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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정신세계수행자, IT전문가, 영화감독, 연극배우, 라디오방송기자 등 다양한 인생 여정을 거쳐 현재 뉴욕에서 옐로캡을 운전하고 있다. 뉴욕시내 곳곳을 누비며 뉴요커들의 삶을 지척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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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사나운 날

글쓴이 : 황길재 날짜 : 2019-12-17 (화) 09: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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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독인가? 아프다가 일을 하니 좋아진다.

 

어제 낮부터 머리가 아팠다. 보통 한숨 자고 나면 괜찮은데 이번에는 편두통이 계속됐다. 체기가 있는 것 같다. 식음을 중단하고 쉬어야겠다. 너무 많이 자도 머리가 아픈데 그런 이유는 아닌 것 같다. 하릴없이 계속 자다 깨다 했다.

 

정오가 되기를 기다려 출발했다. 트럭스탑 근처에 있는 트럭 세차장에서 트레일러를 씻었다. 운전을 시작하니 두통이 사라졌다. 슬슬 달려 오후 2시에 발송처인 미쉐린 타이어에 도착했다. 트레일러는 준비돼 있었다. 발송번호도 주문번호도 없어 어쩌나 했는데 배달처 주소만 얘기하니 서류를 준다.

 

가져간 트레일러는 내려놓고 가져갈 트레일러를 연결했다. 랜딩기어 손잡이가 뻑뻑하다. 힘껏 돌렸다. 다 올려놓고 출발하려고 보니 오른쪽 트레일러 다리는 땅바닥에 그대로 있다. 오른쪽은 헛돌았다. 이제는 손잡이를 내릴 수도 올릴 수도 없는 상태다.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RA에 연락해 서비스를 불렀다. 중간에 전화가 왔는데 심한 남부 액센트라 알아먹기 힘들었다. 대충 용건을 짐작한 후 나는 내 상황을 설명했다. 한참 후에 뚱뚱한 서비스 기사가 왔다. 그는 몹시 힘들게 고쳤다. 무식하다 할 정도로 생노가다 작업이었다. 결국 오른쪽 다리를 올리기는 했다. 그런데 다시 내리지는 못 한단다. 트레일러 분리하려면 커다란 나무토막을 2단으로 쌓아서 다리에 받쳐야 한단다. 나무는 어디서 구하나? 홈디포 가서 사란다. 젠장.

 

트레일러 문제로 출발이 5시간 이상 지체됐다. 3시간을 더 채우고 가기로 했다. 그래야 배달 시각을 맞추기 쉽다. 오버나잇파킹은 금지라고 적혀 있지만, 나는 자정에 출발할 거니까 오버나잇은 아니다. 게다가 사정도 있었으니 그 정도는 이해하리라. 트레일러가 마침 주차장 진입로 한쪽에 놓여있어 교통에 방해는 안 된다.

 

내일 배달 후에 트레일러는 수리해야 한다. 그동안 트레일러 뽑기 운이 좋았다.

 

 

트레일러 처리

 


1022 트레일러 처리.jpg

 

문제의 트레일러는 잘 처리했다. 다만 그 때문에 다음 화물 일정이 꼬이고, 규정을 위반해 30분 정도 시간을 더 썼다.

 

밤새 못 잤기 때문에 아침에 휴게소에 들러 2시간 휴식하면서 쪽잠을 잤다. 알람에 깼지만, 정말이지 더 자고 싶었다. 오후 2시 이전에 모든 일을 마쳐야 하니 그럴 수는 없다.

 

배달처에 도착해 짐을 내리자마자 RA가 일러준 트레일러 샵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트레일러를 분리하려고 하니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는 내려오는데 왼쪽 다리는 요지부동이다. 한쪽 다리만 내리고 반대편은 지지대로 받쳤다.

 

시간도 다 썼겠다 여기서 쉬어도 되냐고 물으니 문을 잠근 이후에는 있을 수 없단다. 가까운 트럭스탑을 검색했다. 겨우 7대 주차할 수 있는 파일럿 트럭스탑이 가장 가까웠다. 이렇게 작은 파일럿은 처음 본다. 그래도 밥테일이니 어떻게든 주차할 자리는 있겠지 싶어 그쪽으로 향했다. 정 자리가 없으면 조금 더 멀리 있는 TA 트럭스탑에 갈 작정이었다.

 

파일럿에 도착하니 주차 공간은 다 찼다. 주유 펌프 앞쪽 공간에 가장자리로 바짝 붙여 세웠다. 주유한 트럭이 나가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포인트로 샤워도 할 수 있고 음식도 사 먹을 수 있으니 여기서 쉬자.

 

브라이언이 빈 트레일러는 근처 하이 포인트에 있는 다이나믹이라는 거래처에서 받으라 했다. 다음 화물 코스가 Tar Heel, NC --> Cumming, GA이다. 내일 저녁에 받아 모레 아침 배달이라 시간 배분을 잘해야 한다. 원래는 내일 새벽에 받아 내일 오후 배달이었다. 한번 일정이 꼬이니 계속 밤에 일할 판이다.

