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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

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제34부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4-06-02 (일) 18:13:38

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34

 



<사기/조선열전>의 기록이다. “그해 가을에,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하여 제()로부터 배를 타고 발해(渤海)를 건너게 하고 군사 5만으로 좌장군 순체는 요동에서 출격하여 우거(右渠)를 토벌하게 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김육불의 이야기처럼 지금의 산동성으로부터 발해를 건너 곧바로 왕검성을 향하게 하고 ...지금의 요양을 출발하여 패수를 향하게 하였다란 말이 없다.

 

<한서/조선전>의 기록을 보자. “그해 가을에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하여 제()로부터 배를 타고 발해(渤海)를 건너가게 하고, 군사 5만으로 좌장군 순체는 요동에서 출격하여 우거(右渠)를 주살(誅殺)하게 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사기>()’ 대신 <한서>()’만 다르고 두 정사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서>에도 김육불이 말하는 지금의 산동성으로부터 발해를 건너 곧바로 왕검성을 향하게 하고 ...지금의 요양을 출발하여 패수를 향하게 하였다란 기록이 없다.

 

김육불은 사마천도 모자라 반고까지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다. 허구의 소설을 쓰는 것보다 25사의 정사인 <사기><한서> 같은 사서(史書)를 왜곡하는 것은 더 나쁜 행위인 것이다.

 

이런 엉터리 허구의 소설가를 중국역사학의 대가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 대한민국의 동북아역사재단 사학자들은 김육불과 똑같은 부류의 역사 왜곡, 조작, 날조자 임을 부인할 수 없다. 동북아 역사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사학자들은 모두 사이비임을 방증하는 예라 할 것이다.

김육불이 산동성에서 건넜다는 발해는 오늘날의 발해가 아니라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에 위치한 천연 호수로 당시에는 발해, 동해, 거야택, 대야택 등으로 2,000년 동안 불리던 곳이다.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 대야택을 다음과 같이 기록해 주고 있다.

 

대야택: ‘거야또는 거야택이라 부르며 고대의 저명한 호수다. 거야택의 옛터는 현 산동성 거야현 북쪽에 있으며 옛날에는 제수와 사수가 서로 연결되어 접해있었다. 당나라 때는 거야택의 수면이 남북의 길이가 300리 동서의 폭이 약 100리 였으며 대야택 이라고도 불렀다. 송나라 때 거야택의 남부는 물이 마르고 땅이 단단해져서 평야가 되었으며 북부는 양산박의 일부가 되었다.”

라고 하여 대야택이 거야택이며 위치는 산동성이라고 적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35

 

<山海經(산해경)>을 새롭게 설명한 <海經新探(해경신탐)>은 다음과 같다.

 

“<진서𐤟지도기>를 인용한 <수경주>에서 전하기를 름구란 자는 춘추시대의 제나라 도읍인 동해 사람임이 밝혀졌다.’ 땅은 현재 범현 경내에 있으며 멀리 한나라와 위나라의 동해군이고 발해군 도읍은 동아에 비해 아주 멀다. 𐤟진 시대의 거야택은 사람들에 의해 동해로 불렸다. 거야가 바다()라는 이름으로 불린 건 2천년이 지속된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漢書(한서)/武帝紀(무제기)>원광 3년 봄 하수(황하)가 범람해 언덕에서 꺾여 동남류에서 발해로 들어간다.”는 발해는 거야택을 뜻한다.



 


<中國歷史地名大辭典(중국역사지명대사전)>에서도 옛날 동해를 발해라 칭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요약 정리하면 대야택, 거야택, 발해(渤海), 동해(東海)는 같은 지명을 달리 부르던 이름이며 발해의 위치는 지금의 산동성(山東省)이라는 것이다. 그 흔적으로 동평호, 남양호, 소양호, 남산호, 독산호, 미산호 등의 자연 호수가 남아있다. 동해라고 부르던 발해는 오늘날의 발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1<그림 6>에서 발해의 위치를 확인하기 바란다.

 

한무제가 조선(위만조선)을 침략하던 당시의 발해는 오늘날의 발해가 아니라는 사실을 문헌사료에 의해 밝혔으므로 김육불의 산동[]으로부터 발해를 건너 곧바로 왕검성을 향하게 하였고는 명백한 허구의 소설임이 입증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36

 

10. 숙신과 읍루

 

<사기/조선열전>에 단군조선의 위치를 밝힐 수 있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집해(集解)에서 장안(張晏)이 말하기를: 조선에는 습수(濕水), 열수(洌水), 산수(汕水)의 세 물이 있는데 이것이 합쳐서 열수가 되었다. 아마도 낙랑(樂浪)과 조선(朝鮮)은 여기에서 이름을 딴 것인 듯싶다. 색은(索隱)이 말하기를, ()의 음은 조()이며 직교(直驕)의 반절(反切) (‘발음으로 중공어로 쟈오’)이다. 산수(汕水)가 있어서 이렇게 이름 지었다. 옛 이름이다. ()은 산()이라고도 한다. 정의(正義)에 의하면, 조선(潮仙) 이음(二音)이다.”

