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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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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18)

 “노야 네가 그리워 미치겠다”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0-12-19 (토) 11:35:30

 노야 네가 그리워 미치겠다”                            

 

   

78, , 1975

군에선 남여의 성적 행위를 야간레슬링이라 한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젊은 놈들이 모여 그런지 성적 충동이 강열하다. 그들은 영적 정신적 삶의 위대한 경지도 모르고 그 속에서 행복함을 느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내적 규정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맡바닥을 딩구는 삶을 살고 있다.

헤겔은 나에게 현실을 어느 정도는 용납할 수 있는 안목을 주었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에 숨쉬고 있는 신적인 속성, 즉 인륜, 경신,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가치도 불어넣어 주었다. 어쩌면 거대하고 보이지 않은 섭리에 의해 우롱되는 인간의 가치란 보잘것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란 그 자체가 발전적이고 이것은 순전히 인간의 신적 본질에 기인한다. 거기엔 인간 개인의 무한한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거다.

내 몸과 피는 뜨겁다. 그것은 위대한 삶을 살려는 나의 의지로 더욱 강열한 열을 더해간다. 노야의 피와 몸도 뜨겁다. 그것은 나와의 사랑때문에 노얀 뜨거워질 수 있는거다. 노야가 옆에 있을 때는 이 세상이 모두 내것인 양하다. 노야, 네가 그리워 미치겠다.

 

 

지금은 캄캄한 밤이다. 보초를 서면서 보이지도 않는 종이에 이 글을 쓴다. 생각하면 한이 맺힌다. 내가 여기에 왜 이러고 있나. 왜 모멸과 욕설을 견뎌야 하고 놈들에게 굽실거려야 하나.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이 발견되어 증오가 가슴에 부글부글 끓는다. 고참들 중엔 악질인 놈도 있다. 언젠가 나와 부닥칠 날이 올거다.

노야가 주고 간 돈을 얼마되지는 않지만 몽땅 잃어버린 걸 이 수첩을 방금 펴보다 알았다. 어떤 놈이 훔쳐간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떨어뜨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노얄 생각하는 기쁨이 있기에 감수하고 견딜 수 있다.

 

노야 사랑한다. 이처럼 너로 인해 피를 토하는 내 가슴에 여지껏 회의를 품고 있었다면 넌 천사를 가장한 작은 악마일지도 모른다. 캄캄한 밤에 흐르는 저 은하수, 가슴에 한이 맺힌다.

79, , 1975

노야, 지금 교회에 와 있소. 여기서 이글을 쓰고 있다오. 오늘도 그냥 변함없는 사역을 하며 하루해를 보냈소. 이런 생활이 습관이 될까 겁이 나오. 왜냐하면 습관이란 모든 대립이 정지된 상태이기 때문에 거기엔 발전도 기대할 수 없고 오직 자연적 죽음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오.

 

노야가 중대장께 편지 보낸 것은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소. 역시 예쁜 나의 비둘기요. 중대장의 배려로 이제 공부를 할 시간이 좀 생길 것 같소. 아직은 잘 모르지만 말이오. 중대장이 노야 편질 보여 주더오. 그래서 오후엔 책을 좀 봤소. 이제 내일이면 역사철학 1권은 다 읽을 것 같소. 방학해서 오실 때에 2권 갖다 주시오. 그리고 부대에서 역기를 만들어 매일 하고 있소. 노얀 내 넓은 가슴을 좋아하니까 부지런히 하겠소.

 

밤에 불침번을 서면서 신문을 보다. 국회에서 20여개의 법안이 무더기로 통과되었다고 한다. 내가 알고있는 법의 개념이란 민족정신의 내적 규정을 객관화하여 민족 구성원을 위해 현실적인 힘이 되도록 구체적 사항을 부여하는 것이 법일진대 과연 오늘의 한국의 법, 반공법, 국보법등은 정말 알지 못쾌라. 게다가 사회안전법은 또 뭐야!

710, , 1975

왠지 요즘 중대 분위기가 이상하다. 자기들 끼리 지지고 볶고 웃긴다. 쫄병들은 눈치를 볼 일만 자꾸 생긴다. 어제 밤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려 오늘은 아마 공치는 날이 될 것 같다. 신난다 비오는 날은.