 

 

! 티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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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오랜만에 문화생활을 했다. 유튜브 온스테이지 채널에서 인디 뮤지션들의 라이브 연주를 밤늦도록 봤다. 국악, 재즈, 펑크, 블루스, , 클래식 등 온갖 장르의 재능 있는 젊은 음악인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그 결과 오늘 아침 5시가 넘어 일어났다. 원래는 자정에 빈 트레일러 픽업하러 갈 참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잘 됐다. 밤에 갔으면 힘들었을 곳이었다.

 

트레일러 픽업 전에 월마트로 향했다. 밥테일 트럭일 때 장을 봐두는 게 좋다. 트레일러 연결하면 아무래도 부담스럽고 제약이 많다. 근처 24시간 문을 여는 곳은 없고 모두 오전 6시에서 영업 시작이다.

 

하이포인트 월마트를 GPS로 찍고 찾아갔다. 가끔 아무것도 없는 곳을 안내하기도 한다. 오늘도 그랬다. 왜 그런 곳이 DB에 등록돼 있을까? 과거에 있었을 법하지도 않은 곳이다. 다시 검색해 다른 주소로 찾아갔다. 거긴 진짜다.

 

여긴 한국 라면 종류가 많다. 이런 월마트는 처음이다. 보통은 신라면, 너구리, 사발면 정도인데. 하이포인트 월마트는 한국 라면이 가장 많다. 신라면 블랙과 그냥 신라면으로 컵라면을 샀다. 과일, 채소, 우유, , 샐러드 등 먹거리를 사고 가죽 신발도 한 켤레 샀다. 지금 신고 다니는 게 바닥이 많이 닳았다. 운전하기에는 편한데 밖에서는 미끄러울 수도 있겠다. 잘 미끄러지지 않게 하이킹용 밑창이 달린 것으로 택했다.

 

빈 트레일러를 받으러 다이나믹에 갔다. 아직 문을 안 열었다. 24시간 한다고 했는데? 맞은편 트레일러 야드는 따로 문이 없다. 마침 야드 자키가 나오길래 물어봤다. 빈 트레일러 연결하러 왔다. 저기서 가져가고 노란색 태그는 파이프에 넣어라. ?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어봤다. 저쪽 파이프에 갖다 주라고. 파이프라는 곳이 있나?

 

프라임 트레일러는 한 대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석으로 붙이는 위치 추적용 태그가 달려 있었다. 이걸 어디다 갖다 주라는 거지? 트레일러 연결하고 태그 들고 야드 밖으로 걸어가는데 다른 트럭이 들어왔다. 태그를 흔들며 어디 두냐고 물었더니 손짓을 한다. 야드 입구에 우편함이 보인다. 저기 넣으라는 건가? 그게 아니란다. 다른 쪽을 손짓한다. 뭐야? 진짜로 파이프가 있었다. 내 키보다 높아 손을 뻗어야 닫았다. 트럭 운전석에서 넣도록 높이를 맞췄으리라. 그곳에 태그를 넣으니 밑에 연결된 통으로 퉁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발송처까지는 국도로 2시간 거리다. 중간에 주유소가 없다. 리퍼 연료가 3/4 들었다. 가득 채워야 하지만 그냥 가보기로 했다. 중간에 트럭 세차할 곳은 있지만, 그곳도 생략했다. 발송처에서 자체 세차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발송처는 전에 한 번 와봤던 곳이다. 한 번 와보고, 안 와보고의 차이는 크다. 입구에서 트레일러 검사하더니 세차가 필요하다는 태크를 붙였다. 트레일러 세척하러 가는데 야드자키가 손을 흔들어 나를 세웠다. 트레일러를 내리라고 한다. 이거 세차해야 하는데? 안다. 내가 하겠다. 이게 웬 땡이냐. 힘들게 주차할 필요도 없이 야드 중간에 그냥 트레일러를 분리했다. 프라임 트레일러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발송 사무실에 가니 잠시 기다리란다. 곧 서류가 준비됐다. 내가 알맞은 시간에 왔다. 더 일찍 왔으면 기다렸을 뻔했다.

 

트레일러 찾아서 연결하고 타이어 무게 맞춰서 출발했다.

 

노스캐롤라이나를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열려 있는 웨이스테이션으로 불려 들어갔다. 무게는 괜찮다. 발송처에서 저울에 달아봤으니까. 역시나 파란색 불이다. 저울을 통과하려는데 순찰차에 탄 경찰이 나를 불렀다. 저쪽에 세우란다. 인스펙션이다. 다른 트럭들도 몇 대 서 있다. 이런, 어제 30분 시간 넘겨서 운전했는데 걸리는 건가? 흑인 경찰관은 내 면허증, 차량과 트레일러 등록증, 화물 발송서류 등 일체를 달라고 했다. 그것을 가지고 차에 들어갔다. 어제 그 재수 없는 트레일러 때문에 이렇게 티켓을 받는구나.

