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유학생의 요람 ‘인터내셔널 하우스’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일본제국주의 강점기에 뉴욕은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근대 지식인의 양성기지이자 해외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맨하탄엔 이들 애국지사들이 가열찬 항일 독립운동을 펼친 유적지들이 존재한다. ‘글로벌웹진’ 뉴스로는 항일운동 초기 미주 한인유학생 등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한 사적지를 조명함으로써 한민족의 자긍심(自矜心)을 고취하고 2세 3세 자녀들에게 한민족의 정체성을 고양하고자 2020 ‘뉴욕항일 사적지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주지하다시피 항일 독립운동의 분수령(分水嶺)은 1919년 3.1독립운동이다.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시작으로 1907년 정미7조약,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등 강도적 불법조약으로 국권을 찬탈당한 이후 독립운동은 간도와 중국, 미국 등 해외에서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미주는 19세기말부터 지식인들의 유학이 시작되며 독립운동의 중대한 전초기지(前哨基地)가 되었다. 이들 유학생과 독립운동가들은 이국 땅에서 힘겨운 노동으로 마련한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보내고 미국의 언론과 정치인, 시민들을 상대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등 가열찬 독립운동을 벌였다.
그중에서도 뉴욕은 한인유학생을 중심으로 국권을 침탈한 일제에 대항하여 민족운동의 거점(據點)으로 독립 의지를 불태웠던 곳들이 여러 곳 존재한다. 맨하탄 123가와 리버사이드에 위치한 인터내셔널하우스(International House)는 초기 한인 유학생들의 거류지이자 여러 차례 집회를 열었던 곳이다.
1920년대 컬럼비아 대학교에 유학한 오천석(吳天錫) 장덕수(張德秀) 김양수(金良洙) 김도연(金度演) 윤홍섭(尹弘燮) 장리욱(張利郁) 이동제(李東濟) 등은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 소속으로 매년 열리는 ‘유학생 동부대회’를 인터내셔널 하우스에서 개최했다.
인터내셔널 하우스는 YMCA 관계자였던 해리 에드몬즈(Harry Edmonds)가 1909년 우연히 한 중국인 유학생을 만나면서 설립의 단초가 만들어졌다. 에드몬즈는 중국인 유학생이 지독한 외로움속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것을 보고 국제적 문화교류의 장을 구상하게 됐다.
에드몬즈의 계획에 날개를 단 것은 존 록펠러 2세(John D. Rockefeller Jr.)의 후원이었다. 토지와 건물을 제공한 것은 물론, 각종 비품까지 기증한 것. 인터내셔널 하우스는 건축가 루이 얄레이드와 마크 에이들리츠 앤 선스가 이탈리아식으로 설계해 1924년 개관됐다. 건물 외관은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1999년 미국 국립역사유적지 국제주택에 등재됐다.
뉴욕에서 공부하는 외국 유학생들의 교류와 친목을 위한 장소로 사랑받은 인터내셔널 하우스는 100개국 이상에서 온 700여명의 학생이 거주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약 10만명이 거쳐간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 내부엔 사진 등 각종 역사 기록들이 전시돼 있는 가운데 1939년 당시 학생들의 출신국 자료에는 중국(54명) 독일(46명) 캐나다(23명) 덴마크(23명) 일본(22명) 순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일본 유학생 가운데는 한국 출신이 절반 정도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터내셔널 하우스 인근엔 컬럼비아 대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고 서쪽 허드슨강 방향엔 그랜트 장군 기념관이, 그 아래 유서 깊은 리버사이드 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뉴스로가 취재하던 날 인터내셔널 하우스 남쪽 입구엔 태극기가 게양(揭揚) 돼 있었다.
태극기는 100년에 걸친 한인유학생들과의 남다른 인연을 말해주고 있지만 바로 앞 작은 공원을 돌아보다 보면 씁쓸한 역사의 아픔이 전해져온다. 이곳의 이름이 하필 사쿠라공원이기 때문이다.
일제는 1912년 현지 일본인 거류단체의 이름으로 워싱턴에 3020그루, 뉴욕에 2500그루의 벚나무 묘목을 기증했다. 워싱턴의 벚나무들은 포토맥 강 일대에 심어졌고 뉴욕에선 센트럴팍과 리버사이드팍에 1800그루가, 나머지 700그루가 이곳에 조성되며 사쿠라공원으로 명명(命名)됐다.
하물며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벚꽃들이 제주산 왕벚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당혹감을 무엇에 비기랴. 동양미술사학자 존 카터 코벨(1910~1996) 박사는 생전에 "1912년에 기증된 벚나무는 일본산이 아니라 제주도산 왕벚나무로 1910년에 처음 기증했던 2천그루가 병충해로 전량 소각된 이후 미국풍토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종자를 제주도에서 채집한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사쿠라공원엔 유럽식 가제보(정자)와 함께 일본식 석등이 생뚱맞게 세워져 있다. 모르는 이들은 사쿠라공원에서 미국과 일본의 ‘우정’을 떠올리겠지만 뉴욕의 한인들에겐 한세기전 민족의 고혈(膏血)을 빼먹은 일제의 만행을 감춘 위선(僞善)의 상징물로 여겨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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