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사진필진 l Kor-Eng    
 
뉴욕필진
·Obi Lee's NYHOTPOINT (103)
·강우성의 오!필승코리아 (40)
·김경락의 한반도중립화 (14)
·김기화의 Shall we dance (16)
·김성아의 NY 다이어리 (16)
·김은주의 마음의 편지 (45)
·김치김의 그림이 있는 풍경 (107)
·등촌의 사랑방이야기 (173)
·로창현의 뉴욕 편지 (495)
·마라토너 에반엄마 (5)
·백영현의 아리랑별곡 (26)
·부산갈매기 뉴욕을 날다 (9)
·서영민의 재미있는인류학 (42)
·신기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17)
·신재영의 쓴소리 단소리 (13)
·안치용의 시크릿오브코리아 (38)
·앤드류 임의 뒷골목 뉴욕 (34)
·제이V.배의 코리안데이 (22)
·조성모의 Along the Road (49)
·차주범의 ‘We are America (36)
·최윤희의 미국속의 한국인 (15)
·폴김의 한민족 참역사 (327)
·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 (37)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243)
·훈이네의 미국살이 (114)
·韓泰格의 架橋세상 (96)
조성모의 Along the Road
중앙대 미대 회화과와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2년 미국 이주후 프랫 대학원을 졸업하고 머시 칼리지 교수로 후학도 양성했다. 한국에서 문명의 심볼을 빌딩으로 이미지화한 ‘허상’시리즈를 추구했다면 미국에선 독특한 이미지 분할작업을 캔버스에 구현하며 ‘길의 작가’가 되었고 뉴욕주 슈네멍크의 ‘Sarang Mountain’ 정착을 계기로 그동안 해오던 '사랑의 길'을 주제로 한 작품이 자연속에서 더욱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총 게시물 49건, 최근 0 건 안내 글쓰기
다음글  목록 글쓰기

예술을 통한 사랑의 실천(I)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글쓴이 : 조성모 날짜 : 2023-12-26 (화) 14:26:17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화가 조성모의 삶과 예술

 

 

화가 조성모의 삶과 예술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독특한 삶의 이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어느덧 30년이 돼가는 그의 미국 생활을 돌아볼 때, 대부분의 미국 이민자들이 그렇듯이 그 역시 신산(辛酸)한 삶의 도정(道程)을 겪었다.

 

온 가족과 함께 뉴욕에 둥지를 튼 조성모는 대학원 학비와 생계를 위해 맨하튼(Manhatten)에서 리모 드라이버를 한다. 미국에 도착한 1992년부터 7년여간 계속한 리모 드라이버의 생활은 낮과 밤이 뒤바뀐 상태였다. 주로 어두운 밤에 세계무역센터(Manhattan World Trade Center)에서 승객을 태우고 장거리 운행을 하는 이 생활은 그러나 뜻밖에도 그에게 그림과 관련된 여러 소재와 영감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흰색의 높은 담장이 인상적인 교도소 건물을 소재로 한 그림은 이 시기 대표작 중의 하나다. 그는 이 그림에 <(Wall)>(1995년 작)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화면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높은 교도소의 흰 벽을 배경으로 가지가 무성하게 뻗은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서 있고, 벽의 너머로 둥두렷이 솟은 보름달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벽 위에 설치된 이중의 철조망은 이 건물이 교도소임을 알려준다.

 

나무들이 뿌리를 딛고 있는 땅은 어두운 색으로 칠해졌으며, 나무들 역시 어둡게 평면적인 실루엣으로 처리돼 있다. 나무와 숲을 소재로 한 조성모의 작품들이 심한 양식화적 경향을 보이는 특징의 초기 모습을 이 시기의 대표작인 이 작품에서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할 때부터 조성모는 도로 풍경을 즐겨 그렸다. 1991, 관훈갤러리에서 열린 에꼴 드 서울전의 커미셔너 자격으로 내가 조성모를 전시에 초대했을 때에도 그의 그림은 도로 풍경이었다. 미술평론가이자 독립 큐레이터인 내가 조성모의 작품을 눈여겨보게 된 계기는 1991년에 나우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이었다. 거기에 예의 거리 풍경을 그린 <문명의 시그널(Signal of Civilization)> 연작들이 전시돼 있었다.

 

그 작품들을 보는 순간, 나는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초현실주의풍의 기법과 도시 문명을 자연과 대비시킨 대담한 시각적 대위법에 주목했다. 이 무렵 서울은 인구 1천만 명을 넘긴 거대도시로 성장하여 각종 공해는 물론 인구 밀집에 따른 다양한 사회 내지는 환경 문제들을 낳고 있었다. 충남 부여 출신인 조성모는 그러한 서울 생활에 잘 적응을 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에 입학을 한 1977년 무렵에 그는 주말이면 가족이 살고 있는 부여로 내려가기 위해 고속터미널이 있는 반포를 찾았다.

 


 <허상. 도시 문명의 Signal> 161*130,3cm, 캔버스에 아크릴, 1991

 

 

조성모가 다닌 중앙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서양화 전공)는 옛날부터 사실주의 전통이 강했다. 최영림을 비롯하여 장리석, 황유엽 등 구상계열의 교수들이 포진, 수많은 구상작가들을 화단에 배출했다. 교수들 중에서 추상작가는 오직 정영렬 뿐이었다. 그러한 중대의 극사실주의 전통은 기라성같은 작가들을 배출했다. 가령, 배동환과 변종곤은 민전을 통해 70년대의 화단에 부상했으며, 임흥순, 이명복, 이종구, 송창, 전준엽, 황재형, 천광호 등등이 모여 1982년에 임술년그룹을 창립했다. 이 무렵 조성모는 제11회 전국대학미전에 벽장에 쌓여있는 책들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을 그려 영예의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중대에는 반드시 극사실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개중에는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의식을 지닌 작가들도 있었다. 예컨대 김정식, 홍선웅 등등 중앙대학교 회화과 출신이 모여 결성한 다무그룹은 1981년에 대성리31인전을 개최, 국내 야외미술제의 첫 출범을 알렸다. 이 무렵은 모더니즘 일색의 화단에 1979현실과 발언그룹이 촉발한 민중미술로 인해 서서히 균열의 조짐이 보이던 시절이었다.

 

조성모는 이 시기를 화단의 체험을 통해 증언할 수 있는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당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임동식의 화실에 다니면서 그림을 배웠는데, 훗날 이때의 인연으로 인해 임동식을 주축으로 1980년에 창립한 금강현대미술제에 초대를 받게 된다. 그는 지역감정으로 왜곡된 백제의 역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약 4미터 높이의 의자를 공주 인근의 금강 백사장에 설치했다.

 

그는 또한 70-80년대에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작가들이면 대부분 참가한 미협 주최의 앙데팡당전에 수차례에 걸쳐 참가하는 등 청년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창작에의 열정을 불태웠으며, ‘대성리전에 참가(1985-6), 동료 작가들과 함께 동시대 미술의 흐름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1987년과 1991년에는 제1, 2회 대전 트리엔날레에 연거푸 초대를 받았으며, 1987년에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87청년작가전의 초대작가가 되었다.

 

 

<계속>

 

글 윤진섭 미술평론가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조성모의 Along the Road’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jsm


다음글  목록 글쓰기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제호 : 뉴스로 l발행인 : 延義順 l편집인 : 閔丙玉 l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 l창간일 : 2010.06.05. l미국 : 6 Brookside Trail Monroe NY 11950  한국 :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 전화 : 031)918-1942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