 

얼마 후 경찰관이 나를 불렀다. 차로 가니 서류를 내밀고 사인을 하란다. 아무 이상 없다. 가도 좋다. 좋은 하루 돼라. ? 30분 정도는 봐주는 건가? 나는 로그 관리에 신경을 꽤 쓰는 편이라 가능하면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다. 아무튼, 다행이다. 인스펙션을 무사히 통과하면 회사에서 10달러인가 20달러인가 보너스가 나온다.

 

리퍼 연료가 연결할 때부터 절반 정도 있었는데 내일 아침까지 모자랄 수도 있다. 중간에 주유소에 들러 보충했다. 20갤런이나 들어갔다. 조지아보다는 사우스캐롤라이나가 조금 더 싸다. 그래서 조지아에 들어서기 전에 주유했다.

 

배달처 50마일 남겨 두고 카네스빌의 플라잉 제이 트럭스탑에 왔다. 이곳은 웬만해서는 주차장이 차는 법이 없다. 크기도 하고 맞은편 행과의 간격도 넓어 나갈 때도 편리하다. 굳이 공간이 넓은데 빽빽하게 칸을 만들 필요가 없겠지. 다른 트럭스탑도 좀 이랬으면 좋겠다. 길 건너에는 페트로 트럭스탑도 있어 두 곳 모두 합하면 400대 이상 트럭 주차가 가능하다.

 

내일 6시 약속이니, 새벽 4시에 준비하고 출발하면 적당할 것이다. 약속보다 1시간 미리 도착하는 게 좋다. 배달처는 애틀랜타 근처다. 지난번보다 애틀랜타에 더 가까이 간다.

 

 

다시 덴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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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30분 트럭스탑을 출발했다. 10시간 휴식을 마치지 않았기 때문에 어제 쓰고 남은 1시간 30분을 운전할 수 있다. 애틀랜타 인근이지만 새벽이라 아직은 길이 안 막혔다.

 

550, 배달처에 도착했다. 자칫하면 늦을 뻔했다. 이곳은 후진 난이도가 1급이다. 다행히 공식이 있었다. 경비가 일러주는 대로 정문을 통과해 크게 우회전해서 직선을 만들고 후진해서 닥에 댔다. 좁은 공간이지만 다른 차량이 없어 무난히 닥킹했다.

 

시간은 다 썼고, 2시간 휴식을 마쳐야 오늘 하루 일할 시간이 들어온다. 화물 하차를 마치고 서류를 받고 나올 때까지 2시간 걸렸다. 아침에 쓴 1시간 30분 빼고 9시간 30분이 생겼다.

 

이 주변에는 마땅히 쉴 공간이 없다. 애틀랜타와 반대 방향에 있는 트럭 센터로 향했다. 거기서 트럭 세차도 한다. 아침 출근 시간에 애틀랜타로 향할 엄두는 안 난다. 다음 화물이 내가 가는 곳과 반대 방향에서 들어온다면 번거롭겠지만 복불복이다.

 

트레일러 세차를 마치니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다행히도 내가 왔던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된다. 월요일 새벽까지 덴버로 가는 화물이다.

 

발송처에서 화물 싣고 나오니 거의 정오다. 새벽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오후 6시에는 멈춰야 한다. 애틀랜타를 우회해서 지났다. 역시나 차량이 많다. 테네시 들어서서 러브스 트럭스탑에서 60갤런을 주유했다. 2차 주유지인 이스트 세인트루이스까지 갈 수 있을 정도만 넣었다. 23번 펌프가 고장인 것을 모르고 주유를 시도하다 시간만 날렸다. 다시 다른 줄에서 기다려 주유했다. 23번 펌프에 다른 트럭이 못 들어가도록 쓰레기통으로 입구를 막았다. 진작에 다른 누군가가 이렇게 했으면 서로 시간을 아낄 수 있었을 텐데. 건물로 들어가 영수증을 받으며 직원에게 말했다. 근데 말이야. 23번 펌프가 고장 난 거 알아?

 

오늘 내슈빌은 지날 생각이었는데 주유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려 그 전에 쉬기로 했다. 이른 새벽에 출발하면 교통 혼잡은 피할 수 있다.

 

오후 5, 맨체스터의 바쁜 구석 트럭스탑(Busy Corner Truck Stop)에 왔다. 이름과 달리 이 일대에서는 이 시간에 가장 한가한 곳이다. 하루 신세 지니 매상 좀 올려줘야지. 고치처럼 막대기에 꽂아서 파는 치킨 요리가 있었다. 붐붐과 데리야키인데 하나씩 달라고 했다. 붐붐 치킨은 소스가 맛있었다. 다음에 지나면 또 사서 먹어야지. 요즘은 트럭에서 직접 요리 해 먹는 횟수는 줄고 밖에서 사 먹는 경우가 늘었다. 게을러진 건가? 트럭스탑 음식이 다 거기서 거기지만 오늘처럼 별미도 가끔 있다.

 

다음 홈타임은 115일에서 7일로 정했다. 집 떠난 지 3주째 되는 날짜라 3일 이상 쉴 수는 없다. 115일은 선거일이다. 살펴보니 법안 몇 개와 공직 몇 개에 대한 선거가 있다. 대중의 관심을 끌 중요한 선거는 없어도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리라.

