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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정신세계수행자, IT전문가, 영화감독, 연극배우, 라디오방송기자 등 다양한 인생 여정을 거쳐 현재 뉴욕에서 옐로캡을 운전하고 있다. 뉴욕시내 곳곳을 누비며 뉴요커들의 삶을 지척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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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겨울풍경

글쓴이 : 황길재 날짜 : 2019-06-02 (일) 20:41:18

 

0522오월의 겨울풍경.jpg

 

 

冥想(명상)을 시작한 지 5분도 안 돼 전화가 왔다. 받아 보니 가이코 직원이다. 재작년 8월에 난 교통사고 건이다. 그녀는 15분 정도 통화할 수 있냐고 내게 물었다. 대화는 녹음된다고 했다. 당시 사고 경위와 관련 정보를 얘기해줬다. 사실 가이코는 그 사건과 무관하다. 당시 내가 태웠던 여자 승객이 나와 택시 차주, 상대편 운전자까지 모조리 고소했다. 가벼운 접촉 사고였고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 택시 보험회사는 아메리칸 트랜짓이다. 가이코는 내 개인차량 보험사다. 아메리칸 트랜짓에서 보내온 서류에 개인차량 소유 여부와 보험사를 적는 란이 있어서 써넣었을 뿐이다.

 

명상 중에 왜 사고 관련 전화가 왔을까? 의문은 곧 풀렸다. 출발하고 나서 기상이 나빠졌다. 눈발이 날렸다. 간밤에 큰 눈이 왔던 모양이다. 길가에 눈이 쌓였고 길 밖으로 추락한 차도 보였다. 오늘 사고 조심해야겠구나. 전방 감지 레이더 센서에 눈이 쌓여 크루즈 설정이 안 됐다. 페달을 밟고 가면 최고속도가 59마일로 제한돼있다. 주변에 차도 많고 미끄러운 길에서 크루즈를 안 쓰는 게 좋긴 하다. 왼편으로는 설산이 이어졌다. 로키산맥이다. 5월 하순에 겨울 풍경을 보며 운전할 줄이야.

 

25번 도로를 타고 덴버를 관통하기로 했다. 아침 혼잡시간은 지난 데다 눈길에 다른 차들도 속도를 못 내기 때문에 굳이 우회도로를 탈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시내 관통 구간은 시속 55마일인데 나는 어차피 58마일로 달리니 별 차이 없다. 덕분에 덴버 브롱코스 경기장도 바로 옆으로 지나가며 구경했다.

 

덴버를 지나니 길가에 눈이 적어졌다. 월마트 DC에는 알맞은 시간에 도착했다. 닥과 야드에 서 있는 트레일러들에서 소나기 내리듯 물이 줄줄 흘렀다. 처음에는 트레일러 세척을 하는 줄 알았다. 가만 닥에서 와시아웃을 할 리가 없잖아? 거기다 야드에 서 있는 트레일러에서도 물이 쏟아져 내렸다. 트레일러 지붕에 쌓였던 눈이 녹으면서 흐르는 물 같았다. 건물 옥상에서도 폭포수 같은 물이 흐르더니 눈덩이들이 와장창 떨어졌다. 옥상에서 누가 청소하나? 남쪽에 있다가 오니 여긴 딴 세상이구먼.


0522-2.jpg

 

마지막 배달지로 출발. 25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와이오밍까지 올라간다. 거기서 80번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이동해 유타주까지 간다. 80번 도로 와이오밍 구간은 대부분 평원이다. 고원지대라서 풍경은 황야와 비슷하다. 무릎 높이의 작은 초목이 많다. 유타주와 접하는 구간은 로키산맥을 넘는 험한 구간이 수십 마일 이어진다. 이미 대부분 화물을 내리고 거의 빈 트레일러나 마찬가지라 염려는 안 된다.

 

계획보다 조금 일찍 멈췄다. Rawlins, WY의 플라잉 제이 트럭스탑이다. 조금 더 가면 규모가 이곳보다 작아 주차 자리를 보장할 수 없다. 지금까지와 달리 내일 중으로 아무 때나 배달하면 되니 급할 것 없다. 리퍼 연료탱크를 다시 채웠다. 하루에 거의 절반 이상을 쓰기 때문에 매일 채우고 있다. 리퍼 설정이 Sensitive Product. 이 경우 설정 온도를 유지하며 24시간 내내 리퍼가 작동하기 때문에 연료 소모가 많다. 화씨 65도를 유지하느라 플로리다에서 텍사스까지는 냉장으로 작동했으며 콜로라도에서부터는 난방으로 작동 중이다. 냉장으로 돌아갈 때보다 난방으로 돌 때가 소음이 덜하다.

 

지난번 월마트에서 산 컵라면 중에서 베트남 쌀국수는 완전 실패고, 일본 라면은 대성공이다. 국물맛이 제대로다. 취급하는 매장이 별로 없지만, 눈에 띄면 많이 사야겠다.

 

 

 

0522-1.jpg

 

 

하늘, 구름, , 호수

 

 

예전에 네이슨이 가본 곳 중 솔트레이크시티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다. 실제로 솔트레이크시티는 웅장한 산에 둘러싸여 경치가 秀麗(수려)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네이슨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금 호수다. 오늘 소금 호수를 보고서야 알았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마지막 배달지는 솔트레이크 남쪽이었다. 호수는 건너편으로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크다. 주변에 높은 산이 둘러쌌다. 산 정상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호수를 따라 철로가 있고 낡은 기차가 서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작품 속으로 들어온 듯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소금 호수에서는 실제 소금을 만든다. Morton이라는 상표를 쓰는 큰 공장에 하얀 소금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마트에서 가끔 사는 소금이다. 그 소금이 여기서 만들어지는 줄 몰랐다.

