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初代敎會)의 현장이었던 터키, 존경하여 마지않는 바울사도께서 목숨 걸고 선교(宣敎)했던 터키, 그 나라가 모슬렘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그 곳이 몹시도 궁금했었다.
요한 계시록을 공부하면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말씀은 에베소교회를 책망하시면서 하신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5)는 말씀과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시면서 하신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3:16) 말씀이었다.
그렇다면 그 촛대를 옮긴 결과는 무엇이며 당신의 입에서 토하여 내치신 결과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발동하여 나는 그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터키와 우리 나라는 역사적으로나 언어학적인 면에서 많은 유사점이 있다. 우리나라가 반만년 역사를 내세우듯 터키인들도 5천년 역사를 강조한다. 터키는 나라 이름이고 투르크는 종족을 지칭하는데 중앙아시아 터어키 족을 통칭하는 투르크 족은 중국 문헌에 흉노, 돌궐 그리고 위구르로 나타났다.
고대 중국의 한(漢)나라를 굴복시켰던 흉노가 투르크 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이다. 840년 그들은 오스만 투르크(오스만 터어키)로 대표되는 제국을 건설하였다.
또한 고대 터키어와 한국어의 4-5백 어휘들의 발음과 뜻이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금 촛대, 일곱 별등...에서 이 촛대는 등잔이다. 촛대는 자신 스스로 불을 밝히는 반면에 ‘등잔’의 빛은 기름통에서 성령을 상징하는 기름을 ‘등잔대’에 공급해 주어야 한다. 오직 밤에만 사용하는 ‘등잔’과 ‘별들’이란 묘사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어두운 ‘밤’임을 가리키고 있다(계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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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사항이 있다면, 시간이 경과할수록 교회는 강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타락하고 종말은 배교(背敎)로 끝난다는 점이다.
라오디케아 교회 (계3:14-22) 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아무런 칭찬도 받지 못하고 책망만 들은 교회이다. 그들은 외적으로 매우 부유했지만 주님은 그들의 마음을 보신다. 오늘날은 이러한 교회들이 도처에 너무나 많이 있다.
교회사에서 라오디케아만큼 부요(富饒)한 교회는 일찍이 없었다. 많은 교회들은 성곽(城郭)같은 웅장한 교회건물을 지었고, 오색찬란한 유리창, 웅장한 강단, 아름다운 성가대, 엄청나게 많은 교역자들과 교인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벌거벗은 상태이다.
가난하고 영적인 사람들은 그런 교회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출석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눈총거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교회들이야말로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이다.
오늘날 라오디케아 교회가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정의롭지 못한 돈”이다. 그래서 주님은 “불로써 단련된 금”을 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불로써 단련된 금은 깨끗한 돈이다. “녹이 슬지않는 금”은 부정부패로 얻은 금이나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모은 그런 금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라오디케아 교회의 모습이 얼마나 잘 묘사되어 있는가?(약5:1-4).
라오디케아 교회는 부유하면서도 눈이 멀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근시안’이다. 그들은 현세의 재물만 탐할 줄 알았지 하늘의 영적인 보화(寶貨)를 탐할 줄 모른다. 그래서 주님은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기름과 박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안약은 사서 바르지 않는다.
이 교회는 또한 벌거벗은 교회이다. 그들의 외양은 가장 화려하고 최고급 소재들로 장식되어 있지만, 그런 것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흰 옷”을 사 입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지만 라오디케아 교회 성직자들은 까마귀같은 검은 제의(祭衣)를 입고 있다.
라오디케아 교회에 주어진 가장 놀라운 계시는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이다. 이 말씀은 일반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죄인들에게 인용하는 구절이지만 본래는 그런 뜻이 아니다. 주님은 지금 문밖에 서계신다. 이 문은 라오디케아 교회의 문이다. 지금 주님께서 라오디케아 교회 문밖에 서있다는 것은 교회에서 배척(排斥)을 받고 있다는 의미이며, 다시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뜻이다.
이것은 신약 성경에 기록된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외적으로 그렇게 부요해 보이는 교회가 그 안에는 그리스도가 없으면서도 그 사실을 의식하지도 못한다는 말인가? 오, 주님은 지금 배척받고 있다. 그 분은 그분의 백성으로부터 배척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배척했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배척받았다. 세상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다. 또 그 분은 그분의 교회로부터 배척받았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들어가기 위해서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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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주님을 밖으로 나가도록 밀어 내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들은 자기들안에 주님이 계신지 알지도 못했고, 주님이 떠나신 것을 깨닫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그분께 예배를 드렸고, 그 분을 찬양했고 온갖 종류의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님은 물러나셨다. 이유가 무엇인가? 이유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세속화”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는 바로 라오디케아 교회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라오디케아 교회는 주님이 다시 오셔서 “거듭난 교회”들을 데리고 가실 그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어떠한 큰 변화도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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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대교회의 건물이 들어 서 있었다는 역사의 현장을 방문해 보고 싶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골로새교회(골1:2)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택시를 전세 내어 부랴부랴 골로새 동네를 찾아갔다.
때는 10월 이었는데 밭에는 사과나무와 석류나무의 과실들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옥수수밭에는 큼지막한 옥수수들이 잘 매달려 있었고....그런데 그 탐스런 결실의 계절인데 그 초대교회의 건물이 서 있었다고 전해오는 그 역사의 현장은 그냥 맨땅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풀 한포기 찾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불모지(不毛地)였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닌가?
넓은 들판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가는데 교회당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그 지역만 불모지라니... 나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다음 날은 라오디게아 동네를 방문하게 되었다. 넓은 땅에는 이곳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었다는 안내판이 영문과 터키어로 되어 있는데 그 표지판 바로 옆에는 당시의 공중목욕탕 건물이 있었고 그 건축물로 사용되었던 Jeep 크기만한 사각형의 돌덩어리들만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그런데 이곳도 눈에 보이는 모든 땅은 그냥 맨땅이었다. 풀 한포기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었다던 동네를 지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른 주먹보다 더 큰 탐스런 석류(石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석류나무 울타리와 그 안에서 풍요롭게 무르익어 가는 농산물이었다.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는 말씀과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6) 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현장이었구나...!나는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새삼 무서워졌다. 앞으로는 되는 대로 막 살지(?) 말고 좀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 번 더 하게 된 초대교회의 현장이었다.
글=신재영 (포트리 한사랑교회 담임목사) mone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