 

미국에서 부정투표는 중범죄다. 영주권자가 잘 모르고 연방 선거에 투표했다가 감옥에 가고 출소 후에는 추방당한 사례가 있다. 시민권자라고 투표권이 자동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유권자 등록을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야 한다. 아내는 어제 유권자 등록을 해서 이번 선거에 투표할 수 없다. 미국에서 한인들의 권익을 높이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은 선거 참여다. 미국 정치인들도 투표하지 않는 소수민족의 얘기에는 별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 뉴욕, 뉴저지 한인 밀집 지역에서는 한인들의 발언권이 세다.

 

 

두 개의 캔자스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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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30, 트럭스탑을 나섰다. 7시 가까워서야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길은 테네시, 켄터키, 일리노이로 이어지며 북서쪽을 향했다.

 

이스트 세인트루이스의 파일럿 트럭스탑에 도착해 주유를 마치고 30분 휴식 취할 동안 샤워도 했다.

 

지금부터는 I-70을 따라 덴버가 나올 때까지 서쪽으로 향하면 된다. 덴버에는 일요일 아침에 도착할 것 같으니 배달까지 하루 정도 시간이 남는다. 덴버 프라임 야드에 미리 드랍하려면 배달까지 24시간 이상 여유가 있어야 한다. 덴버에 내일 오후에도 도착할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무리할 일은 아니다. 여유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는 게 낫다.

 

오후 2, 캔자스시티 약 20마일 전방의 Oak Grove, MO에 멈췄다. 이곳 페트로 트럭스탑은 300대 넘는 주차 공간을 보유했다. Iowa 80에 비할 정도는 아니어도 꽤 큰 크롬샵도 있다. 트럭이 몰려 있는 곳을 피해 한산한 구석에 세웠다.

 

대도시 인근인데도 주차 공간이 많다. 근처에 워낙 대형 트럭스탑이 여럿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심지어 캔자스시티 안에 있는 트럭스탑에도 주차할 곳이 있다고 나왔다. 캔자스시티까지 가서 주차하고 도시를 관광할까 하다가 관뒀다. 가이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무슨 재미로 다니나. 나도 늙었나 보다. 열정이 식었다.

 

입구 바로 옆에 있는 BBQ 식당에 대한 추천이 많아 가보기로 했다. 웨이트리스에게 처음 왔으니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녀가 추천한 메뉴는 한 끼 식사로 살짝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맛은 인정한다. 가끔은 이런 호사도 누려야지. (미국 식당에서는 세금과 팁이 별도라서 메뉴판에 적힌 가격보다 20~30%를 더 낸다) 가게 이름이 KC Baby Back Ribs니 우리말로 하면 캔자스시티 새끼 등갈비 집이다. (어째 욕 같다)

 

캔자스시티는 미주리강을 경계로 나뉜 두 개의 별개 도시다. 1852년에 미주리에 캔자스시티가 생겼고, 20년 후에 캔자스에도 같은 이름의 도시가 생겼다. 캔자스시티는 미주리에서 가장 큰 도시다. 그다음이 세인트루이스고 스프링필드가 뒤를 따른다.

 

메이저리그 야구팀 캔자스시티 로얄스(Royals)NFL 풋볼팀 캔자스시티 치프스(Chiefs) 모두 홈경기장이 미주리 캔자스시티에 있다. 엄밀히 따지면 캔자스가 아니라 미주리 소속팀이다. 물론 미주리 사람들은 심정적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홈팀으로 여긴다.

 

 

겨울 폭풍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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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600마일, 오늘은 550마일을 달렸다. 조금 무리했으면 덴버 프라임 야드까지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덴버 100마일 전방 Limon, CO에 섰다. (가민은 라이몬으로, QC는 리몬으로 발음했다)

 

덴버에는 일요일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겨울 폭풍이 예고됐다. 눈이 5인치에서 10인치 내린다고 한다.

 

내일 오전에 덴버 야드로 갈지 월요일 새벽까지 여기서 대기하다가 바로 배달처로 갈지 생각 중이다. 나쁜 날씨에는 가급적 낮에 움직이는 게 좋다. 덴버에서 하루 관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오랜만에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고 있다. Stranger Things인데 내가 좋아하는 초능력 미스터리 장르다. 플라잉제이 트럭스탑의 유료 와이파이가 잘 터진다.

 

얼마 전에 트럭커패스 실버 회원으로 1년 신청한 것 같은데 오늘 갑자기 골드 회원으로 업그레이드하란다. 실버 회원제가 없어졌나?

 

 

무슨 얼어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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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얼어 죽을 관광이냐. 덴버 오늘밤 기온이 19(-7C)까지 내려간다는데 APU가 고장 났다. 지난번 사용했던 파워 리셋을 반복해도 이번에는 무소용이다. APU는 꼭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 그것도 서비스센터가 문을 닫은 주말에만 고장 나는가?

 

간밤까지 잘 동작했다. 더워서 히터를 끄고 잤다. 아침에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져 히터를 작동시켰는데 전원이 나가버렸다. 몇 번 그랬으니까 이번에도 다시 들어오겠지 싶었는데 영영 가버렸다.

