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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왕검은 제47대 단군조선(壇君朝鮮) <7>

글쓴이 : 폴 김 날짜 : 2014-03-18 (화) 21:47:44


 

조선(朝鮮)을 건국한 단군왕검(壇君王儉:BC2333-BC2241, 자는 단壇이고 이름은 검儉이며 왕검은 검儉왕이란 뜻이다. 한검桓儉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은 우리 동이배달한민족의 성산(聖山)인 태백산(太白山:백두산) 아래서 BC2370년 5월2일 인시(새벽 3시-5시 사이)에 태어났다. 단군왕검의 아버지는 배달국(BC3898-BC2333) 제18대 환웅(桓雄)인 거불단(居弗檀)이시다.


 

이암(1296-1364) 어른이 지은 <단군세기>에 의하면, 당시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기록한 것으로 "단군왕검은 신인(神人)의 덕(德)이 있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겁내어 복종하였다. 14세 되던 갑진년인 BC2357년에 웅씨의 왕은 그가 신성(神聖) 하다는 말을 듣고 그를 비왕(裨王:왕을 보좌하는 왕)으로 삼아 대읍(大邑:큰 나라를 뜻하며 산동성山東省 태산泰山이 있는 제남시濟南市로 비정한다.)을 다스리도록 명하였다.


 

무진년인 BC2333년 제요도당(帝堯陶唐:요임금) 때에 단국(檀國:웅씨의 왕이 다스리던 배달국의 제후국)으로 부터 아사달의 단목(檀木)의 터에 이르니 온 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천제(天帝)의 아들로 모시게 되었다. 이에 구환(九桓:환국桓國을 세운 환인桓仁의 형제 9명의 후손들을 뜻함)이 모두 뭉쳐서 하나로 되었고, 신(神)과 같은 교화가 멀리 미치게 되었다. 이를 단군왕검이라 하니 비왕의 자리에 있기를 24년 제위(帝位:임금인 천자의 자리)에 있기를 93년 이였으며 130세까지 사셨다."라고 되어있다.


 

또한 <단기고사>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도(道)를 천지에 통하시고 덕(德)이 사해에 미쳤으며 구이족(九夷族)과 친하시며…" 단군왕검은 배달국 환웅의 후손답게 도(道)를 통한 분이였다. 도(道)는 반드시 학문을 바탕으로 한다. 도(道)자는 ‘책받침(辶)’과 ‘머리수(首)’의 복합어로 "항상 머리와 책을 가까이 한다."는 뜻이며 피나는 노력으로 학문에 정진해야 한다는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는 글자다.

 

 

율곡 이이(李珥:12/26/1536-1/16/1584) 어른이 지은 <성학집요>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三代精專讀書時求道(삼대정전독서시구도) 삼대를 통해 열심히 학문을 익혀야 도를 얻을 수 있다." 당시는 1대를 대략 30년으로 보았다. 따라서 3대라면 90년 즉 100년을 의미하는 것이다. 도(道)를 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나타내주는 문장으로 보인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首前識者道之(수전식자도지) 학문이 으뜸인 자가 도다."라고 했고, <한시외전>에서는, "凡學道之(범학도지) 널리 배우는 것이 도다."라고 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을 비롯하여 폭넓은 학문을 섭렵했을 때 득도(得道)하게 되며, 도(道)를 통하면 각(覺:깨달음)과 식(識:알게 됨)을 얻게 된다.

 

도(道)는 우주의 자연 법칙에 순응하며 욕심없이 살아가는 생활 방법이지만, 도(道)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병장수(無病長壽)와 불노장생(不老長生)과 불로불사(不老不死)에 있다. 인간은 누구나 영생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단군 왕검은 도(道)를 크게 통한 분으로 보이며 단한검(壇桓儉) 천자는 단군조선(壇君朝鮮)의 종교인 신교(神敎:선교, 수두교, 삼신오제교, 도교의 전신)를 창시하시고 130세 까지 장수하신 분으로 몸소 득도를 실천하신 분이다.

