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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압박에 우는 가련한 제주해녀”

백년전(百年前) 오늘 신문<35>
글쓴이 : 륜광 날짜 : 2024-05-06 (월) 16:33:51

백년전(百年前) 오늘 신문<35>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일제 식민지배하에서 친일파를 제외하면 힘들지 않은 이들이 없지만 제주 해녀들의 생활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924428일 동아일보는 제주 해녀들을 상대로 조합 가입을 강요하고 노예나 다름없이 착취하는 현실을 고발하는 기사를 올렸다. 엄연히 해녀들이 결성한 제주해녀조합이 있음에도 뒤늦게 결성된 부산어업조합이 경남 일대에서 잠업을 하는 제주 해녀들을 상대로 부산어업조합에 가입치 않으면 제주 보작이(해녀)들은 바다 근방에도 발을 못 들여놓게 한다고 하는 등 갖은 핍박을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녀들의 생각에는 우리 조선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에게 자유를 구속받고 압박을 당해 오는 여지에 더구나 우리 해녀들은 일본 사람들에게도 압박을 받고 조선 사람들에게도 압박 구속을 받으니, 이와 같이 구구한 이중생활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 깊은 바닷물 가운데 빠져 죽는 것이 상책이라는 결심으로 일시는 대 혼잡을 이루었다 한다...해녀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자를 보고 하는 말이, ‘우리는 제주도에서 생활이 곤란하여 여자의 신분도 돌아보지 않고 늙은 부모와 어린 자식을 이별하고 머나먼 이 천리(千里)의 대해(大海)를 일엽(一葉) 풍선(風船)으로 사고무친적(四顧無親戚)한 이 경남 해안에 출가(出稼)하여 수십 길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가서 지방 사람들의 기술로서는 도저히 구경도 못할 해조류를 채취하여 생활해 온 지가 우금(于今) 40여 년이 올시다. 그러나 지방 사람들은 우리를 대할 때마다 제주년이니, 보작이년이니 하고 사람의 대우를 아니 해 줍니다. 압박에 압박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내가 힘들어도 물건을 상당한 값으로 팔지도 못하고.. 10여 년 동안으로 지방 채주(債主)들에게 강제 집행이 되어 오도가도 못하고, 제주도의 운천(雲天)만 바라보고 가슴쓰린 눈물만 흘리는 사람도 수다하였습니다.’”

430일 동아일보는 돌연 일본 이재민 이주설을 보도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전년도 동경에서 발생한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일본인 이재민을 조선에 이주토록 하는 방침을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동아는 대구상업회의소에서는 지난 22일에 평의원회를 열고 일본 관동 지방의 큰 진재(震災)로 인하여 직업을 잃은 일본인을 조선에 이주케 할 방침을 세우라는 의미로 조선 총독에게 요망서(要望書)를 보내기로 의논을 하다가, 조선인 편 서상일(徐相日)씨의 격렬한 반대로 필경은 부결이 되었다 한다. 일본 관동 지방에 큰 지진이 있은 후 조선 사람은 얼마나 직업을 잃게 되었는가. 첫째 진재 이후로 일본에 가 있다가 조선으로 돌아온 노동자의 수효만 해도 50,000명 이상이라 한다. 둘째 소위 진재의 영향이라 하여 조선 안의 모든 사업 중지로 인하여 조선 안에서 직업을 잃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조선 안에 있는 실업자가 현재 100,000명은 되는 이때에 일본의 실업자를 또다시 오려 한다 함은 이 얼마나 미혹(迷惑)한 수작이며, 얼마나 잔인한 행동일까. 우리는 대구상업회의소에서 의논된 사실을 들을 때 멀리 미국 화성돈(華盛頓; 워싱톤)에서 배척받는 일본인의 정경을 가련히 생각하고 동시에 일본인 이민에게 생활의 길을 빼앗기게 되는 조선인 실업자의 전도(前途)를 위하여 암연(黯然)히 눈물의 흘림을 금할 수 없다.”

