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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정신세계수행자, IT전문가, 영화감독, 연극배우, 라디오방송기자 등 다양한 인생 여정을 거쳐 현재 뉴욕에서 옐로캡을 운전하고 있다. 뉴욕시내 곳곳을 누비며 뉴요커들의 삶을 지척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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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구조 혹은 납치

글쓴이 : 황길재 날짜 : 2019-09-04 (수) 14:57:57


0809-1.jpg

      

어젯밤에 안 오길 잘했다. 180마일 거리 대부분을 국도로 가는데 왕복 2차선 도로는 좁고 구불구불했다. 얼마나 좁냐면 좌우 바퀴가 양쪽 선에 닿을 정도다. 갓길도 없어서 차선 벗어나면 바로 풀밭이다.

 

도착하니 놀랍게도 화물이 준비돼 있었다. 한참 기다릴 생각으로 왔는데 곧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시간을 벌어서 일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사람들이 왜 아칸소를 지나는 경로를 안 좋아하는지 알겠다. 길이 좁고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해서 속도를 낼 수 없다. 연비도 안 좋다. 퀄컴 단말기에 내장된 나비고 네비게이션은 가끔 무리한 경로로 안내한다. 최단 거리를 잡은 모양인데 길이 험해서 돌아가느니만 못한 경우가 있다. 오늘도 그런 경우 같다.

 

나비고가 잡아준 경로대로 AR-28 국도를 가는데 도로 중앙 분리선에 돌멩이 같은 것이 있다. 가까이 가보니 거북이다. 몸을 움츠리고 껍질 속에 머리와 팔다리를 넣었다. 내가 지나가니 그제야 엉금엉금 나머지 도로를 건넌다. 나는 급히 트럭을 세웠다. 거북이와 나의 거리는 약 200피트. 깜빡이 켜놓고 뛰어가서 거북이를 주어 왔다.

 

2007년 여름 미국에 처음 와서 미주리 시골에서 몇 주 지낼 때 박스터틀과 친하게 지낸 적 있다. 야생 거북이인데 어느 날 집 마당에 찾아 왔다. 내가 멸치를 주니 날름 받아먹었다. 그 후로 거북이는 매일 찾아 왔다. 내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

 

그때의 기억으로 중남부 지방을 다니면서 거북이를 한 번 만나기를 기대했다. 숲길도 아니고 고속도로와 국도에서 거북이를 만나기란 불가능했다. 가끔 거북이가 로드킬 당한 것으로 보이는 형체는 본 적 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거북이를 봤다. 차량 통행이 뜸한 도로여서 거북이가 다닌 것 같다.

 

야생동물을 捕獲(포획)해도 되나? 야생동물을 사고파는 것은 불법이다. 이 경우는 일부러 사냥한 것이 아니고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을 수는 있는 동물을 구조했다고 치자. 그래도 거북이 입장에서는 납치다.

 

박스터틀이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도 아니고, 애완동물로 기르기도 한다. 이 녀석은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놀랐는지 트럭 실내 바닥에서 꼼짝도 안 한다. 먹을 것을 줘도 거들어보지 않는다. 식음 전폐다.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며칠 같이 다녀보고 정 안 될 것 같으면 거북이가 살 수 있는 환경의 자연에 풀어줘야겠다.

 

이름은 나거로 정했다. 나비고가 알려준 길로 가다가 발견한 거북이라는 뜻이다. 풀네임은 아나거다. 아칸소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나거는 카메라를 의식한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렌즈를 똑바로 쏘아본다. 거북이는 햇빛을 받아야 좋다니 내일은 대시보드에 올려놓아야겠다.

 

오후 8시가 넘어 테네시주 멤피스와 네슈빌 중간 지점의 휴게소에 들어왔다. 10대 정도 주차하는 작은 곳이라 자리가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한 자리가 비었다. 휴게소 진입로나 출구 갓길에라도 세울 요량이었는데 제대로 주차했다. 운이 좋다. 나거가 혹시 복덩이인가?

 

 

거북아 미안하다

 

 

 

0809 거북아 미안해.jpg

 

공연한 일을 했다. 왠지 거북이가 도로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에 집어 들기는 했지만, 뒤처리가 난처하다. 아무 곳이나 차가 덜 다니는 자연에 놓아주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도로에서 거북이를 발견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최소한의 거리만 이동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즉 도로에서만 벗어나도록 옮기는 정도다.

 

박스터틀은 다른 종보다 키우기 까다롭다. 트럭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야생에서는 100년을 사는데 우리에서는 30~40년을 산다고 한다. 야생에서 잡힌 박스터틀은 1년 이내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 이기심 때문이다. 하루 이틀 정도 데리고 있다가 안전한 곳에 놓아주려 했다. 그래서는 거북이가 살 확률이 적단다. 키우던 거북이를 야생에 풀어주는 일은 禁物(금물)이다. 최대한 원래 서식지와 같은 곳에 풀어주는 게 좋다. 무지했던 까닭이다. 좀 더 미리 알았더라면.