 

새로온 신병이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을 가지고 와서 빌려 보고 있다. 인생사라는 건 그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보는 사람에겐 긍정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고 그 역으로도 성립된다.

밤잠을 계속 설친다. 왜 그런지 잠이 오지 않는다. 노야생각, 집에 가고 싶은 생각등 별별 생각으로 눈을 뜨고 그냥 누워 있다. 소펜하우어의 생각에 재미있는 것이 많다. 그는 인생을 철저하게 비참한 것으로 그린다. 사실 그럴지도 모른다. 인생의 길이란 형극의 길이니까.

 

그는 또 행복은 없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모든 예술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은 행복을 찾고 그것을 목표로 투쟁하는 과정에서만 얘기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목표에 도달하면 이미 얘기는 끝이 난다고. 왜냐면 주어진 우리의 환경에서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기 때문에라고 한다.

 

그래서 단테도 천국의 모습을 그릴 땐 애를 먹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는 지옥은 정말 real하게 잘 그리고 있다. 그건 우리의 현실 속에서 보고 있는 것이니까. 인간은 목적에 도달하면 그 뒤는 권태라는 더욱 잔인한 고통을 접하게 된다 한다.

그는 또 사랑과 성욕이란 장에서 인간의 모든 연애감정, 사랑의 느낌과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바치는 일체의 정열, 고상한 감정과 용기등은 모두 그 개인을 초월한 종족보존의 의지로 설명한다. 그래서 정신적 사랑은 육체적 결합으로 더욱 깊어지게 되더라도 육체적 결합이 부족 내지는 없을 경우에는

정신적 사랑은 파멸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신적 사랑 없는 순전한 육체적 결합은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남여가 부부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며 매음 등의 순전한 육체적 교접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후에도 계속 비. 노야에게서 편지가 오다. 나의 편지가 들어가지 않았는지 몹시 초조해하고 걱정하는 애절한 사연이다. 노야 사랑해,

나도 당신을 한시라도 생각을 안하고 있는 적이 없다오. 보초를 서는 지금도 당신을 그리워하며 가느다랗게 비치는 불빛아래 서서 이 글을 쓰고 있다오. 노야! 노야!

새로 온 신병놈이 괘씸해서 한차례 때린 게 잘못되어 내 팔목을 젖혀서 약간 아프다. 이유가 있어 때렸으나 사람을 치고나니 기분이 좋지 않다.

711, , 1975

11일 일기를 12일 새벽에 쓰고 있다. 동이 훤히 트는 아침이다. 새소리도 맑다. 날이 갈수록 여길 빠져 나가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똑같은 생활, 그냥 할 일 없이 바쁘기만 하다.

 

못된 고참 놈과 오늘 드디어 붙었다. 어린애같은 녀석과 싸우는 것이 우스운 얘기같지마는. 군대에선 하루라도 먼저 온 놈이 어른이다. 하지만 하도 욕을 하기에 충고를 한 것이 발단이 되어 놈이 나를 쳤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다. 예의 나의 그 배짱으로 죽여버릴테니까 잠잘 때나 언제 어디서나 항상 조심해 있으라는 말에 놈은 흠찟한다. 다시는 날 괴롭히지 못할거다. 간섭도 하지 않을거다. 이 얼마나 기분좋은 일이냐.

열심히 역기를 드니까 잠이 잘 와서 좋다. 이제 또 노얄 만날 날이 하루 당겨졌다. 사랑하는 노야! 항상 너를 생각하고 너에게 이렇게 대화할려면 이 세상의 어떤 말로도 내 사랑과, 너를 향한 나의 정열과, 나의 천사를 그릴 말을 찾지 못한다. 인간이 사랑이란 말을 발견한 것은 신대륙의 발견과도 비교될 만하다.

