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회향학적 원리(4)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자유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해방에 대한 갈망과 투쟁으로, 그리고 고뇌와 승리의 환희, 집념으로 점철되는 인간 역사이며, 바로 우리들 자신이 자유의 존재라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투쟁이 낳는 고뇌라는 것도 자유를 지향하는 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신성한 것이다. 자유는 자기 원리를 가진 자아의 구현이 완전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투쟁의 형태로 나타난다. 마치 불씨와 온기의 관계와 같이, 자유정신은 완전히 질식해 버리지 않는 한 일체의 속박과 질곡에 맞선 반항과 거부라는 투쟁의 모습을 띤다. 질곡 하의 자유정신은 투쟁의 장엄함에 비례해 강렬하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각성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흘렀고 이러한 각성 후에야
비로소 인간은 확장된 인식을 통해 현명한 투쟁을 벌일 수 있었다.
그러나 완전성을 자처하는 현존재는 유한한 현존재의 가련함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유한한 힘만을 가질 수 있을 뿐이고 그의 승리는 외견상의 승리일 뿐이다. 빌라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는 유한한 현존재의 가련함을 직시하여 현존재에 집착하지 않는 데에 기인한다. 우리는 언제나 완전성을 현존재와 결부함으로써 초래되는 무와 허무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존재는 부서지고 파괴되는 가운데 오직 하나의 지주(支柱)를 발견할 뿐이다.
그것은 자유에 대한 신념이다. 완전한 것으로 보이는 인식은 신념의 삶 앞에서 무력하다. 현존재의 완전성을 믿으며 종교와 신을 거부하는 세계는 옹색해지고 황폐해진다. 우리가 신과 종교를 거부하는 것은 지식의 명료성이 아니라 불확정성 때문이 고, 오직 투쟁 속에서만 찰나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 자체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우리는 현존재적 완전성을 거부해야 하지만, 완전성 자체를 직관하지 못하면 비극적 세계관에 매몰될 뿐이다.
물론 우리 자신의 직관 그 자체는 미약하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현존재적 완전성에 빠지지 않는 체계 속에서 전체적 전망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철학에서 유일한 전체적 전망은인간이 자유의 완전성을 향해 전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철학이 그 자유의 모습을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제시하지 않고 절대적인 것으로 확정하기에 이른다면, 우리의 철학도 몰역사적인 것으로서 소멸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인식 대상으로 삼을 때 경험상 자신의 근거로 받아들이는 현존재를 자신의 본래적 존재라고 의식한다. 그러나 의식 그 자체는 의식에 대해 타자인 여러 사회적 상황에 의해 제약되고 그러한 상황을 반영한다. 이 현존재적 의식은 정신의 전 영역, 무제약성까지 포괄하는 전체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러한 인식은 존재와 의식의 일치를 통해 그 긴장을 해소시키지만, 무제약적 완전성은 현존재의 명확한 자기 한계를 파악하고 현존재적 완전성에 빠지지 않는 긴장을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다.
단순한 현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은 결국 파멸한다. 현존재 자신의 ‘한계상황’을 아는 것은 무제약성에 다가가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존재의 자기 파악이 자기존재 자체가 아님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현존재적 완전성을 거부하고 무제약적 완전성에 대한 전망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현존재를 돌파하고 숨겨진 초월자인 존재 자체를 불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을 지닐 때 자신이 상실한 것이 새로운 모습으로 분명해질 것이다. 인간은 현존재적 완전성에 대해 솔직해져야 인간 이상도 인간 이하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된다. 그것은 바로 절대적 가능성 속에서 사는 것이기도 하다.
자유에는 무엇으로부터의 해방, 일체의 의존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자기존재, 과부족이 없는 자기존재의 충만 등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인간은 자각을 통해 이 자유가 현존함을 인지한다.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요소에서 우리가 분석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의 동적 성격과 목적 지향성이다. 그것의 목적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독립적 개인 단계에서 인간은 아직 자유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각에 의해서 그 최초의 실존을 감지하게 된다.
또한 인간이 궁극 목적으로 자유를 상정함으로 다시 역으로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임을 알게 된다. 이 자유의 개념과 자유의 실존이 원천적으로 인간의 속성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 자각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지 못한다. 즉 자유 자체가 우리에게 내포된 것으로서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감추어져 있고 잊고 있던 자기존재 내지 고향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존엄한 자기존재의 회복이다. 인간과 자유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며, 자유로운 인간은 바로 존엄한 인간이다. 우리가 어떤 목적을 가지게 될 때 그 원인으로 자유의지를 생각할 수 있다. 이때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소극적 자유는 자족⋅포만⋅무의지의 상태다.
적극적 자유는 자유의지에 의한 자유의 실현, 그것에 의한 세계의 실현이다. 소극적 자유는 해방에 대한 부정감을 수반하기에 부정적 자유라 칭할 수 있다. 인간행위의 주 원인이 되는 것은 의지다. 이 의지는 소극적 자유에서는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을 의욕하고, 적극적 자유에서는 자유의지라는 원인과 일치하는 완전성을 가 져올, 자유에 의한 완전한 복종을 의욕한다.
이 의지의 양면성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그것은 인간의 양면성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의지 역시 인간적인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인간 외부에서 주어진 것일 수 없다. 의지는 감성적인 것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 예지적인 것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로 대별된다. 내가 문제로 삼는 것은 자유에 관한 의지인데 그것은 예지적 의지이지만, 이 예지적 의지 역시 둘로 대별된다. 자유를 향한 의지와 자유에 의한 복종의지가 그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의지라는 것을 논할 때는 이미 감성적인 것의 획득을 위한 의지는 문제로 되지 않는다. 자유에 관한 의지만이 우리의 실지(失地) 회복을 위한 실마리를 준다. 의지는 우리의 결단을, 즉 방관과 포기에 의한 좌절이 아니라 기꺼이 그 목표를 위해 지속적 투쟁을 강행하겠다는 우리의 결단을 의미한다.
소극적 자유를 추구할 때 우리는 예지적 자유의지에서 출발하지만, 그 도달점은 감성적 대상이며, 우리는 이러한 대상에 의존 하게 된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완전한 목표가 아니다. 이때 우리는 일체의 투쟁이 종식된 완전한 자유에 도달할 수 없다. 인간은 소극적 자유에서 아직 소외와 갈등을 느낀다. 이는 소극적 자유가 아직 완전한 자유에 도달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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