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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의 스포테인먼트
소싯적 꿈은 축구선수였지만 정작 배구선수를 하고 만, 당근 기자노릇은 축구였으되 야구 육상 사격 역도 배드민턴 농구를 섭렵하다 방송영화계를 출입하며 연예와 씨름한 방랑의 취재인생. 전직 스포츠신문 기자가 전하는 스포츠와 연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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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을 축하못할 3가지 이유

글쓴이 : 로빈 날짜 : 2013-09-10 (화) 12:30:24

 

“쎄울 휘프띠~투.. 나고야..”

 

 

우와! 하는 함성(喊聲)이 일었다. 한국 대표단이 벌떡 일어서 환호하는 것으로 승부는 결정되었다. 나고야의 표는 들을 필요도 없이 과반수 표를 얻은 것이다. 객석의 환호로 잠시 발표를 중단한 사마란치 위원장은 미소를 머금은채 스페인식 억양으로 “나고야 뚜엔띠 쎄븐”하고 마무리지었다.

 

 

52-27의 기적(奇籍)같은 바덴바덴의 드라마였다. 1981년 9월 30일. 벌써 32년전의 아득한 세월이지만 아직도 사람들 뇌리엔 그 모습이 또렷이 박혀 있을 것이다. 12.12와 5.17로 민주화의 염원을 짓밟은 전두환정권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스포츠와 스크린, 섹스의 3S였다.

 

국민들의 자유와 민주에 대한 갈망(渴望)을 억누르는 한편 향락적인 대중문화로 저항의식을 분출시키려 한 군사정권의 얍삽한 정책이었다. 컬러방송을 서둘러 시작하고 국풍81이라는 관권축제가 기획됐으며 미스유니버스대회를 유치해 반라의 세계 미녀들을 브라운관에 담았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잇따라 출범한 것도 전정권의 작품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부름이었고 85년 6.29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며 오랜 억압(抑壓)의 사슬을 끊어나갈 수 있었다. 비단 전두환정권이 아니었어도 한국의 스포츠를 비롯한 대중문화는 발전을 했겠지만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강공드라이브로 총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당시만해도 개발도상국인 대한민국이 경제대국 일본을 누르고 올림픽 유치에 성공할 것이라고 믿은 이들은 별로 없었다. 실제로 나고야는 총회 직전까지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다른 경쟁자였던 그리스 아테네와 호주 멜버른은 도중하차(途中下車)했고 서울이 남아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지만 나고야는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도쿄의 방심을 서울은 파고 들었다. IOC위원들을 1대1로 접촉하며 개발도상국이자 사실상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에서 평화의 제전을 개최할 당위성을 설득했다. 필경 한국인 특유의 극진한 손님접대(?)도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거의 더블스코어로 나고야를 제치며 올림픽유치의 신화(神話)는 그렇게 새겨졌다. 한일간의 지독한 라이벌의식때문이었지만 그때만해도 올림픽 유치는 오늘날과 같은 치열한 경쟁이 아니었다. 명실상부한 흑자올림픽이 84년 LA에서 처음 이뤄졌다시피 올림픽은 개최국가의 브랜드이미지는 커질망정 재정적인 측면에선 손해를 보는 '돈먹는 하마'였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한국이 80년대 들어 대규모 스포츠이벤트를 유치하기 시작하면서 아시아에서 독불장군(獨不將軍)처럼 행세하던 일본과 한국의 또다른 악연은 시작됐다.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대륙별 안배원칙이 있기 때문에 같은 대륙, 특히 인접국이 유치를 희망할 경우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64년 도쿄이후 24년만에 두 번째 하계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일본이 물을 먹은후 2002년 월드컵에서 일본이 막판 공동개최의 꼼수를 제안한 것도 88올림픽의 악몽이 재현될 조짐때문이었다.

 

평창이 3수 끝에 2018동계올림픽을 유치할 때 일본은 노골적인 반대자였다. 평창이 개최권을 가져가면 2020 하계올림픽을 아시아가 유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때문이었다. 2008년 베이징, 2018년 평창에 이어 짧은 기간사이에 극동의 국가들이 올림픽을 독식(獨食)한다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2020올림픽개최지로 도쿄가 선정된 것은 비도박사들에게 의외의 결과였다.

 

지난 6일 뉴욕타임스가 올림픽 개최지를 전망하는 기사에서 도쿄 이스탄불 마드리드 중 이스탄불을 1순위로 꼽았던 것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축구연맹(FIFA) 등 세계의 양대 스포츠기구가 개최 경험이 없는 나라를 선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들었기때문이었다.

