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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위안부사진전 뉴욕타임스 등 주류언론 취재열기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3-03-25 (월) 14:39:46



 

미주 최초로 열리는 위안부 사진전에 대한 미 주류언론의 취재 열기가 뜨겁다.

 

지난 19일 뉴저지 팰리세이즈팍 코리아프레스센터 갤러리에서 개막된 안세홍(42) 작가의 사진전이 뉴욕타임스를 비롯, 뉴욕1, 버겐레코드 등 주류 언론의 취재경쟁이 이어지는 등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주최측인 미디어조아(대표 한지수)측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주류 매체의 관심에 인터뷰 일정을 조정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18일 뉴저지의 유력신문 버겐 레코드가 거의 한면을 할애(割愛)해 이번 전시회를 대서특필한데 이어 뉴욕유일의 로컬TV 뉴욕1이 20일 취재를 했다.

 


 

또 21일엔 뉴욕타임스가 전현직 기자 2명이 나와 안세홍 작가는 물론, 데니스 심 리지필드 시의원과 미디어조아 한지수 대표까지 인터뷰하는 등 특별한 관심을 표명했다. 이밖에 공중파 채널인 FOX-TV와 세계 최대의 온라인매체인 허핑턴 포스트와도 인터뷰 일정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언론의 이례적인 조명은 이번 전시회가 미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위안부 사진전이기도 하지만 중국에 남겨진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이라는 ‘희소성’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안세홍 작가는 2003년 서울 인사동에서 위안부 사진전 ‘겹겹’ 전시회를 통해 중국에 남겨진 피해 할머니들의 모습을 처음 소개해 반향(反響)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지난해에는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기획한 전시회가 극우 단체들의 압력으로 대관이 취소돼 소송까지 벌여 국제적인 조명을 받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우익 매체 두 곳이 취재를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미디어조아의 제이슨 박 기획이사는 “일본기자 중 한명은 지난해 5월 팰팍의 위안부기림비 철거압력을 넣은 일본자민당의원들과 함께 찾아온 사람이었다. 극우성향의 편향보도가 우려돼 인터뷰 약속을 잡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제의 성노예로 강제동원된 여성들은 무려 20여만명에 달한다. 이중 80%가 한국 출신이고 대만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심지어 태평양 전쟁 당시 아시아에 있던 네덜란드 호주 여성까지 있다.

 

아시아 각지의 전선에 흩어진 ‘위안소’라는 매음굴에 끌려간 이들은 태반(太半)이 전쟁중 사망했고 살아남은 이도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고통스런 삶을 살다가 숨을 거뒀다. 생존피해자 중 더욱 불행했던 것은 낯선 이국에서 버려진 채 고향땅에 오지도 못한 여성들이었다.

 


 

안세홍 작가는 아무도 조명하지 않았던 중국에 남겨진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을 10년이 넘게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그들의 피폐한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강원도 옥계출신인 안 작가가 처음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을 만나게 된 것은 96년 ‘나눔의 집’에 기거하던 할머니들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면서부터다.

 

그곳에서 중국에 남겨진 피해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알게된 그는 2001년 ‘한국정신대 연구소’의 일원으로 중국 상해를 비롯한 각지를 방문해 할머니들을 찾아나섰다. 당시 확인한 생존할머니들의 숫자는 약 40명, 안 작가는 “직접 만나서 인터뷰한 할머니들은 열두분인데 이제 단 네분만 생존해 계신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 21일 안 작가와 인터뷰한 뉴욕타임스의 데이빗 곤잘레스 기자는 약 3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군국주의의 야만적 행태를 취재수첩에 빽빽이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적게는 열세살부터 대부분 스무살 미만의 처녀들을 일자리를 준다고 속여서 데려가거나 여자도 군에 가야 한다고 끌고가고 심지어 납치까지 한 모집과정, 낮에는 군인들의 빨래와 허드렛일을 하고 밤에는 10명에서 20명을 상대하는 성노예의 비참한 삶, 성병과 치료주사의 후유증으로 죽거나 불임이 된 피해자들의 고통에 고개를 젓기도 했다.

 


 

곤잘레스 기자는 왜 중국에 있던 위안부피해자들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냐는 질문을 했다. 안작가는 “전쟁이 끝나고 일본군인들은 돌아갔지만 피해여성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대부분 버려졌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중국어를 배우고 자신들이 성노예로 착취당한 군부대 주변에서 생활하면서 2중 3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고 들려주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한국과 중국은 적국이 되었고 생존여성들은 영영 그리던 고향땅에 가지도 못하고 소식조차 전할 수 없었다. 안작가는 “일부 여성들은 살기 위해서 중국 남성의 첩으로 들어갔지만 대부분 불임(不姙)으로 자녀를 낳을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세월이 지나 또 홀로 고통스런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렇게 60년, 70년을 고향을 그리며 한많은 삶을 사셨다”고 전했다.

 


 

미국 매체의 잇단 보도덕분에 미국인 등 타민족 관람객의 비율이 한인보다 많은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인근 지역 주민들은 물론, 뉴저지 남부, 코네티컷에서까지 일부러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자넷 수지엘(포트리 거주) 씨는 “지역신문에 기사가 난 것을 보고 왔다. 정말 믿기 힘든 처절한 비극이어서 꼭 사진전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리지필드의 마르케스 씨는 “사진속 할머니들의 표정을 보니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한 눈에 느껴진다”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미디어조아의 한지수 대표는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난다고 하는 분들이 많다. 한장의 사진이 갖는 의미는 세상을 바꿀수 있을만큼 크다. 모쪼록 많은 분들이 방문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4월 18일까지 뉴저지 팰팍 파인프라자 2층 코리아프레스센터 갤러리에서 계속된다.

