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피켓을 들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세상의 불의에 침묵하지 말라 외쳤던 청년 용혜인을 기억한다. 날 선 권력에 맞서 시대의 부조리(不條理)를 고발하던 20대 청년의 눈빛은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에 지친 수많은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2026년,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국회의원 용혜인의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2014년의 청년 용혜인이 2026년의 정치인 용혜인을 본다면 "왜 기득권의 달콤한 떡을 양손에 쥐고 있으려 하는가"라며 안타까워하지 않을까.
‘용혜인 논란’의 핵심은 명확하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장관직까지 겸직하며 어느 것 하나 놓지 않겠다는 태도다. 소수정당의 사정상 자신이 의원직을 사퇴하면 의석이 다른 정당으로 넘어가 연간 11억 원 규모의 정당보조금이 끊긴다는 것이 그가 내세운 항변이다. 하지만 이는 국정을 책임져야 할 국무위원의 자리를 소수정당의 세 유지와 국고보조금 확보를 위한 ‘파이프라인’ 정도로 격하하는 구차한 변명으로 보일 뿐이다.
이번 사태는 개인의 과욕을 넘어, 우리 정치권이 자초한 편법(便法)과 제도적 모순(矛盾)의 결정판이다. 더 늦기전에 ‘위성정당’이라는 기괴한 꼼수와 ‘국회의원·국무위원 겸직’이라는 낡은 관행에 대해 메스를 댈 필요가 있다.
위성정당은 단호히 척결되어야 할 민주주의의 위선(僞善)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 원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선거제 개혁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걸고 도입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으로 무력화하지 않았던가. 그 편법의 사다리를 타고 두 번이나 비례대표로 재선에 성공한 ‘최대 수혜자’가 바로 용혜인 의원이다. 비례대표 제도의 본래 취지인 다양한 사회적 약자 대표성과 기회의 균등은 온데간데없고,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를 통해 특정 인물이 특혜를 독점하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 구조다. 지역구냐 비례대표냐를 따지는 것은 구차한 입씨름이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과 행정부의 수장인 국무위원은 본질적으로 그 역할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입법부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관이다. 견제해야 할 주체가 견제받아야 할 객체의 수장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권력분립의 원칙을 흔드는 일이다.
아닌 말로 장관직이 '파트타임 잡'이나 '비상근 명예직'인가? 한 부처의 수장으로서 밤낮없이 국정에 몰두해도 부족할 판에, 국회의원의 상임위 활동과 입법 업무까지 병행하겠다는 것은 행정의 효율성을 극도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실제로 국회 입법조사처의 조사에 따르면 현직 의원이 행정각료를 겸직할 경우 법안 대표발의 건수가 확연히 감소하는 등 의정활동 부실화가 수치로 입증되고 있다.
주요 국가들은 어떨까. 행정부와 입법부의 분리가 명확한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의원의 장관 겸직을 엄격히 제한하거나 장관 임명 시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확고한 constitutional practice(헌법적 관례)이자 상식이다.
프랑스 헌법 제23조는 정부 구성원의 직무와 의원직을 양립할 수 없도록 명시한다. 의원이 장관이 되면 의원직을 대체할 절차까지 법으로 정해 놓았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서로 다른 역할을 맡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권력분립 원리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연방의원이 다른 연방 공직을 동시에 보유하는 것을 금지한다. 의원이 다른 연방 공직을 맡으려면 의원직을 사임하면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행정부든 입법부든 어느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국정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겸직을 옹호하는 이들은 흔히 "인재풀이 좁아진다"는 핑계를 대곤 한다. 가당치 않은 변명이다. 세상은 넓고 현장과 학계, 시민사회에는 국정을 훌륭히 수행할 숨은 인재들이 차고 넘친다. 더구나 이재명 정부는 집권 초기에 '국민추천제'를 대대적으로 시행하며 수많은 인재를 데이터베이스화 했다고 밝히지 않았던가.
국민추천제가 보여주기식 정치 이벤트나 쇼가 아니었다면, 그 과정을 통해 검증되고 발굴된 수많은 인재 중에서 장관을 발탁하면 될 일이다. 장관을 하고 싶으면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행정 업무에 전념하면 된다. 국회의원으로서 입법 활동에 집중하고 싶다면 장관 자리를 사양하는 것이 맞다. 정치는 선택과 책임의 영역이지, 뷔페식당에서 마음에 드는 음식을 쟁반에 모두 담는 욕심의 영역이 아니다.
용혜인 후보자와 정부에 묻고 싶다. 대한민국 국정운영이 그렇게 가벼운가. 장관직이 소수정당의 재정을 보존해 주는 보험 상품인가. '양손에 쥔 떡'을 어느 하나도 놓지 않으려는 탐욕은 청년정치의 비극이자 대한민국 정치의 후퇴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사태를 특정 후보자의 청문회 문제로만 넘겨서는 안 된다. 위성정당이라는 낡은 꼼수를 이번에는 정말 끝내야 한다. 민주당은 특히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차제에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제화를 제안한다. 지역구 의원이든 비례대표 의원이든 똑같이 적용하자. 장관이 되고 싶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게 하는 단호한 원칙을 세우자. 그래야 '위성정당 특혜'와 '겸직 특권'이라는 정치권의 나쁜 관행을 끊어낼 수 있다. 사람을 막는 법이 아니라 특권을 막는 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용혜인 방지법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정치개혁법’이다. 소수정당도 보호하자. 그러나 편법으로 보호하지 말자. 청년도 키우자. 그러나 청년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주지는 말자. 여성 정치인도 더 많이 배출하자.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원칙을 낮추지는 말자.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인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양손에 떡을 다 쥐려고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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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뉴스로 칼럼 ‘소곤이의 세상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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