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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선의 김재규복권소설
1941년 음력 9월 보름 경기도 평택군 현덕면 도대리 문곡 글갱이에서 이봉헌 이은혜의 셋째로 태어났다. 현덕초등 안중중 동도공고를 거쳐 평택대 감신대에서 수학한후 나사렛대학을 졸업했다. 목사 부흥사로 활동하다가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목회를 하면서 독자투고를 쓰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써본 “글갱이 사람들”이 단편소설로 당선되는 바람에 얼떨결에 등단작가가 됐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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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사선변호를 거부한 김재규

마지막 희망을 앗아간 12.12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7-05-17 (수) 12:51:20

           

마지막으로 나온 이돈명변호사는 강신옥이 파헤쳐놓은 상처들을 감싸면서 치유해 나갔다. 사랑과 용서를 호소했다. 워낙 덕망과 실력이 뛰어나 비굴해보이지도 어색해 보이지도 않았다. 이날의 변론은 드림팀처럼 완전히 법정을 지배했다.

! 우리가 이겼다

방청객들은 법정을 나가면서 박수를 쳤다. 속이 후련했다.

군부는 당황했다.

어떻게 된 거야? 국부를 죽인 패륜아로 몰려서 사선변호사구하기가 힘들거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대한민국의 일류변호사가 34명이나 달려와 김재규영웅 만들기를 하다니? 다음 재판부터 사선변호사가 못 나오도록 해야겠어. 나도 앞장서서 뛸 테니까 모두 노력해 보자구

군부는 김재규의 부인 김영희와 여동생들을 불러냈다.

사선변호사를 철수시키시오. 재판하다가 집안 망한다는 말은 변호사비가 원체 비싸서 그런거요. 변호사 한사람 대기도 어려울텐데 34명이나 된다니? 조상의 땅을 모두 팔아대도 힘들거요. 우리가 국선변호사를 마련해줄테니 비싼 사선변호인단을 철수시키시오

협박이었다. 그러나 김영희는 김재규의 처답게 당당하게 나왔다.

"고양이 쥐 생각해 주시니 눈물겹도록 고맙네요. 사실 우리는 도망갈 쥐구멍도 없는 생쥐신세랍니다. 당신들이 김재규장군을 고문하면서 우리재산을 모두 빼앗아버렸어요. 조상 땅까지 한 평도 남기지 않고 빼앗겨버려 변호사비로 쓸 돈이 한푼도 없습니다. 다행히 인권변호사님들이 무료로 변호해주겠다고 34명이나 달려왔지 뭡니까? 덕분에 변호사비는 걱정 안 해도 된답니다. 남편 김재규장군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죄인인 셈이지요. 국내최고의 엘리트변호사 34명의 변호를 받아가면서 재판을 받으니 말입니다. 비록 재판에 저서 사형을 당한다 해도 행복해 할 거예요. 사실 우리 가족들도 꼭 이길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재판을 하는 건 역사에 떳떳하게 재판기록을 남겨두기 위해서 이지요"

부창부수(夫唱婦隨)라더니 어쩌면 부부가 똑같을까? 34명의 일류변호사들이 모두 무료변론에 나섰다니? 군부측에 비상이 걸렸다. 김재규가족들은 의기양양 해졌다.

질 때 지더라도 기죽지 말자.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지 못하면 계란이라도 장렬하게 깨뜨려 김재규장군의 의거를 만방에 추상같이 알리자

1211. 4회공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12.12의 전날이기도 했다. 전두환의 쿠데타음모를 아는지 모르는지 피고측은 활기가 있어보였다. 김항규의 얼굴도 보였다. 어제까지 서빙고보안사 분실에 갇혀있었는데 풀려난 난 모양이다. 변호팀도 방청석도 활기가 넘쳐났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재판을 시작하려는데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김재규가 손을 번쩍 들고 일어선 것이다.

재판장님

김재규는 피고인 마이크 앞으로 다가가더니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나는 이 순간부터 변호인단의 변론을 거부하겠습니다. 혼자 재판을 받도록 해주십시오

변호인단 방청객 재판관 검찰관 모두가 놀랐다. 변호인단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김장군, 변호인단과 사전에 한마디 의논도 없이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우리가 장군님의 변호를 맡게 될 때 도 사전에 충분이 의논하고 나서 결정한일이 아닙니까?”

김재규는 어물거리면서 대답했다.

변호인들의 변론으로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 같아요. 10.26거사의 참뜻이 전달되지 않아 10.26혁명의 본질이 퇴색될 우려가 있어서 그럽니다

 

어느 누구도 그 말을 믿으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구나. 서빙고에 갇혀있어야 하는 동생 김항규가 오늘 방청석에 나와 있는걸 보면 어딘가 수상해?)

전날 밤 이런 일이 있었다. 전두환이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김항규를 찾아갔다. 김항규는 서빙고분실에서 지옥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전두환은 느물거리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김항규에게 말했다.

"항규, 얼마나 고생이 많은가? 나나 자네나 불가(佛家)의 신도로서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이일을 전생에 얽힌 업보로 받아드리세. 난 김재규장군을 선배로서 존경하여 왔네. 그러나 이번경우는 살아날 길이 없어. 사선변호사들이 아무리 애써도 안 되네. 기왕지사 이렇게 된 것 김재규장군 한사람만 희생하고 다른 집안식구들은 모두 안전토록 하겠네. 지금 이순간부터 자네친척들의 수사를 중단하도록 함세. 자네를 나가게 해줄 테니 사선변호사들을 찾아가 변호를 철회하도록 종용해 주게"

전두환은 자기의 권력을 침범하지 않으면 내버려두는 스타일이다. 친구 김복동의 역쿠데타를 알고도 병력이 없는 한직으로 보내어 모르는 체 했다. 최대의 라이벌 장태완을 제거한 후에는 선배님 선배님하면서 대접했다. 양산박의 도둑들처럼 남자다운데가 있다. 실제로 김항규를 석방한 후에는 더 이상 김재규의 가족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덕분에 부인 김영희는 못 빼앗아간 백억의 재산을 보존할수 있었다. 김영희는 그 돈으로 박선호와 박흥주의 자녀들을 대학 때까지 돕는다. 남편 김재규와 옥중면회에서 다짐한 약속이었다.

