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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최종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4-07-12 (금) 21:57:48

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56~59부

16. 관구검의 고구려 토벌

 



김육불은 관구검의 각석기공비가 봉천 집안현에 설치된 것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입증하기 위해 <삼국지/위지/관구검전>, <삼국지/위지/고구려전>, <삼국지/위지/제왕기>, <동국통감>, <삼국지/위지/동이전/동옥저> 등의 문헌사료들을 언급 인용하고 있으나 이들 문헌 어디에도 “봉천 집안현에 각석기공비를 세웠다”는 내용은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논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문제의 각석기공비는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으로 이씨조선(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상태에서, 이씨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나와 일본이 공모하여 가짜 26cm x 26cm 크기에 40-50자의 글자를 새겨서 봉천성 집안현에서 발굴된 것처럼 조작한 것이라 믿는다.

관구검이 환도성을 불지른 때는 245년이고 20년 후인 265년에 위나라는 망했다. 그러나 고구려는 환도성이 불탄 후에도 425년간 존속된 나라이다.

그리고 각석기공비를 세우려면 환도성이 있던 산서성 남부의 어느 곳 위나라의 영토안에 세우는 것이 논리적인데 어찌 적국의 내륙 깊숙한 곳에 적국의 도읍지를 불사르고 파괴했다는 기념비를 세울수 있을까를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관구검의 각석기공비가 봉천성 집안현에서 발견되었기에 이곳에 고구려의 환도성이 있었다는 주장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지 못한 허구의 소설임을 고증한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57부

17. 진초기의 평주

 

평주에 대한 김육불의 견해를 들어보자. “양한(兩漢) 시대에 동북 지방의 여러 군은 유주(幽州)에 속하였는데, 공손씨가 그 일부를 점거하면서부터 평주(平州)란 이름이 비로소 나타났고, 위(魏) • 진(晉)도 그것을 답습하여 평주를 설치하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육불은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동북지역인 열하, 길림, 요녕, 흑룡강성 지역의 어느 곳이 유주이며 이곳에 평주를 설치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앞 절에서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유주는 하내에 있는 광녕의 서부지역으로 산서성 남부와 섬서성 동부 그리고 하남성 서북부 일대를 일컫는 것이다.

유주에 관하여 <그림 3>과 <그림 5>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곳에서는 평주가 어디에 위치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明一統志(명일통지)>에 기록된 영주에 대해서 알아보자.

“영평부 건치(建置) 연혁 우공(禹貢)의 기주(冀州) 지역 천문(天文) 연나라의 미(尾) 기(箕) 지역. 처음에 우순이 기주인 동북을 나누어 영주로 삼았는데 이곳이 그 지역이다. 상(商) 시대의 고죽국이고 주(周) 시대에는 유주(幽州)에 속했으며 춘추시대에는 산융(山戎) 비자(肥子)의 두 나라 지역이다.

진(秦) 시기의 요서 우북평 두 군(郡)의 지역이고 한(漢) 말기에 공손도(公孫度)에게 점거되었으며 위(魏) 시기에 노룡군(盧龍郡)으로 고치고 북연(北燕) 때 평주(平州) 및 낙랑군을 설치하였으며 후위(後魏) 때에 낙랑을 고쳐 북평군으로 삼았으며 수(隋) 시기에 평주(平州)로 고쳤다가 후에 주를 폐지하고 군(郡)으로 삼았다.

당(唐) 시기에 다시 평주로 고쳤다가 천보(天寳) 초에 바꾸어 북평군으로 삼았으며 건원(乾元) 초에 다시 평주로 삼았다. 오대(五代) 시기에 당(唐)이 요흥군(遼興軍)으로 삼았다가 금(金) 시기에 승격시켜 남경(南京)으로 삼았으며 천회(天㑹) 초에 다시 평주로 삼아 흥평군(興平軍)으로 승격시켰다.

원(元) 시기에 흥평부(興平府)로 고치고 중통(中統) 초에 승격시켜 평란로(平灤路)로 삼았으며 대덕(大德) 중에 영평로(永平路)로 고쳤으며 본조(本朝) 홍무(洪武) 2년 영평부로 고쳐 북평포정사(北平布政司)로 삼았다.”고 하여 “한나라 말에 공손도에게 점거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인용문을 요약하면 영평부, 평주, 기주, 영주, 노룡군, 고죽국, 유주는 모두 같은 지역을 달리 부르는 이름으로 정리된다. <명일통지>가 기록하고 있는 평주는 고죽국이 있던 산서성 남서부와 섬서성 동북부 지역을 유주와 영주로 함께 지칭하는 곳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김육불이 동북지역이라고 주장하고 있은 열하, 길림, 요녕, 흑룡강성은 평주도 유주도, 영주도 없었다.

