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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49-55부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6-06-21 (일) 16:45:20


제2절. 마한이 속한 서쪽 땅은 소호금천씨가 개척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요동과 요서의 구분은 경도 110도에서 세로로 흐르는 황하의 서쪽을 요서라 하고 황하의 동쪽을 요동이라 한 것처럼 소호금천씨 시기에도 황하의 동쪽을 동방이라 하고 황하의 서쪽을 서방이라 하였음이 확인되며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가 서방의 임금으로 서융(西戎)이라 불린 것을 알 수 있다.

김씨의 시조라 하는 소호금천씨를 기록하고 있는 원전문헌은 약 565종 1,441권에 달하며 동방의 신(神)은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이고 서방의 신(神)은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라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는 <易漢學(역한학)>, <六家詩名物疏(육가시명물소)>, <周禮傳(주례전)>, <前漢書(전한서)>, <西漢年紀(서한년기)>, <通志(통지)> 등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50부


제가항. 소호금천씨가 개척한 서방인 섬서성

소호금천씨가 서방(西方)을 통치했다고 기록한 문헌은 <春秋戰國異辭(춘추전국이사)>, <繹史(역사)>, <路史(로사)>, <越絶書(월절서)>, <陝西通志(섬서통지)>, <關中勝蹟圖志(관중승적도지)>, <前漢書(전한서)> 등이다.

화산(華山)은 황하가 굴곡하는 서쪽 섬서성에 있는 산으로 소호금천씨가 통치했던 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태호복희씨는 대종산(岱宗山: 산동성 태산)을 다스리고, 전욱고양씨는 항산(恒山)을 다스리고, 축융씨는 형곽산(衡霍山)을 다스리고, 황제헌원은 숭고산(嵩高山)을 다스리고, 소호금천씨는 화음산(華陰山: 섬서성 학산과 감천산)을 다스리고, 요임금은 웅이산(態耳山)을 다스리고, 순임금은 적석산(積石山)을 다스리고, 우임금은 개죽산(蓋竹山)을 다스리고, 탕임금은 원극산(元極山)을 다스렸다.”

라고 밝히고 있다. 소호금천씨는 “치화(雉華)의 물가에서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치화란 지명은 찾을 수 없고 치현(雉縣)에 대해 “옛 관할은 지금의 하남성 남소현 남쪽”이라 하고 화현(華縣)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진(秦)나라가 정현을 설치했다. 후위가 화산군(華山郡)을 두었다. 또 동옹주를 두었다. 서위가 고쳐 화주(華州)라 했다. 수나라가 주와 군 모두 폐지했다. 곧 다시 화산군을 설치했다. 당나라는 그대로 화주라 했다. 고쳐 태주(太州)라 했다. ...청나라시기 섬서성 동주부(同州府)에 속했다. 민국이 고쳐 주를 현으로 했다. 섬서성 관중도에 속한다.”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화현의 위치는 오늘날의 섬서성 즉, 소호금천씨와 관련이 있는 서방(西方)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호금천씨가 개척한 섬서성의 위치를 지도에 나타내면 다음 <그림 10>과 같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51부


제나항. 소호금천씨가 살던 궁상의 위치

논자는 소호금천씨의 출생지는 청해성이나 감숙성의 한 곳이라 주장한다. 그 같은 주장의 근거로 소호금천씨의 어머니는 황아(皇蛾)인데 “백제(白帝)가 내려와 황아와 함께 연회를 하고 소호를 낳았다”고 말하고 있다.

소호의 아버지는 흰(白) 임금으로 ‘희다는 백(白)’은 서방을 뜻하는 글자이다. 소호의 출생에 관한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소호금천씨는 서방에서 출생한 것이다. 소호씨가 서방의 서융(西戎)으로 임금을 한 곳은 궁상(窮桑)이며 “장지는 운양(雲陽)”으로 “운양이 함양(咸陽)”인 것이다.

궁상이 어디인지 추적해 보자. “궁상은 산동성 곡부현의 북쪽에 있다. <좌전소공29년> 마침내 궁상을 건넜다. <두주>에 의하면 땅(地)으로 노(魯)나라 북쪽에 있다. <제왕세기>에는 소호금천씨가 스스로 궁상에서 임금자리에 올랐으며 궁상은 노나라 북쪽에 있다. 후에 곡부로 옮겼다”라고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이 기술하고 있으며, <중국역사지명대사전>에도 비슷한 내용이 보인다.