 

라고 하여 조선에는 습수(濕水), 산수(汕水), 열수(洌水)3개의 수원(水源)이 있는데 산수(汕水) 때문에 조선이란 이름이 생겼고, ()와 조()는 같은 발음으로 조선(潮仙)이란 나라 이름이 생겼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물이 합쳐져 열수(洌水)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의 논리성으로 보아 열수(洌水)’에서 낙랑(樂浪)’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추론하였다.



 


장구한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의 진실을 조작, 왜곡, 날조하기 위해 예수(濊水)가 열수(洌水), 연수(兗水), 패수(浿水), 추수(溴水), 격수(狊水), 추하(溴河), 제수(濟水) 등의 다른 이름으로 혼동되어 불리게 되고 조선에 있던 예수 즉, 열수이자 패수의 3수원(水源)인 옛 이름 산수, 습수, 열수는 역사의 기록 속에서 감추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비록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지만 수원(水源)은 산서성 남부에 있는 당시의 방산이자 지금의 왕옥산에서 발원하는 하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란 예수라는 하천으로 인하여 생긴 이름이며 이곳 산서성이 바로 단군조선의 강역이었고 당시 단군조선의 도읍지는 예읍(濊邑)으로 평양성이 있던 지금의 산서성 임분시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37


BC2333년에 단군왕검은 조선이란 나라를 세우고 구이(九夷)라고 알려진 9형제를 규합하는데 연방국을 세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예()에서 예맥, 예맥조선이 나타나고 조선에서 주신(州愼), 숙신肅愼), 식신(息愼), 직신(稷愼) 등의 이름이 생겼다.


동한(東漢) 시기 조엽(趙曄)이 지은 <吳越春秋(오월춘추)>의 기록을 보면 조선을 주신(州愼)이라 하였으며 <오월춘추>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당요(唐堯) 때에 9년 동안 홍수가 나서 당요가 하우에게 명하여 이를 다스리게 했다. ()8년 동안이나 치수를 하지 못하고 걱정하여,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가서 흰 말을 잡아 하늘에 제사를 들여 성공하기를 빌었는데,


꿈에 어떤 남자가 스스로 현이(玄夷)의 창수사자(蒼水使者)라 하는 사람이 우에게 말하기를, ‘구산(九山) 동남쪽의 도산(塗山)에 신서(神書)가 있으니 석달 동안 재계(齋戒)하고 그것을 꺼내보라하므로 우가 그 말대로 금간옥첩(金簡玉牒)의 신서를 얻어 오행통수(五行通水)의 이치를 알아 홍수를 다스려 성공하고, 이에 주신(州愼)의 덕을 잊지 못하여 정전(井田)을 제정하고 율도량형(律度量衡)의 제도를 세웠다고 하였다.

지나에서는 조선의 후예들을 호()나 동호(東胡)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고구려를 맥, 북부여를 동호로도 불린다.




역사적 변천을 살펴보면 예()를 전한(前漢), , () 시대에는 읍루(挹婁)라고 부르다가 남북조 시기에는 물길(勿吉)로 수당 시기에는 말갈(靺鞨), 말갈에서 속말갈과 흑수말갈이 나오고 흑수말갈에서 여진족이 나오면서 여진족은 다시 생여진과 숙여진(귀화한 여진족)으로 불리며 생여진에서 만주족이 생기게 된다.


흉노 역시 조선의 일족으로 하나라 때는 훈육, 상나라 때는 귀방, 주나라 때는 험윤, ()시기는 흉노, 당 시기에는 돌궐, 송나라 때는 거란(契丹) 등으로 불리던 족속이다. “흉노는 어계(語系)가 같고 단군왕검이 만든 삼신오제교 즉 신교(神敎)인 신수두를 신봉하던 조선의 속민이였다.”


지금까지 내용을 종합하여 요약하면 산서성 남부 왕옥산에서 발원한 예()라는 하천이 패수이며 이곳 산서성이 단군조선의 영토였고 도읍지는 평양성으로 산서성 임분시이며 예()라는 하천 때문에 예, 예맥이란 부족 이름이 생기고 조선에서 숙신이란 이름이 비롯된 것으로 정리된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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