전두환은 그 자리에서 김항규를 풀어줬다. 그리고 나가는 김항규의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였다. 깜짝 놀란 김항규는 모든 걸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나오자마자 김항규는 변호사들을 찾아다녔다.

사선변호사팀을 철수해주세요. 전두환이 엄청난 일을 꾸미고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힘써봤자 모두 부질없는 짓입니다. 형님 한사람이 희생되고 우리남매 모두가 무사하게 살아남는 게 형님의 뜻인지도 모릅니다

 

사선변호사들을 찾아다닌 김항규는 밤늦게 김재규를 면회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김재규는 사선변호인단의 변호를 거부 한 것이다. 왜 김재규는 사선변호사를 거부했을까? 동생 김항규의 면회를 받고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그랬을까?

1212. 변호사를 거부한 김재규의 단독변론이 있었다. 김재규의 자기변론은 거침이 없었다. 변호사 이상의 해박한 법률지식으로 검찰의 공소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재규는 이런 말로 자기변론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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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독립선언서에 국민은 하늘이 내려준 자유 평등을 짓밟는 정부에 대항할 권리가 있다고 적시했습니다. 프랑스혁명을 이끈 1789년의 프랑스인권선언에도 독재정부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을 명시했습니다. 우리민족은 옛날부터 국민저항권을 행사해온 자유민주 민족입니다. 후고구려의 궁예는 스님처럼 깨끗한 임금이었습니다. 국가가 강성해지고 인기가 올라가자 궁예는 처녀 유부녀 할 것 없이 닥치는대로 엽색을 즐기는 폭군으로 전락했습니다. 백성들이 가만 놔두지 않았습니다. 궁예가 대낮에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자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몽둥이를 들고 쳐들어왔습니다. 도망가는 궁예를 보리밭에서 몽둥이로 때려죽였습니다. 윗물이 맑지 못하면 들고 일어나 저항하는 게 우리민족입니다. 그게 하늘이 허락한 국민저항권입니다. 대한민국은 헌법전문에 적혀있는 대로 자유민주국가입니다. 이를 박정희소장이 쿠데타를 일으켜 무너뜨렸습니다. 박대통령은 3선도 모자라 유신헌법을 공표하여 영구독재국가를 만들어버렸습니다. 내가 정보부장으로 있으면서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부마항쟁이후 국민들의 저항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대로 방치하면 3백만명을 학살한 캄보디아 크메르루즈의 킬링필드가 한국에서 벌어집니다. 2백만명만 죽이면 된다는 차지철의 건의를 받아드려 각하가 대량학살을 약속했으니까요. 유신독재로 망해가는 조국을 구하는 길은 민주회복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야수의 심장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습니다. 미국독립선언서나 프랑스인권선언에서 보듯 이는 민주국민의 정당한 저항권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중앙정보부장이기 이전에 대한민국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정당한 국민저항권을 행사했을 뿐입니다.”

12146회 공판이 열렸다. 사선변호사는 철수했지만 안동일변호사와 신호양변호사가 국선변호사로 나왔다. 그런데 김재규는 허탈과 공항에 빠져있었다. 전날 면회온 동생 항규로부터 12.12쿠데타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전두환이 하나회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형님 사람들인 정승화참모총장 이건영중장 정병주소장 장태완소장이 체포당한 끝에 강제 퇴역 당했습니다. 군부와 권력이 전두환손에 완전히 넘어가 버렸습니다. 이제 한국에는 박정희보다도 더 무서운 전두환독재시대가 올 것입니다

,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김재규는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졌다. 한참 후에 깨어난 김재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동생을 보내놓고 감옥 독방으로 들어갔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모든게 끝나버렸구나!)

김재규는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밖에서는 모든게 김재규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계엄사령관 정승화는 김재규의 우군이다. 정승화는 공개재판을 지시했다. 재판장에서 200명이나 되는 여자들의 이름이 공개되면 여론이 몽둥이를 들고 일어나 박정희를 부관참시하러 들것이다. 그러면 김재규는 살아난다. 서울근교 사령관중 가장 많은 병력을 거느리고 있는 이건영3군 사령관은 김재규의 오른팔이다. 서울시내에서 천하무적의 공수부대를 이끌고 있는 특전사령관 정병주소장은 김재규의 왼팔이다. 전두환과 앙숙인 수경사령관 장태완소장도 김재규라인이다.

그런데 전두환이 12.12쿠데타를 일으켜 정승화를 납치해갔다. 삼인의 장군들이 주축이 되어 육본이 전두환토벌에 나섰다. 수경사령관 장태완소장 특전사령관 정병주소장 헌병사령관 김진기준장이다. 죽게된 전두환은 거짓말로 육본측 병력의 서울진입을 막아버렸다. 그리고 몰래 하나회병력으로 텅빈 서울을 점령해 버렸다. 육본측이 장태완의 주장만 따랐어도 전두환은 끝장이었는데. 그리고 김재규는 살아나는 건데. 아까워라, 아까워!

(모든게 끝나 버렸어. 죽음만 남았어. 포기해 버리자. 그리고 모든걸 받아들이자. 죽음까지도...)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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