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속으로〉 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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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힘으로 맞선 사람만 기록되는 것이 아니다. 청주성을 되찾은 의병도, 신사참배를 거부한 학생과 교사도, 군사정권의 보도지침(報道指針)을 세상에 알린 기자도, 전쟁터로 나선 여성들도 모두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를 지켰다. 9월 6일은 그렇게 침묵을 거부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시대에 답한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는 날이다.
<역사 속의 주요 장면>
1592년 9월 6일 — 조헌과 영규, 청주성을 되찾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2년 9월 6일(음력 8월 1일), 의병장 조헌과 승병장 영규가 이끄는 의병·승병 연합군이 청주성을 공격해 탈환(奪還)했다. 관군이 쉽게 되찾지 못했던 성을 민간에서 일어난 의병과 승병이 힘을 합쳐 되찾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헌과 영규는 이후 금산 전투에서도 함께 싸웠지만, 순절(殉節)한 날은 9월 6일이 아니라 음력 8월 18일이다.
1937년 9월 6일 — 신사참배를 거부한 학교들, 문을 닫다
일제가 ‘애국일’을 정해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가운데 광주의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와 목포의 정명·영흥학교 등 기독교계 학교들이 이에 맞섰다. 학교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학교 문을 닫아야 했던 역설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이들 학교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 폐교됐지만 광복과 함께 다시 문을 열었다.
1950년 9월 6일 — 여자의용군 교육대 창설
6·25전쟁이 벌어지자 군인이 되기를 자원한 여성들이 나타났다. 1950년 9월 6일 부산에서 여자의용군 교육대가 창설되면서 한국 여군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가기록원은 이날을 여군 창설기념일로 삼고 있으며,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여성들이 스스로 국가를 지키는 역할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이다.
1986년 9월 6일 — 『말』, 권력의 보도지침을 폭로하다
1986년 이날 민주언론운동협의회는 월간 『말』 특집호를 통해 전두환 정권 당시 언론사에 내려오던 이른바 ‘보도지침’을 세상에 공개했다. 정부가 어떤 기사를 쓰고 빼야 하는지, 어떤 제목과 크기로 보도해야 하는지까지 언론에 지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기록을 세상에 내놓은 기자들과 언론인들은 탄압(彈壓)을 받았지만, 이 폭로는 한국 언론자유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1914년 9월 6일 — 제1차 세계대전의 마른강 전투 시작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바꾼 제1차 마른강 전투가 시작됐다. 독일군의 파리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반격에 나섰고, 며칠 뒤 독일군은 후퇴했다. 이 전투는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는 기대를 무너뜨리고, 4년간 이어질 참호전(塹壕戰)의 시작을 알린 중요한 전투가 됐다.
1991년 9월 6일 — 레닌그라드,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소련 붕괴가 진행되던 1991년 9월 6일, 러시아의 제2도시 레닌그라드가 옛 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되찾았다. 도시의 이름 하나가 바뀐 사건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혁명과 이념의 시대를 지나 자신의 역사와 정체성을 다시 찾으려는 사회적 흐름을 상징했다.
<오늘의 탄생 인물>
윤극영 (1903~1988)
1903년 9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동요 「반달」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이자 아동문학가로, 방정환과 함께 색동회 창립에 참여하며 어린이 문화운동을 이끌었다. 「고기잡이」, 「고드름」 등 수많은 동요를 남겨 한국 아동문화의 토대를 닦았다.
제인 애덤스 Jane Addams (1860~1935)
1860년 9월 6일 미국 일리노이에서 태어났다. 시카고의 헐 하우스(Hull House)를 세워 가난한 이민자와 노동자들을 돕고 사회개혁과 여성의 권리를 위해 활동했으며, 평화운동에 헌신한 공로로 193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존 돌턴 John Dalton (1766~1844)
1766년 9월 6일 영국에서 태어난 화학자이자 기상학자. 원자설을 발전시켜 근대 화학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기상 관측과 연구에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고 특히 적록 색맹(色盲)의 장애로 인한 차별을 딛고 훌륭한 화학자로 이름을 남겼다.
라파예트 후작 Marquis de Lafayette (1757~1834)
본명 쥘베르 뒤모티에. 1757년 9월 6일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미국 독립혁명에 참여해 미국의 독립을 지원했으며, 이후 프랑스에서도 자유와 입헌정치를 주장했다. 미국과 프랑스의 자유혁명을 연결한 상징적인 인물이다.
<오늘의 타계 인물>
이중섭 (1916~1956)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이중섭은 1956년 9월 6일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황소」와 「흰 소」, 가족을 소재로 한 그림과 은박지에 그린 은지화 등 독창적인 작품을 남겼으며, 가난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도 끝까지 그림을 놓지 않았다.
헨드릭 페르부르트 Hendrik Verwoerd (1901~1966)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강화한 정치인으로 1966년 9월 6일 의회에서 암살됐다. 그의 죽음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인종을 법으로 갈라놓았던 아파르트헤이트의 상처였다.
구로사와 아키라 Akira Kurosawa (1910~1998)
일본 영화의 세계화를 이끈 거장으로 1998년 9월 6일 세상을 떠났다.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 「란」 등을 통해 동양의 역사와 인간을 세계 영화의 언어로 확장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Luciano Pavarotti (1935~2007)
세계적인 이탈리아 테너 파바로티는 2007년 9월 6일 세상을 떠났다. 압도적인 성량과 대중적인 무대 활동을 통해 오페라를 전문 공연장의 예술에서 세계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넓힌 목소리였다.
<오늘의 한마디>
“역사를 바꾸는 것은 언제나 거대한 힘이 아니다. 때로는 ‘아니오’라고 말할 용기, 기록할 펜 한 자루, 끝까지 놓지 않은 붓 하나가 시대의 방향을 바꾼다.”
9월 6일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청주성을 되찾은 의병, 신사참배를 거부한 학교, 전쟁터로 향한 여성들, 권력의 보도지침을 폭로한 기자들, 그리고 가난 속에서도 그림을 그린 이중섭. 그들은 모두 거대한 역사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았고, 바로 그 작은 선택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다. 역사는 결국 그런 사람들의 기록인지도 모른다. 말할 수 없던 시대에 말하고, 두려운 시대에 행동하고, 절망의 시대에도 자기 몫의 빛을 남기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과거에서 배워야 할 가장 오래된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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