김육불은 열하, 길림, 요녕, 흑룡강성에 평주가 있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진서/지리지>, <진서/전연재기>, <진서/무제기>, <진서/문육왕전> 등을 애써 인용하고 있지만 평주나 유주나 영주의 위치를 고증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내용들을 나열하고 있어 논평의 가치가 없다. 따라서 김육불은 여기서도 변함없이 허구의 역사소설을 쓰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58부

III. 결론∼1

 

김육불은 “지금의 요령, 길림, 흑룡강, 열하 4성이 중국의 동북부에 있으므로 중국 사람들이 그것을 쉽게 일컬어 동북지방이라 칭한다. 진실로 이 4성 지역은 중국의 일부 지역이 되므로, 동북이란 한마디 말로 중국 동북부의 간략한 칭호이니, 그 뜻은 지극히 분명하여 자세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라고 사견(私見)에 입각한 독단적인 결론에 이르는 실수를 범하였다.

김육불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동북이 유주라 하고 그 산의 진[명산]을 의무려라고 한다”라고 <주례/직방씨>를 인용하였다.

김육불의 이같은 주장이 타당한가를 고증하기 위해 구주(九州)의 기록을 담고 있는 <상서/우공>, <여씨춘추/유시람>, <회남자/지형훈>을 살펴본 바 기주(冀州)는 황하의 동쪽이란 의미의 하동(河東)인 산서성과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河內)임을 확인하였고 하동인 산서성 남부 지역이 기주(冀州)에서 유주(幽州)로 그리고 진(秦)나라 때는 산서성 남서부 지역을 요서(遼西)라고 불렀음을 밝히고 그림으로 그려 보였다.

“동북이 유주”란 <주례/직방씨>의 기록은 서주(西周)의 도읍지 호경(서안)에서 판단한 동북으로 하동인 산서성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를 일컫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기주와 유주는 같은 지역으로 산서성 남부와 하내에 있는 광녕(의무려의 소재지)의 서쪽을 지칭하고 있음도 확인하고 그림으로 제시하였다.




따라서 김육불의 주장인 열하, 요녕, 길림, 흑룡강성은 기주, 유주, 요서가 될 수 없으므로 동북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증하였다.

요동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관자/지수편>으로 “요동에는 구운소금(천연염지)이 있다”라는 사실을 요동인 산서성 남부에 천연염지인 운성염지로 오늘날에는 해지(解池)라고 부르고 있음을 밝히고 그림으로도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김육불이 <동북통사>에서 주장한 요녕성 요하(遼河) 동쪽 어디에도 천연소금이 생산되는 염지가 없음으로 김육불의 요동은 요녕성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봉천통지>는 김육불이 1934년에 출간한 지방지로 정사(正史)가 아니기 때문에 지리지명을 고증할 때는 1차사료나 문헌자료가 될 수 없고 <동북통사> 역시 김육불이 1946년에 <봉천통지>를 비롯하여 명 • 청 시기에 나타난 지방지들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야사로 관찬사도 정사도 아닐뿐더러 역사적 사실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음을 밝혔다.

김육불은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동북지방의 한 곳인 요녕성에 부여, 고구려가 있었던 것처럼 서술하면서 한무제, 관구검, 모용연이 침략한 사건들이 마치 요녕성에서 발생한 것 같이 역사를 왜곡, 날조, 조작하였다.

수많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이 기록하고 있는 고구려는 황하 동쪽인 하동이며 기주, 유주, 요서라고 부르던 산서성에 고죽국의 상징인 수양산이 있는데 이 수양산은 오늘날의 중조산이며 이곳 산서성이 고구려의 핵심 강토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고구려가 요동인 산서성에 실존했다는 사실은 <수서>, <구당서>, <신당서>, <후한서>, <사기집해>, <설문해자>, <무경총요>, <중국역사지명대사전>,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중국고대지명대사전>, <대청광여도>, <괄지지>, 그리고 당나라의 지리서인 <원화군현도지> 등이 기록하고 있음을 고증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59부

III. 결론∼2

 

수 • 당이 요녕성에 있던 고구려를 침략했다는 김육불의 억단과는 달리 고구려의 국내성, 평양성, 안시성, 환도성, 요수(압록수) 등은 모두 고구려의 도읍지들이 있던 산서성에 위치했다는 사실을 <사기>, <수서>, <신당서>, <양서>, <남사>, <수경주> 등의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교차확인 하여 고증하였다.

따라서 김육불의 견해인 요녕성에 안시성, 국내성, 그리고 한반도에 평양성이 있었다는 주장은 명백한 허구임이 입증되었다.

김육불은 예맥족이 동북지방인 열하, 길림, 요녕, 흑룡강성에 거주했다고 주장하였으나 예맥족은 예수(濊水)라는 하천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며 이들이 거주한 곳은 산서성임을 <기보통지>, <태평어람>, <중국고금지명대사전>, <통지>, <수경주집석정와>, <산동통지> 등에 근거하여 고증하였다.

