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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선의 김재규복권소설
1941년 음력 9월 보름 경기도 평택군 현덕면 도대리 문곡 글갱이에서 이봉헌 이은혜의 셋째로 태어났다. 현덕초등 안중중 동도공고를 거쳐 평택대 감신대에서 수학한후 나사렛대학을 졸업했다. 목사 부흥사로 활동하다가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목회를 하면서 독자투고를 쓰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써본 “글갱이 사람들”이 단편소설로 당선되는 바람에 얼떨결에 등단작가가 됐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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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정병주죽음의 미스테리

김오랑부부의 슬픈 운명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7-05-04 (목) 12:13:40

김재규 복권소설독점연재

 

198934일이었다. 경기도 양주군 깊은 야산 참나무가지에 60대 남자시신이 매달려 있었다. 나무에 매달려있는 시체의 발끝에서는 소주병과 종이컵이 딍굴고 있었다. 주황색나일론 끈으로 목을 매어 죽은 남자는 정병주였다. 경찰은 특전사령관을 지낸 정병주퇴역장군의 자살로 발표했다. 정병주를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병주는 자살할 사람이 아닌데?

특전사의 아버지 정병주장군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용감했다. 자살을 죄악시하는 착실한 천주교신자다. 장태완장군과 함께 12.12 응징운동을 벌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62세 한창 나이에 자살했을까? 꼼꼼한 그답지 않게 유서 한장 남기지 않았을까?

경북 영주가 고향인 정병주는 김재규의 안동농고 2년 후배였다. 육사 9기로 임관한 정병주는 군의 정치개입을 싫어했다. 그 점은 김재규와 같았다. 5.16때는 공개적으로 비평하고 나서다가 경복궁 기둥에 꽁꽁 묶이기도 했다. 그 시각 경복궁 담 넘어에서는 전두환대위가 육사생도들을 이끌고 혁명지지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뛰어나가 퍼레이드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기둥에 묶어 둔 것이다. 10.26때는 김재규를 돕고 싶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발만 동동 굴렀다. 전두환의 12.12반란때는 장태완과 함께 진압군 최선봉에 섰다. 그러나 선배장군들의 배신으로 반란군에게 사로잡히는 치욕을 당해야 했다.


정병주 - Copy.jpg
정병주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슬프게 한건 반란군 실세들이 모두 자기의 부하들이었다는 점이다. 전두환 노태우는 정병주사령관 아래서 공수여단장을 지낸 막료출신들이다.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는 현역부하 여단장들이다. 군역사상 일찍이 특전사만한 모범부대가 없었다. 장병 모두가 정병주사령관을 아버지처럼 따랐다. 정병주를 특전사의 아버지로 불렀다. 그런데 아들같은 그 부하들이 12.12반란을 일으켜 자기를 잡으러 왔다. 부하인 박종규중령이 쏜 총을 맞고 쓰러졌다. 박종규는 피를 철철 흘리는 정병주를 개 끌고 가듯 잡아갔다.

(아무리 권력이 좋아도 그럴수가 있을까?)

강제로 옷을 벗은 정병주는 괴로웠다. 나쁜 부하들만 있는게 아니었다. 김오랑같은 착한부하도 있었다. 끝까지 자기를 지켜주다가 35세에 죽은 비서실장 김오랑소령이 그리웠다. 정병주는 대학교수로 있는 아들 정승환에게 유언처럼 부탁했다.

얘야, 김오랑은 이 애비 때문에 35세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 아내 백영옥은 충격으로 소경이 됐다. 그녀에게 아들이 있다고 한다. 너에게 부탁한다. 내가 죽더라도 김오랑의 아들을 네가 책임지고 돌봐다오

, 아버지, 김오랑의 아들을 제 자식처럼 아버지의 손자처럼 생각하여 책임지고 돌 봐 주겠습니다

 

김오랑의 부인 백영옥은 남편이 죽은 충격으로 소경이 된다. 부산으로 내려가 친정아버지의 도움으로 작은 암자를 지었다. 남편의 넋을 달래면서 불우아동을 돌보는 일을 했다. 그래도 참기가 힘들었나보다. 그녀는 자살하여 남편 곁으로 갔다. 외아들을 남겨두고. 그게 19966월쯤 일이다. 정병주의 아들 정승환교수는 김오랑의 아들을 끝까지 돌봐준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아버지 정병주는 특전사의 아버지였다. 아들 정승환은 특전사 김오랑 아들의 아버지였다.

김오랑은 비참하게 죽었다. 아내도 비참하게 죽었다. 그러나 김오랑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웠다. 12.12 때 절친한 선배 박종규의 총을 맞고 죽은 김오랑의 시신은 아무도 거둬주는 이가 없었다. 거적대기에 둘둘 말아 특전사령부 뒷산에 버려져 있었다. 3개월이 지난 다음해 2월에 육사동기 25기들이 들고 일어나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김오랑은 25기의 수석이었다. 동기들은 김오랑소령 복권운동을 벌렸다. 민주정부가 들어서자 김오랑은 복권된다. 정부는 김오랑을 중령으로 진급시키고 훈장을 추서했다. 김오랑을 육사정신을 구현한 표상으로 본 것이다.

