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Sang-Hoon Lee): 역사를 배우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그렇게도 궁금하던게 이제야 풀렸던 역사내용 하나가 있다. 바로, 백제가 한반도에 없고, 중국 대륙의 남서쪽 내륙 당나라 옆에 있어야만,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백제 근처에 (바다가 아닌 육지로) 먼저 도착해 있을 수 있고, 신라의 김유신 등의 장수들을 집결지에 늦게 왔다고 호통칠수 있었다는게 이해되었다. 또한, 신라의 위치가 고구려, 백제의 동남쪽에 있었다는 기록이 맞으려면, 삼국은 중국대륙에 있어야만 한다. 이런 작은 단초로, 일반인인 나조차도 역사를 다시 짚어볼수 있었는데...
논평: 한반도에는 1394년 이성계가 지금의 서울에 도읍을 정하고 이씨조선을 건국하기 전까지는 어떤 형태의 왕조나 국가가 없었다.
한인(桓因)의 한국(桓國), 한웅으로 알려진 태호복희씨, 염제신농씨, 소호금천씨, 구제치우씨 등의 나라는 모두 대륙 오늘날의 산서성과 섬서성 북부에 위치했으며 단군왕검씨가 건국한 조선(朝鮮) 즉, 단군조선(壇君朝鮮)도 오늘날의 황하북부 하남성과 산서성에 위치했다.
삼한(三韓)인 진한(산서성 임분), 마한(산서성 조양진), 그리고 변한(산서성 원곡)의 도성(都城)은 모두 산서성에 있었고 마한에서 백제, 진한에서 고구려, 그리고 마한·진한·변한에서 신라가 태동되었다.
고구려의 강토는 주로 위도 35도로 나뉘는 황하(黃河) 이북이고 신라는 강소성 강녕(江寧: 금성)을 도읍지로 하여 주로 대륙의 동쪽을 관할 했으며 백제의 웅진(熊津)은 호북성 무한(武漢)으로 신라의 서남쪽을 통치한 셈이다. 가야는 오늘날의 절강성 김해(임해)에 도읍하였다.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660년 사비성(안휘성 청양)에서 패망하고 668년에는 고구려가 역시 나·당 연합군에게 망하였다. 그러나 대중상과 대조영이 고구려의 옛 강토를 모두 차지하여 698년에 대진(大震)을 세웠다.
백제가 망하자 신라는 백제의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으나 패망한 고구려의 영토는 차지하지 못하고 산서성 남부 고구려의 평양성이 있던 임분(臨汾)의 남쪽 일부만 관할하였다. 따라서 신라가 가장 번성한 시기의 강토는 사방 6천리로 주로 황하 남부이다.
신라도 927년경에는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河內)에 있는 지금의 복양(濮陽)에 도읍을 정한 왕건(王建)에게 귀부(歸附)하였다.
1361년 11월 명나라를 세운 홍건적(紅巾賊) 수괴인 주원장에게 고려의 도읍지인 개경(開京: 복양)이 함락되었다.
1388년 명나라가 고려의 영토 안에 철령위(鐵嶺衛: 안시성이 있던 산서성의 화염산으로 고려 서경인 임분의 서남쪽)를 설치하려 하자 명나라를 몰아내기 위해 요동정벌을 명했으나 역적 이성계는 왕명에 불복하고 다음해인 1389년 위화도(威化島: 황하북부 하남성의 길리구)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하고 3년 후인 1392년 7월 16일 왕위에 올랐으며 고려의 강토 사방 6천리를 주원장에게 넘겨 주고 한반도로 쫓겨와 1394년 지금의 서울에 이씨조선(李氏朝鮮)의 도읍을 정했다.
그러므로 한반도는 1394년 이후부터 왕도(王都)가 위치하게 된다. 고로 한반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과 가야가 존재한 적이 없다. 1차사료와 문헌사료의 고증(考證)이 그러하다. 역사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교수, 박사라는 자들은 왜곡, 날조, 조작, 축소된 한반도의 삼국에 목을 메고 있으니 차마 욕설(辱說)은 할 수 없고 “∼라고 주접을 떨었다”, “∼주접을 떨고 있다”,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은 허구의 소설이 되고 말았다”, “∼학위논문은 쓰레기(Trash)다” 정도밖에 논평할 수 없지 않은가.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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