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百年前) 오늘 신문<31>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일본제국주의에 국권을 찬탈(簒奪) 당한지 14년이 지난 1924년, 동아일보는 4월 20일부터 23일까지 ‘봄의 설움, 봄의 기쁨’이라는 시리즈 기사를 게재했다. 세상은 온화한 기온속에 꽃이 만발하지만 나라 잃은 백성은 결코 봄을 즐길 수 없는 비참한 현실을 유려하면서도 사실적인 문체로 써내려간 기획특집 기사였다.
먼저 4월 20일엔 ‘춘광(春光)이 무색한 정신병자의 세상’ ‘오늘부터 밤놀이 한다는 창경원’의 풍경과 ‘애수(哀愁)의 동(東)8호’ ‘봄을 등진 세상’ 등 대비되는 제목으로 눈길을 끌었다. 환자들의 병도 조선인과 일본인은 다른 것인가. “조선 사람들에게는 전간증(癲癎症)이 많고 일본 사람에게는 매독에서 일어나는 마비성이 많으며..”라니 말이다.
“꽃을 보고 꽃인 줄 모르는 이에게 봄의 천사인들 무슨 기쁨을 그들에게 전하겠는가. 눈이 내리든 바람이 불던 그들은 다만 산 송장과 같이 죄없는 몸을 유치장과 같은 병실에 눕혀서 다만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이다” “동(東)8호를 찾아갔던 사람은 반드시 창경원 앞을 지나야 돌아가게 된다. 인간의 지옥에서 돌아오는 이에게 찬란한 봄빛과 즐거운 웃음소리가 무슨 회포를 일으키겠는가. 날마다 날마다 모여드는 꽃 구경꾼! 수 만 명, 수 천 명씩 드나드는 창경원의 봄놀이는 점점 가경(佳境)으로 들어가 오늘부터는 수 천 개의 전등을 밝혀 놓고 밤꽃 놀이가 벌어질 터이라 한다.”
4월 21일엔 ‘무심한 창파(蒼波)만 유유(悠悠)..죽을 사람을 기다리는 철교’에서 최근 들어 한강에서 투신하는 자살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을 전했다.
“한양을 옆에 끼고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 여기 잇는 한강 철교에는 그같은 봄철도 등에 지고 죽으러 오는 사람이 증가하게 되었다. 세상의 무정(無情)을 원망하는 사람, 먹고 살 길이 없는 사람, 사랑의 파멸을 당한 사람, 이러한 여러 가지의 사람들은 모두 한강 철교로 모여 들어 그들의 끝없는 원한을 시퍼런 그 물결에 풀어버리고 영원한 죽음에 잠기고자 하니, 한강 인도교는 철교가 아니라 원한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는 자살장(自殺場)이 되고 알았다.”
백년전엔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에 착취당하는 삶이 고단했다지만 선진국 문턱에 들었다는 대한민국은 왜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생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4월 22일엔 ‘성벽(城壁)을 격한 별세계 장충단공원과 신당리 화장장’ ‘고성(古城)에 비낀 잔연(殘煙) 지옥의 화장장’을 통해 담 하나를 놓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모습을 처연하면서도 감각적인 명문장(名文章)으로 전하고 있다.
“찰찰 넘쳐 졸졸 흐르는 개천가에 빨래하는 방망이 소리, 구름다리의 그늘 밑에서 조는 듯이 지저귀는 오래 떼의 합창, 비단 물결에 꼬리치는 금붕어와 푸른 잔디에 나물캐는 어린 처녀가 한데 어우르는 활화(活畫)의 한 폭은 한 조각 봄이라 하려니와, 굽이진 언덕마다 만발한 개나리의 요염한 웃음과 가벼운 바람에 휘늘어진 버들의 애교 많은 춤에 소리없는 노래와 냄새없는 향기를 탐하여 모여드는 수천 명 인생의 질탕한 놀음과 놀이는 진실로 천년만년의 봄을 한 곳에 모인 듯하였다.”