미국 육사교정에 맥아더의 동상이 있다면 한국육사 교정에는 김오랑동상이 있어야 한다

동기들은 육사교정에 김오랑동상과 추모비를 세우자는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한사람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됐다. 국회의장 강창희였다. 강창희는 김오랑의 육사동기다. 그런데 하나회였다. 수석으로 졸업한 동기 김오랑은 소령으로 죽었다. 차석에도 못 미치는 강창희는 육사교수로 국회의장으로 승승장구 출세했다. 김오랑보다 잘나서 그런게 아니다. 하나회덕분이다. 사람이 양심이 있지? 내가 하나회의 은덕을 많이 받아 국회의장까지 됐다. 하나회가 죽여 버린 김오랑의 명예를 어떻게 살려준단 말인가?

정병주는 우울했다. 천주교에 심취하고 장태완과 12.12응징에 뛰어다녀도 우울했다. 88대선이후 더 우울했다. 대선에서 야당이 승리하여 12.12를 응징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양김이 나오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노태우가 당선됐다. 분하고 억울했다.

(문민 대통령이 당선돼야 부패한 군부세력을 응징하는 건데)

노태우가 당선됐으니 5년을 더 기다려야한다. 답답하다. 정병주는 여당이 국영기업체 사장자리를 준다 해도 거절했다. 야당의 영입제의도 사양했다. 그는 가끔 옷장을 열어 낡은 장군복을 꺼내어 입어보곤 했다. 아내가 이상하게 생각했다.

 

여보, 불명예로 쫓겨난 군대생활이 지겹지 않아요. , 낡은 군복을 꺼내어 입어보는 거예요?”

내가 할수있는 기술과 자격은 군인 밖에 없소. 비록 쫓겨난 몸이지만 난 영원한 대한민국의 군인이오. 그래서 예비역장군이라 하지요. 예비하고 있다가 조국이 부르면 전선으로 달려가는 장군이란 뜻이오. 조국에 전쟁이 터지면 이 옷을 꺼내 입고 전선으로 달려가려고 하오. 그래서 이 옷을 애지중지 하는 거요

 

정병주는 영원한 군인이었다. 군대말고는 아무것도 몰랐다. 정치도 사업도 몰랐다. 그래서 할일도 없었다.

돌아다니는 게 일이였다. 하는 일을 물으면 이렇게 말했다.

"하루 세끼 밥 먹고 하늘을 쳐다보다가 땅이 있으니 걷고 그리고는 잠자고내가 걷기를 무척 좋아해요. 울화가 치밀 때는 술병을 들고 구파발 서오릉 주변을 온종일 혼자서 터벅터벅 걷다가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자곤 했어요. 그러다가 서울 북쪽의 검문소 앞을 지날 때는 ‘12.12때 노태우가 9사단병력을 이끌고 어떻게 저곳을 통과했을까하는 생각이 나고."

19881016일 이었다. 명동성당을 다녀온 정병주는 저녁을 먹은후 집을 나섰다. 8시쯤이었다.

나 바람 좀 쐬고 돌아오겠소

그 날 밤 정병주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도 안 왔다. 바람을 쐬고 돌아오겠다고 집을 나간 정병주는 바람이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5개 월 넘게 돌아다니던 정병주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고양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경기도 고양 산속에 저녁이 찾아들고 있었다. 정병주는 걸음을 멈추고 어둠에 잠겨가는 산을 바라 봤다. 그때 산속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촉촉촉촉 쪼옥 쪽쪽쪽쪽....”

정병주는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소쩍새 울음소리를 따라갔다.

(집으로 들어가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을 할게 아니라 산속으로 들어가자. 옛날 촉()의 승상 제갈공명은 적은 병력을 갖고도 신출귀몰하는 병법으로 전선을 누비다가 죽어 땅에 묻혔다. 촉이 망하자 공명의 혼백은 산속으로 들어가 소쩍새가 되어 밤마다 조국을 위해 울었다고 하지 않던가? 내 죽어서 대한조국을 위해 밤마다 우는 소쩍새가 되리라)

한참 걸어 들어가니 커다란 참나무 하나가 산을 가리고 서 있었다. 나뭇가지에서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정병주는 걸음을 멈추고 참나무를 올려다봤다. 소쩍새가 놀라 어둠속으로 날라가 버렸다. 정병주는 소주병을 들이켰다. 연거푸 세병을 비우고 나니 취기가 올라왔다. 참나무위로 올라간 정병주는 소쩍새가 앉았던 나뭇가지에 붉은 나이론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끈에 목을 매었다. 그때 어디선가 소쩍새 우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촉촉촉촉 쪼옥 쪽쪽쪽쪽...”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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