 

기실 이스탄불은 훌륭한 명분(名分)이 있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도전이기도 하거니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자 최초로 이슬람국가에서 열리는 올림픽이 될 것이기때문이었다.

 

하산 아라트 이스탄불 유치위원장은 “IOC가 이스탄불을 선택한다면 올림픽의 새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무슬림지역에 대한 올림픽 운동의 파급효과가 막대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물론 이스탄불은 반정부시위 등 정정불안이 약점이 되고 있고 막대한 예산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이 관건(關鍵)이라는 지적을 받은게 사실이다. 그러나 세월을 거슬러 88서울올림픽을 생각하면 독재정권치하에서 끊임없는 민주화요구시위가 벌어지고, 경제력도 내세울게 없는 한국의 도전보다는 훨씬 좋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자크 로게 위원장은 “올림픽 개최지 선정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이 아니라 7년뒤에 연다는 사실이다. 위원들이 7년후를 내다보고 재정과 사회문제 등 기타 요인을 살펴봐야 할 것”이라며 미래 가치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렇다면 경쟁 3대 도시중 가장 국민들이 열정적인 이스탄불이야말로 최적의 후보지였다.

 

그럼에도 IOC위원들은 압도적으로 도쿄의 손을 들어주었다. 일본의 장점은 1964년 도쿄올림픽, 72년 삿포로와 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 등 풍부한 경험과 호텔 교통 등의 인프라가 완비됐으며 45억 달러에 달하는 재원도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이다.

 

그러나 이웃나라의 한 사람으로 도쿄의 유치성공을 흔쾌히 축하할 수 없는 이유 중 첫째는 앞서 지적한대로 평창에 대한 방해공작이라는 그들의 전죄(前罪)이고 둘째 이른바 ‘방사능올림픽’의 우려 때문이요, 셋째 도쿄올림픽으로 인해 우리의 부산이 꿈꾸는 올림픽 개최 도전은 최소한 20년이상 지나야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도쿄의 유치직후 인터넷커뮤니티엔 '방사능올림픽 로고'가 화제가 됐다. 올림픽 오륜기를 방사능 이미지로 묘사한 것이었다.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금은동 메달 대신 플로토늄 메달, 우라늄 메달, 세슘 메달이 나올까?”, “원자력발전소 터진 곳에서 올림픽이라니 선수들이 무슨 죄인가?”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사진=인터넷커뮤니티>

 

아베 신조 수상이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날아가 IOC위원들에게 도쿄올림픽은 방사능의 무풍지대라고 강변하였지만 일본 내부에서조차 “무얼 어떻게 해결한다는 소리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고 9일 도쿄신문은 바다로 흘러가는 방사능 오염수가 얼마나 되는지 전체 상황이 파악조차 안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 일본의 손을 들어준 IOC 위원들은 간이 크다고 해야 할까. 무식이 하늘을 찌른다고 해야 할까. 일부 네티즌은 후쿠시마 원전사태에 미봉책으로 일관하는 일본의 태도에 “차라리 올림픽을 유치한게 다행이다. 2007년까지는 어떡하든 해결하지 않겠냐?”는 역설적인 기대감마저 보이고 있긴 하다.

 

 

그러나 방사능 오염이 현재진행형이고 향후 어떤 환경재앙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7년뒤에 올림픽이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최악의 경우 도쿄올림픽이 무산되는 사태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그때문이다.

 

 

도쿄올림픽의 모토는 ‘내일을 발견하자(Discover Tomorrow)’이다. 과연 어떤 내일을 발견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된다.

 

 

어쩌면 도쿄를 대신하여 서울이나 부산이 긴급 대체도시로 부각될 수도 있고 최소한 일부 종목들을 분산 개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게 아니어도 방사능 오염에 대한 불안감이 씻어지지 않는다면 ‘올림픽은 일본에서, 훈련과 관광은 한국에서’라는 슬로건이 먹힐 수도 있다.

 

 

올림픽 기간은 통틀어 20일도 안되며 종목별 경기일수는 열흘 전후에 불과하다. 대회직전까지 한국에서 머물다 도쿄로 날아가 경기를 할 가능성에 한국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일본한테 미안하지 않냐고? 그러게 누가 올림픽 개최권을 주라고 했나? 88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은 한국에서, 관광은 일본에서’라고 마케팅 한 장본인은 다름아닌 일본이었다.

 

 

씨는 뿌린대로 거두고 역사는 돌고 도는 법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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