 

일본에선 관동대지진 발생직후 흉흉한 민심을 돌리기위해 재일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탄다는 등의 헛소문을 퍼뜨려 수많은 인명을 살상케 했다. 하물며 지진으로 인한 저들의 이재민을 조선에 보내 식민지 민중을 더욱 도탄(塗炭)에 빠지게 하는 수작질이 아닌가. 더욱이 대구상업회의소가 조선총독부에 요망하는 모양새를 만들었다니 자의든 타의든 영락없는 토착왜구의 짓거리가 참혹할 따름이다.

 

아카이빙 전문매체 근대뉴스(http://www.19c.co.kr/) 가 제공하는 백년전 기사를 소개한다.

 

비참(悲慘) 애상(哀傷)의 제주 해녀의 생활 (1924.04.28.) 동아일보

2천 리 해상을 일엽편주(一葉片舟)로 나와서

이중 압박에 우는 가련한 제주 해녀



 

요사이 부산어업조합과 제주도 해녀조합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서 그 내막을 매우 복잡함 모양이다. 부산어업조합은 작년도에 겨우 설립되고 제주도 해녀조합은 1922년도부터 창립되어 제주도에 본부를 설치하고 부산에 출장소를 두고 수 천명 해녀에게 생활난을 구제하기 위하여 자금을 대부하고, 음난 방탕을 예방하기 위하여 풍속을 개량시키고 해상 풍파에 위험을 무릅쓰고 참담한 생활을 수중에 맡기는 사업이므로, 만일의 경우에 생명을 보존해 주기 위하여 환난상구(患難相救)를 도모하고 해녀들이 살을 에이는 듯한 엄동설한(嚴冬雪寒)이나 산더미 같은 파도가 몰아드는 5~6월 염천(炎天)을 불구하고 넓고 깊은 바닷물 가운데서 채취한 해초 판매에 이익을 도와 주기 위하여 해초 공동 판매를 경영하는 등 해녀를 위하여 다대한 편의를 위하는 각종의 사업을 실행해 오는 중인데, 부산어업조합에서는 이익을 취하고자 하여 어떤 방면으로 야심을 둔 까닭이든지 해녀들을 대하여 말하기를, “부산어업조합에 조합원이 되지 않으면 경남 해안에는 어디로 가든지 입어(入漁)를 용서치 않겠다.”고 강제적 수단으로 수없는 압박과 고초를 주어 가며 조합에 가입하기를 권유하였으나, 인생의 이름만 띄고 이 세상에 나온 날부터 보고 배운 것은 물 가운데서 헤엄하고 배에서 닻줄 다리기와 노 젓는 것 밖에는 모르는 가련한 해녀들은 우리 제주도 사람들이 모여서 설립한 해녀조합이 있는 이상에는 남의 조합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고 단연 거절해 오는 원인으로, 작년부터 충돌과 분쟁이 일어나서 동래군 기장 방면의 어업조합에서는 말하기를, “우리 조합에 가입치 않으면 제주 보작이(해녀)들은 바다 근방에도 발을 못 들여놓게 한다고 하는 등 갖은 핍박을 받아오다가, 금년에도 416일이 해조류 채취를 시작하는 법정기일인데 금년은 해조 발육 상황이 양호하지 못하다 하여 아직 채취하기가 좀 이르다고, 오는 5월 초하룻날부터 시작하게 되어 경상남도 내에 거주하는 제주도 해녀조합원을 총계하면 2,000여 명이고 기타 종업자 1,000여 명을 합하면 약 3,000여 명의 해녀들은 걸머지고 수륙(水陸) 수 백 리의 원역(遠域)을 건너와서 자기들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해초를 절취하기 위하여 법정기일만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부산어업조합에서는 강제적 수단으로 해녀 10여 명을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유인하여 조합에 가입케 하고, 그 가입된 해녀들에게는 법정기일 전에 해초 채취를 용서한 까닭에 기일만 기다리고 잇던 해녀들과 서로 충돌이 생겨서 지난 24일 아침에는 해녀 20여 명이 부산 동삼동 방면으로 지나 가는데 그 지방 사람들은 무조건으로 배를 육지에 끌어 올리고 앞길을 막으며 행선(行船)을 못 하게 한 일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욕설과 폭행으로 고통과 압박을 준 일이 세상에 발포되게 되었다. 오늘까지 수없이 당해오는 고통과 압박은 오늘에야 비로소 두 줄기의 뜨거운 눈물과 가슴 쓰린 울음소리가 세상에 들리게 되었다. 그 광경을 당한 해녀들의 생각에는 우리 조선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에게 자유를 구속받고 압박을 당해 오는 여지에 더구나 우리 해녀들은 일본 사람들에게도 압박을 받고 조선 사람들에게도 압박 구속을 받으니, 이와 같이 구구한 이중생활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 깊은 바닷물 가운데 빠져 죽는 것이 상책이라는 결심으로 일시는 대 혼잡을 이루었다 한다. 눈물을 해상에 뿌리던 해녀 일동은 호소할 길이 없어서 방황하다가 부산 남빈정 제주도 해녀조합 출장소에 물밀 듯 모여들어 구제해 달라고 애원하던 즈음에,