“송림 사이로 들리는 청춘의 속살거림이나 주점과 다점(茶店)에 낭자한 술상은 모두 봄을 맞이한 청춘의 자랑이니 방금 죽은 고기를 태워버리는 화장터와 성벽을 사이로 한 장충단 놀이터는 실로 구십춘광(九十春光)의 독무대이다...장충단 놀이터에 차다 못하여 넘치는 봄빛도 가로막은 광희정 성벽! 저물어 가는 석양의 쇠잔한 볕도 받지 못하게 하는 그 그늘 밑에서 검푸른 연기를 뿜고 있는 거구(巨軀) 장신(長身)은 날마다 날마다 4~5명 인생의 육신을 태워버리는 화장터의 굴뚝이다.”
4월 23일은 시리즈 마지막 글이다. 동아의 기자는 작심한 듯 남의 땅에서 권세를 누리는 일본인의 안락한 삶을 꼬집는다. “남산 왜성대에는 빛 고운 사쿠라가 좋은 봄철을 혼자 만난 것 같이 나무면 나무, 가지면 가지마다 꽃린 꽃은 필 대로 피며 이제는 아무 만발(滿發)이다. 그 검은 충충한 총독부도 꽃 속에 들어 있고 꽃밭 속으로 거니는 일본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가 흥에 취하여 아무 근심도 없는 것 같다.”
이어 기자가 찾은 곳은 ‘춘색(春色)조차 원한(怨恨) 불쌍한 죄수, 서대문형무소 현장’이다. “봄 놀이가 이렇게 어우러졌을 때 같은 서울 안에 있는 감옥 – 서대문형무소에는 세상의 불쌍한 모든 사람이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높이 둘러있는 돌담, 굳게 닫혀있는 쇠문, 아무 표정도 없는 문(門) 파수(把守)의 얼굴, 모두가 사람의 마음을 서늘케 한다. 굳게 닫힌 쇠문의 한편 작은 문을 열고 한 발자국만 들여놓으면 그곳은 벌써 사바세계(娑婆世界)를 등진 딴 세상이다. 현재의 이 사회와 이 환경에 대하여 불같은 불평을 품고 울분한 마음으로 속절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이 속에 있고, 멀지 않아 교수대에 오를 비극의 주인공도 이곳에 있으리라.“
가여운 식민지의 민중은 봄이 와도 봄을 느낄 수 없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다. 아카이빙 전문매체 근대뉴스(http://www.19c.co.kr/) 제공으로 백년전 해당 기사를 소개한다.
☯ 봄의 설움, 봄의 기쁨 (1) (1924.04.20.) 동아일보
가곡(歌哭)이 한 곳에서 교향(交響)
춘광(春光)이 무색한 정신병자의 세상
오늘부터 밤놀이 한다는 창경원
애수(哀愁)의 동(東)8호
봄을 등진 세상
봄은 왔다! 꽃은 피었다!

창경원의 꽃 소식이 가까워 오더니 총독부의원 동(東)8호 울 밑에도 씀바귀꽃과 개나리꽃은 그윽히 봄 소식을 전한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고 봄 소식을 등져서 까닭 모르는 웃음과 이유 없는 울음으로 날을 보내는 남녀 50명의 정신병자들에게는 고루 고루 내리는 봄의 은혜도 미치지 못한다. 꽃을 보고 꽃인 줄 모르는 이에게 봄의 천사인들 무슨 기쁨을 그들에게 전하겠는가. 눈이 내리든 바람이 불던 그들은 다만 산 송장과 같이 죄없는 몸을 유치장과 같은 병실에 눕혀서 다만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이다. 같은 병에도 조선 사람들에게는 전간증(癲癎症)이 많고 일본 사람에게는 매독에서 일어나는 마비성이 많으며, 환자 전체로는 정신없이 날뛰는 조발증(早發症)이 제일 많은데 조선 사람에게 전간증이 흔한 것은 대개 어렸을 때에 부모가 머리를 철없이 자주 때려서 그리 된 것이라고 북촌(北村) 의관(醫官)은 낯을 찡그린다. 봄이 되면 정신병은 발작이 더욱 심해진다. 그러하므로 창경원 봄놀이 꾼들의 웃음소리가 높아가면 동팔호의 신음하는 소리도 함께 높아간다. 애인의 이름을 부르며 팔을 벌리는 청녀, 조선의 왕이 되었다고 팔을 뽐내는 교원(敎員), 1억만 원의 재산을 찾아야 하겠다고 내닫는 중노인, 자나깨나 머리만 빗고 있는 처녀, 그들이 모여 사는 동팔호에는 영원히 봄빛은 그 낯을 잃고 마는 것이다.
