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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의 스포테인먼트
소싯적 꿈은 축구선수였지만 정작 배구선수를 하고 만, 당근 기자노릇은 축구였으되 야구 육상 사격 역도 배드민턴 농구를 섭렵하다 방송영화계를 출입하며 연예와 씨름한 방랑의 취재인생. 전직 스포츠신문 기자가 전하는 스포츠와 연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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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은 엿장수..‘평창 올림픽유력’ 보도를 보고

글쓴이 : 로빈 날짜 : 2010-12-10 (금) 14:40:23

지난 8일 뉴욕타임스 스포츠면을 펴든 순간 눈길을 끈 것은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가능성을 다룬 기사였다. 반가운 마음에 기사를 읽었지만 제목이 심상치 않았다.

‘Ethics Issues Don’t Deter S. Korea’s Olympic Bid’, 직역(直譯)하면 ‘윤리문제가 한국의 올림픽 유치를 단념시키지 않는다’는 것이고 의역(意譯)하자면 ‘윤리문제를 아랑곳않는 한국의 올림픽 유치’정도의 뜻이다.

네사람의 얼굴이 실린 사진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건희 삼성회장, 조양호 대한항공회장, 박용성 KOC총재, 이광재 강원도지사. 모두 평창올림픽 유치위에서 핵심역할을 하는 이들이다.

제목과 사진만 보더라도 평창의 윤리딜레마를 건드리는 기사라는 것을 쉽게 짐작했다. 그러면서 걱정이 들었다. 필경 한국 언론이 입맛대로 요리할 것이었기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뉴욕타임스 기사를 일제히 인용한 언론들의 제목은 ‘2018 동계올림픽 평창유력’ ‘평창 동계올림픽 3수성공?’, ‘윤리문제 불구 평창 동계올림픽 유력’ 등등 장밋빛 일색이다.

기사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평창이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등 경합도시들을 압도하고 있으며 핵심인사들의 윤리문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평창의 발목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결론적으로 한국 매체들은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왜곡(歪曲)했다. A4용지 3장도 넘는 장문의 기사를 10분의 1로 압축하며 재주껏 ‘편집’을 해버린 것이다. 한국 언론대로라면 뉴욕타임스는 이들의 도덕적 결함에 면죄부를 주고 7개월이나 남은 개최지 선정의 승리자는 사실상 평창이라고 도장을 쾅하고 박아버린 셈이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한국언론이 제대로 언급한 것은 평창이 현 시점에서 유력한 후보라는 팩트 한가지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읽는 내내 필자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외국 독자들은 이렇게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이들의 도시가 올림픽을 유치해도 되겠냐라는 의문이 들 것 같은 두려움도 들었다.

뉴욕타임스는 평창에 호의로운 기사를 쓴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 윤리문제만 안떠들면 IOC가 쉬쉬하고 평창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는데 뉴욕타임스가 동네방네 평창의 약점을 소문내버렸다.

물론 뉴욕타임스의 기사에 저의가 있다고 예단(豫斷)하는 것은 아니다. 기사는 객관적으로 작성됐다. 평창의 장점과 단점을 고루 언급했고 지지자, 반대자들의 코멘트도 넣었다. 문제는 한국 언론이 평창의 불리함, 반대자의 목소리를 생략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뉴욕타임스가 평창의 승리를 확신하는 우군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 언론이 빼먹은 부분들을 살펴보자. 뉴욕타임스는 기사 도입부에 평창올림픽유치위원장이기도 한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이 국제빙상연맹과 스폰서 계약을 맺은 것에 대해 IOC가 지난달 경고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국제빙상연맹 회장이 개최지 결정 투표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평창의 지지표를 늘리기 위한 로비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한항공은 국제빙상연맹과의 스폰서 계약을 투표 이후로 연기했다. 또한 IOC가 최근 삼성이 FISA(국제조정연맹)와 맺은 스폰서계약을 조사한 결과 규정 위반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스위스 출신의 IOC 위원인 데니스 오스왈드 국제조정연맹 회장이 “내년 7월 열리는 개최지 선정 투표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스폰서계약에 따른 오해를 피하기 위해 투표권을 포기한 것인데 평창으로선 눈뜨고 한 표를 잃은 셈이다. 혹시 그가 경쟁후보를 지지할까봐 사표(死票)를 만들기위한 고단수 전략이었을까.

