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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 제3부

-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4-03-14 (목) 19:28:00

-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I. 서론




김육불(金毓黻)은 요녕성 출신으로 엄격한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6살부터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19세에 소학당에 입학하여 10년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여 “당시 최고의 엘리트들이 다니던 북경대학당을 졸업함으로써 중국역사학의 대가로서 기초를 튼튼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졸업 후 잠시 관리생활을 하다가 주로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였으며 “중국의 ‘동북’민족사 연구활동에 주력하여 1941년에 펴낸 <東北通史(동북통사)>를 비롯해서 <渤海國志長編(발해국지장편)>”등을 저술하였고 “만주지역의 역사와 관련된 종합적인 사료를 <遼海叢書(요해총서)>로 집대성하였다.

그의 이러한 저술들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의 중국사 및 만주 지역사 연구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의 <동북통사>와 <발해국지장편>은 후대의 만주지역 연구에 필수서가 되었는데 <동북통사>는 만주지역 즉, 압록강과 두만강 북녘의 땅을 중국사로 편입시키려 했던 최초의 저술이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라고 하여 동북아역사재단은 ‘해제’에서 김육불의 업적를 이와같이 소개하면서 “중국역사학의 대가”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모양새다.

간행서에서 김육불은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내가 동북의 역사 문헌학에 손을 댄 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가 민국 25년(1936) 병자년에 남경(南京)으로 피란하여 남경대학에서 가르치면서 ‘동북사’를 강좌 제목으로 삼았기에 시골에서 옛날부터 보관하고 있던 것들도 함께 가지고 왔다.

이에 차근차근 상자의 원고를 꺼내어서 붓을 잡고 차례를 정하고 보충하여 강의를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동북통사(東北通史)>의 초고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 김육불은 서언에서 “나는 대대로 요동에 살았기에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동북 지방의 문헌을 연구한 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라고 말하고 있다.

“동북사”란 단어가 김육불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김육불은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그가 대대로 살았던 요녕성이 요동이고 요녕성을 동북이라고 하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열하 4성이 중국의 동북부에 있다”는 문헌 기록은 어디에도 없으며 길림, 요녕, 흑룡강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동삼성은 관동삼성이라고도 하는데 청나라 말과 북양정부(北洋政府)시기 산해관 밖의 봉천, 길림, 흑룡강 삼성에 대한 총칭이다”라고 <중국역사지명대사전>이 밝혀주고 있다.

“4성”이라는 말도 없고 “중국동북”이라는 설명도 없다. 단지 동삼성이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요녕성은 요동도 아니고 동북도 아니였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4부



 


논자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장한 것처럼 김육불이 역사학의 대가이며 그의 저술들이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의 중국사 및 만주 지역사 연구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지와 ‘동북사’가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의 저서 <동북통사>와 <발해국지장편>을 면밀히 조사, 검토, 분석하였다.

과연 김육불은 동북아역사재단이 언급한 것처럼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동북통사>에서 그가 인용한 문헌사료를 살펴본바 <자치통감>을 74회 인용하였고, <요사>를 64회 인용하였으며, <금사>를 37회, <삼국지>를 46회, <진서>를 45회, <신당서>를 49회 <구당서>를 41회, <후한서>를 32회, <수서>를 18회, 그리고 <원사>를 26회 인용한 것을 비롯하여 무려 173종에 달하는 다양한 문헌사료를 인용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김육불은 “동북”이라는 지리지명을 고증하는데 반드시 참고해야 할 1차사료와 문헌자료인 <상서/우공>, <여씨춘추/유시람>, <회남자/지형훈>, <중국고대지명대사전>, <중국역사지명대사전>, <중국고금지명대사전> 등으로부터 단 [한 글자] 한 줄의 인용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김육불은 173종의 다양한 사료를 인용하기는 하였으나 “동북”이라는 지리지명을 밝히는 것과는 아무 관련성이 없는 내용들을 전시하듯 나열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동북통사>의 동북(東北)이란 글자 그대로 동쪽방향의 북쪽이라는 의미이다. 동북의 위치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준점을 어디에 두고 구분하느냐 하는 문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나(支那)의 13왕조가 약 1,100년간 도읍하였던 섬서성 서안(호경)에서 가리키는 동북인지, 9왕조의 도읍지였던 하남성 낙양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하북성 북경을 기준으로 나눈 것인지 아니면 그가 강의를 했던 남경대학을 기준한 것인지와 동북의 범위를 기준지점에서 어디까지를 동북이라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다.

김육불은 <동북통사>에서 문헌사료에 근거없는 ‘동북’을 지금의 ‘동북삼성’으로 추정하는 큰 오류를 범했음으로 이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기록된 동북과 요동의 정확한 위치를 밝힘과 동시에 김육불의 <동북통사>는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라는 점을 비판하려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5부



 


동북이라는 명칭이 최초로 등장한 1차사료는 <周禮職方氏(주례직방씨)>로 주나라의 도읍지가 있던 섬서성 호경(서안)에서 가리킨 위치로 “동북이 유주다”에서 시작되었다.

유주는 기주의 일부인 산서성 남부를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동북통사>에서 기술하고 있는 ‘동북삼성의 동북’과 <주례직방씨>의 ‘동북이 유주’라는 동북과는 완전히 별개의 동북임을 고증하겠다.

동북삼성이란 말은 김육불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역사적으로 동북삼성이라 하지않고 ‘동삼성(東三省)’이라 하여 청말에 산해관 밖의 봉천, 길림, 흑룡강성을 총칭해서 부르던 이름이다.