 

(1) 최초의 도읍지 평양성

 

<삼국유사> ‘고조선’편에 의하면, 위수가 지은 <위서魏書>를 인용한 내용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壇君王儉 以唐高(堯)卽位五十年庚寅 都平壤城(今西京) 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又名弓忽山 又今彌達(단군왕검 이당고(요) 즉위50년경인 도평양성(금서경) 시칭조선 우이도어백악산아사달 우명구홀산 우금미달) 단군왕검은 당요가 즉위한지 50년이 되는 경인년에 평양성(지금의 서경)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고 불렀다. 다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기니 그곳을 궁홀산 또는 금미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동안 연구한 바에 의하면 단군왕검(壇君王儉)의 최초의 도읍지(都邑地)인 평양성(平壤城)은 산서성(山西省) 임분시(臨汾市)로 이곳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國號)를 조선(朝鮮)이라 한 다음 다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로 옮기는데, 백악산은 산서성 북부에 있는 현재의 연경산 으로, 연경산 이라고 부르기 전에는 말갈백산(靺鞨白山)이라 부르던 산이다.

 

아사달은 가명(이두어로 한글의 전신)으로 “새로운 땅” 혹은 “새로운 산”이란 뜻이며 백악산과 가까운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으로 도읍지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바꾸어 말하면 새로운 땅인 태원도 아사달이고 새로운 산 말갈백산도 아사달인 것이다. 산서성은 BC2707년경에 배달국(倍達國)의 자오지(치우) 천자(天子)에 의해 개척한 땅으로 배달국을 이은 단군조선의 입장에서는 산서성(山西省)은 새로운 땅이다. 황제헌원의 5대손이라고 하는 요(堯)임금의 도읍지(都邑地)였던 임분시의 평양성(平壤城)을 단군왕검이 접수하여 이곳에 도읍(都邑)을 정하고 조선(朝鮮)을 건국(建國)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맥(李陌)어른이 쓴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 의하면, "요(堯)임금의 덕이 날로 쇠퇴하자 서로 땅을 다투는 일이 쉬지 않았다. 단군왕검은 마침내 우순(虞舜:우나라 순임금)에게 명(命)하여 땅을 나누어 다스리도록 병력을 파견하여 주둔시키고 함께 요임금의 당(唐)나라(산서성 임분시의 평양성)를 치도록 약속하니, 요임금이 마침내 힘이 딸려 순임금에 의지해 생명을 보전하고 나라를 양보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이 때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요(堯)임금의 평양성(平壤城)을 평정(平定)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맹자>에 의하면, "舜南面而立 堯帥諸侯北面而朝之 瞽瞍亦北面而朝之(순남면이립 요솔제후북면이조지 고수역북면이조지) 순(舜)임금이 남쪽을 향해 임금이 되자 요(堯)임금은 제후들을 거느리고 북쪽을 향해서 단군조선의 단군(壇君)왕검을 뵈었고, 고수(순임금의 아버지) 역시 북쪽의 단군왕검을 뵈었다."

 

요(堯)는 단군조선의 신하였던 순(舜)에게 나라를 넘겨주면서 순(舜)과 함께 황하강(黃河江) 남쪽 하남성(河南省)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하남성에서 보면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단군조선의 도성인 평양성은 당연 북쪽인 것이다. 또한 <삼국유사>의 본문 기록에 ‘지금의 서경’이라고 한 것은 김견명(金見明)스님이 <삼국유사>를 지을 당시인 고려(高麗) 제25대 충렬왕 때인 1274년경의 시점(時點)으로 <명사明史>의 기록과 일치한다.

 

<명사>에 의하면, "后唐時 王建代高氏 兼幷新羅 百濟地 從居松岳 曰東京 而以平壤爲西京(후당시 왕건대고씨 겸병신라 백제지 종거송악 왈동경 이이평양위서경) 후당 때에 고려 왕건이 고구려의 고씨를 대신하였고 산서성에 있던 신라와 백제땅을 한데 합쳐 하나로 하였으며 송악으로 도읍을 옮겨 동경이라 하고 따라서 평양(산서성 임분)은 서경이라 했다."

