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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공사 순국 110주년 러시아 기념식

상트페테르부르크 순국기념비 기려
글쓴이 : 김원일 날짜 : 2021-02-24 (수) 22:49:32

상트페테르부르크 순국기념비 기려

 

Newsroh=김원일 칼럼니스트

 

 

러시아 일간 상트페테르부르크베도모스티(이하 베도모스티)가 대한제국의 러시아 공사였던 이범진 공사 순국(殉國) 110주년 추모 기념식을 보도했다.

 

베도모스티는 18생명보다 조국을 더 사랑한 이범진공사제하의 기사에서 지난 126일은 대한제국의 러시아 공사였던 이범진 공사 순국 1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주상트페테르부르크 한국 총영사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시 대외관계 위원회가 참석한 가운데 이범진 공사 기념행사를 가졌다고 전했다.

 

기념식은 대한제국 공사관이 있었던 페스텔랴 거리 5번지 주택 옆과 이범진 공사가 안장된 세베르니 묘지(이전 우스펜스키 묘지) 이범진 공사 순국비 앞에서 열렸다.

 

대한제국 공사관으로 쓰였던 페스텔랴 거리 5번지 건물에는 2002년 이범진 공사의 기념명판이 설치되었다. 이 행사는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으로 시행되었다.

 

권동석 주 상트페테르부르크 한국 총영사는 기념사에서 이범진 공사는 한국 민족의 진정한 애국자였으며 그의 생애는 조국의 번영을 기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龜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범진 공사의 외고손녀 율리야 피스쿨로바 러시아 한국 독립운동가 후손 협회 회장은 이날 서울에서도 이범진 공사 생가 집터인 명동 서울중앙우체국 자리에 이범진 공사 기념 표지석이 설치되었다고 전했다.

 


이범진 공사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범진 공사는 1900년 대한제국 러시아 공사로 페테르부르크에 부임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후 모든 외교관이 귀국해야 했다. 그러나 이범진 공사는 페테르부르크에 남아 한국의 외교권 회복 활동을 벌였다.

 

1911126(구력으로 113) 이범진 공사는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1910년 일제의 한국 병합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자결했다. 당시 이 공사의 나이는 59세였다. 그는 세베르니 묘지에 안장되었고 현재 그 자리에 순국비가 설치되어 있다(정확한 매장 장소가 소실됨).

 

당시 이범진 공사의 자결을 통한 정치적 항의는 국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범진 공사가 독립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그의 조국은 그의 일생과 공적을 높이 기렸다. 한국 정부는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즉시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追敍)했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꼬리뉴스>

 

이범진공사 차남 헤이그밀사 이위종

 

이범진은 형조판서, 판의금부사, 어영대장 등을 지낸 조선 말기 무관(武官)이었던 이경하(李景夏)의 서자(庶子). 이범진은 조선말기와 대한제국 때 이조참판, 형조참판, 공조참판 등을 역임했고, 아관파천 직후 법부대신 직책에 올랐다. 2차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었던 이위종(李瑋鍾)은 이범진의 차남이며, 대한제국 군주제 부활 기원 성향 복벽주의 독립운동가 이범윤(李範允)은 이범진의 육촌 동생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다음 외국에 주재하는 대한제국의 공사관을 폐쇄하고 모든 외교관 철수를 명령했으나 이범진은 이에 불응하고 계속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주재했다. 1906년 일제의 강압으로 공사관이 폐쇄된 이후 주거지를 옮겨 1910년까지 여권발급 등 공사업무와 비공식적인 외교활동을 통해 국권 회복에 주력했다. 1907년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 특사단을 파견하고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영어, 불어, 러시아어에 능통한 그의 아들 이위종을 이상설, 이준을 돕도록 헤이그에 동행시켰다. 또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대한제국 특사단의 신변 보호를 청원하여 특사단이 헤이그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1908년에는 아들인 이위종에게 10,000 루블을 지참시켜 연해주에 파견하여 연해주 지역 항일 의병단체의 무장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특히 해조신문등 고려인들의 신문 발간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위종이 지참한 자금은 항일 의병들을 무장시키는데 사용되었고 이위종은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동의회의 조직 구성과 활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1만 루블은 현재 가치로 10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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