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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

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13~16부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4-03-23 (토) 19:11:58

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13~16부




김육불은 그의 주장을 증거하기 위해 <이아/석지>, <산해경/대황북경>, <회남자/추형훈>, <요사/병위지>, <요사/영위지>, <요사/지리지>, <요사/백관지>, <거란국지>, <금사/지리지>, <금사/백관지>, <대금국지>, <대원일통지>, <명필공의 요동지> 등의 문헌사료들을 인용하고 있으나

“동북이 유주”라는 위치를 밝히는 절차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들로 논평의 가치가 없음을 밝힌다.

김육불은 “동북에 함축된 뜻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이제 그 다른 이름을 고증해 보자”라고 하면서 첫째는 ‘요동’이다 라고 억설(臆說)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첫 번째로 제시한 사료는 <사기/흉노전>으로 “연(燕)나라가 조양(造陽)으로부터 양평(襄平)에 이르기까지 상곡(上谷) • 어양(漁陽) • 우북평(右北平) • 요서(遼西) • 요동(遼東)군을 설치하여 오랑캐를 막았다”를 인용하고 있다.

김육불의 이 같은 인용은 요동의 위치를 밝히는 것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내용이다. <흉노전>에 나오는 연은 북연(北燕)으로 김육불이 동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열하, 요녕, 길림, 흑룡강성과 아무관련이 없는 지역이다. 문제의 요동과 북연이 어디에 위치했었는지 조사해보도록 하자.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14부

 


요동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춘추시기(770-403BC)에 관중(管仲: 719-645BC)이 지은 <管子(관자)/地數(지수)>편에 “초나라 여수(汝水)와 한수(漢水)에는 금(金)이 있고, 제나라 거전(渠展)에는 소금(鹽)이 있으며, 연(북연)나라 요동(遼東)에는 구운 소금(煑)이 있다”라고 하여 요동에서 소금이 생산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요동이란 지명은 최소한 춘추시기에 존재했던 지명이며 요동이라 일컫는 곳이 당시 북연의 땅이었는데 그곳에서 소금이 생산되었다고 적고 있다.

두 번째 요동에 관한 기록은 <사기(史記)/조선열전(朝鮮列傳)>으로, “한(漢)이 일어났으나 그 곳이 너무 멀어 지키기 어려워 요동의 옛 요새를 다시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러 경계로 삼아 연(북연)에 속하게 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다음은 북연에 대한 기록이다. “서주 초기에 봉하였으며 희성(姬姓)이고 도읍은 계(薊)이다. 전국시 7웅의 하나이며 기원전 222년에 진(秦)에 의해 멸했다.”

북연의 도읍지인 계(薊)에 대하여 “계는 남쪽으로 제(齊)와 조(趙)와 통하며 발해(勃海)와 갈석(碣石) 사이에 있는 큰 고을이다. 사고(師古)의 주해에 의하면 계현(薊縣)은 연[북연]의 수도이다”라고 적고 있다.

<사기/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는 “연은 발해와 갈석 사이의 큰 고을이다. 남으로 제(齊)와 조(趙)와 통하며 동북으로 호(胡)와 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의 호는 동호(東胡)라고도 부른 고구려와 북부여를 뜻한다.

당시 제(齊)의 도읍은 하남성 정주와 낙양 사이였고 조(趙)의 도읍지는 섬서성 장안(長安)이였다. 북연의 수도 계(薊)가 하남성뿐만 아니라 섬서성과도 가까운 곳에 위치했음을 알 수 있다.

요약하면 연[북연]의 도읍지는 ‘갈석과 발해’의 사이에 위치하고 남으로 섬서성 장안의 조(趙)와 통하고 동북으로 호(胡)와 접하는 동서는 길고 남북은 폭이 좁은 강토를 소유한 아주 작은 나라임을 의미한다. 동서가 길고 남북의 폭이 좁은 당시의 북연강역을 도형으로 표시해보면 대략 아래 <그림 6>과 같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15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운 소금인 천연소금이 산출되는 요동과 북연은 동북지역이며 유주이고 광녕의 서쪽인 산서성 남부와 하내를 지칭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열하, 길림, 요녕, 흑룡강성이 동북 지방이며 요동이고 연나라라고 논지를 펴온 김육불의 주장은 허구라는 사실이 분명히 고증되는 대목이다.

요동이라 주장하는 요녕성 요하의 동쪽에는 천연 소금염지가 없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김육불은 요동의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사기/소진전>, <삼국지/위지/공손탁전>, <명실록>, <독사방여기요>, <요동지>, <길림통지>, <진서/재기>, <위서/고막해전>, <북사/돌궐전>, <신당서/설인귀전>, <노진승초록>, <명사/지리지> 등을 인용하고 있지만 이들 사료들은 요동과 북연의 위치를 밝히는 것과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으로 논평할 가치가 없다.

