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부 동북사와 민족
“동북사란 동북 민족이 활동한 역사이다. 동북민족이 없었다면 이른바 동북사도 없기 때문에 동북사를 기술하려면, 반드시 먼저 민족을 첫머리에 논해야 한다. ...한무제가 조선을 멸망시킨 것, 관구검이 고구려를 토벌한 것이 그것이다. 이어서 동호족이 부여족과 서로 다투었으니, 모용연(慕容燕)이 고구려를 토벌한 일이나, 고구려가 요동을 침략한 것이 그것이다.
이어서 한족과 부여족이 서로 다투었으니,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정벌한 것이 그것이다”라고 하여 김육불은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동북의 한 곳인 요녕성에 부여, 고구려가 있었던 것처럼 서술하면서, 한무제, 관구검, 모용연이 침략한 요동의 고구려 핵심강역을 요녕성에 한정시키는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
고구려의 국내성, 평양성, 안시성, 압록수, 요동은 모두 산서성에 있던 지명이며 북부여는 고구려의 북쪽인 내몽고에 그리고 동부여는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에 위치했던 나라로 김육불의 근거없는 주장과는 사뭇 다르다. 수•당이 침략한 고구려의 평양성과 안시성이 김육불의 주장대로 요동인 요녕성에 있었는지를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위징등이 지은 <隋書(수서)>에 “배구(裵矩: 547-627)가 앞서 예를 들어 말하기를, 고구려는 본시 고죽국인데 주(周)나라가 여기에 기자를 봉(封)하였고 한(漢)에 이르러 3군으로 나누었으며 진(晉)대에 요동(遼東)을 통솔하였다”라고 수양제 양광에게 설명하고 있다. 고구려의 영토가 전에는 고죽국이였다는 사실을 <舊唐書(구당서)>와 <新唐書(신당서)>도 똑같이 기술하고 있다.

고죽국의 위치를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는 대략 60종에 달한다. 그 중 몇 가지 사료만 인용해보자. <後漢書(후한서)>에 “요서군 영지(현)에 고죽성이 있으며 백이숙제의 나라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史記集解(사기집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집해에서 마융이 말하기를, 수양산은 하동(河東) 지방의 포판(蒲坂)에 있는 화산(華山)의 북쪽에 있고 황하가 꺾여 흐르는 곳이다.”
여기서의 화산은 산서성 황하 굴곡지점 남서쪽으로 섬서성에 있는 산이다. 현재 발행되고 있는 모든 대륙지도뿐만 아니라 대청광여도에도 이 화산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허신의 <說文解字(설문해자)>도 “수양산은 요서에 있다”라고 적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18부
지금까지 내용을 종합하면 고죽국이 고구려의 영토인데 고죽국은 요서라고 부르던 황하의 동쪽인 하동지방이며 섬서성에 위치한 화산의 북쪽으로 이곳 산서성에 고죽국의 상징인 수양산이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수양산의 위치에 대해 <武經總要(무경총요)>는 “수양산은 옛 고죽국의 땅”이라고 기록하고 있어 이들 문헌사료들은 한결같이 수양산이 위치한 곳이 고죽국이라고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옛 지리지명을 찾을 때는 반드시 강과 산을 추적해야 정확한 위치를 밝힐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죽국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결정적인 산이 바로 수양산(首陽山)인데, <中國古今地名大辭典(중국고금지명대사전)>, <中國歷史地名大辭典(중국역사지명대사전)>, <中國古代地名大詞典(중국고대지명대사전)>, <大淸廣輿圖(대청광여도)> 등 여러 자료에 수양산이 산서성(山西省)에 위치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중조산이 수양산이라고 <括地志(괄지지)>와 당나라의 지리서인 <元和郡縣圖志(원화군현도지)>가 기록하고 있다. 중조산은 지금의 산서성 남서부에 있는 산으로 대륙지도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위에서 살펴본 <수서>, <구당서>, <신당서>, <후한서>, <사기집해>, <설문해자>, <무경총요>,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중국역사지명대사전>, <중국고대지명대사전>, <대청광여도>, <괄지지>, 그리고 <원화군현도지>의 기록을 종합하여 정리하면 황하 동쪽인 하동이며 기주, 유주, 요서라고 부르던 산서성에 고죽국의 상징인 수양산이 있는데 이 수양산은 오늘날의 중조산이며 이곳 산서성이 바로 고구려의 강토였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김육불의 견해처럼 고구려는 요녕성에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게 밝혀지는 대목이다. 수양산이 위치한 고죽국이며 고구려의 영토인 산서성을 다음 <그림 7>로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19부
김육불의 견해대로 수•당이 침략한 고구려의 평양성, 안시성, 압록수가 요녕성에 위치하였는지를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조사해 보자. <신당서>에 고구려에 요산과 요수란 하천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요수(遼水)가 왜 압록수(鴨綠水)란 명칭을 갖게 되었는지의 이유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물(水)은 대요(大遼)와 소요(少遼)가 있다. 대요는 말갈의 서남쪽 산에서 흘러나와 남으로 안시성(安市城)을 거쳐 흐른다. 소요는 요산(遼山)의 서쪽에서 흘러나와 역시 남으로 흐르는데, 양수(梁水)가 새외(塞外: 요새 밖)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이와 합류한다.