 

연년(年年)히 부채에 오도 가도 못 한다고

해녀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자를 보고 하는 말이, “우리는 제주도에서 생활이 곤란하여 여자의 신분도 돌아보지 않고 늙은 부모와 어린 자식을 이별하고 머나먼 이 천리(千里)의 대해(大海)를 일엽(一葉) 풍선(風船)으로 사고무친적(四顧無親戚)한 이 경남 해안에 출가(出稼)하여 수십 길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가서 지방 사람들의 기술로서는 도저히 구경도 못할 해조류를 채취하여 생활해 온 지가 우금(于今) 40여 년이 올시다. 그러나 지방 사람들은 우리를 대할 때마다 제주년이니, 보작이년이니 하고 사람의 대우를 아니 해 줍니다. 압박에 압박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내가 힘들어도 물건을 상당한 값으로 팔지도 못하고 지방 문옥(問屋; とんや, 도매상)등의 무리한 수단과 간계(奸計)에 빠져서 빼앗기 듯 주어 버리고, 문옥들에게 부채만 해마다 더하게 되어 10여 년 동안으로 지방 채주(債主)들에게 강제 집행이 되어 오도가도 못하고, 제주도의 운천(雲天)만 바라보고 가슴쓰린 눈물만 흘리는 사람도 수다하였습니다. 가련한 우리들을 누가 구제해 줄 사람이 없더니, 제주도 인사의 고심(苦心) 진력(盡力)으로 당국의 양해를 얻어 1920년도에 비로소 우리를 구제할 제주도 해녀조합이 설립된 후로 우리들은 다대한 편의와 이익을 얻고 지방 사람들에게 노예 대우를 얼마쯤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천만 의외에 부산, 동래 2개 조합과 울산 5개 조합을 합하여 7개소에 지방어업조합이 성립된 후로는 우리를 지방어업조합에 가입하라고 모든 수단으로 유인하므로, 우리는 영영 거절하였더니 금년에도 이와 같은 압박을 또다시 받게 되었다.”고 설움에 북받쳐 울음 섞인 말을 겨우 끝을 마치었다.

 

해녀조합 간부 총사직

내막이 복잡한 듯

그다음 해녀조합에서 역사적 경력이 깊은 김태호(金泰鎬)군의 말을 들은 즉, “우리 해녀조합의 창립 이래 겨우 5개 성상(星霜)을 지난 성적을 볼 것 같으면 수중으로부터 취적(就積)하는 총액이 1921년도 공동판매고가 90,000여 원이고 1922년도에는 190,000여 원이고, 1923년도에 220,000여 원이고, 1924년도에는 부산, 동래, 울산이 군() 일부의 업어지 관할 내에 약 300,000원 가량 채취될 여망이 있습니다. 1년간 이만한 성적을 보는 까닭에 이번 문제도 아마 이해 관계로 이등(伊藤)조합장이 사표를 제출하고 각 신문지상으로 보더라도 조합의 간부 일동이 총사직을 한다는 말을 들은 즉, 내막이 매우 분규(紛糾)한 중인데, 본 조합에서도 전라남도청에 교섭한 결과 불원간 해결될 모양이라고.