 

도로 북쪽의 큰 호수는 염수지만, 남쪽으로 작은 호수는 담수인 모양이다. 물새가 떼를 지어 떠 있었다. 가끔 자맥질하는 것으로 봐 물고기가 사는 모양이다.

 

소금 호수를 보는 순간 오늘 와이오밍에서 유타로 오면서 봤던 멋진 풍경이 무색해졌다. 멈춰서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을 눌렀다. 사진으로는 백 분의 일도 이 감동을 표현 못 한다.

 

대장정을 마치고 트럭스탑에 들렀다가 솔트레이크시티 프라임 터미널로 갔다. 전에 네이슨과 와본 적이 있다. 일단 트럭과 트레일러 세차부터 했다. 창문에 벌레 자국은 아직도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이곳은 한창 새 건물을 짓고 있다. 그래서인지 식당이 없었다. 밖에서 피자나 중국음식을 주문해 먹으라고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트럭스탑에서 식당에 갔을 것이다. 그래도 터미널에 왔으니 빨래도 하고 샤워도 했다. 밥은 트럭에서 지어 먹었다.

 

와이오밍은 겨울 날씨였는데 유타는 그 정도는 아니다. 내일은 로건(Logan)에서 의약품을 실어 조지아로 간다. 이것도 약 2천 마일 거리다. 서부 탐방은 여기까지고 다시 동부로 돌아간다.

 

기록을 보니 작년 이맘때 나는 캘리포니아에 왔다. 뉴멕시코, 애리조나, 캘리포니아로 이어지는 경로였으니 지금보다 많이 남쪽길이다.

 

네이슨과 다닐 때는 내가 밤운전을 했다. 전에 서부를 와봤어도 낮에 잠자지 않을 때나 저녁이나 새벽에 운전하며 본 풍경이 전부다. 이번처럼 온전하게 전 구간을 다 본 적은 처음이다.

 

플로리다에서 만났던 벌레는 일명 러브버그(Love bug)였다. 러브버그의 악명은 운전자 사이에 유명하다. 정식 이름은 따로 있다. 파리의 일종인데 암수가 짝짓기하면 며칠 동안 떨어지지 않고 붙어서 다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대단한 놈들. 부러우면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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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발길을 돌리다

  

 

믿을 수 없다. 아침에 출발한 터미널에 다시 돌아왔다.

솔트레이크시티는 나를 너무 좋아하는 모양이다. 가는 사람을 돌려세우다니.

 

Logan11시 조금 넘어 도착했다. 1시 약속이지만 바로 도어를 배정해주었다. 그런데 아직 온도가 30도가 넘는다. -4가 되어야 한다. 오면서 30분 전에 휴게소에 들러 리퍼를 작동시켰다. 온도가 천천히 내려간다. 직원은 1시에 다시 오겠다며 점심 먹으러 갔다. 1시에 와도 여전히 10도 내외다. 15분 후에 다시 왔을 때는 5도 정도였다. 이번에는 닥에 대라고 했다.

 

팰릿 5개라 금방 실었다. 의약품 원료인 모양이다. 다 합쳐서 8천 파운드가 안 된다. 이렇게 가벼운 화물은 처음이다. 경치를 감상하며 천천히 운전했다.

 

84번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향했다. 중간에 퀄컴 메시지가 들어왔다. 운전 중에는 음성으로만 확인 가능하다. 리퍼 파워가 꺼졌단다. 오면서 내내 요란하던 리퍼가 꺼지길래 이제야 4도에 도달했나보다 생각했다. 갓길에 세우고 확인하니 파워가 안 들어온다. RA에 메시지 보내고 가까운 휴게소로 향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인가? 84번에서 80번 동쪽방향 출구가 공사로 막혔다. 80번 서쪽으로 향하다 가까운 출구에서 유턴해 와야 한다. 휴게소는 아니지만, 경치 구경하는 장소가 나오길래 세웠다. RA는 솔트레이크시티 터미널로 돌아가 점검 받으란다. 지금까지 실컷 왔는데. 솔트레이크시티까지는 약 1시간 거리다. 방법이 없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 한다. 냉동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화물이 상할 수 있다.

 

이 경로에서 솔트레이크시티 들어서기 직전 고개가 가장 가파르다. 어제 갔던 길이라 오늘은 가파른 내리막에서 미리 9단을 넣고, 엔진브레이크까지 작동해 여유롭게 내려왔다.

 

터미널에 도착해 트레일러 수리를 맡겼다. 내일 출발하면 배달 일정을 맞출 수 있나 확인해봤다. 빠듯하다. 죽어라 달리면 가능하다. 여유로운 일정은 이번에도 물 건너갔다.

 

처음부터 이상했다. 온도 내려가는데 원래 그렇게 오래 안 걸린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4도까지도 못 내리다니. 단순한 배터리나 퓨즈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리퍼 기기를 통째로 바꿔야 할 수도 있다.

 

수리가 늦어지면 나는 이 화물을 맡을 수 없다. 세일즈팀과 얘기해 배달 일정 변경이 안 되면 리파워를 해야 한다. 여기서 팀 드라이빙을 하는 트럭과 리파워를 하거나, 가다가 중간에 다른 드라이버와 리파워를 해야 한다. 아직은 어찌 될지 모르겠다. 새벽에라도 출발할 수 있게 일찍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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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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