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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의 스포테인먼트
소싯적 꿈은 축구선수였지만 정작 배구선수를 하고 만, 당근 기자노릇은 축구였으되 야구 육상 사격 역도 배드민턴 농구를 섭렵하다 방송영화계를 출입하며 연예와 씨름한 방랑의 취재인생. 전직 스포츠신문 기자가 전하는 스포츠와 연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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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게만은 절대 지지마라” GK 이세연의 추억

글쓴이 : 로빈 날짜 : 2011-08-13 (토) 01:45:48

“그때는 정말 대표팀이 잘했어. 지금은 아시안컵 이런데 나가면 우리가 쩔쩔매잖아. 아시아 최고라고 자부하기 어렵지. 하지만 그때는 진짜 최강이었어. 내가 대표선수를 하면서 꼭 하나만 자랑하라고 한다면 일본에게는 한번도 지지 않았다는 거야. 일본경기를 하기 위해 김포공항를 떠날 때면 꼭 부모님이 마중나오셔서 '일본에게만은 절대로 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반일 감정'이 많았잖아. 일본은 꼭 이기겠다는 생각이 절실했고 실제로 한번도 안졌어.”

왕년의 명GK 이세연(68) 씨가 2008년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세연은 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대표팀 골문을 11년이나 지킨 최고의 수문장이었다. 당시 한국은 메르데카컵 킹스컵 등 아시아 최고 권위의 대회에서 밥먹듯 우승한 아시아 최강이었다.

이회택 박이천 박수덕 김호 김정남 등 포지션별로 당대의 스타들이 즐비했지만 워낙 골을 안먹어 ‘구두쇠 GK’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이세연의 신들린 방어가 한국을 아시아의 호랑이 권좌(權座)에 올려놓은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런데 정작 외국선수들에게 알려진 이세연의 별명은 ‘아시아의 폭군’이라는 독특한 것이었다. 대체 어떤 플레이를 했길래 그런 무지막지한 별명을 얻게 됐을까. 이세연하면 전설처럼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에피소드가 있다.

일본전에서 골잡이 가마모토의 턱을 가격(?)한 사건이다. 비단 일본만이 아니라 상대팀 스트라이커들은 터프한 플레이의 이세연을 두려워했다. 그 앞에서 어설프게 점프했다간 거칠기짝이 없는 한국 골키퍼의 주먹과 팔꿈치에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가마모토는 당시 일본에선 이회택급의 레전드였다. 그러나 그는 이세연앞에서만큼은 기를 펴지 못했다. 상대 GK에게 주눅든 스트라이커가 좋은 활약을 펼칠 리 없다. 사실 가마모토 턱 가격사건은 과장된 일화다. 이세연의 육성을 더 들어보자.

“2002월드컵을 앞두고 한 방송사에서 나를 데리고 이운재, 김병지를 인터뷰하러 갔어. 그때에도 까마득한 후배들이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 가마모토의 얼굴을 진짜 펀칭했냐고 물어보는거야. 내가 그냥 웃었지. 솔직히 가마모토는 약점이 없는 선수였어. 기술도 좋고, 점프도 좋고 헤딩도 잘하고. 그런 선수를 어떻게 막을까 고민하다보니 조금 거칠게 다룰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가마모토가 문전에 오면 조금 심하게(?) 다뤘지. 같이 공중볼을 다투기 위해서 점프를 하다보면 내가 공을 향해 펀칭을 할 때가 있잖아. 그럴때 주먹이 가마모토의 뒤통수에 슬쩍 맞은 적이 있을 수 있지. 그러나 내가 작심해서 얼굴에 주먹을 날리거나 하지는 않았어. 그렇게 했으면 당장 퇴장당했지. 주심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잖아. 나는 대표팀 경기를 하면서 퇴장당한 적이 단 한번도 없어. 다만 경기 룰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거칠게 상대 공격수들을 다룬 것은 사실이야.”

심판이 눈이 멀지 않는한 고의로 상대 턱을 가격한 선수에게 퇴장을 명령하지 않을 리 없다. 다만 그의 고백대로 다소의 거친 플레이는 상대 공격수들이 함부로 공중볼을 다투지 못하게 하는 약(?)이 되었을 것이다.

이세연의 일화(逸話)를 길게 소개한 이유는 일본전에 대한 그의 유별난 투혼때문이다. 비단 이세연을 떠나 그 시절 일본과의 축구경기는 단순한 스포츠 대결이 아니었다. 왜 일본전만큼은 반드시 이겨야한다고 투지를 부태우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물론 스포츠의 세계에서 패배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의 패배는 내일의 승리를 위한 쓰디쓴 보약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내용이다. 최선을 다하고 졌다면 패자일망정 격려의 박수가 쏟아지는 법이다.

  

10일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축구 한일전. 아다시피 60년대이후 양국간 공식적인 대결이 펼쳐진 이래로 한국이 3-0으로 완패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충격은 스코어에 있지 않다. 한국의 국대선수들은 경기 내용과 모든 점에서 완패했다.

기량과 조직력에서 압도된 것도 답답하지만 우리 대표팀이 강렬한 투혼만 발휘했다면 경기를 지켜보는 우리 국민들이 이토록 참담한 심경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뭐 축구경기 하나로 그렇게 심각해질 이유가 있냐고? 이젠 한일간의 스포츠대결에 좀 냉정해할 필요가 있지 않냐고? 글쎄 앞으로 우리도 한번 일본 열도를 식민지배해보고, 일본아이들이 아이티 이상으로 불쌍해진 다음이라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 1천년간 왜구(倭寇)의 노략질에, 임진왜란, 정유재란, 끊임없는 침략에, 한반도의 강제합병에, 징용에, 징발에, 수탈에, 위안부라는 이름의 추악한 성노예 범죄에, 억울하게 숨진 한국인의 원혼을 저들의 귀신방(신사)에 가둬놓고, 독도를 침탈하고 한국해를 일본해로 둔갑시킨 해적국가 일본이 독일 발바닥이라도 따라올만큼 형식적인 사과와 배상이라도 하면 모를까.

잔혹한 식민시절 우리에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었다. 비록 운동장일망정 일본을 속시원히 무찌르는 축구를 보며 우리는 독립의 비원(悲願)을 달랬던 바다.

일본에 지면 현해탄(玄海灘)을 건너올 생각을 하지 말라던 대통령도 있었다. 무기력한 졸전속에 참패함으로써 국민의 자존심을 일거에 꺾어버린 우리의 국대용사들, 배가 불러진건 좋은데 투지는 어디 마실이라도 보냈는지…. 하필이면 광복의 달 팔월에.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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