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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의 한국현대사비화
반공포로 석방은 이승만의 영웅적 쾌거가 아니라 최악의 수였다. 우리 장병 3만명이 희생된 금성천 전투의 비밀. 인천상륙작전은 알아도 평안도 참패는 모른다. 이승만 자진하야의 꼼수. 하와이 망명을 움직인 보이지 않는 손. 우리가 알아야 할 한국전쟁과 이승만의 현대사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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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이 박정희 자리 차지 못한 이유

군사 반란시 군인 한명도 동원 못해
글쓴이 : 김태완 날짜 : 2018-06-26 (화) 08:12:19

 

 

계획은 머리 굴릴줄 아는 자 누구나 가능

왜 이승만 독재시절엔 반란 꿈도 못 꿨나?

70년대 남북 회담 진전 막아

정권욕에 김대중과도 협력

죽을 때까지 세상이 변화 인정 못해

6.13 지방선거 한국당 전멸에 쇼크 먹었나

홍준표 좋다했으니 매일 묘소 참배 가야지

 

 

필자가 한국 현대사를 통털어서 품어 본 가장 커다란 불가사의적 사태는 그렇게 똘똘한 김종필이라는 인간이 왜 박정희로부터 권력을 이양(移讓) 받지 못했는지? 또는 탈취하지 못했는지?가 항상 궁금했다.

 

필자 나름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하고 요모조모로 생각하고 나름의 추론은 그가 좋은 구상을 한 것은 틀림 없으나, 군대를 동원하지 못했었기 때문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마침 며칠전에 (623일 현지 시간) 그가 타계했기 때문에 필자의 궁금증을 풀고 과연 필자의 추론(推論)이 맞는지를 여러 자료를 섭렵하면서 1961516일 한국 최초의 정권 탈취를 목적으로 하는 군사 반란시에 어느 부대가 출동하고 그 부대의 지휘관은 누구였으며, 어떤 연유로 반란에 가담하였고, 반란의 수괴(首魁) 박정희와의 관계, 그리고 혹시 김종필이 출동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꼼꼼히 살펴 보았다.

 

 

Captin_Kim_Jong-pil.jpg

한국전쟁무렵의 김종필


 

 

김종필 자신이 얘기한 것처럼 동원된 군인 숫자는 약소하게 3,600 명이고, 김윤근 준장이 이끄는 해병대 1,500, 문재준 대령의 6군단 포병 1,300 , 그리고, 박치옥 대령의 공수단 800명이 모두 다였다. 김윤근 장군은 박통의 만군 후배요, 문 대령과 박 대령은 둘 다 육사 5기였다.

 

어디를 봐도, 육사 8기나, 김종필이 데려온 군인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오늘 당시 출동 병력을 조사함으로써 저의 가설이 적중한 것을 확증해냈다.

 

왜 군대 동원이 그토록 중요할까? 반란을 일으키는데 군대를 동원해야 무력으로 상대, 즉 당시의 합법 정부를 뒤집을 수가 있지 않겠는가?

 

군사반란 두 주동자의 역할에 대해 가장 적절하고 정확한 표현은 김종필의 절친이며 민간인으로 거사 자금을 조달한 김용태 씨의 아래와 같은 증언을 보면 알 수 있다

 

'원대한 쿠데타 계획은 朴正熙, 실천 계획은 JP 작품'

 

JP‘516은 나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강하고, 대통령 주변에서는 JP朴正熙의 충실한 작전참모로 보는 시각이 강합니다.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깝습니까?

원대한 계획은 대통령의 것이고, 구체적인 시나리오 만드는 데는 JP가 많이 관여했어요. 하지만 혁명세력 포섭이나, 병력 동원은 대통령의 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습니다. 배경이 다르고 이질적인 장교들을 한데 묶어 끌고가는 일은 JP 힘에는 벅차죠. 朴正熙 소장이라는 존재가 있었으니까 가능했던 겁니다. 516 이후 벌어진 혁명주체 세력 간의 반목과 갈등을 보면 그게 이해가 갈 겁니다.” (1)

 

그 다음으로 더 직설적으로 당시 6관구 사령부 참모장으로 반란군 연락 총책을 맡았던 김재춘 대령의 등언도 들어봅시다.