 

리몬은 15도까지 떨어진다니 4도 높은 덴버로 가기로 했다. 오후부터 눈이 본격적으로 온다. 길이 나빠지기 전에 미리 덴버에 가 있어야겠다. 야간 운전은 위험하고 폭설로 도로가 통제될 수도 있다. 다행히 배달처 10마일 거리에 프라임 야드가 있다.

 

옷을 껴입고 전기요로 버텨보는 수밖에. 야드 사무실 건물 안은 난방이 들어올 것이다. 정 추우면 건물로 피신할 수도 있다.

 

눈길을 운전하는 게 힘들지, 히터만 들어온다면 따뜻한 트럭에서 내리는 눈을 보며 쉬는 것은 낭만적이다.

 

 

바닥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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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U 전원이 나가서 벙크 히터가 안 돌아가지만, 전기요가 따뜻해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트럭 시동을 켜도 공회전 경고 메시지는 뜨지만 실제로 시동이 꺼지지는 않았다.

 

새벽 2, 야드에서 출발했다. 생각만큼 눈이 많이 내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천천히 운전했다. 발송처에 도착하니 앞 도로에 트럭이 여럿 주차해 있었다. 나도 겨우 자리를 잡았다. 트럭을 도로에 세운 후 접수 사무실로 걸어가 체크인하고 닥을 지정받은 후에야 트럭 입장이 가능하다. 접수 사무실 문은 닫혀 있었다. 아직 3시가 안 돼서 그런 모양이다. 다시 트럭에 와서 기다리다 3시에 왔더니 여러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례가 돼 서류 접수했다. 프라임은 럼퍼피가 공짜라고 했다. 화물 가격에 이미 포함된 모양이다. 수표를 안 써도 되니 일이 하나 줄었다.

 

14번 도어를 배정받고 후진했다. 내 양쪽으로는 트럭이 연결되지 않은 트레일러라서 후진에 무리가 없었다. 기다란 트럭 옆으로 후진하는 트럭들은 고생했다. 인도를 넘어 화단 영역까지 들어가서야 겨우 자세를 만들었다.

 

530분에 서류를 받아 나왔다. 프라임 야드로 돌아갈까 하다가 발송처 앞 도로에 세웠다. Thermo King 덴버 서비스센터가 5마일 거리에 있었다. 6시가 되기를 기다려 RA에 메시지를 보냈다. 스프링필드는 7시라 평일 근무조가 출근했을 시간이다. 오늘 RA 담당자는 트레비스였다. 일단 우리 APU 샵에 전화를 해보라 했다.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만약 그래도 안 되면 서비스센터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샵에 전화하니 침대 아래 벙커 뚜껑을 열어보란다. 짐을 치우고 침대를 들어 지시대로 했다. 하지만 그의 지시를 그대로 이행하려면 6각 볼트를 열 수 있는 공구가 필요했다. 그 시점에서 통화를 끝냈다.

 

RA에 다시 연락했다. 서모킹 덴버 센터가 5마일 거리에 있다. 거기로 가도 되냐? 트레비스는 리퍼런스 번호를 보내왔다. 외부에서 장비를 수리하려면 RA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리퍼런스 넘버는 일종의 승인 번호다.

 

서모킹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오전 8시에서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도착 후 1시간 정도를 앞에서 기다렸다. 8시에 들어가 접수했다. 나와 얘기하던 남자가 물었다. 네 발음을 들으니 코리언같다. (내 억양만 갖고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다니) 그러고는 한국말로 얘기했다. 한국 사람이어요? ! 나는 눈이 둥그레졌다. 한국에서 일한 적 있는 동남아 사람인가? 그 남자는 아시안 같이 생기기는 했다. 엄마가 한국 사람이에요. 한국말 조금 해요. 아 그렇구나. 반가웠다. 하지만 업무에 대한 공식 대화는 다시 영어로. 50가에 트레일러를 내려놓고 전화하면 와라.

 

UPS 담벼락에 스트릿파킹을 했다. 곧 전화가 왔다. 7번 도어로 전진해 들어와라. 얼른 트레일러를 분리하고 갔다. 7번 도어 앞에서 기다리니 기술자가 문을 열어줬다. 상황을 설명하고 고객 대기장에 와서 기다렸다. 점검과 수리는 약 2시간 걸렸다. 메인 배터리 박스의 배선 불량으로 케이블을 교체했다고 한다. 히터가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기술자가 얘기했다. APU 바닥 팬이 없더라. 그러면서 다른 트럭의 APU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바닥도 커버로 닫혀 있었다. 나는 내 APU의 바닥커버를 본 기억이 없다. 원래부터 아래가 뚫린 줄 알았다. 언제 없어졌지? 최근 일은 아니다.

 

일단은 다음 화물이 급하다. 캔자스에서 뉴저지로 가는 화물이다. 1,900마일 정도를 금요일 아침에 배달해야 한다. APU 고치느라 지체돼 발송처에 오늘 도착은 어렵다.