동삼성과 동북삼성은 역사적으로 그 어원을 달리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속담에 ‘어’다르고 ‘아’다르다고 했다. “북(北)”이란 한 글자가 더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않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이로 인하여 역사 왜곡이란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황하를 사이에 둔 섬서성, 하남성, 산서성에서 일어난 수•당과 고구려 전쟁을 김육불이 근거없이 주장한 동북지역이라는 요녕성과 한반도에서 있었던 것처럼 “지금의 산동(성)으로부터 발해를 건너 곧바로 왕검성을 향하게 하고 ...지금의 요양을 출발하여 패수를 향하게 하였다”라고 각색하면서 허구의 소설도 부족하여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까지 왜곡하는 문헌조작 만행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김육불의 이같은 문헌 왜곡은 본론에서 차차 밝히기로 하겠다.

논문이라는 형식을 갖추기 위해 김육불에 대한 선행사 연구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보았다. 필자의 논문 제목인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이라는 국내의 학위논문이나 학술논문은 단 한편도 찾지 못했으며 해외학위 논문이나 학술논문 역시 발견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필자의 논문이 김육불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는 최초의 논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육불은 역사적으로 동삼성이라 일컫는 요녕, 길림, 흑룡강성을 중국왕조의 영토로 편입시키기 위해 문헌사료에 근거없이 왜곡, 날조, 조작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고 이 같은 김육불의 날조된 허구의 위서(僞書)가 중국의 동북공정의 단초(端初)를 제공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육불의 왜곡된 허구에 의하여 만들어진 동북공정은 원천적으로 허구임을 지적하면서 지금부터 김육불의 <동북통사>가 억설(臆說)과 억측(臆測)과 억단(臆斷)으로 일관된 위서임을 밝혀보도록 하자.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6부

II. 본론

1. 동북의 함축된 뜻과 그 이칭




김육불은 <동북통사> 첫장을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지금의 요령(遼寧) • 길림(吉林) • 흑룡강(黑龍江) • 열하(熱河) 4성(省)이 중국의 동북부에 있으므로 중국 사람들이 그것을 쉽게 일컬어 ‘동북(東北) 지방’이라 칭한다.

진실로 이 4성 지역은 중국의 일부지역이 되므로, ‘동북(東北)’이란 한마디 말로 중국 동북부의 간략한 칭호이니, 그 뜻은 지극히 분명하여 자세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라고 동북(東北)의 위치를 정의하고 있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동북을 유주(幽州)라 하고 그 산의 진(鎭)[명산]을 의무려(醫巫閭)라고 한다”라고 <주례/직방씨>를 인용하였다. 김육불이 주장하고 있는 요녕, 길림, 흑룡강, 열하 4성이 마치 동북이면서 유주인양 교묘하게 각색하고 있다.

그러나 김육불의 주장과 <주례/직방씨>의 인용은 견강부회(牽强附會)한 것이다. “동북을 유주라 하고 그 산[명산]을 의무려”라 한 동북, 유주, 의무려산의 위치를 함께 추적해보도록 하자.

우선 유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주(冀州)의 위치 확인이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주에서 유주로 그리고 요서로 명칭이 바뀌어 가기 때문이다. 먼저 기주의 위치를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고대에 나타난 구주설(九州說)은 <尙書(상서)/禹貢(우공)>, <呂氏春秋(여씨춘추)/有始覽(유시람)>, 그리고 <淮南子(회남자)/墬形訓(지형훈)>이다.

동양 최초의 사서이자 지리서인 <상서/우공>의 구주는 기주(冀州), 연주(兗州), 청주(靑州), 서주(徐州), 양주(揚州), 형주(荊州), 예주(豫州), 량주(梁州), 옹주(雍州)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7부



 


<상서>에서 ‘기주(冀州)’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우(禹)는 땅을 나누고 산에 이르러 나무를 베고 높은 산과 큰 강에 제사지냈다. 기주는 호구산(壺口山)에서 시작하여 양산(梁山)과 기산(岐山)까지 다스렸고, 태원(太原)땅을 닦고 악산(岳山) 남쪽 기슭에 이르렀으며 담회(覃懷)땅의 일을 마치고 장수(漳水)가 가로지르는 곳에까지 이르렀다.

그곳 흙은 희고 부드러웠고 부세(賦稅)는 일 이등이 섞였고 밭은 오등 정도였다. 항수(恒水)와 위수(衛水)가 잘 다스려지자 대륙 호숫가는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섬나라 오랑캐들은 여러 가지 옷을 바쳐왔다. 그들은 갈석산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黃河)로 들어왔다.” 라고 말하고 있다.

<상서/우공>의 기주에 나타난 지명들인 태원, 호구산, 양산, 장수, 악산, 항수, 갈석산 등은 산서성에 있는 지명들이고, 기산은 섬서성과 산서성에 있는 지명이며, 담회와 위수는 황하북부 하남성 일명 하내(河內)에 있는, 산서성과의 경계에 있는 지명이다.

이들 모든 지명들은 황하의 동쪽인 하동(河東)으로 황하 근처라는 것이다. 또한 당(唐)나라의 지리서인 <元和郡縣圖志(원화군현도지)>에서도 ‘하동지방이 기주’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인용문에 나타난 지명들의 위치 분포로 볼 때 기주는 하동인 산서성과 황하북부 하남성 즉 하내(河內)일대를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하북, 요녕, 길림, 흑룡강성은 기주가 될 수 없다. 이들 지역은 황하변이 아니기 때문이며 산서성과 하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주는 반드시 황하변이여야 한다. <상서/우공>과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이 기록하고 있는 기주 지역과 황하의 위치를 아래 <그림 1>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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