 

(2) 아사달(阿斯達)의 위치

 

앞에서도 밝혔듯이 아사달은 이두어(吏頭語)로 ‘새로운 땅’ 혹은 ‘새로운 산’이란 뜻으로 아사달의 위치에 대해 의견이 분분(紛紛)하다. 함경남도 백두산(白頭山), 흑룡강성 하알빈 밑 완달산(完達山), 하남성 낙양(洛陽), 강서성 남창(南昌), 하북성 창려(昌黎), 산서성 홍동(洪桐)등으로 아사달의 위치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의 기록이다. "集解張晏曰:朝鮮有濕水 洌水 汕水 三水合爲洌水 疑樂浪 朝鮮取名於此也(집해장안왈:조선유습수 열수 산수 삼수합위열수 의낙랑 조선취명어차야) 집해에서 장안이 말하기를:조선에는 습수 열수 산수의 세 물이 있는데 이것이 합쳐서 열수가 되었다. 아마도 낙랑과 조선은 여기에서 이름을 딴 것인 듯싶다."라고 되어 있어, <사기>에 기록된 본 내용은 단군조선의 핵심 강역을 찾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습수(濕水)는 산서성 태원(太原) 서북부 관잠산(管涔山)이 있는 녕무현(寧武縣)에서 발원(發源)한 현재의 상건하(桑乾河)이며, 열수(洌水)는 북경(北京)을 감싸고 돌아가는 현재의 영정하(永定河)로, 상건하가 산서성 서북부에서 발원하여 하북성 서북부에서 영정하와 만나 천진(天津)을 지나 현재의 발해만으로 흐르는 하천(河川)으로 단군조선(壇君朝鮮) 당시에는 열수라고 했다. 산서성(山西省) 서북부 관잠산 근처에 옛날에는 말갈백산(靺鞨白山)이 있었다.

 

현재의 지나대륙지도(支那大陸地圖)나 중국고금지명사전 어디에도 이 백산(白山)은 나타나 있지 않고 지금의 연경산(燕京山:2,603m)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대만에서나 중공에서 발행한 모든 대륙지도에는 이 연경산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다. 2096년간 지나 대륙을 지배한 단군조선(壇君朝鮮)의 역사의 진실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유구한 세월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은 강과 산이 아니던가! 그런 이유 때문에 상고사(上古史)의 지명을 찾는 데는 강(江)과 산(山)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된다.

 

아무튼 연경산이란 이름 대신 모든 대륙지도에는 단지 높이가 2,603m의 산(山)이라고만 되어있다. 아시아대륙에는 여섯 개의 천지(天池)가 있다고 한다. 백두산천지를 비롯하여, 신강성에 있는 천산천지, 섬서성의 천지, 호북성의 천지, 안휘성에 있는 천지, 그리고 산서성의 분원천지 모두 6개의 천지가 있다. 그런데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백악산 즉 말갈백산인 연경산에는 백두산 천지(天池)와 비슷한 분원천지(汾源天池)가 있는데 백두산 천지처럼 이곳 분원천지에서 압록수(鴨綠水)가 발원한다. <신당서> ‘동이전’의 기록이다."有馬訾水出靺鞨之白山 色若鴨頭 號鴨綠水 曆國內城西 與鹽難水合 又南至安市 入於海 而平壤在 鴨綠東南 以巨艫濟人 因恃以爲塹(유마자수출말갈지백산 색약압두 호압록수 력국내성서 여염난수합 우남지안시 입어해 이평양재 압록동남 이거로제인 인시이위참) 마자수는 말갈의 백산에서 시작되며 색이 오리의 머리 색깔과 같아 압록수라 부른다. 국내성 서쪽으로 흘러 염난수와 합해지고 서남쪽으로 안시(안시성)에 이르러 바다(황하)로 흘러 들어간다. 평양성은 압록의 동남쪽에 있어 큰 배로 사람을 건내고 믿음직한 참호 역할을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말갈백산(靺鞨白山)이 백산(白山) 즉 백악산(白岳山)이다. 악(岳)은 ‘큰 산’이란 뜻으로 악(岳)과 산(山)은 같은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백산(白山)이나 백악(白岳)은 같은 뜻이다. ‘역 앞’을 역전(驛前)이라 하면 되지만 뜻글자와 소리글자를 함께 사용한 우리말의 특성상 ‘역전 앞’이라고 이중으로 표현한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이와 같이 백악(白岳)이 ‘백악 산’으로 중복 표현된 것이다. 따라서 아사달(阿斯達)이란 ‘새로운 산’을 나타낼 때는 당시의 말갈백산인 지금의 연경산을 뜻하고, ‘새로운 땅’을 의미할 때는 현재의 산서성(山西省)의 수도인 태원(太原)을 뜻하는 것이다.