 

거북이는 먹지 않고도 몇 주를 산다니 밥 안 먹는 것이야 그렇다 치고, 수분은 잘 유지해줘야겠다. 일요일에 만날 아내에게 거북이 사료를 사 오라 했다. 다시 아칸소로 갈 때까지 얼마가 걸릴지 모르니 그동안이라도 잘 보살펴야지.

 

햇빛 받으라고 데시보드에 올려놓으니 수건 아래에 들어가 꼼짝 않는다. 숨을 공간이 필요하다기에 플라스틱 상자에 지붕을 만들어 절반을 덮어줬다.

 

거북이는 미 전역에 광범위하게 산다. 심지어 뉴욕에도 있다. 하지만 원래 살던 곳이 가장 좋다. 나거를 주운 바로 그 장소는 아니더라도 근처에 풀어주는 게 옳다. 미안하다. 거북아. 내 너를 곧 고향으로 보내주마.

 

거북이도 주인의 목소리와 얼굴을 알아본다고 한다. 하지만 파충류는 트럭커의 동반 동물로 적당하지 않다. 관리도 까다롭고 무엇보다 교감이 어렵다. 주인을 잘 따르는 개나 고양이가 트럭 동승 동물이 되는 이유다. 개도 어리거나 에너지 넘치는 활동적인 종은 부적격이다. 핏불이나 박서, 불독처럼 게으른 종이 좋다. 나이가 많아 에너지가 떨어진 개도 괜찮다. 특히 개는 정기적으로 운동과 산책을 시켜줘야 해서 사람도 같이 운동하는 효과가 있다. 물론 개를 산책시키는 남녀 트럭커가 비만인 경우를 보면 그 효과는 의심스럽긴 하다.

      


 

0809거북이 납치.jpg

 

 

미들타운 도착

 

 

오늘도 부지런히 달려왔다. 오후 6시경 배달처를 약 11마일 앞둔 I-84 미들타운 휴게소에 들어왔다. 원래는 몽고메리(Montgomery)TA 트럭스탑에 갈 생각이었다. 오면서 생각해보니 휴게소가 나을 것 같았다. 원래 이곳은 DOT 인스펙션도 가끔 하는 곳이다. 그때는 트럭 주차장을 비워줘야 한다. 주말이니 인스펙션은 없을 것이다. 인스펙션을 해도 딱히 걸릴 것도 없다.

 

내일 저녁 9시가 배달이라 시간 여유가 많다. 내일 아침에 가족들이 이쪽으로 오기로 했다. 홈타임을 따로 쓰지 않고도 하루 가족 휴가를 보내는 셈이다. 아직 무엇을 할지는 안 정했다. 우드버리 아울렛, 백련사 등이 30분 거리에 있다. 김씨네 농장도 들러 닭백숙을 먹으면 좋을 텐데 문을 닫았다는 얘기가 들린다.

 

여기 바로 근처에 열기구 타는 곳이 있다. 1인당 200달러다. 아내는 고소공포증이라 패스. 나는 예전에 광고회사에서 일할 때 열기구를 타본 적 있다. 열기구 협회 사람과 막판에 안 좋게 끝난 씁쓸한 기억이 있다.

 

그 광고는 코렉스 자전거 CF였다. 원래는 감독이 미국 현지 촬영으로 찍어 왔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어 재촬영을 일산에서 했다. 비행기인가 헬리콥터인가에서 자전거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인데 항공기를 동원할 수 없어서 열기구로 대체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의 사장은 이지송 감독이었다. 포커스라는 CF 프로덕션이었는데 내 첫 직장이었다. 언젠가 감독님 집에 갔더니 박정자 선생이 계셔 놀랐다. 두 사람이 부부였다. 박정자 선생이 이지송 감독보다 연상이다.

 

코렉스 자전거 음악은 김도향 선생이 맡았다. 서울 오디오 녹음실에서 뵙고 인사를 드렸다. 훗날 다른 인연으로 김도향 선생은 내 사부가 되셨고 내 결혼식 주례도 맡아 주셨다.

 

포커스는 반년 만에 그만뒀다. CF가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나는 다시 독립영화판으로 돌아가 장산곶매 영화학교 간사로 일했다. 나는 장산곶매에서 고정급여를 받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때 장산곶매 영화학교 수강생들과는 아직도 연락한다. 몇 명은 지금도 영화를 한다.

 

내일 심바도 데려오기 위해 아내는 운반용 케이지도 샀다. 2주 정도 지났는데도 사진을 보면 아기 티를 많이 벗고 의젓해 보인다.

 

나거는 별일 없지만, 아직 밥은 안 먹는다. 단식투쟁인가? 집 앞 펫샵에서는 개와 고양이용품만 팔아서 거북이 사료는 못 샀단다. 아마존에 미리 주문할 것을 그랬다. 대신 거북이가 좋아하는 멸치를 좀 가져오기로 했다.

 

 

 

0810 미들타운.jpg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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