 

예상보다 눈은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기온은 차갑고 도로도 미끄러웠다. 와이퍼에 얼음이 끼어 시야를 심각하게 가렸다. 몇 번을 갓길에 비상 정지하고 와이퍼에 낀 얼음을 털어냈다. 겨울철에 눈이 오면 히터를 앞 유리로 나오게 해서 최대한 강하게 틀어야 한다. 이게 엄청 뜨겁고 덥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안 그러면 유리창과 와이퍼에 얼음이 쉽게 낀다.

 

남쪽으로 내려가니 구름대를 벗어나 눈은 그쳤다. 100마일 앞두고 트럭스탑에 들어왔다. 발송처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모자란다. 여기서 자고 새벽에 출발하기로 했다. 차량 바닥에 온통 얼음이다. APU도 마찬가지다. 타이밍벨트가 얼어붙었는데 잘 작동할까? 나중에 처음 시동 걸릴 때 얼마간 털털거리며 진동을 내더니 이내 정상 작동했다.

 

구글 포토에서 유타의 과거 사진을 찾아봤다. 조수석 방향에 있는 APU가 나오도록 찍은 사진이 몇 장 있었다. 가장 오래된 사진은 719일인데 이때도 이미 바닥팬이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면 가능성은 한 가지다. 7월 초순에 APU 고장으로 핏스톤 샵에 맡긴 적이 있다. 그때 수리했던 정비공이 뒷마무리를 제대로 안 한 것이다.

 

트레비스에게 사진을 보내고 물어봤다. 바닥팬이 없는데 이거 급하게 수리해야 하냐? sooner than later. 당장은 아니어도 머지않은 시점에 하라는 얘기다. 하긴 바닥팬 없이 몇 달을 다녔는데. 오늘 기술자가 얘기 안 했으면 모르고 계속 탔을 것이다. 겨울철에는 눈이 자주 오고 얼음이나 불순물이 바닥을 통해 들어갈 테니 수리하는게 좋다. 이번 배달 마치고 알아봐야겠다.

 

 

인터모달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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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알람 소리에 일어났다가 3시로 맞추고 더 잤다. 3시에 일어나 후다닥 준비했다. 어제 내린 눈이 트럭 바닥에 얼어붙어 빙벽을 만들었다. 트레일러 휠이 얼어붙지 않았는지 염려됐다. 지난해 겨울 타이어휠 드럼이 얼어붙은 줄 모르고 달리다 타이어가 닳아서 구멍이 난 적 있다. 타이어 휠의 공기주입구 위치를 확인하고 트럭을 조금 움직여 그 위치가 변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했다.

 

어두운 새벽길을 달려 발송처에 도착했다. 새벽이라 다른 트럭이 없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했다. 트레일러 관련한 대부분 작업에 망치가 필요했다. 얼음을 깨야 했다. 이곳은 자체 트레일러 세차장이 있다. 이런 날씨에 세차하면 얼지 않나?

 

내가 가져갈 트레일러 번호가 130009. 132013년 모델이라는 뜻이다. 뒷번호는 일련번호다. 2013년 모델은 2012년 후반기부터 나온다. 9번째라면 분명 2012년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나는 여태껏 앞자리 13번으로 시작하는 트레일러를 끌어본 적은 물론이고 프라임에서 본 기억도 없다. 14번 모델은 아직 심심찮게 있다.

 

야드에서 트레일러를 찾아서 보니 인터모달(Intermodal) 트레일러다. 인터모달은 복합운송이라는 뜻으로 항구나 철도역으로 트레일러를 운송한다. 인터모달 트레일러는 일반 트레일러와 모양이 다르다. 트레일러 후면 날개가 없다. 양측면과 하부에 구조물을 붙여 보강했다. 외벽 로고 디자인도 다르다. 타이어도 일반 더블 타이어를 쓴다. 가장 큰 차이는 리퍼 연료통 크기다. 일반 리퍼 트레일러는 30갤런짜리다. 인터모달은 75갤런이다. 기차에 실려 오래 이동할 수 있도록 연료통을 크게 만들었다. 프라임에도 인터모달 디비전이 있다. 평소 빈 트레일러를 연결할 때도 인터모달 트레일러는 열외다. 어쩌다 내 화물이 인터모달 트레일러에 실렸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연식이 오래돼 인터모달에서 은퇴한 건가?

 

트레일러 게이지가 고장 나서 무게를 확인할 수 없었다. 텐덤 슬라이드를 9번에 걸어 트럭 게이지를 32,000파운드에 맞췄다. 출구에 있는 저울에 달아보니 전체 무게는 70,000파운드에 조금 못 미쳤다. 드라이브 타이어는 보통 12,000파운드다. 계산하면 트레일러 타이어에는 26,000파운드가 나온다. 서류를 보니 화물은 약 40,000파운드다. 트레일러 타이어를 조금 더 앞으로 당겨도 된다. 가까운 트럭스탑에 CAT 스케일이 있지만, 굳이 달아볼 필요는 없다. 무게 여유가 많기 때문이다.

