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달렸다. 북동부 전역을 큰 구름층이 덮었다. 밤낮으로 비가 내렸다. 때로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세차게 쏟아졌다. 애팔래치안 산맥을 넘을 때는 속도를 줄여야 했다. 깜깜한 밤, 폭우, 구불구불 가파른 산길. 운전에 악조건은 다 갖췄다. 네이슨은 이제는 필요할 때만 깨우라했다.
중간에 30분 휴식을 위해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어섰다. 원래 예정한 곳은 아니었지만 이정표가 보이길래 들어갔다. 자리가 있으면 쉬고 아니면 목표한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앞 트럭이 도중에 선다. 통로 중간에 누가 트럭을 세워 놓았다. 기다리다 오래 걸릴 것 같아 시동을 끄고 내려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 좌변기칸에 사람이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내 뒤로도 트럭이 들어왔다. 네이슨도 내려 맨 앞 트럭에 갔다. 사람이 없었다. 아마 화장실에 있는 사람이 운전사인 모양이다. 약 20여분 지나 통로가 열렸다. 휴식 시간 30분을 채워야 출발할 수 있기에 트럭을 움직여 휴게소 진출구 길가에 세웠다.
비구름은 테네시 주 스모키 마운틴 부근을 지날 무렵에야 옅어졌다. 운전교대 지점까지 80마일 정도 거리인데 내 운전 시간도 1시간 20분 정도 남았다. 우리 트럭 최고 속도인 65마일로 주행속도를 올렸다. 보통은 연비를 위해 62마일로 운행한다. 4분 정도를 남겨두고 목표한 지점에 도착했다. 네이슨은 내 운전이 좋아졌다고 칭찬했다. 다만 내리막길 곡선 구간에서 좌우로 왔다갔다하는 경향만 주의하면 좋겠다고 했다.
네이슨은 내일(20일) 딸의 졸업식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졸업식을 일요일에 하다니 특이하다. 오클라호마 주 스파이로(Spiro)로 향했다. 근처 타이어샵에 트럭을 주차했다. 네이슨의 의붓 아빠인 다윈이 마중나왔다. 차로 이동해 네이슨의 엄마 집으로 갔다. 마당이 넓고 캠핑카가 주차돼 있었다. 네이슨 엄마가 반겨주었다. 젊었을 때 무척 미인이었을 것 같다. 지금도 몸매는 아가씨 같았다. 뉴욕에서 산 백김치를 선물하니 무척 좋아했다. 나는 이틀 정도 더 냉장고에 뒀다가 먹으라고 했다. 네이슨 엄마는 냄새가 좋다며 참기 힘들다고 했다. 우리는 김치 냄새를 서양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전전긍긍했는데 오히려 김치 냄새에 이렇게 열광하다니.
네이슨 엄마는 트럭 침대에 깔 침대보와 이불, 베게보를 만들어 뒀다. 네이슨 말로는 9살때부터 바느질을 했단다. 지퍼를 이용해 이불을 붙였다 뗄 수 있게 만들었다. 좋은 아이디어다. 내가 다른 트럭 드라이버들에게 팔아도 되겠다고 했더니 네이슨은 페이스북에 올려서 홍보할 계획이란다. 네이슨 엄마는 다음 주에 내 베게보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내 개인 트럭을 갖게 되면 침대보를 주문하겠다고 했다.
다윈이 빌려준 차를 타고 포토(Poteau)에 위치한 네이슨 집으로 향했다. 약 20분 걸렸다. 트럭을 몰다가 일반 승용차를 타니 바닥에 붙은 느낌이었다. 네이슨은 여동생이 직전에 이사를 가서 집이 엉망일 것이라 했다.
도로에 거북이가 간혹 있었다. 목만 내놓고 길 복판에 있었다. 치지는 않았지만 위험해 보였다. 납작해진 거북이가 없는 것으로 봐서 얘들은 혹시 밟혀도 터지지 않을만큼 껍질이 단단한걸까? 미주리에서 지낼 때 한동안 매일 찾아왔던 거북이가 생각났다.
네이슨의 집은 벽돌과 나무로 된 단층집이었다. 여동생이 이사 가며 남겨둔 온갖 짐이 집안 곳곳에 쌓여 있었다. 정리하려면 시간 꽤나 걸리겠다. 밤샘 운전을 했기에 나는 잠을 자야했다. 샤워 후 네이슨 침실에서 나는 잠을 잤다. 그 사이 네이슨은 거실에서 TV를 봤다.