 

(3) 산서성은 단군조선의 중심지

 

산서성(山西省) 서북쪽에서 발원한 두 하천(河川)중 하나인 습수(濕水:상건하)는 하북성(河北省) 서북부를 지나면서 열수(영정하)와 합쳐 천진(天津)을 거쳐 발해만(渤海灣)으로 흐르고, 또 하나는 말갈백산(靺鞨白山)의 분원천지(汾源天池)에서 발원(發源)하여 산서성 태원(太原)과 그 아래 임분시(평양성)를 지나 남쪽으로 흘러 황하(黃河)로 들어가는, 고구려(高句麗) 때는 압록수(鴨綠水)라고 불렀고 또 다른 이름으로 당취수, 마자수, 대요수, 고려(高麗)때는 안민강, 혼동강 이라고 불렀으며, 현재는 분하(汾河) 혹은 분수(汾水)라고 부르는 강(江)이다. 따라서 산서성(山西省)은 단군조선(壇君朝鮮)이 개국될 당시 중심지역(中心地域)이며, 이를 뒷바침하는 근거로 <사기>에서 말한 "낙랑(樂浪)과 조선(朝鮮)이란 이름은 단군조선의 하천(河川)이던 습수, 열수, 산수에서 비롯된 듯하다."란 대목인 것이다. 낙랑(樂浪)은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북부를 포함하여 산서성 남동부 패수(浿水:현재의 망하)가 흐르는 패수현 일대로 낙랑(樂浪)은 단군조선의 건국당시인 BC2333년경부터 존재하던 이름인 것이다.

 

(4) 한반도(韓半島)에 대한 최초의 기록

 

 

정사 50년인 BC2284년 왕검께서 풍백(風伯:입법담당)인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치수(治水:물을 다스림)를 하도록 하였다. 우수주(牛首州:맥국이 있던 곳으로 현재의 하북성 창주滄州로 비정)에 그 당시 홍수(洪水)를 다스린 업적비가 있다.

 

무오 51년(BC2283)에 운사(雲師:사법담당)인 배달신(倍達臣:왕검의 셋째 아들 부유)에게 명하여 강화(江華:한반도 강화)의 전등산에 삼랑성(三郞城)을 쌓고 제천단(祭天壇)을 마리산(摩璃山)에 만들게 하여 장정 8,000명으로 일하게 하였다. 동방민족(東邦民族:동이배달한민족)이 하늘에 제사하는 풍속이 단군왕검(壇君王儉) 때부터 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292년 전에 한반도 강화에 대한 기록은 실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단군조선(壇君朝鮮)때에 지나대륙(支那大陸)과 한반도(韓半島)는 동이(東夷) 민족이 같은 언어, 생활, 양식, 습관, 역사를 함께하고 있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5) 우(虞)에게 오행치수법을 가르침

 

 

단군왕검은 갑술 67년(BC2267)에 태자(太子) 부루(扶婁)를 파견하여 하(夏)나라를 세운 우(虞:우임금)에게 도산(塗山:안휘성 현재의 숙주宿州로 비정함)에서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금, 수, 목, 화, 토의 오행 법에 의한 홍수를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주고 국경(國境)을 정하여 유주(幽州)와 영주(營州)가 조선(朝鮮)의 땅이 되었다. 또 회대지방(淮岱地方:산동성, 강소성)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分朝:지방정부)를 두어 다스리고 이를 우순(虞舜:순임금)에게 감독하게 하였다.

 

유주(幽州)는 황하 북부 하남성(河南省) 서부일대와 산서성(山西省) 남부일대를 말하며, 영주(營州)는 황하(黃河)북부 하남성(河南省) 동부 일대를 뜻한다. 동이배달한민족사(東夷倍達韓民族史)에 자주 등장하는 유주(幽州)와 영주(營州)는 이렇게 단군조선 때부터 우리의 강역(疆域)이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과 하남성(河南省) 일부를 제외한 모든 지나(支那:China)대륙이 단군조선(壇君朝鮮)의 영토였다.

