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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의 스포테인먼트
소싯적 꿈은 축구선수였지만 정작 배구선수를 하고 만, 당근 기자노릇은 축구였으되 야구 육상 사격 역도 배드민턴 농구를 섭렵하다 방송영화계를 출입하며 연예와 씨름한 방랑의 취재인생. 전직 스포츠신문 기자가 전하는 스포츠와 연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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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중국의 한국 따라하기

글쓴이 : 로빈 날짜 : 2010-11-14 (일) 03:06:09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슬그머니(?) 시작됐다. 슬그머니라는 표현은 과거와는 달리 한국 언론이 법석대며 떠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유는 물론 G20 정상회의 때문이었다. 국가적 대사가 열리는데 그깟 아시안게임이 눈에 들어올까.

  

▲ 광저우아시안게임 개막식 <사진=광저우아시안게임조직위 홈페이지>

개막식의 열기도 못느꼈지만 우리 선수단의 출발은 상쾌하다. 유도에서 첫날에만 금메달을 세 개씩이나 따내는 등 풍성한 금 수확이 기대된다. 내 기억속의 첫 아시안게임은 74년 테헤란 대회였다.

테헤란 대회는 ‘아시아의 물개’조오련(趙五連)이 당시 일본이 지배하는 400m와 1500m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따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대회였다. 조오련은 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도 고교2학년(양정고)의 신분으로 같은 종목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따내 국민들을 열광시켰다.

 

유독 74년 대회가 내 기억속에 남은 것은 한참 운동에 빠져있던 시절이었고 당시 유일한 스포츠신문이었던 일간스포츠를 구독하며 많은 뉴스를 접할 수 있었기때문이다.

아마 조오련에게도 2종목에서 2연패를 한 74년 대회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4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에도 2연패를 해냈다는 것은 본인의 의지가 얼마나 컸는지 말해준다. 당시 한국 수영의 척박(瘠薄)한 현실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시상대에서 조오련은 무명의 한복차림에 태극기가 그려진 머리띠를 하고 나와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74년 아시안게임에는 중공(중국)과 북한이 처음 나와 국민들의 관심이 컸던 것 같다. 그때 중공이 아시안게임에 데뷔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자사격이었든가? 우리 선수들과 시상대에 올랐는데 그네들이 악수를 거부해 냉랭한 장면을 연출한 게 생각이 난다. 북한은 그만두고라도 중공과의 적대감(敵對感)이 보통이 아닌 시절이었다.

지금은 아시안게임에서 여유있게 1위를 차지하는 중국이지만 그 대회에선 금메달 35개로 일본(75개) 이란(36개)에 이어 3위에 머물렀다. 우리나라는 16개로 4위였는데, 북한(15개)을 한 개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제쳤다. 조오련의 금메달 두 개가 엄청난 효자 역할을 한 셈이다.

51년 인도 뉴델리에서 시작된 아시안게임은 2회 대회(54년 마닐라)부터 4년 주기로 고정됐다. 70년대까지 아시아의 지존(至尊)은 일본이었다. 78년 방콕 대회까지 8연패를 했으니까.

82년 뉴델리 대회부터는 바톤 터치하듯 ‘중국천하’가 시작돼 2006년 카타르 도하대회까지 7연패를 이뤘다. 올해는 홈그라운드인 광저우 대회인만큼 압도적인 차이로 8연패의 위업을 달성할게 확실하다.

아시안게임 메달 얘기를 할 때마다 안타까운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가 종합 1위를 차지할 절호(絶好)의 기회를 놓친 일이다. 86서울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는 금메달 93개를 획득, 중국(94개)에 1개 차이로 2위에 머물렀다.

당시 나는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예상을 깨고 중국과 치열한 금메달 경쟁을 해서 무척 고무된 분위기였다. 물론 태권도를 비롯해 우리나라에 유리한 신규 종목들이 많았고 홈그라운드의 잇점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주최국의 프리미엄은 일정 부분 당연한 것이다. 페어플레이 정신을 저버린 일방적인 횡포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대회가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묘한 기류(氣流)가 형성됐다. 한국이 아무리 개최국이지만 중국을 이겨서야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대회 마지막 날 우리나라는 사실 중국을 금 한 개차이로 따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 종목에서 자의반 타의반 양보(?)하는듯한 분위기가 연출돼 결국 1개차 2위로 대회를 끝내고 말았다.

어느 덜떨어진 언론은 “우리나라가 1위가 됐으면 불공정한 아시안게임이라는 비난을 받았을텐데 2위를 해서 다행”이라는 한심한 말까지 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개인적으로 세계 각국의 수많은 스포츠대회를 경험한 것에 견주자면 서울 아시안게임은 대단히 공정한 대회였다. 도둑이 제발저린 것도 아닌데 밖에서 뭐라고 떠들면 ‘오매 뜨거라’ 놀라며 제 밥상도 못챙기는 헛똑똑이라고 할까.

지금 중국은 15억명의 인구를 내세워 미국도 압도하는 스포츠 초강대국이 됐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가 못잡을 상대가 아니었다. 아시안게임에서 종합1위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를 체면치레(?)하다 놓쳤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은가. 스포츠의 기록도 하나의 역사로 남는 것이거늘.

그 뒤 스포츠기자가 되어 90년 북경아시안게임을 취재했는데 4년전 서울대회 운영요원들의 유니폼과 모자 등 똑같은 것을 대회 관계자들이 착용해 어리둥절했다. 알고보니 서울조직위가 북경조직위에 디자인을 공급하고 상당수 유니폼도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때만해도 북경의 보통 시민들은 90%가 인민복을 입고 다닐만큼 옹색했으니 오늘의 중국을 생각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닐 수 없다.

스포츠제전의 흐름을 보면 중국이 한국을 그대로 따라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86서울아시안게임을 90년 북경이 이어받았고 88서울올림픽에 이어 2008북경올림픽이 열렸다. 2002부산아시안게임에 질새라 2010광저우로 이어가는 본새가 그렇다.

   

▲ 경기장의 치어리더들 <사진=광저우아시안게임조직위홈페이지>

2014년엔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니 중국도 세 번째 아시안게임을 궁리할 것이다. 그래도 한가지 따라오기 어려운건 월드컵이 아닐까. 한국은 2022년 두 번째 월드컵을 노리고 있는데 중국은 여전히 구경꾼 신세이니 말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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