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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와 여성운동의 선구자였던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서거 소식에 많은 미주 동포들도 애도를 표명했다고 JNC TV가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6월 11일부터 13일까지 평화의 교회에 焚香所(분향소)가 마련되었고, 100명 이상의 조문객들이 분향소를 찾았다. LA 시민 단체 및 종교인을 포함하여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헌화와 묵념으로 애도를 표한 조문객들은 고인의 추모 영상을 시청하며 음식과 다과를 함께 나누기도 했으며, 인류의 평등과 평화,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일생을 헌신한 고인이 남긴 큰 발자취를 기렸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한인회관에 분향소가 마련되어, 영사관 및 한인회 관계자들을 비롯하여 일반인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헌화를 마친 조문객들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여성 인권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삶을 기억하고 함께 나누며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상 사진 JNC 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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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유엔총회 의장으로 기조연설한 최초의 한국여성
이희호(李姬鎬 1922-2019) 여사는 이화고등여학교,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 때 교육학과로 전과하여 수학한 후 1950년 교육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태영, 김정례 등 1세대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대한여자청년단(1950년), 여성문제연구원(1952년) 등을 잇따라 창설해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미 공군에 근무하던 감리교 크로 목사의 주선으로 1954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램버스 대학교(1954년 ~ 1956년)에서 사회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스카릿 대학교 대학원(1956년 ~ 1958년)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58년 미국에서 귀국 한 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사업학과 강사가 되었고 여성문제연구원 간사, YWCA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직 등을 역임하였다.
미국 유학을 다녀와 YWCA 총무로 일하며 여성계 지도자로 자리잡아가고 있던 시점인 1962년 5월 41세의 나이로 39세의 정치낭인 김대중과 결혼하였고 다음 해인 1963년 11월에 아들 김홍걸을 낳았다. 이희호는 감리교인이었고 김대중은 천주교인이었지만 서로의 신앙을 존중하는 관계였다.
이후 김대중의 정치 활동을 돕는 한편 공덕귀, 이우정 등과 함께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80년 김대중이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자 옥바라지를 하였고 그 때 주고받은 편지가 후에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희호는 김대중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세계 각지의 유력인사들에게 유려하고 호소력 짙은 편지를 보내 구명 운동을 펼쳤고 김대중의 미국 망명 생활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1997년 12월에 김대중이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대한민국 최초로 행정부에 여성부가 설치되는 데 역할을 하였다. 2002년 5월 유엔 의장국 대한민국의 대표로서 유엔 총회에 참석하였는데, 의장으로서 회의를 주재하고 기조연설을 한 최초의 여성이었다. <자료 출처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