“궁상은 춘추시기 노나라 땅이다. 오늘날의 산동성 곡부시 북쪽에 있다. <좌전소공29년> ‘마침내 궁상을 건넜다.’ 즉 여기다.” 궁상의 위치에 대한 이 두 기록은 역사 왜곡으로 사료비판이 요구되는 곳이다.

첫째, 태호복희씨는 동방의 신이라 했고 소호금천씨는 서방의 신이라 했으며

둘째, 동방은 경도 110도의 우측 지역을 뜻하고 서방은 경도 110도의 좌측 지역을 의미하며

셋째, 산동성은 황하의 우측 지역으로 서방이 될 수 없고

넷째, 옛날 중국의 함곡관(函谷關) 동쪽의 관동(關東)에서는 배를 주(舟)라 하고 서쪽의 관서(關西)에서는 선(船)이라 했는데 배(船)를 만든 사람은 소호금천씨로 서방의 임금이었기 때문이며

다섯째, 태호(太昊)란 ‘큰 하늘’의 의미이고 소호(少昊)는 ‘작은 하늘’의 뜻으로 동방과 서방을 뚜렷하게 구분한 임금들이고

여섯째, 궁상(窮桑)의 상(桑)은 ‘뽕나무’로 누에의 먹이로 사용한 나무이며 주로 감숙성과 청해성 등 서방에서 자생한 식물일 뿐만 아니라 실크 로우드(Silk road)는 감숙성 난주(蘭州)로부터 로마(Rome)까지의 교역을 위한 길로 산동성과는 관련이 없다는 이유 등을 제시한다.




자세한 내용은 www.historyofcorea.com 에서

 

동이배달한민족사에 관한 논문 열람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52부


아이러니(Irony) 하게도 “궁상이 산동성 곡부의 북쪽에 있다”라는 산동성에서 발행된 <山東通志(산동통지)>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궁상(窮桑)은 서해(西海: 청해성에 있는 천연 호수로 청해 또는 선해라고 함)의 물가로 그 땅에 홀로 뽕나무가 있는데 대단히 높아 하늘을 덮는다.

서쪽 변두리에 소호금천씨가 살았다. 옹주 지역이다. 옛날 <주서상맥>에 의하면 임금이 치우에게 명하여 국경을 소호(小顥)에 의지하도록 했다.

문장의 구를 배우기 위해 먼 곳으로 갔다. 서쪽 황제가 살던 곳으로 서해의 나루터다. 서쪽 황제는 소호금천씨를 지칭한 것으로 소호(小顥)가 소호(少昊)의 정자이다. 당연히 함양(咸陽)이라 했으며 옛 함양은 운양(雲陽)이다.

그리하여 소호를 운양씨라 한다. 오늘날익[의] 례요주(隷耀州)다. 감천궁(甘泉宮)은 즉 무제가 하늘에 제사지내던 곳이다. 전욱(顓頊)이 소호를 계승했다. 옛 <세기>에 전욱 역시 궁상으로부터 상구(商丘: 산동성에 위치)로 옮겼다.”

라고 기술하고 있어 소호금천씨의 궁상(窮桑)은 산동성이 아니라 서방인 청해성임이 고증(考證)된 것이다. 청해성에 있는 천연호수인 서해와 궁상의 위치를 다음 <그림 1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historyofcorea.com 으로

 

댓글(이기홍): 저도 령부인이라 부를랍니다.

뜻글자 공부하려고 하니 늘 두음법칙이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현 정부에 폐지를 제안했더니 해방 이전부터 사용해왔고 이미 뿌리깊어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어요. 사이버상에서는 더구나 북한말이라고 합니다. 두음법칙을 누가 언제 왜 만들었을까요?

논평(김태영학파T.K.School): 두음법칙은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으로 인하여 두음법칙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렇지 않다. 약 4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592년에 시작된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 수많은 왜병(倭兵)들이 귀화했다. 일본말을 한 젊은이들이 이씨조선에 살겠다고 귀화인(歸化人)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들은 주로 당시 왜성(倭城)이 있던 오늘날의 경상남북도에 포진해 살았다. 그들의 모국어인 일본어(日本語)와 외국어인 한국어(韓國語)의 마찰로 인하여 발생한 언어학적 현상이다. 비록 부부 사이라 할지라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았다. 왜병은 남자이니 이들은 모두 이씨조선의 여자들과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았다.

