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사진필진 l Kor-Eng    
 
뉴욕필진
·Obi Lee's NYHOTPOINT (103)
·강우성의 오!필승코리아 (40)
·김경락의 한반도중립화 (14)
·김기화의 Shall we dance (16)
·김성아의 NY 다이어리 (16)
·김은주의 마음의 편지 (45)
·김치김의 그림이 있는 풍경 (107)
·등촌의 사랑방이야기 (173)
·로창현의 뉴욕 편지 (495)
·마라토너 에반엄마 (5)
·백영현의 아리랑별곡 (26)
·부산갈매기 뉴욕을 날다 (9)
·서영민의 재미있는인류학 (42)
·신기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17)
·신재영의 쓴소리 단소리 (13)
·안치용의 시크릿오브코리아 (38)
·앤드류 임의 뒷골목 뉴욕 (34)
·제이V.배의 코리안데이 (22)
·조성모의 Along the Road (49)
·차주범의 ‘We are America (36)
·최윤희의 미국속의 한국인 (15)
·폴김의 한민족 참역사 (316)
·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 (37)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243)
·훈이네의 미국살이 (114)
·韓泰格의 架橋세상 (96)
서영민의 재미있는인류학
서강대학 영어영문학과 졸 1988년 도미 뉴욕정착. 뉴욕시립대 석사, 인류학박사 수료. 1998년부터 라과디아 대학에서 인류학, 사회학, 도시학을 강의하고 있다. 인류학이라는 학문은 꿈을 쫒는 사람의 집합처이다. 전세계 인종과 문화가 혼재된 뉴욕에서 신명난 인류학 연구의 기쁨을 독자들과 나누겠다.
총 게시물 42건, 최근 0 건 안내
이전글  다음글  목록

뉴욕시의 유명한 가문(1) 밴더빌트가의 사람들

글쓴이 : 서영민 날짜 : 2011-09-05 (월) 02:49:33

2007년 경제 전문 잡지 Forbes에 실린 특집기사가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재산을 많이 축적했던 200명의 명단인데 당시 달러화 가치로 환산한 재산과 국가 총 생산량 (GDP) 대비 개인 재산의 비율을 따져 발표한 나름대로 획기적인 연구 보고서였다.

이 글에 따르면 현재 최고의 재산가로 꼽히고 있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20위,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웨렌 버펫이 40위에 위치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누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들일까? 리스트에 따르면 좐 락크펠러(John Rockefeller)가 1위,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가 2위 윌리엄 헨리 밴더빌트(William Henry Vanderbilt)가 4위에 속해 있다. (참고로 세 번째는 18세기말 폭정과 타락으로 악명 높았던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것이 이들 3인들이 모두 뉴욕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뉴욕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가 있다. 뉴욕의 존재는 오직 부를 추구할 때만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초 네덜란드 식민지때 전 유럽에서 몰려든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 열심히 일해 세금만 낸다면 종교, 사상, 문화의 자유를 보장해주겠다는 뉴욕시 장전의 역사부터 뉴욕으로 몰려든 이들의 한결같은 염원은 돈을 버는 것이었다.

물론 모두가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기회의 땅에서 자라난 몇몇 이들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부를 축적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은 뉴욕의 3대 부호 가문 중 나름대로 가장 처지고 한인 커뮤니티에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밴더빌트 가문을 소개하겠다.

Forbes 잡지에 실린 밴더빌트 가문의 재산은 락크펠러 집안의 재산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많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잘살았던 200인 중 10위가 벤더빌트 가문을 일으킨 Cornelius Vanderbilt이고 그의 아들 William Henry Vanderbilt가 4위이다. 이들 가문의 족적(足跡)은 모든 서민들의 꿈이자 희망이며 현재 이민자로 살아가는 한인 동포 사회에도 귀감(龜鑑)이 될지도 모르겠다.