환락의 창경원
봄을 맞은 세상
동(東)8호를 찾아갔던 사람은 반드시 창경원 앞을 지나야 돌아가게 된다. 인간의 지옥에서 돌아오는 이에게 찬란한 봄빛과 즐거운 웃음소리가 무슨 회포를 일으키겠는가. 날마다 날마다 모여드는 꽃 구경꾼! 수 만 명, 수 천 명씩 드나드는 창경원의 봄놀이는 점점 가경(佳境)으로 들어가 오늘부터는 수 천 개의 전등을 밝혀 놓고 밤꽃 놀이가 벌어질 터이라 한다. 가뜩이나 봄 한 철 꽃놀이는 창경원이 독차지를 해 오던 끝에 밤놀이까지 벌려 놓으면 얼마나 번창해 지겠는가. 고대하던 벚꽃도 23일, 24일 간에는 만개(滿開)가 딜 것이라 하며, 밤놀이를 위하여 입장하는 이에게는 입장료를 따로 10전씩 받기로 되었다 한다. 첫사랑에 가슴을 졸이는 청춘남녀들의 사랑을 속살거릴 새로운 무대는 그윽한 송림을 배경으로 크게 열리려 하는 것이다.
창경원을 밤에도 연다!
밤은 인간의 모든 향락을 고조(高操)시키는 마술꾼이다. 꽃빛! 불빛! 분 냄새! 숲속에 반짝이는 작은 눈동자들! 그것이 모조리 함께 얽혀져서 봄의 노래를 아뢸 때에 등성이 하나를 격한 동8호에서는 여전히 가긍(可矜)한 산송장들이 꾸물거릴 것이다.

☯ 봄의 설움, 봄의 기쁨 (2) (1924.04.21.) 동아일보
무심한 창파(蒼波)만 유유(悠悠)
죽을 사람을 기다리는 철교
춘흥(春興)에 열광한 가곡성(歌哭聲) 중에

기다(幾多)의 원혼(冤魂)이 울음 우는 철교
꽃피는 봄에 누가 살기를 원치 아니 하랴?
누가 꽃을 찾고 숲을 찾아 봄의 행락을 원치 아니하랴!
그러나 한양을 옆에 끼고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 여기 잇는 한강 철교에는 그같은 봄철도 등에 지고 죽으러 오는 사람이 증가하게 되었다. 세상의 무정(無情)을 원망하는 사람, 먹고 살 길이 없는 사람, 사랑의 파멸을 당한 사람, 이러한 여러 가지의 사람들은 모두 한강 철교로 모여 들어 그들의 끝없는 원한을 시퍼런 그 물결에 풀어버리고 영원한 죽음에 잠기고자 하니, 한강 인도교는 철교가 아니라 원한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는 자살장(自殺場)이 되고 알았다. 끝없이 고운 봄은 한양 일대에 무르익어 꽃향기는 바람에 나부끼고 새 우는 소리는 숲속에 요란하나, 한강 철교 하나만은 고운 봄도 등에 지고 출렁출렁 뛰는 물이 죽으려는 사람만 부르고 있다. 재작년 이래로 한강에 빠져 죽는 사람이 점점 증가하게 되어 관할 용산 경찰서에서는 오는 6월부터는 순사로 하여금 밤이 새도록 철교를 숙직하게 하고 경성부에서는 500촉 전등 4개를 증설하여 자살자를 방지하려 한다. 한강에 빠져 죽으려다가 구조된 사람은 부지기수(不知其數)이거니와 실상 빠져 죽은 사람의 통계는 얼마나 되는가?

재작년 작년
조선인 남17명 녀4명 남26명 녀4명
일본인 남2명 녀3명 남7명 녀5명
춘흥(春興)에 취한 가곡(歌曲)
노량진의 춘광(春光)
우는 자가 있으면 웃는 자가 있고 서러운 자가 있으면 기쁜 자가 있다. 봄철을 등에 진 한강 철교에는 암암한 빛만 가득하거니와 용금루(湧金樓)에는 봄빛이 무르익어 뛰고 춤추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가득하게 되었다. 용금루 좌우에는 개나리꽃 살구꽃이 어지러이 만개하여 고운 빛을 자랑하고 있으니, 달빛조차 새 맑은 향기로운 밤에 봄을 탐하는 풍류아(風流兒)들이 삼삼오오로 모여들어 한 잔 먹어 취한 김에 장구를 울려 노래하니, 용금루가 봄이던가 봄이 용금루던가. 끝없이 고운 봄은 그곳에 흩어 있다.