언어 마찰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강하게 남아있다. 바로 경상도 말투가 일본인의 말투와 억양(抑揚)이 비슷하고 경상도 사람들은 탁한 발음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쌀’이라 못하고 ‘살’이라 하며 ‘밥묵어라’를 ‘밥무라’ 하는 등의 어색함을 들 수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확실히’를 ‘학실히’로 발음하곤 했다. 그 지방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게 발음 한다. 지금도 일본 사람들은 탁한 발음을 못하고 받침이 있는 글자의 발음도 못한다. 왜인들이 경상도 사람들에게 언어적 영향을 끼쳤음을 부정할 수 없는 증거다.

고로 일본인들은 모국어인 일어(日語) 발음과 한국어와의 마찰(摩擦)로 인하여 발생한 언어문제들 중의 하나가 두음법칙으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 한글에는 엄연히 ‘ㄴ과 ㄹ’ 글자가 있다. 따라서 냥, 녀, 녁, 년, 녈, 념, 놜, 뉴, 뉵, 란, 랄, 람, 랑, 랭, 력, 련, 렬, 령, 륭, 리 등으로 적고 발음할 수 있어야 한다. 한글은 소리글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발음을 잘 하지 못한 특정한 집단을 위하여 두음법칙을 만든 것은 한글의 퇴보이다.

왜냐고 물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령남(嶺南) 때문이고 주시경(周時經)과 최현배(崔鉉培)의 책임이 적다 할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의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학계, 정계, 법조계, 재계, 연예계 모두 이들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며 세 번째 계의 경우는 약 90%가 이들의 후손들이다.

일본사람이 New York(뉴욬)을 발음하지 못한다고 내가 그들과 똑같이 ‘누요꾸’라 발음할 필요는 없다. 일본인들은 ‘뉴욬’을 ‘누요꾸’라 발음한다.

두음법칙은 당장 폐기되어야 하고 뜻글자인 한자와 소리글인 한글은 속히 병행되어야 한다.

논문 열람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53부




소호금천씨가 살다가 묻힌 운양(雲陽)에 대해 <섬서통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운양: 운양산(雲陽山)은 빙익(馮翊)에 있고 운양현은 소호가 살던 곳이다(로사(路史)를 잘 살펴보면 운양은 지금의 순화(淳化)에 있다).

감천: 황제가 만령명정에 가까이 갔다. 명정(明延)이 감천(甘泉〉이다(사기 봉선서). 소호가 살던 곳은 감천이다(로사를 잘 살펴보면 감천은 오늘날의 순화에 있다).”라고 적고 있다.

감천의 위치를 살펴보자. “감천(甘泉)은 섬서성 감천현 서남에 있다. 동쪽에서 낙하(洛河)로 들어간다. 현(縣)은 이 이름 때문이다. <환우기>에 이르길 감천현 남쪽에 암곡상이 있다. 그 샘과 땅과의 거리는 1장이다. 물이 날듯이 흘러 아래로 부딪쳐 흐른다. 그 샘의 물맛이 달다”라고 적고 있다.

감천산의 위치를 알아보겠다. “감천산(甘泉山)은 섬서성 순화현(淳化縣) 서북에 있다. <사기 봉선서>에 황제헌원이 만령명정 가까이 갔다. 명정(明延)이 감천이다. <괄지지>에 ‘감천산은 일명 석고원(石鼓原)이며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은 마석령(磨石嶺)’이다. 살펴보건데 감천산이다. 즉 중산(仲山)의 줄기이다. 한(漢)나라의 감천궁이 산 위에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54부

감천궁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감천궁(甘泉宮)은 섬서성 순화현 서북 감천산에 있다. …<삼보황도>에 의하면 감천궁을 일명 운양궁(雲陽宮)이라 한다. <관중기>에는 임광궁(林光弓)이며 일명 운양궁이라 한다. 진(秦)나라 그것을 만들었다. 감천산에 있다. 궁으로 인하여 산 이름이 되었다,

장안(長安)을 가려면 200리이다. 멀리 장안성이 보인다. <원화지>에 의하면 운양궁은 즉 진나라의 임광궁이다. 한(漢)나라의 감천궁으로 무제가 5월이면 여기서 피서를 하고 8월에 돌아간다.”

