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법시스템 개혁을 위해 파견된 미주 한인검사가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의 독립통신사 뉴아메리카미디어(NAM)는 지난 16일 워싱턴주 킹 카운티 검찰 소속 스티븐 김(36) 검사의 사연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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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지난 1월 킹5 TV는 스티븐 김 검사가 한국 법무부의 ‘해외 법조인 연구위원’으로 위촉돼 2월부터 8월까지 한국 법무연수원에서 미국의 사법제도를 가르치며 연구를 하게 된다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김 검사는 한국 정부가 미국 배심원 재판 전문가를 찾던 중 킹 카운티 댄 새터버그 검사장의 추천으로 발탁됐다. 킹 카운티 검찰에서 강력 刑事裁判(형사재판)을 전담하는 김 검사는 지금까지 맡아온 100여건의 케이스 대부분을 승소하는 등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미국서 태어났지만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여느 2세들처럼 주말 한국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고 이따금 부모를 위해 通譯(통역) 노릇을 했다. 그가 남들보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은 워싱턴 대학시절 국제비즈니스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고급한국어를 구사하기 위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훈련을 위해 한국드라마도 열심히 봤습니다. 한자도 암기했구요.” 그러나 그는 비즈니스 변호사보다 재판정에 서는 것이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결국 한자도 외우고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할 필요는 없었던거죠.”
그러나 유창한 우리 말 실력은 새로운 기회를 안겨주었다. 한국의 사법시스템을 개혁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는 사법시스템을 재정비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미국의 선진사법시스템을 이식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배심(大陪審)제도를 도입한다는 계획아래 이 분야의 전문가인 김 검사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기를 바라고 있다.
NAM은 한국의 현행 사법시스템을 소개하며 지난 2007년부터 배심원제도가 도입됐지만 종종 배심원의 의견을 판사가 뒤집는등 시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검사는 치과의사인 부인 리나 김 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단기파견이어서 온 가족이 동행하기 어려워 6개월간 아이를 나눠 키우기로 했다. 어머니와 3살짜리 아들은 김검사와 함께 한국에 가고 아내는 5살짜리 딸과 함께 자택이 있는 시애틀에 남기로 한 것. 그 대신 봄 방학과 여름휴가때 아내가 딸과 함께 한국에 가기로 했다.
김 검사의 부모는 74년 이민을 온 후 구두수선 등 다양한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몇 년후 마침내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식당을 차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었다.
김검사는 학부와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식당의 카운터 일을 맡으며 부모 일을 도왔다. 그는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나를 위해 희생하신 것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다는 보람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의 법무부로부터 파견 제안을 받은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처음에 그는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가졌지만 아내가 “모국을 위해 돕는 일은 당신에게도 좋은 기회”라며 적극 권유한 것이 힘이 되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 그는 특히 3가지 이슈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한국이 배심원제도가 정착되야 하는 이유, 사법시스템이 부패와 증인매수로부터 단절되는 방법, 그리고 검사 선출 혹은 임명의 문제 등이다.
그는 “모국에서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전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부모님도 자랑스러워 하신다”면서 “한국에서 돌아올 때 정말 좋은 시스템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말을 듣는다면 충분히 만족한다”고 말했다.
뉴욕=민병옥특파원 bymin@newsroh.com
<꼬리뉴스>
“킹카운티 검찰청 인턴 통해 검사에 매료”
김 검사는 74년 미국으로 이민 온 김정철씨(64)와 신영은씨(62)의 차남으로 75년 매리스빌에서 태어났다. 에버렛의 캐스케이드 고등학교를 거쳐 워싱턴대학(UW)에 입학했다.
국제법을 공부하기 위해 법대 대학원에 진학했고 1학년때 인턴 과정을 킹카운티 검찰청에서 시작하며 검사직에 대한 매력에 빠졌다.
김 검사는 “대학원시절, 킹 카운티 검찰청에서 인턴으로 일한 것이 人生航路(인생항로)를 바뀌게 했다”며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 편에서 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기 때문에 평생을 바칠 만 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검사는 현지 한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렸을적부터 운동을 포함한 모든 일에 대해 승부욕이 가득찼었는데 인턴 생활을 하면서 검사직이 내 적성에 맞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법정에서 말과 행동으로 동양인에 대한 固定觀念(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백인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매력에 푹 빠졌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11년간 페더럴웨이 한인 김찬옥 여친 살인 사건 등 다수의 한인 관련 사건을 포함해 킹카운티 검찰청에서 무려 100여건 이상의 살인, 강간, 마약 등 중범죄 재판을 담당하며 경험을 쌓았고 대부분 특히 현 검사장인 댄 새터버그 검사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새터버그 검사장은 “한국에 배심원 제도를 알리는데 스티븐 김 검사 보다 적임자는 없을 것”이라며 “다만 김 검사가 한국 생활이 좋아서 한국에 계속 머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며 농담과 함께 깊은 신뢰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