사람이 살면 몇 백 년 살까
젊어 청춘에 맘대로 놀자!
봄의 행락에 취한 그들의 마음대로 부르는 노래가 한강 물 위로 흘러갈 때 철교 위에 서 있던 원한을 가진 사람은 물에 텀벙 빠져 들어간다. 아! 이 어이한 대조(對照)이던가.
☯ 봄의 설움, 봄의 기쁨 (3) (1924.04.22.) 동아일보
성벽(城壁)을 격한 별세계
장충단공원과 신당리 화장장

춘광(春光)의 독무대
장충단의 춘흥(春興)
별 잘드는 남산 마루에 기어 오를 듯이 발돗음하는 장충단 놀이터에도 새 봄을 실은 신풍의 멍에가 이른 지 오래였다. 그리하여 생명의 감주(甘酒)로 알맞게 취한 진달래는 바야흐로 붉었다. 벌어질 듯이 다문 버찌의 입술에도 움키면 잡힐 듯한 신춘의 미소가 흘렀다. 찰찰 넘쳐 졸졸 흐르는 개천가에 빨래하는 방망이 소리, 구름다리의 그늘 밑에서 조는 듯이 지저귀는 오래 떼의 합창, 비단 물결에 꼬리치는 금붕어와 푸른 잔디에 나물캐는 어린 처녀가 한데 어우르는 활화(活畫)의 한 폭은 한 조각 봄이라 하려니와, 굽이진 언덕마다 만발한 개나리의 요염한 웃음과 가벼운 바람에 휘늘어진 버들의 애교 많은 춤에 소리없는 노래와 냄새없는 향기를 탐하여 모여드는 수천 명 인생의 질탕한 놀음과 놀이는 진실로 천년만년의 봄을 한 곳에 모인 듯하였다. 송림 사이로 들리는 청춘의 속살거림이나 주점과 다점(茶店)에 낭자한 술상은 모두 봄을 맞이한 청춘의 자랑이니 방금 죽은 고기를 태워버리는 화장터와 성벽을 사이로 한 장충단 놀이터는 실로 구십춘광(九十春光)의 독무대이다.
고성(古城)에 비낀 잔연(殘煙)
지옥의 화장장
장충단 놀이터에 차다 못하여 넘치는 봄빛도 가로막은 광희정 성벽! 저물어 가는 석양의 쇠잔한 볕도 받지 못하게 하는 그 그늘 밑에서 검푸른 연기를 뿜고 있는 거구(巨軀) 장신(長身)은 날마다 날마다 4~5명 인생의 육신을 태워버리는 화장터의 굴뚝이다. 검고도 다시 검은 양철 지붕의 험상한 모양과 우중충한 노송(老松) 사이에 해쓱한 비석(碑石)!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도 없이 선지피가 흐를 듯이 사태진 붉은 언덕에 꿈틀꿈틀한 수많은 뼈다귀의 높낮은 무덤에는 『살아나거라. 즐겨하여라』의 봄의 감로(甘露)가 흐르지 못 하였다. 지난 번 화재에 앙상한 뼈만 남은 천정의 가름대에도 과거의 누천(累千) 유령이 거꾸로 달리 듯하거든, 방금 거듭 닫힌 철문의 굴혈 속에서 마귀의 혀끝 같은 일곱 갈래의 불기에 부질부질 끓어 가는 사람의 고기덩이를 보고야 제 아무리 넓은 가슴의 소유자란 『봄』인들 찰라의 걸음의 멈출 수 있으랴. 이리하여 『귀불귀(歸不歸)』 무수한 죽음들은 불고개 칼고개를 넘을 뿐이요, 우거진 내나리 동산은 영원히 영원히 등지는 것이다. 방금 가마 속에서 기름이 마르고 살이 빠진 저 백골들은 엊그저께 무르 녹은 춘광을 탐하여 장충단 주점에서 송림 속에서 청춘을 아끼던 기억조차 못할 것이다. 혹은 행려병자로 길거리에 넘어질 때 혹은 전염병자로 순화원 마루에 거꾸러 질 때에 이미 봄을 등졌고 살을 태워 연기를 만들고 뼈를 부수어 가루를 만드는 지금의 이 화장터에서는 제단에 피운 두어 대의 마른 향기만 맛볼 뿐이니, 무너진 성벽 틈으로 새어오는 장충단의 봄소식조차 검푸른 연기에 사라지는 이곳은 참으로 음울한 지옥이요 암담한 저생이다.