 

 

 

 


(6) 오해의 소지가 있는 <서경>의 기록


 

<서경書經>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帝舜 歲二月 東巡守 至于岱宗柴 望秩于山川 肆覲東后(제순 세이월 동순수 지우대종시 망질우산천 사근동후) 순임금이 이해 이월에 동쪽을 순수(巡守:천자가 제후에게 가는 것이고, 제후가 천자를 찾아뵙는 것은 술직 述職이라함)하고 대종(岱宗:산동성의 태산)에 이르러 제사를 모시며 차례로 산천에 제사지내고 마침내 동쪽 천자를 만나 뵈었다." 그동안 재야사학에서 조차도 "사근동후(肆覲東后)"를 "동쪽 제후들을 만나다"로 해석해 왔다. 잘못된 해석이라 보아진다. 후(后)자는 ‘임금 후’ 또는 ‘천자 후’란 글자로 보아야 하고, ‘제후’라고 할 때는 제후 후(侯)자를 써야 한다. 물론 후(后)라는 글자는 ‘임금’이라는 뜻 외에 ‘황후’나 ‘순서의 뒤’나 ‘신神’을 나타내는 뜻도 있고 후대에 와서는 ‘제후’란 뜻도 있다고 적힌 한자 사전도 나온다.

 

 

글자는 시대에 따라 그 뉴안스(Nuance:뉘앙스)가 달라질 수 있다. 먼 옛날에는 ‘씨(氏)라는 글자는 임금을 나타냈다. 예를 들면 소호금천씨, 복희씨, 염제신농씨처럼 씨(氏)자는 왕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나이가 어린 시람이 윗사람에게 ‘씨’를 붙이거나 상대방의 적절한 호칭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씨’를 사용한다면 불쾌하게 생각하는 이치와 같다. 순(舜)임금은 천자(天子)인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임명한 지방정부(분조)를 감독하는 감독자(監督者)로서 회대지방을 감독하는 임무를 맡아 동쪽인 회대지방 특히 강소성에 있던 제후들을 만나본 것이니 순수(巡守)란 표현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이시대의 특사자격과 같은 것으로 보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산동성(山東省)은 원래 배달국(倍達國)의 영토이고 단군조선의 고유(固有)의 영토임을 알고 있었다면 이토록 잘못된 해석이 나올 수 없었을 것으로 본다. <서경>에 정확한 날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 때 천자인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한 도성(都城)에서 생활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서경>은 공자가 지은 것이라 전하지만 신빙성은 없다.

 

 

첫 번째 이유로는 공자는 BC550에서 BC479년경 사람으로 진시황이 BC221년에 천하를 통일하고 세상의 모든 책을 불살랐는데 오직 <서경> 한권만이 남아 있었다는 것은 비논리적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태산(泰山)이 있는 산동성은 대대로 동이배달한민족 조상의 영토로 지나인(支那人)들은 진나라가 황하 아래 6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감히 산동성에 접근조차도 할 수 없었다. 진나라가 통일된 후 비로서 산동성에 올 수 있었음이 사서들을 면밀하게 검토해보면 유추가 가능하다. 하물며 BC2200년경에 단군왕검의 제후인 순임금이 어떻게 천자의 자격으로 상국(上國)의 영토를 감히 순수(巡守)하고 상국의 천자(天子)를 제후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오해임이 분명하다.

 

(7) 단군왕검(壇君王儉) 말기에 12성을 쌓다

 