타임스는 IOC가 2002 솔트레이크 스캔들이후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두리우고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조세포탈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건희 회장을 특별사면하면서 평창올림픽 유치에 기여토록 하겠다고 말한 것이 도리어 IOC의 일부 위원들을 움추러 들게 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조양호 회장이 99년 조세포탈혐의로 기소돼 3년형을 선고받았고 후에 1200만 달러를 납부”했으며 “KOC 위원장 박용성 전 IOC위원도 횡령으로 기소됐지만 대통령에 의해 사면됐다. 유치위 부위원장인 이광재 강원도지사도 뇌물수수혐의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의 부패관행을 조롱조로 소개했다.

<일부는 한국에선 기소가 비즈니스의 한 방식이라는 말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IOC 위원은 “한국은 좀 다른 세계다. 그들은 부정한 수단을 쓴다.(Korea is a different world, and they play hardball,) 내가 보기엔 IOC 위원들이 대체로 한국의 많은 케이스들이 아주 정치적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이 비정상의 나라이므로 대충 넘어가자는 것일까.

비판의 강도는 뒤로 갈수록 높아진다. “삼성을 비롯 가족들이 경영하는 한국의 기업들은 지난 수십년간 부패와 금융 스캔들에 종종 연루됐지만 재판관들이 중징계가 한국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항상 솜방망이 징계를 해왔다.” 이윽고 “베이징 올림픽의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된다. 평창이 선정되면 아무도 올림픽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반대자의 노골적인 경고로 기사를 끝냈다.

<일부에선 IOC가 2008베이징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인권문제로 성화봉송이 반대시위를 촉발한 점을 들어 주최국 선정 논란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올림픽 역사학자인 데이빗 월리친스키 씨는 “베이징 올림픽의 사례가 문제를 악화시켰다. IOC 위원들은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수치스럽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만일 평창이 선정된다면 사람들은 올림픽이전부터 끝나는 날까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고 바로잡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신이 진정 좋은 올림픽을 하고 싶다면, 아름다운 개최지를 만들고 싶다면 경쟁이 시작되는 날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뉴욕타임스가 평창의 손을 들어준 것일까. 한국언론은 뉴욕타임스가 ‘평창이 아름다운 풍광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약 10억명의 아시아 인구가 밀집해 있다는 지리적 장점 등이 유치활동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말했지만 원문의 주어부는 뉴욕타임스가 아니라 평창이었다. 그것을 마치 뉴욕타임스가 긍정적으로 묘사한 것처럼 둔갑(遁甲)시켰다.

한국 언론이 쓰지 않은 내용중엔 주목할만한 뮌헨의 강점이 있다. “뮌헨은 겨울스포츠가 특히 인기있는 도시라는 점과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후임으로 독일의 IOC 토마스 바흐 위원이 물망에 오르는 것이 강점으로 작용한다.” 차기 위원장이 유력한 나라가 후보라면 크게 긴장할 대목이 아닌가.

필자는 지난해 12월 말 이건희 회장이 특별사면됐을 때 한 통신사 뉴욕특파원의 신분으로 ‘평창은 이건희를 거부하라’는 특파원칼럼을 송고했다. IOC가 극도로 경계하는 윤리적 흠결을 갖고 있는 이회장의 활동이 도리어 한국에 친화적인 위원들의 입장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특히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한 특별사면이라는 이 대통령의 공언은 경쟁도시들이 윤리적 이슈를 건드릴 수 있는 소지를 준 실책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칼럼은 송고된지 두시간도 안돼 통신사 홈페이지는 물론, 모든 포탈사이트에서 삭제됐다.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유령칼럼이 된 것이다. 담당데스크는 “삼성 수뇌부가 회사로 와서 사장에게 삭제를 부탁했다”면서 “(칼럼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당시 칼럼이 삼성으로선 잔치상에 찬물을 끼얹는 뼈아픈 내용이었을 수 있다. 필자는 이건희 회장의 탁월한 경영능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무리한 특별사면이 결코 평창을 돕는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삼성의 힘은 통신사 중견기자의 칼럼을 한칼에 허깨비로 만들만큼 무소불위(無所不爲)였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그때의 예견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창은 강력한 후보다. 아마도 내년 7월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낭보를 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건희 회장을 비롯, 윤리의 도마에 오른 인사들의 힘이 아니라 평창이 가진 저력, 우리 국민들의 성원과 염원,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등 깜짝 금메달을 따낸 선수들의 감동적인 활약덕분일 것이다.

 

도리어 문제인사들은 평창이 여유있게 승리할 수도 있는 유치경쟁을 어렵게 만드는 빌미를 주었다는 송구함을 가져야 한다. 더불어 한국 언론도 외신을 입맛대로 바꾸는 엿장수식 보도구태(舊態)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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