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는 다르다. 의뢰는 많이 들어오는데 수입이 없다. 가난 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무료변론이이기 때문이다. 가난하다. 자동차 없이 발로 뛰어다녀도 사무실유지비는 내야한다. 어느 유명 인권변호사는 김수환추기경이 몰래 넣어주는 촌지로 버텨냈다고 고백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교회협의회인권위원회에서 돕기도 한다. 그러나 푼돈이다. 그래도 인권변호사는 뜨겁게 변호한다. 사랑을 먹고 사는 정의의 전사들이기 때문이다.
김재규를 구하겠다고 달려온 인권변호사가 34명이나 됐다. 그중에는 이돈명 한승헌 유택형 황인철 김정두 강신옥 안동일 태윤기 이병용 강봉제 이세중 김흥수처럼 유명변호사들의 이름이 수두룩했다. 이름만 대도 판검사와 재판장이 벌벌 떨 정도의 일당백의 논객들이다.
그중에도 이돈명 한승헌 강신옥 안동일의 이름이 더욱 빛났다. 후일 조선대학교총장을 지낸 이돈명변호사는 학식과 덕망이 높은 호남의 신사다. 부드럽고 온화한 그의 변론에 검찰의 날카로운 칼이 녹아드는 스타일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승헌변호사는 알라스카의 빙산을 칼로 두동강 내버리는 스타일이다. 김대중정부시절 국 무총리직을 사양한 한승헌은 대신 감사원장을 맡아 정권의 부패를 막아 낸다. 안동일 변호사는 국선변호사로 김재규변호를 맡다가 김재규의 열열한 팬이 돼버린 인물이다. 그래도 김재규변호인단의 중심은 강신옥변호사다.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양과에 합격한 강신옥은 영남의 천재다. 목소리가 큰데다 말술을 즐겨 마시고 피부가 검어 천하장사 장비를 연상케 한다. 태산을 울리는 목소리로 변론을 펼치면 법정이 흔들리는 듯 했다. 강신옥은 문무를 겸한 인물이었다. 유신법정을 농락했던 박정희시절의 유명했던 일화.
1974년 7월 9일 서울 용산구 육군본부 건너편 비상군법회의 법정. 민청학련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구형이 내려지고 있었다. 보도통제가 취해지고 있어 법정은 바깥세상과는 유리되어 밀폐된 진공의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단상에는 붉게 상기된 얼굴의 재판장이 앉아있다. 별을 단 장군이라서 위압적으로 보였다. 복도는 물론이요, 법정 안까지 총을 든 헌병들이 늘어서 있었다. 군인막사를 개조해 만든 서른 평 남짓의 법정안은 흉가처럼 이상한 한기가 숨어있었다. 30도가 넘는 바깥의 찌는 듯한 폭염을 비웃기라도 하듯 재판정은 살기가 감돌았다. 열어젖힌 창문으로 매미 울음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흰 죄수복을 입은 피고인들이 오랏줄에 묶이고 두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나란히 앉았다. 지난 2개월간 조사를 받으며 몽둥이 고문, 잠 안 재우기 고문, 전기 고문 물고문으로 거의 초주검이 된 모습들이다. 피고인 1인당 가족 1명으로만 제한된 법정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가족들은 모두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저승사자처럼 나타난 검찰이 염라대왕같은 목소리로 구형을 내렸다.
"이철 유인태 김지하등 7명에게 간첩죄로 사형. 다른 7명에게 무기징역, 12명에게 징역 20년과 15년, 6명에게 징역 15년을 구형!"
엄청난 형량에 변호인들이 당황하고 흥분했다. 변호사들이 들고일어나 따졌다. 세 번째로 나선 강신옥 변호사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과연, 이 나라의 법은 정치나 권력의 시녀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지금 검찰관들은 나랏일을 걱정하는 애국 학생들을 빨갱이로 몰고 사형이니 무기니 하는 형을 구형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법 살인행위가 될 수가 있고….”
그의 폭탄 발언에 법정 안의 긴장은 최고조로 높아졌다.
“본 변호인은 기성세대이기 때문에, 그리고 직업상 이 자리에서 변호를 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피고인들과 뜻을 같이하여 피고인석에 앉아 있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변론은 중지당했고 재판장은 휴정을 선언했다. 결국 강 변호사는 법정모욕죄로 구속된다. 변호사가 변론 때문에 구속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실은 당시 언론자유가 없는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열흘이 지난 19일 뉴욕타임스가 1면 기사로 보도해줬다. 그 뒤 8월 8일 정기국회에서 법무부 장관의 답변을 통해서 국민에게 알려졌다.
강신옥
강신옥은 그런 변호사다. 강신옥은 후에 정계로 진출하여 마포지역구 국회의원이 된다. 돌아 갈 줄, 기다릴 줄, 피해 갈 줄, 타협할 줄을 모르는 호방한 성격 때문에 국회의원을 몇번 하다가 그만둬 버렸다.
