요서군은 진(秦)나라가 설치하였다. 작은 물길이 48개나 있는데 합하면 3천46리를 흐른다. 유주에 속해 있었다. 요서군은 7만2천6백54가구, 인구는 35만2천3백25명이다.
14개의 현(縣)이 있다. 저려현, 해양현, 신안평현, 유성현, 영지현, 비여현, 빈종현, 교려현, 양락현, 호소현, 도하현, 문성현, 임유현, 누현이다. ...유성현은 마수산(馬首山)의 서남쪽에 있다. 삼류수가 북쪽에서 바다(황하)로 들어간다. 서부도위가 다스렸다.
영지현은 고죽성(孤竹城)이 있다. 왕망 때는 영씨정이라 했다. 응소는 ‘옛 백이국(伯夷國)이고, 지금의 고죽성이다’라고 했다.
비여현은 현수(玄水)가 동쪽에서 유수(濡水)로 들어간다. 유수는 남쪽으로 해양(海陽)으로 들어간다. 또 노수(盧水)가 있어 남쪽으로 현수(玄水)로 들어간다. 왕망 때는 비이(肥而)라고 했다.
빈종현은 왕망 때는 면무(勉武)라고 했다. 교려현은 유수(渝水)가 첫 번째로 새외를 받아 남쪽으로 바다(황하)로 들어간다. 동부도위가 다스렸다. 왕망 때는 금로(禽虜)라고 했다. 응소는 ‘지금의 창려(昌黎)이다.’라고 했다. ... 임유현은 유수가 첫 번째로 백낭수(白狼水)를 받아 동쪽으로 새외로 들어간다. 또 후수(侯水)가 북쪽의 유수로 들어간다. 왕망 때는 빙덕(馮德)이라 했다. ...”
라고 기록하고 있다. 요서군에 위치한 지리지명들은 모두 황하와 인접한 곳으로 황하를 사이에 둔 산서성 남서부, 섬서성 동부, 하남성 서북부에 있었다. 이 지역을 요서라고 했음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45부
첫째, 기주(冀州), 유주(幽州), 요서(遼西)는 같은 지역을 달리 부르는 이름으로 우공시 기주, 주(周)시 유주, 진(秦)시 요서라고 불렸으며 황하와 인접한 곳이다: <상서/우공>, <여씨춘추/유시람>, <회남자/지형훈>, <한서/지리지>.
둘째, 유성현(柳城縣)은 마자수산(화염산)의 서남쪽에 있는 지역으로 섬서성 람전현 동남이다: <중국역사지명대사전>.
셋째, 영지현(令支縣)은 고죽성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죽국이던 산서성 남서부에 있다: <한서/지리지>, <후한서>.
넷째, 고죽국(孤竹國)에 수양산이 있다: <설문해자>, <사기집해>. <무경총요>
다섯째, 수양산(首陽山)은 오늘날의 중조산(中條山)으로 산서성 남부에 위치한다고 <원화군현도지>와 <괄지지>가 기록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중조산이 수양산이라 기록하고 있는 문헌들은 <상서지리금석(尙書地理今釋)>, <오례통고(五禮通考)>, <모시주소(毛詩注疏)>, <서찬언(書纂言)>, <상서비전(尙書埤傳)>, <우공추지(禹貢錐指)>, <산당사고(山堂肆考)>, <산서통지(山西通志)>, <상사(尙史)>, <시지리고(詩地理攷)> 등이다.
여섯째, 비여현(肥如縣)은 현수가 유수(濡水)로 들어가는 곳으로 산서성 남부이다: <수경주>
일곱째, 유수는 남쪽으로 해양현(海陽縣)으로 들어간다 하였으므로 해양현은 산서성 남서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여덟째, 빈종현(賓從縣)은 섬서성 경조윤으로 장안의 동쪽 화현땅이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아홉째, “교려현(交黎縣)은 유수(渝水)가 첫 번째로 새외를 받아 남쪽으로 바다(황하)로 들어간다...응소는 ‘지금의 창려(昌黎)다.’라고 했다”라고 하였으므로 유수와 창려가 위치한 산서성 남서부에 위치한다.
열번째, 임유현(臨濡縣)은 수나라 때 노룡이라 한 곳으로 산서성 남서부 유수와 현수가 만나는 지역이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열한번째, 문성현(文成縣)이란 지명은 없고 대신 문성책(文成柵)이 있는데 하남성 수평현 서남 50리라고 하고 문성책이 있는 곳은 보풍진(寶豐鎭)으로 하남성을 뜻한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열두번째, 신안평현(新安平縣)은 서안평의 다른 이름으로 산서성에 위치한 압록수가 바다라고 하는 황하로 진입하는 곳이다.