☯ 봄의 설움, 봄의 기쁨 (4) (1924.04.23.) 동아일보
꽃 속의 왜성대(倭城臺)
복(福) 많은 사람
권세 있는 자의 날

옛 도읍터 서울에도 생명의 봄철은 돌아와서 봄비에 젖은 버들가지는 나날이 푸르러 간다. 서울에도 남산 왜성대에는 빛 고운 사쿠라가 좋은 봄철을 혼자 만난 것 같이 나무면 나무, 가지면 가지마다 꽃린 꽃은 필 대로 피며 이제는 아무 만발(滿發)이다. 그 검은 충충한 총독부도 꽃 속에 들어 있고 꽃밭 속으로 거니는 일본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가 흥에 취하여 아무 근심도 없는 것 같다. 아들 딸을 데린 어머니 아버지의 웃음소리도 들리고 사랑하는 이의 손목을 붙작보 기쁨에 널쳐서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린다. 지팡이를 끌고 완보(緩步)하는 노인, 사진기계를 들은 아름다운 청년. 모두가 사쿠라에 섞여 그림같이 아름답고 고와 보인다. 게다가 골짜기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는 봄의 평화를 지즐대는 것 같고 고개 너머로는 봄에 취한 이 사람들의 마음을 한 번 더 들썩여 놓는다. 아! 이곳은 참으로 봄동산이다. 권세있는 사람들, 돈있는 사람들, 그 외에 모든 복(福)많은 사람들의 봄놀이는 이곳에 이렇게 어우러져 있다.
춘색(春色)조차 원한(怨恨)
불쌍한 죄수, 서대문형무소 현장
한편에는 봄 놀이가 이렇게 어우러졌을 때 같은 서울 안에 있는 감옥 – 서대문형무소에는 세상의 불쌍한 모든 사람이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높이 둘러있는 돌담, 굳게 닫혀있는 쇠문, 아무 표정도 없는 문(門) 파수(把守)의 얼굴, 모두가 사람의 마음을 서늘케 한다. 굳게 닫힌 쇠문의 한편 작은 문을 열고 한 발자국만 들여놓으면 그곳은 벌써 사바세계(娑婆世界)를 등진 딴 세상이다. 현재의 이 사회와 이 환경에 대하여 불같은 불평을 품고 울분한 마음으로 속절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이 속에 있고, 멀지 않아 교수대에 오를 비극의 주인공도 이곳에 있으리라. 또는 살아생전에는 세상 밖 구경을 못 할 사람과 수십 년 후 백발이 흩날릴 때에야 겨우 세사에 나올 수 있을까 말까 한 신세의 사람들이 괴로운 세월을 보내고 있다. 유구(悠久)한 침묵을 지키는 푸른 하늘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무심하였으며, 봄을 즐기는 사람의 세상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원망스러웠으랴. 현재에 이 형무소에 갇혀있는 사람의 총 수효는 1,318명인데 그중에는 여자 죄수가 76명이 있다 한다. 여자 죄수 76명 중에는 살인 죄수가 제일 많아서 36명이나 되고 남자 죄수는 절도가 제일 많아 399명이라 하며 제령 위반에는 여자는 한 명도 없고 남자 30명이라 한다. 왜장터 사쿠라 밭에서 놀기에 싫증이 난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 따뜻한 자리에 누워있을때 이곳에 있는 붉은 옷과 쇠사슬을 몸에 지닌 이 사람들은 찬 자리 속에서 잠을 못이룰 것이다. 오! 느낌 많은 형무소의 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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