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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 꿈은 축구선수였지만 정작 배구선수를 하고 만, 당근 기자노릇은 축구였으되 야구 육상 사격 역도 배드민턴 농구를 섭렵하다 방송영화계를 출입하며 연예와 씨름한 방랑의 취재인생. 전직 스포츠신문 기자가 전하는 스포츠와 연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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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반쾌거로 돌이켜보는 ‘4전5기’ 홍수환

글쓴이 : 로빈 날짜 : 2011-07-07 (목) 12:56:05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

 

한국서 70년대를 보낸 기성세대라면 이 대화만 보아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질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37년전인 1974년 7월 4일 남아공 더반에서 전해진 낭보(朗報)에 국민들은 짜릿한 희열(喜悅)을 맛봅니다.

홍수환이 WBA 밴텀급 세계타이틀전에서 남아공의 백인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를 무려 4차례 다운시킨 끝에 15회 심판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고 한국 역사상 두 번째 세계 챔피언이자 원정지에서 첫 챔피언의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복싱 세계챔피언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복싱의 인기가 시들하고 다양한 프로스포츠에 세계적인 스포츠스타도 다수 배출하는 현실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70년대까지 프로스포츠는 사실상 복싱이 유일했고 아마 프로 통틀어 세계챔피언은 오직 프로복싱만이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레슬링의 양정모가 해방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이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이니까요.^^)

그 당시 서울신문사가 펴낸 스포츠주간지 ‘주간스포츠’의 표지 모델로 가장 많이 등장했을만큼 프로복서들은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바로 홍수환이 복싱전성기의 물꼬를 튼 주인공입니다.

지구 반대편의 남아공 더반이라는 곳에서 현역 군인(일등병)인 홍수환이 세계타이틀전을 벌인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저는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라디오중계가 마침 아침이어서 트랜지스터를 귀에 대고 학교에 가면서 들었습니다.

아놀드 테일러는 남아공에서 23년만에 탄생한 복싱챔피언이어서 첫 방어전 상대로 무명의 홍수환을 고른 것입니다. 물론 홍수환이 동양타이틀을 갖고 있는 세계2위였지만 홈링의 잇점을 안고 있는 챔피언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됐습니다.

게다가 홍수환은 남아공에 도착하기까지 30시간동안 비행기를 무려 6번이나 갈아타고 가야 했습니다. 시차도 안맞고 컨디션도 정상이 아니었지만 체육관에 한국인선원 20여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하는 것을 보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고 하더군요.

라디오 중계를 들으며 학교에 가는동안 얼마나 신바람이 났는지 모릅니다. 예상을 뒤엎고 1회와 5회, 14회와 15회까지 도합 다운을 네 번이나 뺏을만큼 일방적인 경기를 펼쳤으니까요. 후일담(後日譚)입니다만 당시 라디오중계도 생방송은 아니었습니다. 경기는 한국시간으로 새벽 3시에 했는데 혹시 질 수도 있고 그 시간 거의 들을 사람도 없어서 중계를 녹음해 3시간쯤 후에 방송했다는군요. 

세계챔피언 등극 직후 라디오 캐스터 앞에 선 홍수환은 이어폰에서 한국의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자 저 유명한 말을 합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챔피언을 먹었다라고 한 홍수환의 표현도 정감넘치지만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라며 대한민국을 대한국민으로 슬쩍 바꾼 어머니도 재치만점이었습니다. 모자(母子)의 대화는 국민적 유행어가 되었고 오늘날까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4전5기의 신화입니다. 밴텀급 세계타이틀을 LA에서 멕시코의 '신성' 알폰소 자모라에게 빼앗긴후 와신상담(臥薪嘗膽), 재기를 노리던 홍수환은 77년 11월 26일 WBA 슈퍼밴텀급 챔피언결정전에서 파나마의 헥토르 카라스키야와 적지에서 맞붙습니다.

 

홍수환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 카라스키야는 11전 11승 11KO승의 살인적인 강펀치를 자랑한 파나마의 영웅이었습니다. 이 경기는 TV생중계를 했는데 당시 저는 광화문의 한 과외방에서 동급생들과 경기를 보았습니다.