 

김종필, 육사 8기생들이 혁명 주체세력이라고?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요. 아니 혁명을 주도하려면 병력을 거느리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당시 그들에겐 따르는 휘하 병력이 거의 없었는데 뭘.” (2)

 

그리고 한가지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것은 반란 음모자들이 왜 이승만 독재 시절엔 양같이 순하게 지냈는가 하는 점이다. 이승만 시절에는 특무대가 무서워서 꼼짝달싹 못하든 용감한 청년들이었다?

 

김종필이라는 인사는 반란을 일으킬 때부터 세상이 변하는 것을 전혀 읽지 못하는 시정 아녀자들보다 못한 멍청이라 본다. 그는 홍준표 지지 선언을 하고, “문재인 (대통령 후보), 빌어 먹을 자식이라 망언을 퍼부었다. 그러니 문통이 문상(問喪) 가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다.


 

홍준표는 앞으로 매일 묘소로 출근할 것으로 본다. 아마 그분이 돌아가신 것은 좋아하는 한국당이 지방 선거에서 참패해서 너무 쇼크를 받았기 때문에 아쉽게 이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분의 공과(功過)에 대해 왈가왈부 말이 많지만 필자와 좀 연관 된 일에 대해 말씀 드릴 것이 한가지 있다. 필자는 1970년대 제1차 남북 대화에 간여(干與)하여 남북 통일의 역군으로 일한 것이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당시 남북회담은 남측에서는 이후락씨가 주도하였는데, 그가 평양을 다녀와서 기자 회견을 하면 통일이 바로 내일이라도 되는 듯했다. 박 대통령은 그 (이후락)를 삼국 통일의 길을 연 김춘추에 비견하며 극찬(極讚)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평양을 다녀온 이후락이 박정희에게 이북이 남한보다 더 앞서나간다고 말하고, 남측의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면 남북 교류를 더욱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를 김종필에게 말하자 절대로 안된다고 했다 한다. (김종필 당시 총리)는 국회에서 통일은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오래 걸린다고 말해서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 당시 김종필이 남북 문제로 자신이 이후락에게 밀린다고 생각했는지 아무튼 좀 더 잘 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 회담이 알맹이 없이 질질 끌고 가서 결국 남측에 이용당한다고 판단한 북한이 당시 김대중 사건을 빌미로 민주 인사를 납치하는 인사와 대화하지 않겠다며 남북 접촉을 중단해버려서 필자는 미국으로 이민 오게 되었다.

 

김용태 씨의 증언에 그가 김종필에게 서산 목장과 제주도 땅 문제처결(處決)을 몇번 촉구했으나 묵묵부답(黙黙不答)으로 넘겼다고 해서, 김종필 자신만은 고결한 척했지만 부정 축재가 있었음을 암시했다.

 

그 당시 회담에 대해 몇마디 더 붙이자면, 남측은 주역이 중앙 정보부이고 북측은 노동당 조직 지도부로 남북 양측의 실권 부서가 담당하였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 (대표단)이 남북을 왕래할 때 영수증을 써준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남에서 다섯명이 간다면, 북측에서 그 다섯명의 신상을 인수했다는 증서를 남측에주고 되돌아오면, 받았던 인수증(引受證)을 되돌려 준다 (북에서 남으로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혹시 이북에서 납치하든지, 이북에 간 인원 중에 한두명이 자진해서 그쪽에 남겠다고 하는 일이 발생하면, 양측에 아주 곤란한 사태를 일으키기 때문에 마치 사람들을 물건처럼 다섯명이 넘어 가면 반드시 다섯명을 되돌려 받아서 쓸데 없이 한 두명의 돌출 행동 때문에 회담에 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양측이 합의한 것이다. 아마 이 방법을 지금도 계속할 것으로 본다.

 

 

필자 주

1 : 두목 김용태, 혼신의 다섯시간 증언 (월간조선 20024월호에서 일부 전재)

2 : “김종필, 육사 8기생들이 혁명 주체세력이라고?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 (서울신문 2011515일 자 일부 전재)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완의 한국현대사 비화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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