<단군세기>에, "경자 93년(BC2241) 천하(天下)의 땅을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리고 삼한(三韓)은 64족을 포함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단군왕검 자신이 진한(辰韓)이 되고, 웅백다(熊伯多)를 봉(封)하여 마한(馬韓)이라 하고, 치두남씨(蚩頭男氏)를 봉(封) 하여 변한(弁韓)으로 임명하였으며 겸직(兼職)하여 우(虞:하나라 우왕)의 정치를 감독하게 하였다. 요중(遼中)에 12개의 성(城)을 쌓으니 험독(險瀆), 영지(令支), 탕지(湯池), 용도(桶道), 거용(渠鄘), 한성(汗城), 개평(蓋平), 대방(帶方), 백제(百濟), 장령(長嶺), 갈산(碣山), 여성(黎城)이 그것이다. BC2241년에 천하의 땅을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린 것으로 <단군세기>는 기록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서와 당시의 지리를 종합해 보면, 단군조선(壇君朝鮮)의 초기에의 마한(馬韓)의 도성은 험독으로 산서성 황하가 굴곡 하는 현재의 조양진(朝陽鎭)이며, 변한(弁韓)의 도성은 왕검성이라 알려진 곳으로 산서성 남부 창려인 현재의 원곡(垣曲)이었다.

 

당시의 한(韓)은 단군(壇君:단군조선의 제1세인 단 임금)을 보좌하는 왕(王)을 뜻한 것으로, 단군(壇君)왕검을 보좌하는 마한(馬韓:마왕), 변한(弁韓:변왕)은 단군왕검의 도읍지(都邑地)가 있는 산서성(山西省)의 평양성(平壤城:산서성 임분)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한에서 변한은 약 216리에, 변한에서 마한은 약 331리에, 그리고 마한에서 진한은 약 460리 떨어진 거리로 산서성(山西省)에 함께 도성이 있었던 것이다. 마치 삼각형 모양으로 진한, 마한, 변한의 도성이 배열되어 있었다.

 

그 후 제22대 색불루 단군(索弗婁 壇君:BC1285-BC1237) 때에 비로서 삼한(三韓)을 삼조선(三朝鮮)이라 했으며 이때부터 진한, 마한, 변한이 각각 통치하는 넓은 영토가 나누어진 것으로 보인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 의하면, "색불루 단군 때인 BC1285년 5월 제도를 개정하여 삼한(三韓)을 삼조선(三朝鮮)이라 했다. 조선(朝鮮)이란 관경(管境)을 말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관경(管境)이란 “맡아서 다스리는 경계”란 뜻으로 비로소 진한(辰韓:진조선), 마한(馬韓:막조선), 변한(弁韓:번조선)이 독자적으로 다스리는 영토(嶺土)가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경자 93년(BC2241) 3월 15일 단제(壇帝:왕검)께서 봉정(蓬亭: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으나 산동성에 있던 한 지명으로 본다)에서 붕어(崩御:천자가 세상을 뜸)하시니 교외 10리쯤 떨어진 땅에 장사지냈다. 백성들이 마치 부모님 돌아 가신듯 마음속에서 잊지 못했다. 태자 부루(扶婁)가 단군(壇君)이 되었다.

 

 

 


 

 

(8) 단군왕검이 만든 신교(神敎:선교, 수두교, 삼신오제교)란

 

동이배달한민족의 우주철학사상은 천인지(天人地) 삼원일체(三元一體)와 음양(陰陽) 오행(五行:목, 화, 토, 금, 수) 사상(思想)이다. 상원갑자년인 BC89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산족(高山族) 중에 장자(長子)인 환인(한인)의 부족은 광명(光明:빛)을 숭배하여 해(태양)가 솟아오르는 동쪽인 태백산(太白山:백두산, 장백산, 묘향산, 또는 해와 달이 넘나든다는 뜻에서 이두어로 불함산) 쪽으로 해를 따라 이동하여 지금의 간도 땅인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 연해주, 그리고 한반도에 약 11,000년 전부터 살았던 민족이다.

 

 

그래서 동이라 하는데, 동이(東夷)란 하늘(一)에서 내려온 활(弓)을 잘 다루는 사람(人)이란 뜻으로 도(道)를 통한 나라인 배달국(倍達國) 때에 생겨난 말이다. 더 정확한 기원을 찾는다면 BC2707년부터 BC2697년까지 10년간 산서성(山西省) 최 남서부 지금의 운성시(運城市) 남쪽 소금이 생산되는 천연호수인 운성염지(運城鹽池:현재의 해지解池) 근처인 탁록(涿鹿)에서 배달국 제14대 천황인 자오지(慈烏支:치우蚩尤)와 헌원의 싸움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치우천자 당시에는 ‘동이이(夷)’ 자 앞에 쇠금(金)변이 붙어있는 이(金夷)자 였으나 지금은 쇠금(金)변이 없는 이(夷)로만 사용되고 있다. 당시 이(夷)자 앞에 쇠금(金)변이 붙게 된 것은 배달국 때 이미 금광을 채굴하여 금을 사용하였고, 치우천황이 구리와 쇠로 만든 갑옷을 비롯하여 투구, 창, 칼과 같은 무기를 만들어 사용한 때문으로 보인다.