 



변사자(變死者) 105 (1924.04.29.) 동아일보

작년 인천 경찰서 관내에서



 

사람이 세상에 생겨나서 타고 나 제 명을 마쳐도 죽음 밖에 더 서러워 하는 것이 없음은 인정(人情)의 오히려 당연한 일이거든, 혹은 자기의 잘못으로 변사(變死)를 당한 자도 많으며 제 명을 자기 손으로 또는 칼로 귀찮은 이생을 등 뒤에 두고 애닯게도 저생으로 발을 옮기는 가련한 사람도 많다 한다. 작년 1년 동안 인천 경찰서 관내에서만 변사를 당한 사람이 일본 사람이 14명이요 조선 사람이 91명 도합 105명이라는데, 그 죽은 종별을 보면 아래와 같다.

 


 

자기 잘못으로 죽은 자는 대개 피할 수 없는 재변(災變)을 만나 화재나 풍랑을 만나 죽거나 또는 차에 치어 죽거나 중독으로 인하여 죽은 것이라 하며, 자살한 자들의 원인을 종별로 나누어 보면

 

자살의 원인


이것을 남녀 별로 보면 남자가 16명이요 여자가 8명이라 하며, 더욱 비참한 것은 10달을 배어 낳았으나 먹일 길이 없어 내어 버린 것이 남자가 3명이요 계집 아이가 2명 도합 5명이라 하며, 그들은 모두 조선 사람이라 하며, 생활 곤란으로 자살한 자 중에 조선 사람이 7명이나 됨은 가벼이 볼 수 없는 현상이라 하겠다고.

 



 

일본 이재민 이주설 (1924.04.30.) 동아일보

10만의 조선인 실업자는 어찌 살꼬



 

대구상업회의소에서는 지난 22일에 평의원회를 열고 일본 관동 지방의 큰 진재(震災)로 인하여 직업을 잃은 일본인을 조선에 이주케 할 방침을 세우라는 의미로 조선 총독에게 요망서(要望書)를 보내기로 의논을 하다가, 조선인 편 서상일(徐相日)씨의 격렬한 반대로 필경은 부결이 되었다 한다.

일본 관동 지방에 큰 지진이 있은 후 조선 사람은 얼마나 직업을 잃게 되었는가. 첫째 진재 이후로 일본에 가 있다가 조선으로 돌아온 노동자의 수효만 해도 50,000명 이상이라 한다. 둘째 소위 진재의 영향이라 하여 조선 안의 모든 사업 중지로 인하여 조선 안에서 직업을 잃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아직 자세한 통계는 알 수가 없으나 조선 안에 있는 조선 사람의 실업자만 해도 현wo 적어도 100,000명은 될 것이다. 우리는 구태여 일본인이니 중국인이니 하여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의미로 만이 아니라, 우리의 실업자가 저들 보다는 더 급한 형편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조선 안에 있는 실업자가 현재 100,000명은 되는 이때에 일본의 실업자를 또다시 오려 한다 함은 이 얼마나 미혹(迷惑)한 수작이며, 얼마나 잔인한 행동일까. 우리는 대구상업회의소에서 의논된 사실을 들을 때 멀리 미국 화성돈(華盛頓; 워싱톤)에서 배척받는 일본인의 정경을 가련히 생각하고 동시에 일본인 이민에게 생활의 길을 빼앗기게 되는 조선인 실업자의 전도(前途)를 위하여 암연(黯然)히 눈물의 흘림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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