34명의 변호사들이 모이자 이돈명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이제껏 군사독재치하 재판에서 민주인사측이 이긴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법리나 변호가 아니라 통치자의 의중에 따라 판결하기 때문입니다. 군사독재자들은 멀쩡한 민주인사들을 간첩으로 누명을 씌워 사형언도를 내렸습니다. 도예종 여정남 서도원같은 민주인사들을 빨갱이로 몰아 사형시킨 인혁당재판에서 그랬습니다. 80명의 인권변호사들이 달려들어 변론을 펼친 민청학련재판에서도 무고한 민주학생들은 간첩으로 몰려 사형언도를 받았어요. 대통령에 출마했던 김대중씨도 재판에 세워 빨갱이로 몰려고 광분하는 저들입니다. 총칼로 위협하고 억지선고를 내리면 그게 재판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앞장서서 그들을 변호하면서 투쟁해 나가야합니다. 왜냐구요? 당장은 지지만 먼 훗날 죽어서라도 이기는 날이 기필코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는 줄 알면서도 민주주의를 변호하는 싸움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민주화의 물고를 트기위해 살신성인으로 의거를 일으킨 김재규장군 변호에 나서야합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인혁당과 민청학련은 엉터리재판에 저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사형 당했다. 그러나 34년후 무죄선고를 받았다. 비록 육신은 사형당하여 이 세상에 없지만 죽어서 이긴 것이다. 저도 이기는 재판, 죽어서 이기는 재판, 그게 진정한 승리가 아닌가? 그래서 인권 변호사들이 들고 일어나 역사와 하늘에 대고 변론해야 한다. 그래야 후세에 역사가 바로 잡아줄 테니까. 선배변호사의 비장한 출사표설명에 좌중은 침묵하고 있었다.
그때 침묵을 깨는 젊은 목소리가 소리치고 올라왔다.
“그래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겨야 합니다. 우리는 이길수 있기 때문에 이겨야 합니다. 달걀로 바위치기를 하면 달걀만 깨뜨려져 버립니다. 그러나 흰자 노른자 달걀이 아니라 무쇠로 만든 달걀이라면 능히 바위를 깨트릴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쇠달걀을 갖고 있어요. 핵폭탄처럼 단단한 이 무쇠달걀을 재판정에 던지는 겁니다. 그러면 김재규장군을 재판하던 재판정은 날라가 버리고, 박정희의 무덤도 폭파당하고, 전두환의 군부정권도 무너져 버릴 겁니다. 남한산성 육군교도소를 폭파해버리고 갇혀있는 김재규를 끄집어 낼수 있어요”
사람들이 놀라 바라보니 무명의 청년변호사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청년변호사는 침을 한번 삼킨후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무쇠달걀 핵폭탄은 박정희의 엽색행각폭로입니다. 박정희는 수많은 여자들을 청와대로 끌어들여 밀실에서 농락했습니다. 국민들은 그걸 믿지 않습니다. 어쩌다 여자관계가 있었다 해도 로맨스였겠지? 케네디대통령도 프랑스대통령 퐁피두도 로맨스가 있었지 않은가? 우리박대통령은 육영수여사를 잃고 외로웠으니 그정도 로맨스는 있을수 있겠지? 하고 봐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박정희의 여성편력은 로맨스가 아니라 엽색입니다. 로맨스는 남녀가 사랑하여 성관계를 갖는 것이지만 엽색은 남자가 권력과 돈으로 여자를 끌어다가 성욕을 채우는 일종의 강간입니다. 더욱 가관인건 대통령을 보좌하는 삼인방인 중정부장 비서실장 경호실장이 이를 주선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차지철경호실장과 김계원비서실장은 교회장로들입니다. 이들은 중정부장 김재규와 더불어 대통령의 불의한 짓을 목숨 걸고 간하여 막아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 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술자리까지 동석하여 대통령의 취흥이 오르면 박정희와 여자만 남게하고 슬그머니 물러갔습니다.
중정 의전부장 최선호는 전담 채홍사였습니다. 최선호는 어쩔수 없이 명령에 따르면서도 치를 떨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몰래 200명이 넘는 여자 명단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뿐 아니라 박근혜와 최태민의 섬씽도 재판정에서 폭로해야 합니다. 일곱이나 이혼한 사이비목사 최태민은 박근혜를 꼬드겨 한마음회를 만들어 수천억을 착복했습니다. 또 60대노인이 20대 처녀 영애와 부적절한 관계를 했다고 소문나 박정희가 청와대에서 친국재판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 내용을 김재규가 잘 알고 있어요.
한국인들은 남자의 배꼽아래를 크게 문제삼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서로 사랑하는 로맨스의 경우입니다. 나라 임금이라도 엽색을 저지르면 백성들이 일어나 임금을 처단했습니다. 후고구려 궁예는 깨끗하고 용감한 왕이었지만 나라가 강성해지자 여색을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처녀 유부녀 심지어는 대신들의 부인까지 궁으로 불러들여 엽색을 즐겼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보리밭에서 몽둥이로 궁예왕을 때려죽였습니다. 신라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여자를 끼고 술을 퍼마시다 말을 타고 달려든 후백제왕 견훤의 칼날에 죽었습니다. 한국 5천녀 역사에 여자끼고 술을 마시다 총칼을 맞고 죽은 통치자는 경애왕과 박정희대통령뿐입니다.
우리 변호인단은 이 사실을 재판장에서 터뜨려야 합니다. 그래서 온 국민이 알게하여야 합니다. 전두환이 언론에 자갈을 먹이면 외신이 나팔을 불어줄 것입니다. 성난 파리시민이 들고일어나 루이14세를 처단하고 프랑스혁명을 일으키듯 유신잔당 전두환군부를 쓸어버릴겁니다. 그때 비로서 10.26을 완성하고 한국민주화가 이뤄질 겁니다“
통쾌했다. 그러듯했다. 최선호도 200명 여자명단을 법정에서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당사자 김재규가 완강히 반대했다. 남자답지 못하고 치졸한 방법 같아서 그랬을까? 궁예왕을 몽둥이로 때려죽인 민중의 분노가 박정희의 무덤을 파헤치면 나라에 걷잡을수 없는 혼란이 일어날까봐서 그랬을까? 아무튼 젊은 변호사의 기가 막힌 제갈량책략은 채택되지 못했다.
‘아까워라 아까워!’
젊은 변호사는 변호인단에서 말없이 나와 버렸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