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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 47-50부

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4-06-26 (수) 15:05:33

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인용문에 나타난 지명들의 위치를 살펴보겠다. 요서는 산서성 남서부, 섬서성 동부, 하남성 서북부임을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우북평(북평)은 산서성 남부 황하와 인접한 지역이다. 어양은 황하 북부 하남성 하내 지역이다.

광양은 밀운현(密雲縣) 동남으로 밀운현은 북쪽 장성(長城) 근처와 몽고와 교역이 성한 곳으로 섬서성 횡산(橫山) 20리이다. 이 지역은 제1<그림 3>에 제시한 바와 같이 병주(幷州)라고 한 섬서성의 최북단이다.

상곡은 산서성 남서부 북평군 북쪽이다. 대군은 산서성 양고현(陽高縣) 서북으로 한나라 때 안문군(鴈門郡)이라 부르던 지명으로 안문산(雁門山)과 안문수(雁門水)로 인하여 생긴 이름으로 산서성 북부 오늘날의 대동시(大同市) 동북부 경계이다. 따라서 대군과 안문은 같은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삭방은 산서성 북부에 있는 지명이고 태원(太原)은 산서성 남부 수양산 동쪽 35리이다. “건안 11(206)에 태조(太祖: 조조)가 친히 유성(柳城)의 답돈(蹋頓)을 정벌했다.” 답돈은 지략과 지모를 겸한 오환 사람이며 조조의 위()나라 도읍지는 하남성 낙양으로 섬서성 요서 일대는 오환, 선비의 활동무대였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하면 후한의 광무제가 오환을 거주하게 한 곳은 세 곳으로 첫째, 섬서성 북부 내몽고 지역이고 둘째, 산서성 북부 내몽고 지역이며 셋째, 요서라고 하는 산서성 남부, 섬서성 동부, 그리고 하남성 서북부로 요약된다.

그런데 이 인용문에서 요동()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주목하면서 <후한서/오환전>을 살펴보기로 하자. “무제(武帝)가 표기장군 곽거병을 파견하여 흉노 동쪽 땅을 공격하고, 그에 따라 오환을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5군에 변경 밖에 옮겨 한()나라를 위해 흉노의 동정을 정찰(偵察)하게 하고, 그 대인(大人)1년에 한번 배알하게 하였다고 적고 있다.

<후한서/오환전>에는 요동속국이 없고 <삼국지/위지/오환전>의 주()석에 요동속국이 있었다고 해설을 한 것으로 <후한서/오환전>의 기록을 따르고자 한다. 그러므로 요동속국에 대한 기록은 오류로 확인된다.

뿐만아니라 김육불의 주장대로 요동속국이 요서와 요동 사이에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이 요동속국은 반드시 황하를 경계로 요동이라 하는 산서성과 요서라고 하는 섬서성 유성(柳城)과 황하 사이에 위치해야 할 것이다. 이곳이 바로 요서와 요동의 중간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오환에 관한 내용들을 종합하면 이들이 옮겨 거주했던 지역은 산서성과 섬서성 북부 내몽고 지역과 요서라고 하는 산서성 남부, 섬서성 동부, 하남성 서북부이며 요동속국은 존재하지 않았다로 요약된다.

그리고 요동과 요서는 황하를 사이에 둔 지역으로 김육불이 주장하는 요녕성 요하의 동쪽도 아니며 요동속국이 요녕성 요하의 서쪽과 하북성 산해관 동쪽 사이라는 김육불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허구임이 고증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48

13. 공손[]씨의 요동 점거

 

김육불은 공손씨의 요동 점거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한나라 영제(靈帝) 중평(中平) 6(189)에 공손탁(公孫度)은 비로소 요동태수가 되었고, 아들 강()과 공()에게 전해졌다가 강의 아들 연()에 이르니 모두 4대에 전해졌다.”

5절에서 자세히 밝힌 바와 같이 공손탁이 고구려의 제9대 고국천 남무열제의 장자인 발기(發岐)가 동생 연우와 싸우다가 격전에서 패하여 백성 3만을 거느리고 요서 전 지역을 공손도에게 넘겨준 것이다.

공손탁이 설치한 대방군은 산서성 남서부 염지 남쪽으로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그림 13>과 함께 이미 밝힌 바 있다.