 

▲ 윌리엄 헨리 밴더빌트 www.en.wikipedia.org

사실 이들 집안의 출신 성분은 실로 취약해서 Vanderbilt라는 이름도 실은 잘살게 된 이후에 급조한 명칭이었다. 이 집안의 내력이 17세기 중반 네덜란드 제독이 데리고 들어온 노예 (Indenture Servitude)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지어낸 이름인 것이다. Vanderbilt의 실제 의미는 Utrecht 지방의 De Bilt란 마을 출신 (Van der: Of the or From)이라는 것이었다.

노예 계약 기간에서 살아남아 자유인이 된 코넬리우스 벤더빌트의 증조 할아버지 Jan Aertson은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자리를 잡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인근 부두가에 인부로 끼니를 때우는 전형적인 노동자 가정이었고 코넬리우스 역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바로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아주 궁핍(窮乏)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유난히 총명하고 뚝심이 강했던 어린 소년의 눈에 당시 맨해튼을 오가는 페리 (정기 항로)는 힘들게 매일 노를 저어야하는 고통의 도구가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보였다. 그의 나이 16세였다.

술 주정꾼에 가족 학대꾼이었던 아버지 몰래 어머니에게 조그만 보트를 살 돈을 달라고 졸랐다.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마련한 보트로 코넬리우스가 시작한 일은 정시 운항이었다. 당시 맨해튼을 오가는 조그만 보트들은 일정한 손님 숫자가 확보되어야만 운항을 했다. (이 구절은 왕년에 한국에서 이용하던 총알 택시가 연상이 된다)

수지 타산(收支打算)을 고려해서 손님이 확보되지 않으면 왜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느냐는 사고방식이었다. 전혀 잘못된 생각은 아니지만 보트를 이용해 맨해튼을 가야하는 승객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불확실한 서비스에 의존해 시간 약속을 하고 비즈니스를 하기에는 곤란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승객들의 가장 큰 불만이었고 어린 나이지만 이를 간파(看破)한 코넬리우스는 정시 운항을 내건 서비스로 승부를 걸었던 것이다.

 

▲ 당시 증기선을 묘사한 그림. www.en.wikipedia.org 

이 정시 운항 페리 서비스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아들의 사업을 방해하고 해코지에 앞장섰던 주정꾼 아버지조차 코넬리우스 사업의 파트너로 열심히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뉴욕 뉴저지 보트 운항을 거머쥔 코넬리우스는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고 차세대 운송 수단으로 열차 사업에 큰 돈을 투자하고 여기서 엄청난 부를 축적(蓄積)하게 되었다.

 

▲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www.en.wikipedia.org

그의 아들 윌리엄의 축재(蓄財) 수단은 더욱 기가 막힌데 당시 아버지로부터 천문학적인 1억 달러의 상속(相續)을 받은 지 불과 9년 만에 재산을 두 배로 늘린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축재의 비결은 아버지가 생각하고 실천에 옮겼던 정시 운항을 문서화하고 이를 모든 항만 시설, 철도, 교량에 사용하면서 사용권 특허권리금이었다.

현재 우리의 삶에서 규격화된 시간 테이블이 없는 열차 시간표, 항공 시간표, 심지어는 학교 수업 시간표 등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컨셉을 돈으로 팔아먹은 이가 윌리엄 밴더빌트였던 것이다.

 

www.en.wikipedia.org

밴더빌트 가문의 엄청난 부가 바로 시간이라는 컨셉을 팔아 창출된 사실에서 아이디어만 잘 이용하면 기회의 땅 뉴욕에서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다는 좋은 예가 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랜드센트럴터미널의 밴더빌트 동상 www.en.wikipedia.org


이전글  다음글  목록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제호 : 뉴스로 l발행인 : 延義順 l편집인 : 閔丙玉 l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 l창간일 : 2010.06.05. l미국 : 6 Brookside Trail Monroe NY 11950  한국 :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 전화 : 031)918-1942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