 

치우천자가 개척한 산서성(山西省) 평양에 도읍(都邑)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한 단군왕검은 동이배달한민족의 우주철학사상(宇宙哲學思想)인 천지인(天地人)과 오행(五行:목,화,토,금,수) 사상에 근거하여 ‘신교(神敎:수두교, 삼신 오제교, 선교)’를 창시하였다. 신인(神人)과 같은 왕검을 당시 사람들은 선인(仙人:죽지않는 신선같은 사람)으로 불렀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1대 동천열제’의 기록에, "平壤者 本仙人 王儉之宅也(평양자 본선인 왕검지택야) 평양은 본래 선인 왕검이 살던 곳이다."라고 하여 왕검(王儉)을 선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단군왕검이 창시한 신교(神敎)가 바로 선교(仙敎)이며 이 신선교(神仙敎)가 최초의 민간신앙이 된 것이다. 그 후 불교와 유교와 도교(道敎)가 생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 노자(老子:BC606년경 인물)와 장자(莊子:BC325년경 인물) 때문에 지나(支那)의 종교로 알고 있는 도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단군왕검의 선교(仙敎:신교, 수두교)에서 유래된 것임을 여러 기록에서 유추할 수 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단군왕검은 천인지(天人地)의 천(天)을 천일(天一)이라 하여 말한(마한)이라 하고, 인(人)은 태일(太一)이라 하여 신한(진한)이라 했으며, 지(地)는 지일(地一)이라 하여 변한(번한)이라 정하고, 오행(五行)의 사상에서 우가(牛加:소), 마가(馬加:말), 저가(猪加:돼지), 구가(狗加:개), 양가(羊加:양)로 이름을 붙여 우주의 조직과 인간세상의 사회제도(社會制度)를 만들었다. 천인지(天人地)에서 제일 존귀한 것이 인간으로 단군왕검 자신은 태일(太一) 즉 신한(진한)이 되어 천일(天一)인 마한과 지일(地一)인 변한(번한)이 태일(太一)인 왕검을 보좌하는 왕(王)으로 만들어 자신을 중심으로 오행사상(五行思想)에 입각하여 짐승들의 이름을 붙여 동, 서, 남, 북, 중앙으로 구분함으로써 단군조선의 정치제도를 설명한 것이다.

 

조선족은 그들의 조상인 한족(桓族:고산족)과 배달족(倍達族:도를 통한 민족)처럼 광명을 숭배하여 태백산(太白山:백두산, 해와 달이 넘나든다는 뜻에서 가명 즉 이두어로 불함산이라 함) 숲에 광명신(光明神)이 살고 있다고 믿었으며 인구가 팽창하여 주거지가 크게 확장되면서 각자가 살고 있는 지역에 숲을 만들어 ‘수두(일명 소도:지금의 절이나 교회당 같은 장소로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냄)’라 하고 신단(神檀:광명신이 살고 있는 박달나무 숲)이라 하였다.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의하면, "해마다 5월과 10월에 사람들이 수두에 모여 제사를 지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고 이를 극복하였는데, 소를 잡아 수두(소도)에서 제사를 지내고 길흉의 점을 칠 때 소의 굽이 떨어지면 흉하고 굽이 붙어있으면 길하다 하였으며, 이것이 지나(支那)의 팔괘(八卦) 음양획(陰陽劃)의 기원이다."라고 하고 있다. 하늘 아래 땅 위에서 제일 큰 태일(太一)인 왕검에 붙어 후에 직함이 된 단군(壇君)이란, 단군조선 제1세의 임금의 자(字)인 단(壇)과 임금의 의미인 군(君)을 붙여 단군(壇君)은 ‘단 임금’의 뜻인 동시에 고천제(告天祭)를 지낼 때 주인이자 천자란 뜻이 되었다.