 

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달리자니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하늘 색깔의 변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다. 지평선에서 해가 떠올랐다. 사방이 평지로 트여서 가능한 풍경이다. 트럭 운전을 하는 나로서도 그리 자주 하는 경험은 아니다.

 

오후 430, 며칠 전 왔던 Oak Grove, MO의 페트로 트럭스탑에 다시 왔다. 트럭에서 쉬다가 저녁 먹으러 KC Baby Back Rib BBQ 식당에 갔다. 웨이트리스가 나를 알아봤다. Welcome Back. 눈썰미가 좋거나 이 식당에 오는 아시안이 거의 없거나 중에 하나다. 솔직히 나는 그녀를 못 알아봤다. 전에 그 웨이트리스 맞나? 나는 사람 얼굴을 잘 구별 못 한다. 예전에는 조인성과 정우성이 같은 사람인 줄 알았다. 여성들에게 그 얘기를 했다가 경악스럽다는 반응과 함께 빈축을 산 적 있다.

음식은 오늘도 맛있었다. 이 집의 자체 바비큐 소스는 일품이다. 하지만 처음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배가 덜 고프기도 했거니와 사람의 감각은 경험할수록 무뎌지는 법이다.

 

 

종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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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종일 비가 내렸다. 속도를 낼 수 없었다. 10시간 30분을 달렸지만 550마일밖에 못 왔다. 와이퍼를 작동하면 크루즈가 안 된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57마일이 최고 시속인데 그나마도 언덕길에서는 현격히 속도가 준다. 크루즈를 사용하지 않으면 운전 피로도도 높다.

 

오늘 최소 600마일은 소화했어야 했다. 그래도 미주리 일리노이 인디애나 오하이오 초입까지 왔다. 매일 시간대가 바뀐다. 이제 동부 시간대다.

 

오랜만에 휴게소에서 밤을 난다. 새벽에 일찍 시작해 오후 서너 시면 마치기 때문에 트럭스탑에 주차도 문제없다. 단지 낮에 주유와 샤워 등 필요한 일을 마쳤기에 굳이 트럭스탑을 찾을 이유가 없어서다.

 

오늘 낮에 로드레인저에서 주유했다. 이곳은 솔로 데뷔 후 초기에 냉장고 설치를 위해 스프링필드 본사 쪽으로 화물을 받아 가다가 들렀던 곳이다. 당시 익숙지 않은 45도 후진 주차에 무척 고생했다. 지금은 별 것 아닌데 그때는 왜 그리 어려웠을까.

 

로드레인저가 파일럿과 제휴를 중단하면서 한동안 로드레인저에 올 일이 없었다. 얼마 전 몇몇 로드레인저 가맹점이 프라임과 할인 계약을 맺고 다시 주유 네트워크에 들어왔다. 로드레인저 적립카드도 새로 만들었다. 언제 다시 로드레인저에 갈지 모르기 때문에 아예 샤워도 했다. 샤워 크레딧은 대게 일주일 정도면 소멸한다.

 

동부로 오니 기온이 50도대로 올라갔다. 콜로라도와 캔자스는 왜 그리 추웠을까. 지금은 비가 그쳤는데 새벽부터 다시 온다고 한다. 내일도 종일 비가 내릴까?

 

 

오늘도 비

 

 

시월의 마지막 날도 비가 내렸다. 새벽에 출발할 때는 안개만 짙게 끼었는데 두어 시간 달리니 비가 내렸다. 오늘 이동 거리도 어제와 비슷하다.

 

시골 조그만 트럭스탑에 왔다. 길 건너 조금 더 큰 트럭스탑이 있지만, 새벽에 나갈 때 이쪽이 좋다. 게다가 인도 음식도 판다.

 

오는 길에 막바지 단풍이 절정이다. 이번 주가 지나면 겨울 채비를 시작할 것 같다.

 

 

 

바닥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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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물은 내내 힘들었다. 매일 이른 새벽에 시작해 오후 서너 시에 끝내고 잠을 쪼개서 잤다. 날씨도 한몫했다. 화물 받으러 가는 길엔 눈과 추위, 배달 가는 길엔 계속되는 비.

 

간밤에 지독한 폭우가 내렸다. 새벽 2시 출발할 때는 그쳤다. 그 이후로 도착까지 비는 안 내렸다.

 

뉴왁에 있는 배달처는 몇 번 왔기에 큰 부담은 없다. 그런데 오늘은 주변에 주차할 곳이 별로 없었다. 주변 도로를 돌다가 한 트럭이 막 빠진 자리에 세웠다. 정문 경비실에 체크인한 때가 515분이었다. 육류 접수부로 가서 서류를 건네고 트럭에 왔다. 전화가 올 것이다. 트럭에 누웠다.

 

5시간이 넘도록 전화가 안 왔다. 다시 가봐야 하나 생각하는 사이에 전화가 왔다. 71번 도어를 받았다. 거의 끝쪽이다. 그쪽은 까다로운데. 오늘은 다른 트럭도 많았다. 앞서 트럭이 후진하기를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됐다. 양 트럭 사이로 들어가야 한다. 앞 공간 여유도 적다. 시간을 더 들이고 여러 번 내려서 확인했다. 안전이 최고다. 무사히 댔다.