지금까지 제1절에서 살펴본 내용을 종합해보면 기주, 유주, 동북 지방, 의무려, 광녕, 요동, 북연 등이 위치한 지역은 산서성 남부와 하내 지역임을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의해 고증하였다.

따라서 김육불이 주장하고 있는 열하, 요녕, 길림, 흑룡강성은 문헌사료에 의거한 동북지역도, 북연 지역도, 요동지역도 아니므로 그의 주장은 억측(臆測), 억설(臆說), 억단(臆斷)으로 이루어진 역사서가 아닌 허구라고 결론짓는다. 더 자세한 내용은 www. coreanhistory.com에 게재되어 있는 필자의 논문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16부

 



2. 동북사와 지방지

한 나라의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것을 역사(歷史)라 하고 한 지방의 일을 기록한 것을 지방지(地方志)라고 한다. 지방마다 고유한 지(志)가 있다. 길림성 지방의 일을 기록한 것은 길림통지(吉林通志)(1893)이고, 요녕성 지방의 일을 기록한 것은 요녕통지(遼寧通志)(1928)라 하고, 흑룡강성의 일을 기록한 것을 흑룡강지(黑龍江志)(1931)라 한다.

이들 지방지는 정확한 사실을 기록한 정사(正史)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나의 정사는 모두 25종으로 4,022권에 달한다. 그런데 김육불이 동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요녕통지는 1911년 중화민국이 건립된 후인 1928년에 지은 것으로 많은 내용이 왜곡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사가 아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고증할 때에 1차사료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단지 참고는 할 수 있을뿐이다.

더욱이 <요녕통지>나 <봉천통지>처럼 사실이 왜곡된 지방지는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는데 이용될 수 없다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동북지역을 고증할 때는 그 당시인 춘추전국시기에 지어진 1차사료에 의해 증명해야 하는 것이 역사서술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봉천이란 요녕이라 명칭이 바뀌기 전의 이름으로 <봉천통지>는 김육불 개인이 1934년에 출간한 지방지이다. 김육불은 자신이 <봉천통지>를 스스로 지어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 날조하였다.

김육불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사(史)와 지(志)는 이름만 다르지 내용은 같은 것이므로, ‘사’라고 하나 ‘지’라고 한 그 뜻은 하나이다. 진수(陳壽)의 책에서는 ‘지(志)’라 했고 이연수(李延壽)의 책에는 ‘사(史)’라 칭했던 것이다.

정초(鄭樵)의 <통지(通志)>는 체제가 통사(通史)인데, 사(史)를 바꿔 지(志)라 일컬으니 곧 ‘사’는 ‘지’라 일컬을 수 있고, ‘지’도 또한 ‘사’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육불은 여기서 그럴듯한 논리를 펴고 있으나 비록 ‘지’자가 들어가는 책이나 진수의 <삼국지>는 정사의 하나이지만 김육불 자신이 지은 <봉천통지>를 비롯하여 모든 지방지들은 정사가 아니라는 사실과 정초의 <통지>는 김육불처럼 역사를 왜곡하지 않은 훌륭한 사서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정초는 동북지방이 길림, 요녕, 흑룡강, 열하라고 왜곡하지 않았다.

김육불은 이 밖에도 명나라 때 임락(任洛)이 지은 <요동지>, 청시기 유근지(劉謹之)가 지은 <성경통지>, 청 함풍년간(18151-1861)에 수여령(隋汝齡)이 편찬한 <요해지략> 등을 인용하여 ‘지(志)’가 역사서라고 열을 올리고 있으나, 이들 지(志)들은 모두 한결같이 왜곡된 책으로 위서(僞書)이자 허구의 소설로 전혀 사료적 가치가 없음을 밝힌다.

동양사 중 동이배달한민족사의 지리지명을 가장 왜곡한 명과 청 시기에 만들어진 사서는 대부분이 위서(僞書)임을 밝힌다. 명말 청초의 장대(張岱: 1597-1684)의 말 한마디로 명•청시기의 사서 왜곡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대변할까 한다. “명(明) 일대에 국사(國史)는 진실성을 잃었고 가사(家史)는 객관성을 잃었고 야사(野史)는 억측한 바가 많으니, 280년 동안 이 모두가 하나의 속임의 세계였다.”라고 한 사실에서 명대(明代)의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어 왔는가를 잘 반영해 준다할 것이다.

김육불이 지은 <동북통사>는 정사라고 할 수 없는 지방지들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야사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된 허구임을 밝힌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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