위에서 살펴본 열두가지 이유를 종합하여 정리하면 기주, 유주, 요서는 같은 지역을 달리 부르던 이름이고 진(秦)나라 때 설치한 요서군은 황하를 사이에 둔 산서성 남서부, 섬서성 동부, 하남성 서북부를 일컬었으며 요서군의 14현의 대부분은 산서성 남부에 있었고 유성과 빈종현은 섬서성에 문성현은 하남성에 위치했던 지리지명으로 압축된다.
지리지명의 위치를 밝힐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강(江)과 하천(河川)과 산(山)과 산맥(山脈)이다. 따라서 요서군에 위치한 강과 산(맥)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면 다음 <그림 19>, <그림 20>과 같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46부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고증한 바와 같이 요서군에 속하는 14현은 모두 황하를 사이에 두고 산서성, 섬서성, 하남성에 위치한 지역으로 김육불이 이야기하는 산해관, 하북성 경계, 하북성과 요녕성 사이, 요녕성 등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김육불은 여기서도 역사를 왜곡, 날조, 조작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그의 책 <동북통사>는 위서(僞書)로써 허구의 소설임을 다시 상기시킨다.
요동속국의 위치에 대해서 검토해 보겠다. 김육불은 요동속국에 대해 “후한(後漢) 시대에 요서군(遼西郡)와[과] 요동군(遼東郡) 사이에 요동속국(遼東屬國)의 설치가 있었다”라고 하였고 “원(元) • 명(明)나라 이래로 일찍이 산해관(山海關) 동쪽 땅을 요동(遼東)이라 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요서(遼西)의 명칭이 비록 오랫동안 폐지되었지만, 후한(後漢) • 조위(曹魏) 시대를 고찰하면, 요하(遼河)의 서쪽과 산해관(山海關) 안쪽 난하(灤河) 동쪽의 땅을 요서(遼西)라 하였다. 이것에 의거하여 바로 요동(遼東)이란 한마디 말이 퍼진 것이 실로 한(漢) • 위(魏)나라에서 시작하였고, 원(元) • 명(明)나라 이후에는 다만 따르고 고치지 않은 것일 뿐임을 알 수 있다”고 하여 요동속국은 요녕성에 있는 요하(遼河)의 서쪽과 하북성에 있는 산해관 동쪽 사이에 요동속국이 위치했다는 억설을 펴고 있다.
본고에서 요동 • 요서의 위치를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의해 산서성을 요동이라 하고 산서성 남서부, 섬서성 동부, 하남성 서부 일대가 요서임을 이미 밝힌 바 있어 논평할 필요가 없기는 하나 <동북통사>의 편집 순서를 따르다 보니 다시 부언하게 된다.

김육불이 주장하는 요동속국의 위치를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선비(鮮卑)와 오환(烏桓)이 어떤 족속이며 서로 어떤 관계인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선비족의 “본거지는 원래 흥안령(興安嶺) 동쪽이었는데 후에 이동하여 흉노족의 땅으로 이주하여 살았으며 후한(後漢) 시기 최고로 강성했던 동호(단군조선)의 일족이다.” 흉노 모돈에게 패한 후 본거지를 잃고 내몽고에 있는 선비산(鮮卑山)에 살다가 나중에 선비가 둘로 나뉘어 하나는 그대로 선비라 하고 다른 하나는 오환이라 하였다.
동호(단군조선의 후예인 북부여)가 모돈에게 패한 후 선비와 오환은 모두 조선에 복종하지 않고 오히려 조선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였다. 마침내 “선비는 고구려에 의해 속국이 되었다.” 반면에 오환은 한나라 무제가 토벌한 후 이들을 우북평, 어양, 상곡, 안문, 대군 일대에 옮겨 살게하고 흉노를 감시하게 하였다. 이 내용은 김육불이 인용한 <삼국지/위지/오환전> 주(注)에 아래와 같이 잘 나타나 있다.
“건무(建武) 25년(후한 광무제, 49)에 오환대인(烏桓大人) 학차(郝且) 등 구천여 명이 무리를 거느리고 궐문에 이르니, 그 우두머리를 열후(列侯)나 왕으로 봉한 것이 80여 명으로 변경 안에 거주하게 하였는데,
요동속국(遼東屬國) • 요서(遼西) • 우북평(右北平) • 어양(漁陽) • 광양(廣陽) • 상곡(上谷) • 대군(代郡) • 안문(鴈門) • 태원(太原) • 삭방(朔方)의 여러 군 경계에 배치시켰다. 부족을 불러 의식(衣食)을 지급하고 교위(校尉)를 배치하여 통솔하게 하여, 결국 한(漢)나라 염탐꾼과 예비군을 삼아 흉노(匈奴)와 선비를 공격하였다”라고 인용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