 

1120, 직원이 서류를 들고 왔다. 준비했던 럼퍼피 수표를 건네고 서류와 영수증을 받았다. 밖으로 나와 발송처 담벼락에 댔다. 서너 시간만 더 지나면 10시간 휴식 리셋이다. 다음 화물은 금방 들어왔다. 배달처가 다시 이곳이다. 다음 주에 홈타임을 신청했기에 이 근처로 화물이 배당됐으리라. 발송과 배달 모두 시간 여유가 있다. 발송처는 핏스톤 터미널을 들렀다 가도 그다지 돌아가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최선은 무엇인가? RA에 메시지를 보냈다. 핏스톤에 들러 APU 바닥 커버를 수리하고 싶다. 좋다. 몇 시에 도착하냐? 미리 연락해 두겠다. 오후 330. 남은 운전시간 4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으니 지금 출발해도 괜찮다.

 

인바운드 라인에서 트레일러를 검사하더니 리퍼 문제도 있고 여러 수리 사항이 있어 트레일러 샵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어차피 다른 트레일러로 바꿔 갈 생각이었다. 터미널까지 온 마당에 다른 디비전의 장비인 인터모달 트레일러를 끌고 굳이 발송처로 갈 이유는 없다.

 

금요일 오후 터미널 야드는 한산했다. 빈자리가 많았다. 심지어 전면 주차로 트레일러를 내려 놓을 공간도 있었다. 트랙터샵에 가서 접수했다. 이미 수리 사항을 알고 있었다. 자리가 나는대로 연락 주기로 했다. 기다리며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었다.

 

브라이언에게 연락했다. 5일부터 7일까지 갖기로 한 홈타임을 3일부터 5일까지 갖고 싶다. 답신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3일 오전 배달을 마치면 집으로 갈 생각이다. 어차피 거리가 나가는 화물은 받기 어렵다. 5일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면 미리 가는 게 좋다.

 

트럭에서 쉬다가 전화를 받았다. 27번 베이로 와라. 고장난 것이 아니라 바닥 커버만 부착하는 것이라 작업은 금방 끝났다.

 

오늘밤은 터미널에서 잔다. 화물은 내일 오전 8시부터 자정 사이에 받으면 된다. 이 발송처는 화물을 늦게 준비하는 곳이니 미리 전화해 상황을 알아보고 가라는 메모도 있었다.

 

흐트러진 몸과 마음의 밸런스를 찾을 기회다. 한 달 넘도록 책을 거의 못 읽었다. 읽어도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어려움을 피하고자 한다. 가급적 쉬운 길을 찾는다. 쉬운 길을 두고 일부러 힘든 길을 갈 필요는 없지만, 쉬운 길이 없다고 아예 포기하면 문제다. 어떤 일은 힘들어도 맞서야 한다. 살면서 나를 성장시킨 일은 대게가 힘든 일이었다. 트럭 후진 기술을 크게 늘려준 것도 좁고 까다로운 장소였다. 그리고 많은 시도와 실패. 포기할 수 없는 일이라 성공할 때까지 되풀이했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평범한 후진의 무수한 반복이 바탕이다. 90%의 평범한 후진은 기본기를 다졌고, 10%의 어려운 후진은 나를 향상시켰다.

 

부모 노릇, 남편 노릇은 어렵다.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무엇을 제공하고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가. 어렵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딸아이 진로와 진학 문제가 우리집의 큰 과제다. 대학 원서 쓰는 기간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 이미 하고 싶은 일이 분명했기에 진학에 어떤 고민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학과와 학교를 결정하고 그대로 진학했다. 수영이는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는 모양이다.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할 생각도 있는 것 같다. 남들은 유학을 못 보내 안달인데 정작 여기서 학교를 다니는 우리 아이들은 학업에 흥미를 못 느낀다.

 

아내나 나나 굳이 대학 진학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래도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지 하는 생각에 다닌다면 시간 낭비다. 아이들이 원하는 게 생길 때까지 사회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다고 본다. 부모의 경험에 비추어 이런 학과가 취업이 잘 되더라며 아이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 세상은 달라졌고 내가 아이들의 인생을 살아 줄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아직은 어리고 미숙해도 스스로의 생각을 키워나가길 바란다.

 

딸아이가 종교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는데 아내는 딸아이가 못 미덥다. 그저 막연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아내는 이곳 대학에서 뒤늦게 공부하며 힘든 경험을 했기에 막연하게 선택해서는 힘든 인문학을 견디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듯하다. 곁에서 지켜보는 아내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엉뚱하고 무모한 결정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당시 내 환경에서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은 엉뚱하고 무모했다. 영화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세히 알았다면 나는 영화과에 지원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지금 영화를 하고 있지 않지만 내 삶에 후회는 적다.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고 시도도 해봤기 때문이다.

 

나나 아내나 모두 자신만의 경험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무엇을 하든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란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행복의 조건 중 하나다. 집에 가면 딸아이와 진로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 희망과 적성, 상황과 조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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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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