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마지막 새해 명절인 쫄츠남에 즐기는 또 한가지 흥미로운 풍습(風習)은 가족이나 친지에게 물이나 밀가루같은 것들을 뿌리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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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뿌리는 것은 지난 해의 액운(厄運)을 모두 씻어내고 새로운 복을 비는 것으로, 그래서 이 때는 길을 걷다가 물벼락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베이비 파우더를 뿌리는 것을 보고 아마 4월이 가장 더운 시기이기 때문에 땀띠나 피부병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방인(異邦人)의 추측에 불과합니다.
물 뿌리기는 예전부터 행하여져 온 고유의 풍습이지만 흰 가루 뿌리는 것은 그리 오래된 풍습은 아니라고 합니다. 어쨌든 물 뿌리기는 왕에서부터 일반 시민까지 모두 하는데 텔레비전에서는 많은 스님들이 왕궁에 모여서 왕으로부터 물 뿌림을 받는 장면을 방영합니다.
각 지방의 스님들 또한 지방 사람들에게 물 뿌림을 받습니다. 하지만 장난스럽게 물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무척이나 진지하고 소망을 비는 마음으로 물을 뿌리더군요.
낮에는 물을 뿌리고, 밤이 되면 춤을 추고 노는데 마치 명절(名節)보다는 축제(祝祭)라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싶습니다. 아마 그만큼 명절 자체를 즐긴다는 뜻이 될 수 있겠지요.
캄보디아에 온지 한 일년쯤 후에 쫄츠남 연휴가 시작되는 날 아는 분의 공장에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마침 공장은 오전 근무를 마치고 근로자들 신년 맞이 잔치가 시작될 즈음이었습니다.
갑자기 어디에선가 흰 가루가 날아오기 시작하더니 순간 모두들 주머니에서 통을 꺼내 흰 가루를 뿌리기 시작하는데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봉변을 피하려 급히 공장장을 만나러 계단을 올라 가다가 안면이 있는 현지 사무실 직원의 공손한 인사에 답례를 하는데 그 직원의 엷은 미소가 느껴지는 순간, 두 손을 들어 가루를 뿌리더군요.
깜짝 놀라 뒷걸음을 쳤고 곧 사무실에 피해 들어 서는데 이미 사무실은 백색 천지였고 공장장은 백곰이 된 모양으로 한 켠에서 빙그레 웃음지으며 저에게 한 통을 던져 줬습니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저도 맘껏 뿌리기 시작 했습니다. 쫓고 쫓기며 사활의 분쟁(?)을 한 30여분 하다 지쳐 털썩 앉으니 무언가 모를 통쾌함이 마냥 솟구치더군요.
순간 아! 이건가 싶기도 하였는데. 후에 들으니 흰 가루는 아무에게나 뿌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의 눈밖에 난 사람이나 못된 사람들에게는 뿌리지 않는다나요. 그 얘기를 들으며 저도 캄보디아 사람들과 통하는 게 있나 싶어 흐뭇함이 가득해지더군요.
쫄츠남이 끝나면 캄보디아 전국이 일순간에 조용해집니다. 열광적인 축제의 뒤끝이라고 할까요? 모든 이들이 지친 모습으로 말 없이 즐거웠던 순간을 입가의 미소로 보여줍니다. 다시 일터로 돌아온 근로자들은 한 주는 지나야 예전의 기운을 되찾게 되지요.
하루에 평균 10시간 이상 주 60시간 이상 말없이 숨소리조차 삼가며 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크메르 신정인 쫄츠남은 너무나도 소중한 휴일입니다. 조용하고 순박한 크메르인들이 짧은 몇 일 동안 온 힘을 다해 춤을 추고 노래 부르며 모든 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축복해주는 쫄츠남!
지친 얼굴이지만 지난 힘든 일상은 모두 털어낸 듯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 명절 쁘쭘번(크메르 추석)까지 6개월간 쉼 없이 일을 합니다.
쫄츠남의 프놈펜은 텅 빈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습니다. 대부분의 체류 외국인들은 인근 국가로 여행가거나 아니면 그들의 모국으로 짧은 방문을 하기도 합니다. 그 덕에 대한 항공이나 아시아나 예약은 만석이라고 합니다.
쫄츠남 기간중 캄보디아에 계시는 분들은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저는 작년에 회사 일로 쫄츠남 때 한국을 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새해를 맞았는데 먹을 것이 없어 큰 곤란을 겪었습니다.
많은 공장과 회사 그리고 여러 가게들이 1주일 전부터 쉬거나 문을 닫기는 했어도 규모가 제법 되는 마켓과 근처에 가게도 있었고 식당도 문을 열었기때문에 먹을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삼일 연휴가 시작되자 한 순간에 모든 곳이 문을 닫은겁니다. 식량을 구하고자 나왔지만 텅 빈 길거리에는 배고픈 한 사람과 문 닫은 가게를 지키는 개 한 마리가 있었을 뿐입니다.
숙소를 뒤졌더니 계란 3개, 라면 5개와 콘후레이크 1통이 나오더군요. 게다가 저 혼자가 아니라 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명이 이것 갖고 사흘을 생존해야 한다니. 눈 앞이 아찔하더군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른 한 분은 라면을 드시지 않는다고 해 나름대로 저는 포식(?) - 라면을 끓일 때 물을 아주 많이 넣었습니다. 국물로 배를 든든히 채워야 하니까 - 을 할 수 있었는데, 그 분은 콘후레이크로 3일을 버텼습니다.
연휴가 끝나고 출근하던 직원들이 얼마나 반갑던지! 배고픔은 눈물을 준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