일어나니 4시가 넘었다. 네이슨의 차를 타고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네이슨의 차는 폭스바겐 제타였다. 3개월 이상 안 타서 시동이 걸릴까 했는데 이상이 없었다. 디젤엔진이라 연비가 좋다고 했다. 네이슨이 아들에게 차를 주겠다고 했더니 싫다고 했단다. 새차가 좋다고.
우리는 네이슨 부모님의 고급 BMW SUV로 옮겨 타고 포트 스미스(Fort Smith)로 향했다. 포트 스미스는 아칸소 주에 있다. 도시는 깔끔했다. 도시 곳곳에 대형 벽화가 있어 특이했다. 한 식당에 들어갔다. 조용한 거리와 달리 가게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얼핏 보면 브루클린 다운타운의 펍 같다. 메뉴에는 많은 오클라호마 로컬 맥주가 있었다. 맥주와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네이슨은 다윈과 허물 없이 대했다.
헤어질 때 네이슨 엄마는 한국말 인사법이 맞는 지 내게 물어봤다. 안녕하세요는 맞고 헤어질 때는 안녕히 가세요라고 알려줬다.
다시 네이슨 집으로 돌아와 나는 침대에서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네이슨은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TV를 보다가 잠들었다는데 내가 침대에서 자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네이슨 부모님 집에서 모닝커피를 마셨다. 내가 다음주 네이슨과 함께 올 거라고 했더니 네이슨 엄마는 좋아했다. 호수가에 있는 별장에서 휴일을 보낼 계획인 모양이다. 빨간색 카디널이 마당에 날아왔다. 작년에 돌아가신 네이슨 외할머니가 여기서 지낼 때 매일 찾아왔던 새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새들과 대화를 했다고 한다. 네이슨 엄마는 위스콘신 출신이다.
네이슨은 딸 졸업식에 갔고, 나는 트럭에서 아침을 먹었다. 순두부찌게국밥인데 생각보다 별로다.
네이슨이 돌아오면 바로 출발이다. 22일 새벽 5시가 배달 시간이라 줄곧 65마일로 바쁘게 가야한다.
캘리포니아로 이어진 여정
네이슨은 4시 15분경 돌아왔다. 네이슨이 잠깐 운전하고 내가 이어 받았다. 오클라호마 - 텍사스 - 뉴멕시코 - 애리조나 - 캘리포니아로 이어진 여정이다. 밤새 운전해 뉴멕시코 주 갤럽 근처까지 갔다. 갤럽은 지난 번에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오면서 지나 갔던 곳이다. 그때는 밤에 운전해 아무 것도 못 봤다. 오늘은 새벽 무렵부터 뉴멕시코의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전형적인 서부의 황무지 풍경이다.
네이슨이 운전해 애리조나를 지나 캘리포니아로 들어섰다. 애리조나는 더 척박했다. 애리조나 주 입구에 들어서니 인디언 관련 관광 안내 빌보드가 많았다. 인디언팔이처럼 보이지만 이렇게라도 살아야겠지. 주변에 인디언 보호구역이 여럿이다. 이런 황무지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아 넣고 보호구역이라니.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지 모르겠다.
캘리포니아에 들어와서도 애리조나의 풍경이 이어졌다. 사막은 더 거대해졌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그냥 서부영화다. 캘리포니아하면 오렌지, 포도 등 과일로 유명한 곳 아닌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라디오에서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가 흘러 나왔다.
사막 가운데 트럭 스탑에서 다시 내가 운전을 이어 받았다. 미세먼지가 여기까지 왔나? 대기는 뿌옇고 수많은 풍력 발전기의 모습은 SF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했다. 얼마를 가니 제법 긴 고개가 나왔다. 고개를 넘자 풍경이 달라졌다. 포도나무, 오렌지나무, 농장의 초록빛 물결이 이어졌다. 척박한 사막을 지나 고개를 넘어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나오는구나. 가을도 아닌데 황금빛 풀밭에는 소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는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트럭은 55마일로 속도 제한이다. 그 속도로 달리는 트럭은 하나도 없다. 우리도 60마일 정도를 유지했다. 5마일 정도 초과는 과속 티켓을 받지 않을 확률이 크다.
99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는데 왼쪽으로 해가 졌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99번 도로를 따라서는 가게와 쇼핑몰 등 상업지구가 들어섰다. 지형이 어떻게 됐는지 도로는 수시로 좌우로 곡선을 만들었다.
밤 11시 경 첫번째 배달지에 도착했다. 원래는 내일 오전 5시 배달이다. 혹시나 싶어 회사로 바로 갔더니 내일 오전 4시 30분에 문을 연다고 했다. 4시부터 줄을 서란다. 주변 도로가에 트럭을 주차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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