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마지막일 것 같은 기회가 잘도 다시 온다. (대학 1학년때는 2학년, 2학년때는 3학년, 3학년때는 4학년…그 후엔…?)
흔히들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 한다. 1900 년대를 전후한 싯점부터 이민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미국으로 모여들었다. 아메리칸 드림은 모든 이가 사회적 위치에 구속 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서 보다 나은 삶과 나아가서는 부귀영화도 꿈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뜻한다.
미국에서, 특히나 뉴욕에서 사람들은 주어진 기회를 통해 성공한 사업가 또는 월가의 남자(Wall Street Guy) 같은 멋스럽고 화려한 삶을 꿈 꿀 수 있다. 복잡하게 설명하고 싶진 않지만 당신이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어떠한 시점에선 왜 미국이 확실히 기회의 땅인지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성공의 기회를 농구로 찾고자 했고 현재 진행형이다. 일산에 있는 한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난 농구에 무척이나 빠져 있었다. 나는 스포츠 전문 기자이신 내 아버지를 통해 우연한 기회에 농구부가 있는 서울의 한 중학교에 입학 제의를 받았다.
한국에는 운동선수를 꿈꿔도 운동부가 있는 학교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꿈을 실제로 실현하는 학생들은 극히 제한적이다. 설사 운동부에 들어갔다 해도 그 때부터는 공부 할 여건이 주어지지 않고 운동만 죽어라 해대니 혹시라도 선수로 성공하지 못할 시에는 그 타격이 어마어마하다.
실력이 좋아서 운동으로 대학에 진학했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미래의 걱정에 허우적거리는 학생들이 즐비하다. 내 선배였던 형을 예로 들어보자.
선배는 허리 디스크로 고등학교 때 운동을 그만두고 평판이 좋지 못한 학교로 전학을 가기에 이르렀다. 그 곳에서 선배는 소위 말하는 일진 행세를 하며 사고를 치고 다니다 1년 후엔 제대로? 사고 한번 쳐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지금 아이는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됐고 선배도 공익 근무를 마치고 전역한지 삼 년은 됐을 것이다. 물론 선배의 삶이 회의적으로 다가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배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부실하고 그릇된 교육체계가 선배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지 못하고 옳지 못한 선택의 기로에 처하게 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운동을 하는 학생이 공부도 할 수 있는 그런 교육체계가 가동됐다면 선배는 한결 순탄한 고교생활을 했을 것이다.
남 얘기같지 않은 게 나 또한 한국에서 중학교를 다닌 2년 동안 농구선수라는 이유로 오로지 농구만 했었다. 연습은 정말 죽어나도록 한 것 같은데 그에 비해 경기에는 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혹여 경기에 나설 기회가 주어졌다 해도 실수할 것같은 불안감에 자신 있는 플레이도 못했을듯 싶다.
1, 2 학년 동안 3학년 선배의 ‘딱가리’ 노릇이나 하고 코치한테 얻어터지기나 했었다. 한국에 남아 농구를 계속 했다면 물론 공부는 못 했을 테니 대학 진학의 어려움을 겪었을테고 학창시절 성공적인 사회인의 삶을 위한 준비를 한다는건 애당초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나이에 나는 미국으로 이민 왔다. 미국 학교에는 한국과 다른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토요일에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이었고(지금은 한국도 비슷하지만) 또 하나는 계절별로 아주 다양한 운동부가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선 모든 운동이 방과후 활동으로 편성돼 학생이 저마다의 관심과 노력으로 얼마든지 즐길 수 있도록 공평한 교육 체계에 놓여있다. 트라이 아웃을 통해 원하는 운동부에 들어가면 ‘student-athlete’ 로서 하루에 길게는 세 시간씩 팀 연습에 참여한다.
경기도 학업에 지장 없는 오후 늦은 시간대에 있어서 운동이 공부를 안 할 핑계로 이용될 수는 없다. 또한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성적 또한 학교에서 제시하는 학점 이상을 받아야 되는 규칙도 정해져 있다.
그에 반해 한국에선 부모나 감독이 가능성 보이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운동을 권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미국과 마찬가지로 본인이 좋아해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좋아서 시작한 운동이 그후로도 계속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운동선수는 걸핏하면 몽둥이 찜질을 당하고 지나친 훈련으로 몸이 혹사당하기 쉽다. 본인이 좋아해서 시작한 운동이 나중엔 신물이 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운동선수이기 전에 학생인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압박과 강요가 가해지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꿈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한국의 꿈나무들을 응원하지만 미국의 학생들이 운동에 대한 열정이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반면 한국의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식어버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운동이 힘들어서 그만 두려 해도 할 게 없기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들에게 목표는 운동선수로 성공하는 것 오직 하나이지만 그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최소한이다. 진정한 ‘학생선수(Student Athlete)’는 한국에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