김육불은 정약용의 <아방강역고>를 인용하면서 대방의 남쪽은 한예(韓濊)가 사는 곳이니, 바로 지금의 충청도 땅으로 백제가 이곳에서 건국하였다. 대방군은 지금의 경기도와 충청도의 북쪽 땅이었으니, 곧 옛 진번군의 일부였다라는 괴변(怪辯)을 하고 있다.

김육불은 공손도가 점거한 요동이 요녕성과 한반도라는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삼국지/위지/공손탁전>, <삼국지/위지/동이고구려전>, <통전> 186, <삼국지/위지/동이전>, <삼국지/위지/동이부여전>, <수서/사이전> 등의 문헌사료를 인용하고 있으나 요동과 대방군의 위치를 밝히는 것과 전혀 관계없는 내용들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김육불이 주장하는 요동은 요녕성도 한반도도 아니며 대방 역시 요녕성이나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 김육불은 여기서도 변함없이 허구의 소설을 계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논문이나 www.coreanhistory.com 에 게시된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49

14. 여러 현인들의 요동 피란

 

김육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전한(前漢) 시대에 중원에 많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어진 사대부(士大夫)가 요동을 낙원으로 보고 바다에 배를 띄워 피란할 계책을 세웠다.

전한의 여후(呂后) 친족들의 난에는 낭야()의 왕중(王仲)이 배를 타고 낙랑(樂浪)의 산중으로 달아났는데 앞에서 이미 기술하였고, 왕망(王莽)의 난에는 봉맹(逢萌)이 요동에서 나그네로 있다가 광무제(光武帝)가 즉위하자 곧 돌아왔다.”고 하였고

산동(山東)과 요동반도의 교통이 한()나라 말기에 이르러 더욱 번성하였던 것을 한인들이 피하였던 것으로부터 고찰하여 알 수 있으니라고 하면서 김육불은 한()나라가 있던 섬서성 서안에서 동쪽으로 산동반도를 걸어와서 산동반도에서 배를 타고 요동이라 하는 요동반도로 피난을 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인용문의 내용을 근거로 김육불의 주장이 억설임을 다음과 같이 논거를 제시한다.

첫째, 요동은 황하의 동쪽으로 요()라는 지리지명들이 있는 산서성을 뜻한 것임을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의해 고증한 바 있다. <그림 6>, <그림 8>, <그림 15>, 그리고 <그림 16>을 참고하기 바란다.

둘째, “바다를 김육불은 황해(黃海)로 인식하고 있으나 당시의 바다()는 황하(黃河)를 일컫는 말이다. <사기/하본기 제2>서광(徐廣)이 말하기를 해(: 바다)는 하(: 황하)라고 한다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황하라는 이름은 당나라 중렵 이후에 나타난 이름으로 한()나라 당시의 바다란 황하를 지칭하는 말이다.

셋째, 낙랑군은 <한서/지리지>에 기록된 조선현, 패수현, 루방현, 함자현, 임패현, 증지현, 대방현, 둔유현, 수성현 등이 있던 단군조선의 강토로써 산서성 남부를 가리키고 있음을 밝힌바 있다. 이곳 낙랑군 패수현에 있는 지금의 왕옥산에서 패수가 발원하고 있음을 <그림 12>에서 밝힌 바 있다.

넷째, ()의 도읍지가 있던 섬서성 서안(西安)에서 요녕성 요하(遼河)의 동쪽인, 김육불이 주장하고 있는 요동까지의 대략적인 직선거리는 1) 서안에서 요녕성 요하 하구까지가 3,301리이고, 2) 서안에서 산동성 래주까지는 2,644, 래주에서 요녕반도 끝자락까지는 251리이다.

서안에서 요하까지 3,300리이고 서안에서 산동성까지 가서 그곳에서 배를 띄워 요녕반도 끝까지는 2,895리 먼 거리이다.

그러나 서안에서 진짜 요동인 산서성 남서부 황하가 굴곡하는 하곡(河曲)까지는 불과 306리이다. 김육불의 주장대로 난리를 피해 도망하는 사람이 3,000리의 먼 거리로 피난했다가 다시 3,000리를 되돌아 왔다는 것인데 이성적인 판단으로 보아 논리성도 설득력도 없다. 한나라 사람들이 피했던 요동은 약 300리 거리에 위치한 요동으로 산서성인 것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위에서 살펴본 4가지 이유를 종합하면 김육불이 요동이라고 주장하는 요녕성 요하의 동쪽은 요동이 아니고 김육불은 바다만 나오면 황해로 생각하는데 <사기>만 제대로 읽었더라도 그런 실수는 없었을 것이며 낙랑은 단군조선의 강토인 패수가 흐르는 산서성 남부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으로 고증된다.