카라스키야는 펀치의 위력도 있었지만 긴 리치를 이용해 자유자재로 내뻗는 주먹은 베테랑 테크니션 홍수환을 압도했습니다. 1회전을 위태롭게 넘긴 홍수환은 2회 들어 전광석화같은 훅을 두차례 허용하며 첫 다운을 당하는 등 무려 4차례나 링에 누으며 KO패 직전까지 갔습니다. 사실 한 라운드 다운이 세 번이면 자동 KO의 조항도 있었지만 프리 녹다운제에 합의한 것이 천운이었습니다.

 

그렇지만 3라운드에서 세계복싱 사상 전무후무한 4전5기의 신화가 써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당시 동영상을 보면 홍수환의 비장한 각오를 볼 수 있습니다. 2라운드에 네 번이나 다운당한 것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난타전을 했기때문입니다. 몸을 사리며 아웃복싱을 했다면 그정도까지 무너지지 않았겠지만 홍수환은 다운당하면 바로 오뚝이처럼 일어나 카라스키야와 정면 대결을 펼쳤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1회전만 더하자”라는 김준호 트레이너의 외침에 부응하듯 그는 3라운드 공이 울리자 스프링튀듯 달려나갔습니다. 30초쯤 흘렀을까, 더킹을 하면서 카라스키야의 관자놀이에 짧은 오른손 훅이 꽂히는 순간 드라마틱한 반전이 이뤄집니다.

상대가 충격을 받은 것을 감지한 홍수환은 쏜살같이 달려들어 펀치세례를 가합니다. 코너에 몰린 카라스키야에게 양손 훅과 어퍼컷을 교대로 작렬(炸裂)시키고 심지어 쓰러지려는 상대의 턱을 어퍼컷으로 올려 몸의 균형을 잡아주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카라스키야는 다운도 못당하고(?) 매를 더 맞아야 했지요.

만일 카라스키야가 일찍 넘어졌다면 충격이 덜해 경기흐름이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홍수환은 폭풍처럼 몰아치며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고 마침내 뒤로 무너지는 카라스키야의 안면에 피날레 펀치를 내려꽂으며 믿기 힘든 KO승을 끌어냅니다.

전국의 TV수상기 앞에 있던 국민들은 발을 구르며 열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2002 월드컵 16강전 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의 골든골 이상가는 짜릿한 순간이 아니었나싶습니다.

우리의 홍수환, 중계 캐스터가 소감을 묻자 득의만면(得意滿面)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서 소리치던 순간도 기억속에 생생합니다. “챔피언 또한번 먹었구요. 대한국민 만셉니다!” 3년전 어머니와 주고받은 대화를 혼자서 리바이벌하며 국민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것입니다.

홍수환 덕분에 4전5기는 7전8기보다 유명해졌습니다. 남아공 더반에서 네 번의 다운을 뺏으며 챔피언이 된 그는 3년후 파나마에서 열린 2번째 타이틀도전에서, 2회전 네 번의 다운을 당했지만 오뚝이처럼 일어나 3회전 드라마틱한 KO승을 거뒀습니다.

2와 3의 조화. 뭔가 떠오르는게 없나요? ^^ 그렇습니다. 평창입니다. 지난 12년간 두 번이나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투표에서 좌절한 평창이 마침내 세 번째 도전에서 승리의 환희를 맛보았습니다.

그것도 남아공 더반에서 말입니다. 37년전 홍수환이 쓴 기적의 드라마가, 4전5기의 불굴의 투혼이, 온 국민이 염원한 평창의 동계올림픽 2전3기 신화로 이어진 것은 아닐런지요.


재이뷔배 2011-07-08 (금) 03:22:54
기적은 그것을 위해 쌓아 올린자들이 만들어 내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적을 믿고 그것을위해 꿈을 키우는 이들에게 좋은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평창과 맞물린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기사/글 감격하며 읽었습니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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