그러므로 김육불의 ‘동북지방 예맥족 거주 주장’은 터무니없는 허구임이 판명되었다. 김육불은 동북지방이라는 요녕, 길림, 흑룡강, 열하성에 요동과 요서가 있었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문헌사료들을 인용하고 있으나 그가 인용한 내용은 요동과 요서의 위치를 밝히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들을 마치 굴비엮듯 나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요동(遼東)은 요산, 요산현, 요주, 요양, 소요수, 대요수 등의 지리지명들이 위치한 산서성임을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의해 고증하였다. 패수(浿水)는 산서성 남부 왕옥산에서 발원하여 하내를 경유하고 동쪽으로 흘러 황하(黃河)로 진입한다는 사실을 <사기>, <수경주>, <설문해자> 등에 의해 고증하였다.

숙신은 단군조선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김육불은 숙신국이 장백산 북쪽에 있었으며 이곳에서 송골매가 숙신의 화살을 맞고 4,650리를 날아와 섬서성 서안에서 죽었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나, 이 같은 견해는 논리성도, 합리성도, 설득력도 없음을 논증하였다.

요하의 서쪽과 하북성에 있는 산해관 동쪽에 요동속국이 위치했다는 김육불의 주장은 근거없는 억설임을 <후한서/오환전>의 기록에 의해 밝히고 유성(柳城)은 섬서성 람전(藍田) 동남에 위치했다는 사실을 고증하였다.




관구검이 불살랐다는 고구려의 환도성(丸都城)은 환도산(丸都山)에 있던 도읍지로 환도산은 지금의 화염산(火焰山)이며 화염산은 산서성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중국고대지명대사전>, <양서>, <남사> 그리고 <신당서>에 의거 고증하였다.

김육불이 <동북통사>에서 주장한 내용들이 역사적 사실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 확인하고 밝히고 고증한 바 김육불의 주장은 전혀 근거없는 억설(臆說)과 억측(臆測)과 억단(臆斷)으로 만들어진 위서(僞書)이자 허구(虛構)의 소설이라고 결론내린다.

아울러 김육불이 ‘중국의 역사학의 대가’이며 <동북통사>가 대단한 저술임을 극찬한 대한민국 동북아 역사재단의 우매함을 지적하면서 한자로 쓰인 중공의 책들을 번역하는 ‘동북아번역재단’이 아닌, 동이배달한민족사를 깊이 연구하여 중공 동북공정에 ‘역사적 고증의 방법’으로 대항할 수 있는 훌륭한 논문들을 발표해 줄 것을 간곡히 바란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60부

(마지막 회이며 이어서 <단군조선의 강역 연구>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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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Critic on the distorted history written by Youkbul Kim

- Focusing on 『Dongbuktongsa』 -

Kim, Taeyoung

Yukbul Kim had concluded that in the beginning of his book 『Dongbuktongsa』, because today’s four provinces, Yonyoung, Gilim, Heukryonggang, and Yeolha, existed in Dongbuk, that Dongbuk, in the short form “the Chinese Dongbuk region”, the meaning of Dongbuk is indeed clear, therefore, it is not necessary to explain in detail the meaning of Dongbuk.

From approximately BC771, in the period of Seoju, through Jin, Han, and the battles between Su.Dang and Goguryoe until 1368 at the end of Won, we confirmed that Kim fabricated and distorted that Giju, Yuju, Yoseo, Yodong, Gojukguk, Goguryoe, Pyungyangseong, Ansiseong, Whandoseong, Birusu, Yosu, Nanha, Paesu, Gwangnyung, Eumuryoe, which were in the southern part of Sanseo province and Hanae, the northern region of the Hwangha River from Hanam province, were located as if they were today’s Yonyoung, Gilim, Heukryonggang, and Yeolha provinces.

Therefore, the contents of 『Dongbuktongsa』 are not based on primary sources or historical records but solely on Kim’s personal opinions. We proved that Kim’s opinions were fictitious and demonstrated them by diagrams.

Reviewing, scrutinizing, comparing, analyzing, and cross-examining the relevant historical records, data, and primary sources available, we clarified that his theory was groundless, conjectural, speculative, and guesswork after all. Accordingly, we concluded that Kim’s 『Dongbuktongsa』 is fiction.

To make matters worse, Kim’s 『Dongbuktongsa』 was a basis of Dongbukgongjeong, which is a distorted history developed by the Chinese government. In addition to this, we divulged the incapability of the historical foundation of Dongbuka which exalted Kim’s fabricated work without properly analyzing them.

Key words: Giju, Yuju, dongbuk, Yodong, Goguryoe, Pyungyangseong, Whandoseong, Yosu, Paesu, Gwangnyung, Eumuryoe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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