따라서 김육불의 주장은 허구임이 다시 확인된 것이다. 서안에서 허구의 요동인 요하까지의 거리를 지도에 표시하면 다음 <그림 21>과 같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중국 김육불의 역사왜곡 비판>-동북통사(東北通史)를 중심으로- 50

15. 공손씨의 멸망

 

공손씨의 멸망과 관련하여 사마의(司馬懿)가 동쪽을 정벌할 때 행군한 지리를 고증하기 위해 김육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마의가 동쪽을 정벌할 때 행군했던 지리는 바로 고증할 필요가 있으니, 하나는 양평(襄平)이고, 그 둘은 요수(遼隧)이고, 그 셋은 수산(首山)이고, 그 넷은 요구(遼口)이고, 그 다섯은 양수(梁水)이다.

나는 생각하기를 양평은 지금의 요양(遼陽)이고, 요수는 지금의 해성(海城) 서쪽 근해의 땅이고, 수산은 지금의 요양성(遼陽城) 서남쪽 15리에 있는 수산이고, 요구는 지금의 요하(遼河)가 바다에 들어가는 입구이니 곧 지금의 삼분하구(三岔河口)이고, 양수는 지금의 요양(遼陽) 태자하(太子河)이니 성() 동남쪽으로부터 서북쪽을 향하여 흘러 혼하(渾河) 요하(遼河)와 합류하여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육불의 생각은 김육불 자신의 의견으로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이다. 중공의 대역사학자란 사람이 어찌 이 같은 무책임하고 비과학적인 말을 하는지 의심스럽다. 자신이 생각할 때라도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 학자의 기본이다. 김육불의 생각은 허구임을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첫째, 양평은 요동인 산서성 남부 요수(압록수) 우측으로 지금의 양분(襄汾)이다. 대요수에 관한 <수경주>의 기록을 살펴보자.

대요수는 변방 바깥을 막는 백평산(白平山) 요새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요새로 들어가며, 요동 양평현(襄平縣) 서쪽을 지난다. 대요수는 또 지석산(砥石山)에서 발원한다는 설도 있다. 성 바깥 동쪽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요동군(遼東郡) 망평현(望平縣) 서쪽으로 곧게 흐르며 이것은 왕망 때의 오래된 설이다. 서남쪽으로 굽어 흐르고, 양평현 옛 성() 서쪽을 경유하여 흐른다.

진시황 22(BC 225) 연나라를 멸하고 요동군을 설치하였는데 치소(治所)가 바로 여기이다. 한고제 8(BC199), 양평현을 기통(紀通)에게 봉하였고 제후국으로 되었으며 이는 왕망 때의 창평(昌平)이고 옛날에는 평주(平州)의 치소(治所)이다.

또 남쪽으로 흘러 요대현(遼隊縣) 옛 성() 서쪽을 경유하고 왕망 때 이름을 순륙(順睦)으로 바꾸어 불렀다. 공손연(公孫淵)이 장군 필연(畢衍)을 파견하여 요대(遼隊)에서 사마의(司馬懿)를 저항한 곳이 바로 여기이다.

대요수는 또 동남쪽으로 방현(房縣) 서쪽을 지난다. 󰡔地理志(지리지)󰡕에 방현(房縣)은 옛 요동군의 속현(屬縣)이다. 대요수(大遼水)는 우측 언덕쪽으로 백낭수(白狼水)와 만난다. 백낭수는 우측 북평군 백낭현 동남쪽에서 발원한다. ... <魏土地記(위토지기)>에서 말하기를.. 백낭수 하류가 대요수로 흘러들어 간다. 또 동쪽으로 안시현(安市縣) 서쪽을 지나며 남쪽으로 바다(황하)에 들어간다.

<十三州志(십삼주지)>에 말하기를.. 대요수는 요새 밖에서 흘러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안시현(安市縣)에 이르러 바다(황하)로 들어간다.”

라고 하여 산서성 북부의 백평산에서 대요수가 발원하여 요동 서남쪽을 경유하여 남쪽으로 흘러 요대현을 경유하여 안시현 서쪽을 지나 황하로 들어간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림 8>을 참조하기 바란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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