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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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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16)

“노야만이 나를 슬프게 할수 있다”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0-11-22 (일) 23:49:23

노야만이 나를 슬프게 할수 있다


   

629, , 1975

일요일인데도 작업이 많다고 새벽에 깨워서 작업을 하라고 한다. 엿 먹어라. 새벽부터 삽을 들고 땅을 판다. 힘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다 하는 일인데. 어떨 때는 혹사당하는 나 자신이 미워지고 지금의 내가 저주스러워 죽어라고 땅을 파고 내 몸을 괴롭힌다.

 

고참들이 이젠 노골적으로 나에게 욕을 하고 때린다. 견디기가 힘들다.

여러가지로 특별대우를 받는 것이 그들의 비위를 상하게 한 모양이다.

터무니없이 시비를 걸고 괴롭힌다. 내 얼굴을 보이기 싫고 그들이 보기싫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닌다.

쨍쨍 내리쬐는 태양아래 혹사시킨다. 언덕 길을 오르락 내리락하게 하고.

왠지 오늘은 자꾸 울고 싶어진다. 그럴 땐 언제나 노야의 편지를 읽는다.

그리고 울음을 삼키고 입술을 베어물고 허허허 혼자 허공을 보고 웃는다. 대가리 박아 원산폭격, 그리고 몇째 동생같은 어린 놈이 젖꼭지를 당기며 모욕을 줄 때는 칼로 내 몸을 찢어버리고 싶도록 내 자신이 미워진다. 그럴 땐 노야를 생각하고 노야의 편지를 읽는다.

오후엔 고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배구사역을 하느라 그냥 뙤약볕 아래 서 있었다. 그냥 서 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도 이젠 없다. 그리고 그들은 남한강으로 목욕하러 갔다. 나 혼자 이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을 얻으려고 또 노야의 편지를 읽기 위해 가려운 몸을 그대로 말리기로 하고 빠졌다. 그들이 하는 욕설, 구타, 괴로운 환경이 날 슬프게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할키어 뜯는 이 인간성이 미워서 그렇다.

나는 항상 움직여 왔다. 모두가 죽음처럼 엎드려 있을 때도 나는 항상 고개를 든다. 그리고 본다. 지금 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두뇌를 빼버린 것 같은 군대에서 오직 나 혼자 생각하고 책을 볼려는 이 의지가 예전과 마찬가지로 나를 죽이고 괴롭게 만든다.

이유는 그것이다. 놈들이 나에게 눈총을 주는 이유도 그것 뿐이다. 하지만 그것 없이 사느니 차라리 고통을 감수하겠다.

나에겐 정적과 반복된 단순한 생활은 나를 질식시키고 오히려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아마 다들 목욕을 가는데 나 혼자 또 빠졌다고 욕하겠지.

그러나 나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노얄 생각할 시간, 이 종이에 노야와 얘기

할 시간. 최소한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나는 강하다,

그리고 강인하며 체념할 줄도 물러설 줄도 아는 지혜도 가졌다. 우선 며칠 간은 이 생활에 익숙해 보겠다. 그리고 난 뒤 기회를 찾겠다. 여기서 벗어 나갈 길을 찾아 보겠다.

노야, 네 말을 잊지 않겠다. 해가 뜨면 황혼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고 그리

고는 자기가 달려올 시간을 기다려 달라는 말. 내 뼈가 부서지고 피가 말라 없어지더라도 너만 있으면 난 살 수가 있다. 노야 사랑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기합을 받느라고 교회에 못갔지만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며 노야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노야가 다녀간지 일주일이 되었다. 노야 말대로 이젠 노얄 만날 시간이 일

주일 댕겨졌다. 어차피 보내야 할 3년이라면, 어차피 치루어야 할 3년이라

면 덤으로 사는 양 하고 보낼 수도 있다. 쓸쓸해지고 가슴이 아플 땐 창공을 꿈처럼 나르는 새들을 본다. 그 날개짓이 몹시 힘겨워 보이면서도 나의 넋을 싣고 훨훨 노야에게로 날아간다.

오후엔 비가 뿌린다. 하늘에 엉기는 저 먹구름, 핏빛의 구름이 소용돌이 치

는 모양이 무척 황홀하다. 지금 처마 밑에서 비를 맞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노야 슬퍼하지 마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사낼 가지게 될거요.

 

밤에 불침번을 서면서 진정 오래만에 역사철학을 조금 읽다. 예전에 이해되

지 않던 구절들이 조금씩 이해가 된다. 철학은 이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사변적 추리에 의해서 자명한 것으로 나타나나, 역사는 이성이 전제가 된다는 의미에 있어서 양자의 융합을 설명하고 있다.

 

멍한 정신과 피곤한 몸으로 읽는 글이라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어쨌든 책을 본다는 일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새벽 1시경 환자를 조금 돌보아 주다. 노야 잘 자.