 

옛날에는 제정일치(祭政一致)라 하여 제사와 정치가 일치한 정치 형태였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번한(변한:지일)은 태자(太子:제2대 부루 단군)의 명을 받고 나라에 크게 경당(扃堂:경학, 문학, 무예를 가르침)을 일으키고 아울러 삼신(三神:천, 인, 지의 신으로 천일, 지일, 태일의 신)을 태산(泰山:산동성에 있는 해발 1,546m의 산)에서 제사 지내도록 하였다. 이로부터 삼신을 받드는 옛 풍속은 회(淮:산동성) 대(垈:강소성, 절강성) 지방의 사이에 크게 행해지게 되었다."

 

그 때문에 동황태일(東皇太一) 즉 단군왕검께 제사지내는 풍속이 가장 유행한 곳이 바로 호북성, 강소성, 절강성이였다. 단군왕검이 만든 신교(神敎:수두교, 삼신오제교, 선교)에서 지나의 3황 5제가 유래되고, 사마천이 지은 <사기> ‘봉선서’의 삼일신(三一神)인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이 우리의 ‘삼신오제교’에서 비롯된 것이며 <사기> ‘진시황본기’ 의 천황(天皇), 지황(地皇), 태황(泰皇)도 단군왕검이 창시한 ‘삼신오제교(신교, 수두교, 선교)’에서 연유된 것이고 북위(北魏:386-534) 때 구겸지(寇謙之:365-448)가 창시 했다는 도교(道敎)의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과 불로장생의 신선(神仙) 사상이 바로 신교(수두교, 선교)에서 기원된 것이다. 또한 일본의 신도(神道)가 단군왕검이 창시한 신교(神敎:수두교, 선교)에서 유래되어 일본천황 신격화 군국주의로 발전하였고, 1910년에는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지금도 신도의 잔당들이 극우파로 일본의 정치 판도를 좌지우지하며 신사참배를 주장하고 한국해와 독도가 자기네들 영토 영해라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자의 ‘클 태’자는 2가지로 태(太)와 태(泰)가 있다. 다시 말하면 태(泰)나 태(太)는 똑같은 뜻을 갖는 글자이다. 그런데 태(太)자는 ‘크다’는 뜻 외에 ‘처음"이란 뜻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볼 때 산서성 태원(太原)은 단군왕검의 백악산 아사달로,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되며 산동성 태산(泰山) 역시 당시 단군조선의 영토로 단군왕검(壇君王儉)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이다. 한자는 뜻글자로 옛 선조들은 이름 한 글자(一字) 한 글자(一字)를 아무렇게나 함부로 짓지 않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단군왕검이 만든 ‘삼신오제’에서 부여(扶餘:북부여)의 우가, 마가, 구가, 저가, 양가의 직책이 생겨나고 고구려의 동, 서, 남, 북, 중앙인 동부(순노부), 서부(소노부), 남부(관노부), 북부(절노부), 내부(계루부)가 생긴 것이다.

 

또한 오늘날 단오절의 윷놀이에 사용되는 도(刀), 개(介), 걸(乞), 유(兪), 모(毛)는 ‘삼신오제(三神五帝)’의 ‘오제’에서 생긴 순수한 우리의 소리글의 표현인 것이다.

 

‘수두(신교)’중에 으뜸인 수두를 ‘신수두’라 하고 신수두에서 단군조선의 국자랑(國子郞)과 고구려의 조의(皂衣:무사집단이며 이두어로 선배라 하고 한자로는 선인仙人 혹은 선인先人으로 쓰며 승군 혹은 재가화상으로도 불렸다.)가 연유된 것이며, 10월에 하늘에 제사지내는 고구려의 동명(東明)이 여기서 비록된 것이다. 신라의 화랑도(花郞道)와 풍류도(風流道) 역시 신교(神敎:수두교, 선교)에서 기원된 것이다. 우리 후손들이 똑똑하지 못하여 BC2333년경에 천자(天子)인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창시한 신교(神敎:수두교, 삼신오제교, 선교)를 계승시키지 못하였으나 이렇게 흔적들은 여러 곳에 뚜렷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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