라고 하였다. 감천에 감천산이 있고 감천궁이 있으며 감천궁을 운양궁 또는 임광궁이라고도 하고 진(秦)나라가 만들었는데 감천궁에서 장안성이 보이고 한나라 무제가 5월에 여기서 더운여름을 보내고 8월에 환궁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 내용을 정리하면 운양 = 순화 = 감천 = 감천산 = 감천궁 = 임광궁 = 명정은 모두 같은 지역을 달리 부른 이름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감천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면 다음 <그림 12>와 같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55부

서방의 신(神)이며 서융(西戎)의 임금인 소호금천씨가 배(船)를 만들고 활과 화살을 최초로 사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는 <周易函書約存(주역함서약존)>, <六家詩名物疏(육가시명물소)>, <古微書(고미서)> 등이 있어 배(船), 활(弓), 화살(矢)을 발명한 사람이 바로 서방의 신(神)인 소호금천씨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서방인 섬서성 함양에 도읍한 진(秦)나라의 진시황의 성(姓)은 영(嬴)이고 이름은 정(政)인데 진시황이 바로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진나라의 영(嬴)씨 성은 소호금천씨의 후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김씨시조는 소호금천씨이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인(桓因) 역시 김씨임을 <歷代神仙通鑑(역대신선통감)>을 통하여 확인된다.

한인은 처음에 서역의 끝인 감숙성 돈황현 남쪽에 위치한 삼위산에서 살았으나 후에 삼위산과 흑수 사이의 땅으로 동천(東遷)한 것을 알 수 있다. “서쪽이 편안하지 않아 한인(桓因)이 왔다. 마융이 말하기를 한인이 서쪽의 산을 다스리다가 물을 따라 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풀이하면 한인이 감숙성 삼위산(三危山)에 살다가 흑수(黑水)가 발원하는 감숙성 경양현(慶陽縣) 북 150리에 있는 태백산(太白山)으로 와서 돈황(삼위산)과 흑수(태백산) 사이에 최초의 한인의 나라 한국(桓國)을 세운 것으로 이해된다.

문헌사료에 나온 黑水(河)는 이곳 太白山에서 발원한 그 흑수이다. 영하회족(寧夏回族) 자치구와의 경계에 있는 태백산은 오늘날의 대륙지도에는 지워지고 없다. 역사 왜곡의 일환이다. 아무튼 소호금천씨 역시 한인의 후예이며 서방은 원래 소호금천씨의 고향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진시황의 영(嬴)은 물론이고 조(趙), 이(李: 일부), 심(沈), 진(秦), 백(柏), 갈(葛), 마(馬), 비(費), 시(時), 평(平), 황(黃), 소(蕭), 윤(伊: 일부), 왕(汪), 계(計), 담(談), 양(梁), 람(藍), 강(江), 종(鍾), 서(徐), 락(駱), 분(賁), 배(裵), 오(烏), 곡(谷), 추(秋), 앙(仰), 령(寧), 백(白), 지(池), 담(譚), 상(桑), 흉(匈), 익(益), 록(逯), 거(車), 자거(子車). 백(伯), 담(郯), 갈천(葛天), 소(蘇), 륙(陸), 견(甄), 동(董), 용(龍), 포(蒲), 색(索), 몽(蒙), 쌍(雙), 복(濮), 우(牛), 장(壯), 안(晏), 연(連), 어(魚), 종(終), 경(耿), 융(融, 신(辛), 나(那), 공(空), 관(關), 축(竺), 권(權), 황보(皇甫), 선우(鮮于), 독(督), 양사(壤駟), 왕(王), 전(錢), 한(韓), 조(曹), 조(曺), 운(雲), 팽(彭), 위(韋), 염(廉), 탕(湯), 은(殷), 라(羅), 락(樂), 고(顧), 성(成), 송(宋), 방(龐), 계(季), 로(路), 동(童), 매(梅), 림(林), 고(高), 번(樊), 만(萬), 막(莫), 무(繆), 제(諸), 중(仲), 구(仇), 초(楚), 유(柳), 웅(熊), 석(石), 변(邊), 묵(墨), 남(南), 손(孫), 마(麻), 감(甘), 묘(苗), 홍(弘), 신(愼), 진(陳) 모두 108개 성씨가 金氏에서 나왔다. <주> <신라의 강역 연구>(제18집)(2023)에는 43개로 적었으나 계속 확인한 결과 지금까지 약 108개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historyofcorea.com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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