 

 

****사랑하는 내님

당신이 늘 성경을 읽듯 저는 당신이 저에게 준 일기장 수첩을 늘 보물처럼 가슴에 품고 다니며 읽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결정체인 그 기록은 저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는 듯한 아픔을 줍니다. 저는 너무 아파 몸부림치지만 이제야 고통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떳떳함에 행복해 집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제 곁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무언가 채우지지 않는 허전함 외로움의 원인이 무엇이라는 것을, 당신이 제 눈 앞에 없을 때 왜 그렇게도 외로웠던가를.

 

이제 당신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어 오니 알겠습니다. 당신이 홀로 고독과

공포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당신은 제가 무슨 베아트리체나 되

듯이 생전 고민과 번민을 저에게 절대로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노야 힘들고 아파해야 할 것은 혼자서 다 할테니 니는 옆에서 해롱해롱 웃어

만 줘그렇개 늘 말하였지만 그렇더라도 제가 너무 우둔했지요?

 

73년 겨울부터 74년 봄 (**유인물만 지니고 있어도 구속될 때 전국에 유신철폐하자는 유인물 살포한 뒤) 내내 시무룩하고 지친 기색으로 당신은 불쑥불쑥 찾아 왔는데 그러지 않아도 항상 무슨 일 저지를 것 같은 당신 눈빛이 불안하고 박정희 싫어하는 당신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던 엄마

 

그때는 우리 집에도 무슨 일인지 집안 공기가 냉랭하고 엄마는 몸도 안 좋으신데 꼭 저녁밥 할 시간에 나타나는 당신이 엄마에게 눈치 보여 내 몰라라 하고 데이트하러 쏙 빠져 나갈 수가 없어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당신을 그냥 보낸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낙담하고 괘씸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당신이 그렇게까지 절박한 줄은 몰랐습니다.

 

74년 그 밤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429일 일요일 밤이었습니다. 집에 찾아 간 저에게 당신은 얼마나 쌀쌀한지 눈도 안 맞추고 어깨에 손을 대니 마치 송충이를 털어내듯 내 손을 털어 내더군요. 가슴을 칼로 베인 것 같이 쓰리고 아프며 버림받은 사람의 상처가 어떤 건지를 알겠습디다.

물어 보지도 못하고 영문도 모르는 채 쓰라린 마음을 안고 돌아 왔습니다. 시복씨도 당신과 시험공부 하느라 그 방에 자리에 있었지만 그 분위기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피해주더군요.

 

내가 싫어졌구나, 아 우리는 이제 끝이구나 눈앞이 캄캄했는데 얼마 있다 어떻게 해서 당신의 마음이 풀렸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악몽같아 생각조차 하기 싫어 왜 그랬느냐고 캐묻지 않고 덮어 버려서 생각이 안 나나 봅니다. 당신의 일기를 본 다음에야 나에게 몸서리를 치도록 싸늘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 때 당신은 극도의 공포에 시달리며 저를 찾으셨더군요. 왜 저에게 당신은 피를 말리는 고통에 대해서 아무 얘기를 해주지 않았습니까.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그랬다면 뭐라도 둘러대며 당신의 곁에 있어 주었을텐데

 

당신이 입대하고도 제 외로움만을 생각했습니다. 나만 홀로 되어 고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서러움 뿐이었습니다. 이제 저의 마음을 꽉 채워주는 당신의 애정에 몸이 떨려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외로워 하지 않고 몇 십년이고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무 여덟 밤만 자면 저는 달려 갑니다.

 

그런데 제 나이, 결혼 그런 따위가 무슨 걱정입니까. 나의 작은 천사라 하지 않았나요. 당신의 천사를 생각하고 하루하루 이겨내 주세요.

1975626, 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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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 , 1975

6월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나는 지금 대신면에 있는 1대대에서 이글을 쓰

고 있다. 깜깜해서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눈을 뜨자

마자 쿠사리 욕을 얻어먹다. 어린 놈들이 괘씸하다. 호미를 들고 오전 내내

밭을 매다. 오후에는 날 보고 또 ambulance에 타렌다. 3대대에서 구보가 있

다고 따라 가라고 한다. 이제는 ambulance 타기가 겁이 난다. 고참들의 눈총

을 받아야 하니까. 뒤에 따라가며 뛰고 있는 그들을 ambulance안에서 바라본다. 운전석 앞유리를 통해서 총 대포를 메고 뛰는 그들을 본다.

아카시아가 아름드리로 자란 시골길을 달리는 모습을 차에서 보면 마치 무성

영화 한장면처럼 애틋한 감을 불러 일으킨다. 아마 사랑 전우애란 저렇게 고

통과 아픔을 같이하는 사람들에게서만 생기리라. 의무중대는 노가다판이라

이런 피로 맺어진 전우애도 없고 군인도 아니고 하여튼 더럽다. 조금 달리

다 보면 길가에, 논두렁에, 수채에 혹은 똥통에 처박히는 병사들이 개거품을

물고 광란한다. 그들을 부축하고 차의 자리가 모자라 버스에 탔다.

대신에서 K.O 된 그들을 내려놓고 물을 뿌리고 인공호흡을 시키고 정신없이 뛰다가 1대대 의무중대로 가는 군용트럭을 타고 돌아왔다. 거기의 모습은 몬도가네를 무색케 한다.

