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속으로〉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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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정에 벼슬하지 않았으므로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허나 나라가 오백 년간 사대부를 길렀으니, 이제 망국의 날을 맞아 죽는 선비 한 명이 없다면 그 또한 애통한 노릇 아니겠는가? 나는 위로 황천에서 받은 올바른 마음씨를 저버린 적이 없고 아래로는 평생 읽던 글을 저버리지 아니하려 한다. 길이 잠들려 하니 통쾌하지 아니한가. 너희들은 내가 죽는 것을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 (吾無可死之義 但國家養士五百年 國亡之日 無一人死難者 寧不痛哉? 吾上不負皇天秉彝之懿, 下不負平日所讀之書. 冥然長寢, 良覺痛快. 汝曹勿過悲.)
매천 황현이 일제의 국권 탈취에 분연히 자결하며 남긴 시
<역사 속의 주요 장면>
1846년 9월 10일 — 재봉틀의 새로운 시대를 열다
미국의 발명가 엘리아스 하우는 이날 재봉틀 특허(特許)를 받았습니다. 기존의 재봉 방식과 달리 바늘과 셔틀을 이용한 잠금땀 구조를 발전시킨 그의 발명은 의류산업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작은 바늘 하나의 혁신이 사람들의 생활과 산업의 풍경을 바꾼 것입니다.
1898년 9월 10일 —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트 암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후 엘리자베트, 이른바 ‘시시(Sisi)’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 루이지 루체니에게 습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국의 화려한 궁정과 유럽 사회의 불안이 교차하던 시대, 한 황후의 죽음은 쇠퇴해가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1910년 9월 10일 — 일제, 헌병경찰제도를 확립하다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일제는 이날 칙령 제343호 「조선헌병조례」 등을 통해 헌병과 경찰을 결합한 통치체제를 확립했습니다. 일본 헌병이 조선인의 일상적인 치안과 경찰업무까지 담당하는 강압적 통치체제였으며, 이후 식민지배의 핵심적인 억압기구로 기능했습니다.
1919년 9월 10일 — ‘문화통치’를 내세우다
3·1운동 이후 새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가 조선 통치의 새로운 방침을 밝혔습니다. 헌병경찰 중심의 무단통치에서 벗어나는 듯한 정책을 내세웠지만, 식민지배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언론·교육 등의 제한을 일부 완화(緩和)하면서도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른바 ‘문화통치’는 결국 식민지배를 지속하기 위한 회유책(懷柔策)이었습니다.
1945년 9월 10일 — 광복 직후 여성들이 조직을 만들다
해방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이날 서울에서는 한국애국부인회가 결성됐습니다. 광복을 맞은 여성들이 새로운 나라의 건설과 사회 참여를 위해 조직적으로 나선 것입니다. 해방은 단지 나라의 주권을 되찾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1960년 9월 10일 — 산유국들, 석유 주권을 위해 뭉치다
이라크·이란·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베네수엘라 대표들이 바그다드에서 회의를 시작하면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역사가 출발했습니다. 당시 석유 생산국들은 국제 석유회사들의 가격 결정에 맞서 자신들의 천연자원에 대한 권리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자원에 대한 주권이라는 새로운 국제정치의 흐름이 본격화된 순간입니다.
1977년 9월 10일 — 프랑스에서 마지막 단두대형 집행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하미다 잔두비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면서 단두대(斷頭臺)가 마지막으로 사용됐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981년 사형제가 폐지됐습니다. 한 시대를 상징했던 형벌의 도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날은 인간의 생명과 형벌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의 탄생 인물>
존 소운 Sir John Soane (1753~1837)
1753년 9월 10일 태어난 영국의 건축가. 신고전주의 건축의 거장으로 영국은행 건축 등에 참여했으며, 오늘날 런던의 ‘소운 박물관’으로 남은 자신의 집과 소장품을 통해 건축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후대에 남겼습니다.
찰스 샌더스 퍼스 Charles Sanders Peirce (1839~1914)
1839년 9월 10일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난 철학자·논리학자. 실용주의 철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호와 의미에 관한 연구를 발전시켜 현대 기호학과 논리학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서 컴프턴 Arthur H. Compton (1892~1962)
1892년 9월 10일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난 물리학자. X선과 전자의 상호작용을 연구한 ‘컴프턴 효과’를 발견해 1927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으며, 현대 양자물리학 발전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오늘의 타계 인물>
매천 황현 (1855~1910)
1910년 국권피탈을 맞아 절명시 네 수를 남기고 9월 10일 순절(殉節) 했습니다. 관직에 나아가기보다 고향에서 역사와 현실을 기록했던 그는 『매천야록』을 남겨 구한말의 정치와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사료를 후대에 전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나라를 빼앗긴 지식인이 시대 앞에서 보여준 마지막 항변이었습니다.
엘리자베트 Elisabeth (1837~1898)
오스트리아 황후이자 헝가리 왕비. 1898년 9월 10일 제네바에서 암살됐으며, 화려한 황실의 상징이면서도 궁정의 규범(規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인물로 기억됩니다.
아고스티뉴 네투 Agostinho Neto (1922~1979)
앙골라의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대통령. 포르투갈 식민통치에 맞선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며, 1975년 독립한 앙골라의 첫 대통령이 됐다. 1979년 9월 10일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의 한마디>
“나라를 빼앗길 수는 있어도, 역사를 기억하는 마음까지 빼앗길 수는 없다.”
9월 10일의 역사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권력이 사람을 지배할 때 인간은 무엇을 지킬 수 있을까요. 역사는 거대한 권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매천 황현은 글과 절명시(絶命詩)로 시대를 기록했고, 식민지 조선의 여성들은 해방된 땅에서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몫을 지키려는 한 사람의 의지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작은 선택들이 모여 역사의 방향을 바꿉니다. 오늘도 우리는 묻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며,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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