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함께 한중추 상임공동대표를 맡아왔고, 저의 강요 섞인 부탁으로 “미국 제대로 알기2: 한미 군사관계”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가 열흘 전 <내일신문>에 멋진 칼럼을 실었습니다. 저는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실으면 발행되자마자 이메일.페북.카톡 등을 통해 여기저기 자랑하는데, 문 교수는 자신을 전혀 홍보하지 않기에 제가 그 글을 아래에 옮깁니다. 윤석열 만행의 핵심 행동대장들이 육사 출신들이라는 데 분노와 수치심을 느끼며 한국의 부정적 군대문화를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육사교육과 민주공화국의 군대문화
이 글의 성격상 먼저 밝히는 게 좋을 것 같다. 필자는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육사동기이며 생도시절까지 포함하면 41년 넘게 군인으로 살았다. 가끔 광화문의 태극기집회 속에 펄럭이는 육사깃발을 보면 이제 민간인이 된 옛 노병의 마음이 불편했다. 지난달 내란공모자로 구속된 국방장관을 응원하기 위하여 동부구치소로 보내진 화환들을 보고는 분노와 수치심을 동시에 느꼈다. 화환에 걸친 리본에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사관생도 신조의 하나), “육사 38기 동기생 일동”이라 쓰여 있었다. ‘일동’? 동기생 일부가 이의를 제기했던 모양인데 필자는 너무 부끄러워 ‘이 또한 조용히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기만 했으니 비겁하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 없다.
<민주공화국 군대 건설에 실패한 육사교육>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따라서 민주공화제를 지키지 못하는 군대는 대한민국 군대가 아니다. ‘외부의 무력침공으로부터 국가를 지킨다’는 국방목표는 헌법 제1조의 부연설명이다. 불행히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딴 나라 군대가 아닌 바로 우리의 군대에 의하여 유린(蹂躪)되곤 했다. 윤석열의 ‘만행’이 박정희와 전두환의 그것들과 다른 점은 최고권력이 군출신이 아니라는 것 뿐이다. 핵심 행동대장들은 모조리 육사출신이었다. 육사폐교론이 나올 법하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나? 흔히 교육문제가 거론된다. 육사출신들은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제도와 관행의 도움으로 비교적 ‘쉽게’ 군의 최상층부를 점하게 된다. 10대 말에서 20대 초 성인으로 정신과 육체가 여물어 가는 시기에 사관생도들이 받는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처음에는 군대 속에 던져지지만 이내 스스로 군의 ‘문화’를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필자가 오래전 과거의 기억을 소환(召喚)하는 것은 개인적 회한(悔恨)에서뿐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안위의 기반이면서 무력을 독점한 군대의 문화가 바람직하지 못한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오늘의 문제로 남아있는 것에 대한 우려에서다. 육사 교육과정은 대학교육 측면에서는 그런대로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생도들은 취침시간까지 포함한 하루의 2/3 이상을 생도대(내무반)에서 ‘군대생활’을 하면서 군인이 되어간다.
육사의 교육과정 4년 내내 겉보기에 좋은 온갖 경구와 구호가 반복적으로 생도들의 뇌세포를 자극한다. “내 생명 조국을 위해”라는 신조와 “사관생도는 진실만을 말한다, 행동은 언제나 공명정대하고 언행은 일치한다”라는 도덕률부터 “군인은 제복을 입은 시민”, “민주주의에 군대는 있지만 군대에 민주주의는 없다”, “장교는 국제신사(라야 한)다”, “강장 밑에 약졸 없다”, “북진통일, 고토회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용장 위에 지장, 그 위에 덕장, 그 모든 것 위에 운장(運將)”이라는 전쟁론적으로 ‘심오한’ 농담까지 많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은 빠져 있었다. 창군 초기 지휘부의 대부분이 일제부역자(日帝 附逆者)였다는 사실은 언급 자체가 안 되었고 항일 무장투쟁의 역사는 정규 교과목에 들지 못했다. 성찰적인 군대 정신과 문화의 뿌리가 허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남침 야욕을 불태우는 북한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은 군인정신의 동의어가 되었다. 제 부대를 제가 지휘하여 싸우고자 하는 군인의 본능은 거세되어 작전통제권 문제에 대하여 입도 벙긋 못하게 되었다. 무조건적 반북이 아니면 친북이요 용공이고 무조건적 친미가 아니면 반미고 친북이다. 사관생도 신조와 도덕률은 졸업과 동시에 논리적으로 효력을 상실하고 임관 후부터는 ‘진급전쟁’을 시작한다. 이 ‘내전’에는 생도시절부터 ‘체득’한 허황된 엘리트의식에 병종 병과 보직 지연 학연을 섞어 ‘연합군’들이 만들어진다.
<자랑스런 군대와 존중받는 군인, 가능할까>
아마 위의 논의에서 육사나 군대 대신 한국사회의 다른 분야들을 대입해 보면 비슷한 면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디 한국뿐이랴. 필자는 글을 마무리하면서 ‘물귀신 작전’을 쓰자는 것도 아니고 육사출신이 다 그렇지는 않다고 두둔할 생각도 없다. 이제 한국군의 하드웨어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국민의 피와 땀으로 건설한 것이다. 군인을 만드는 데에는 신체와 무기 못지않게 지식과 정신이 중요하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단시일 내에 군대문화를 바꾸기는 어렵지만 군대가 먼저 노력해야 한다. 군인들은 자신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본연의 직무에 충실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국민은 그런 군대를 믿고 자랑스러워하고 그런 군인을 존경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존중’은 해 주지 않을까. <내일신문> (2025. 1. 21.)
글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이재봉의 평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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