마자수(馬訾水)가 있어 말갈백산(靺鞨白山)에서 흘러나오는데, 물빛이 오리머리와 같이 푸르러 압록수라 부른다. 국내성(國內城) 서쪽을 거쳐 염난수와 합류한 다음, 다시 서남으로 흘러 안시(성)에 이르러 바다(海: 황하)로 들어간다. 평양성(平壤城)은 압록의 동남에 있어 큰 배로 사람이 건너다니므로 해자(塹濠) 역할을 한다.”
라고 하여 고구려에는 요산이 있고 대요수, 마자수, 소요수, 그리고 염난수 4개의 물이 합류하여 요수(압록수)를 이루어 남쪽으로 흐르다가 안시(성)를 거쳐 황하(黃河)로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자수(馬訾水)가 압록강(鴨綠江)이며 일명 압록수다”라는 사실을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이 증명해주고 있다.
고구려의 국토 가운데 요산이 있어 요수가 흘러나오고 당시의 도읍지는 환도성(丸都城)이라고 <梁書(양서)>와 <南史(남사)>에 기록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논문을 참고하기 바라며 고구려의 압록수를 따라 위치한 국내성, 평양성, 안시성을 다음 <그림 8>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20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구려의 압록수, 평양성, 국내성, 안시성 등은 모두 고구려의 강토였던 산서성에 위치했음을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요녕성에 고구려의 안시성, 국내성이 한반도에는 평양성 등이 있다는 김육불의 견해는 허구임이 입증된 것이다.
김육불은 예맥(濊貊)족이 동북지방에 거주했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周書(주서)/王會(왕회)>를 인용하면서 “맥족(貊族)이 동북지방에 거주한 지는 오래되었다”라고 하며, <史記(사기)/貨殖傳(화식전)>을 인용하여 “부여라는 명칭은 주나라 말엽에 이미 있었다. 부여가 맥족에서 나왔다고 하는 말은 근대 사람들이 비로소 언급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육불은 동호족(東胡族)에 대해서 <중국 역사상 민족의 연구>를 인용하여 “동호족(東胡族)은 예로부터 지금의 동[북]3성 및 한반도에 거주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사적(史籍) 가운데 숙신, 읍루, 물길, 말갈, 고구려, 발해, 여진 등이 여기에 속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김육불이 여기에서 인용하고 있는 사료들은 예맥족이나 동호족의 근거지를 밝히는 것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내용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예맥족이나 동호족은 동북지방인 요녕, 길림, 흑룡강성이나 한반도에 거주한 적이 없으므로 그는 여기서도 허구의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다. 예맥족과 동호족의 활동지역을 함께 살펴보자.
예맥족이란 예(濊)라는 하천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예라는 하천이 어디에 위치했는지를 밝히면 자연히 예맥족이 거주지가 확인될 것이다. <畿輔通志(기보통지)>에 “예하(濊河)는 평산현 북쪽에 있는데 방산(房山)에서 출원하여 동남으로 흘러 호타(滹沱)로 들어간다. 방산은 평산현 서북에 있고 예수(濊水)가 나온다”라고 하여 예(濊)라는 물이 방산에서 출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방산(房山)에 대해 알아보자. “수도경에 이르기를 방산 산봉우리에 왕모사당이 있는데 세속에서 왕모산(王母山)이라 한다. ...예수(濊水)가 흘러나온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도 “방산(房山)이 왕모산(王母山)”이라 하고 있다.
왕모산에 있는 ‘골짜기’, ‘굴’, ‘동굴’의 의미인 왕모동(王母洞)에 관하여 “산서성 양성현에 있는 왕옥산(王屋山)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종합해보면 예수(濊水: 예하)라는 하천이 산서성 남부에 있는 왕옥산에서 발원한다는 것이다. 천연지형물인 예수(濊水)라는 하천으로 인하여 예(濊)라는 이름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