 

고래고래 알 수도 없는 고함을 지르고, 발가벗고 똥을 싸고, 오줌을 싸고,

토를 하고, 처절한 모습이다. 나는 5% 포도당 주사바늘을 꽂고 간호한다.

밤이 늦어서 (1050) 피곤한 몸으로 돌아오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 그것은 정신을 잃고 허우적거리는 병사를 위생병이란 놈들이 때리고 놀리고 장난감 취급을 하는 것이다.

 

 

71, , 1975

7월의 시작이다. 볕이 몹시 따갑다. 맨날 하는 사역으로 일과가 시작된다. 오전엔 CR사격연습을 가다. 6발 쏘았는데 총이 나빠서 잘 맞지 않는다. 아주 못된 놈이 하나 있어 그 놈을 골탕멕이려고 갈겨버릴까 보다하고 은연 중에 공갈을 치다. 총을 놈 쪽으로 들이대기도 하면서. 약간은 재미있었다. 나 보다 조금 고참인데 어린놈이 잔소리가 몹시도 많다. 놈의 떠는 모습이 재미있다. 하하, 나도 어린애가 되는가 보다.

오후에 피마자밭에 똥을 주고 있으니 노야, 수남이, 성철에게서 편지가 오다. 수남이는 학보도 같이 부쳤다. 학도호국단인가 뭔가로 학생회는 해체되고 정신적 고통이 큰 모양이다. 모든 사물은 자기모순에 의한 반사물로 발전하는 것이니까. 그들은 전국가를 병영으로 만들고 있다.

심은대로 거두리라

노야가 쓴 편지를 남들이 뜯어보니 기분이 나쁘다. 여기엔 아무리 있어봐야 별 볼일이 없다. 어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노가다로 무익한 하루를 보낼 수 없다. 7월부터 낮잠시간을 1시간씩 준다. 이 시간에 나는 책을 본다.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거다. 그것은 쓰러지려는 나를 붙들려는 나의 필사적인 노력이다. 매일매일을 멍청하게 잡일을 하며 보낸다.

 

밤에 불침번을 서며 2시간 책을 보다.

밤마다 지난 날의 기억들이 또 나를 괴롭힌다.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전전반측하며 흘러간 애상의 상처를 씹다.

 

 

*****사랑하는내님

모처럼 푸근한 주말도 이제 한시간만 있으면 다 지나가 버립니다. 군에 가더니 예수쟁이가 되어버린 내 님은 교회에 가셨겠지요. 헤어진 지 넉달만에 당신을 첫 면회하고 온 후 몇 일 죽을 것같이 아프던 가슴이 이제 좀 가라앉았습니다.

 

사랑하는 내 님, 오늘도 당신은 서러운 하루를 보내셨겠지요. 생각하면 미칠것 같지만 내님은 그 어느 남자보다 강하고 지혜롭기에 견뎌 내리리 위로해 봅니다.

 

집 앞 논에서는 개구기 울음소리가 요란합니다. 거기도 개구리가 극성스레 운다고 했지요. 제가 당신 생각에 잠겨 하루를 보내듯이 당신도 제 생각을 하고 있을테니까 마음 든든하고 외롭지 않습니다.

 

그 어느 때처럼 당신은 볼 일 보고 있고 만나야 할 사람 만나느라 늦어지나 보다 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칩니다. 그래도 보고싶은 생각은 참기가 힘이 듭니다.

 

내 남자, 당신은 이렇게 말했지요.

이 세상에 노야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은 나밖에 그 아무도 없다

노야만이 나를 슬프게 할 수 있다.”

 

그러니 제가 행복하고 슬프지 않는 한 홀로 괴로워하면 안돼요. 그렇게 하는 것은 저를 배신하는 겁니다. 오늘은 제 생각을 얼마나 했나요?

 

오늘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개울에 가서 빨래를 많이 했어요. 비누로 주물주물 하고는 흐르는 물에 설렁설렁 흔드니 다 행궈졌습니다.

얼마나 수월한지 빨래하는 게 재미가 콜콜 났습니다.

 

죽변서는 우물물을 펴서 해야 하기 때문에 팔이 아파 죽을 번 했는데.

그래서 빨래할 때는 동네에 뒷짐지고 나가서 중학교 무시마 두어 붙들어 와 물 한 도라무깡 채워 놓고 시작합니다. 짜장면 사주면 좋다 하지요.

 

그리고 시장에 갔습니다. 아침에 공복에 참기름 한숟가락에 계란노란자를 섞어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해서 후배하고 참깨를 한되 사서 기름을 짜서 반씩 갈라 했어요.

 

건강해지지 않으면 미워질 것 같다 하더니 미워질 일이 없어질 것 같아 샘통입니다. 우리의 앞날에 더욱 믿음을 굳게 가지고 힘든 하루를 평화로운 저녁을 기다리며 웃으며 보내기를 빕니다.

 

학장 선생님께 곧 편지 올릴거고 중대장님 남상사님께도 고맙다는 인사

말씀 올리려고 합니다. 이제 자야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1975629일 노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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