 

팰팍(美뉴저지주)=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할머니들의 한맺힌 가슴 잊지말아야” 안작가 서울신문 인터뷰

 

지난해 광복절을 앞두고 안작가는 서울에서 전시를 했다. 통의동에 위치한 ‘갤러리 류가헌’에서 ‘겹겹-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라는 제목의 전시회였다.

다음은 서울신문 기사 ‘김문이 만난 사람’.

 


 

지난 6일 오후 ‘갤러리 류가헌’에서 안씨를 만났다. 전시장 입구에 박대임 할머니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다. 깊게 파인 주름이 겹겹이 쌓여 있고 양손은 자신의 고향 지도를 매만지며 시름에 잠겨 있는 표정이었다. 일본에 이어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 제목을 ‘겹겹 프로젝트’라고 한 것은 ‘한 많은 세월 속에 주름이 겹겹이 쌓였다.’고 해서 그렇게 정했다면서 사진 설명을 해 준다.

 

“박대임 할머니가 지금 살아 계셨으면 100세인데 5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1934년 22세 때 한 살 된 아들을 업고 중국에 있는 일본군 주둔 지역으로 끌려갔지요. 2003년 중국 산둥반도 요산현 지역에 살고 계신 박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아들과 며느리 손자와 같이 살고 있더군요. 할머니 집에는 한국과 일본, 중국 등의 지도가 걸려 있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지도를 만져보며 고향(청주)을 그리워하곤 했지요.”

 


 

박 할머니를 어떻게 만났느냐는 질문에 “일본군이 주둔해 있던 곳에 가서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를 찾다가 수소문 끝에 만나게 됐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가 중국에서 만난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는 모두 12명. 그 가운데 벌써 8명이 세상을 떠났다. 현재까지 살아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도 대부분 90살 전후이기 때문에 아마 몇 년 후면 아픈 역사를 간직한 주인공들이 모두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70여년 전 한반도 전국 각지에서 끌려온 우리나라 처녀들은 몇날 며칠이고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몸을 중국으로 가는 기차에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지에 내던져진 꽃다운 처녀들은 또다시 일본군의 트럭에 실려 총칼의 공포에 떨며 만주에서 윈난, 태평양 연안에 이르기까지 전장의 위안소로 내몰렸지요. 그들은 아직도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채 한국과 북한, 타이완,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그는 위안부 할머니를 단순히 ‘위안부’가 아닌 ‘전쟁과 여성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의 의미도 그런 차원이라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박 할머니의 사진을 비롯, 13세 때 위안부로 차출당한 고(故) 배삼엽 할머니, 19살 때 위안부로 끌려간 뒤 현재 헤이룽장성 오지에 살고 있는 이수단 할머니, 20살 때 사시키라는 일본 이름으로 끌려간 고 박서운 할머니 사진 등 모두 40점이 눈물로 걸려 있다.

 

“지난해부터 일본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강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위안부 문제를 잘 모르더라구요. 정보가 차단돼 있고 왜곡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그동안 찍은 위안부 할머니 사진전을 열어 그 사실을 생생하게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도쿄에서 전시를 열었고 이번에 서울에서 전시를 하게 됐지요.”

 


 

도쿄 전시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8000명에 가까운 관람객들도 기대 이상이었지만 특히 20~30대의 젊은이들이 전시장을 많이 찾았다. 또 일부 뜻있는 관람객들은 ‘겹겹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싶다고까지 할 만큼 관심을 보였으며 위안부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지에 대한 앙케트 조사에는 1200명이 응답을 했다.

 

“홍보는 제 스스로 했습니다. 그동안 일본에서 무당을 주제로 사진전을 두 번 열었고 강연 등을 통해 나름대로 인프라를 구축했지요. 이러한 인맥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시 내용을 알렸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보고 난 관객들 중 일부는 전시 불가를 통보한 니콘살롱 측에 거친 비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가 맨 처음 위안부 할머니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996년 ‘나눔의 집’(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집)에서 자원봉사할 때였다. 당시 월간 ‘사회평론’에서 나눔의 집을 대상으로 화보를 찍었고 이 과정에서 안씨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처음에는 할머니들이 입을 열지 않았지만 역사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안씨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인터뷰에도 응했다. 2년 뒤인 1998년 창원 신세계백화점 갤러리에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제목으로 첫 전시회를 연 이후 지금까지 15년째 거의 매년 ‘위안부 할머니’를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많이 아는 듯하지만, 중·일전쟁 때 중국으로 끌려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릅니다. 그들은 일제에 의해 청춘을 짓밟혔고, 지금도 가난과 외로움에 타국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사진을 통해서나마 그분들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는 고등학교 시절 ‘전태일평전’을 읽으면서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항상 사진에 관심을 가졌다. 눈으로 본 것을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학생 신분에 무작정 ‘사회사진연구소’(사사연)를 찾아가 사진을 배우고 ‘사사연’이 문을 닫을 때까지 3년 동안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이후 절집과 무당집을 찾아다니며 사진 작업을 하다가 위안부 할머니로 방향 전환을 했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오는 10월 중순 다시 중국 후베이성과 헤이룽장성 등지로 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중국뿐만 아니라 타이완, 필리핀 등 다른 아시아 지역에 사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3년 후에는 전쟁과 여성 인권에 관심이 있는 세계 각국 사진작가들과 함께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 등을 순회하는 투어 사진전을 열겠다고 말했다. 이미 일본과 북한, 미국 등의 여러 사진작가들과 뜻을 함께해 놓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한·일 간의 감정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으로 이슈화하겠다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파인더 속의 할머니는 한 사람의 인간 그 자체였습니다. 깊이 파인 주름에서, 사방에 널브러진 손때 묻은 물건에서, 글썽이는 눈망울에서, 할머니의 한 맺힌 가슴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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