 

노야 사랑하오. 나에게 꽃길 따라 동동걸음치며 달려오오. 내 두 손 한껏 벌려 당신을 안을려고 이렇게 꿈 속에서도 허우적거리고 있다오. 노야! 나의 생명, 그 비둘기같은 손길로 나를 어루만져주고 상처받은 내 가슴을 포근히 싸매어 주오. 내게 어서 와 주오. 내 사랑 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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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 , 1975

계속 이렇게 일기가 지리멸렬하는 것은 수첩이 내 수중에서 떠나 있어 예전처럼 11초를 쪼개어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날씨가 더워져서 웃통을 홀딱 벗고 다녀서 수첩을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없다. 지금은 내무교육 시간인데 감춰서 쓰고 있다. 노야와 얘기하는 즐거운 시간이다.

종일 낫으로 제초작업을 한다. 이곳의 일이란 여름에는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풀을 벤다. 그러나 다음 날에 보면 또 그만큼 자라있다. 헤겔의 말대로 자연은 즉자적 모습에 있어서 분산성이고 반복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그는 정신을 파악할 때는 반항적인 물질을 파악하는 변증법적 방법을 항상 택하고 있다. 그는 정신을 정의하기 위해 그 반사물인 물질을 먼저 파악한다. 물질은 그 실체에 있어서 복잡성이고 그 발전적 과정에 있어서는 자신의 본질과는 반대물로 전진한다. 즉 하나의 관념성으로 된다고 한다.

본질적으로 모든 물질은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이 자신을 전개 내지 실현하여 하나의 개념이 될 때는 그것은 이미 물질이 아니고 관념적 대상이 된다. 즉 다시 말하면 하나의 통일태가 되었을 때는 시초의 본질과는 반대인 관념적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물질은 그 자신 속에 자신을 실현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것이기에 그것은 비자유다. 즉 물질은 통일태에 있어서는 이미 물질이 아니고 하나의 관념성으로 되어 버린다..

그런데 정신은 그 자의식에 있어서 자신이 자기를 실현하는 데 일체의 다른 외부적 인자를 필요치 않는 자신의 법칙에 의해서만 즉 자율성과 자신의 내적규정에 의해서만 대립의 과정을 통해서 자기발전을 하는 통일의 양태인 주체이며 자신의 양식으로 자신을 실현하는 완전한 자유이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정신은 자유이다. “네가 없으면 나는 살 수 없다라고 할 때 나는 너라는 존재에 결부되어야만 내 존재의 가치를 인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선 나는 자유일 수 없다. 자유란 그런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순수주권적 차원에서의 자유의 의미이고 이것은 객관적 자유 ----제도화된---로 발전지향 되어야 하지만

 

나는 차라리 노야 없는 나의 정신적 자유를 바라지 않는다. 노야가 있으므로 나는 비로서 존재할 수 있다. 노야 없는 자유의 희열을 택하느니 나는 즐거이 노야 있는 속박과 죽음을 택하겠다. 사랑이란 일체의 지성, 철학적 논리를 불식한다. 노야 사랑해. 불빛이 너무도 어둡다. 노야! 조금이라도 더 당신과 대화하려고 난 이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어.

매일 변화없는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하나님은 너무나 관대하오. 이런 단조로움에서 오는 인간의 권태를 덜어 주시려고 신은 계절을 바꾸어 주고 일출과 일몰로 그 모습을 달리하는 자연을 보여주니 말이요. 조금 전에 당신에게 보내는 2통의 편지를 학교와 조선생댁으로 띄웠다오. 내 편지가 들어가지 않아 기다리는 당신의 모습 안타깝고 애처럽소..

나는 건강하오. 이제는 중대원들도 나의 페이스에 따라오고 있소. 내 자신을 현현할 멋진 계획도 이젠 머리 속에 구상이 되어 있소. 걱정할 일은 전혀 없소. 당신과 김중명 선생님의 글을 받았소. 오늘, 이리 오신다고 했던데 아직 오실 날이 되지 않았잖소. 오늘 당신이 올까봐 종일 마음을 졸였소. 보초를 서면서 하늘을 나는 유성에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짧은 순간에 당신이 오시지 말 것을 빌었다오.

 

지금 일요일 새벽 1시요. 노야! 오시지 않아도 되오. 방학되면 오시오. 나는 건강하니까 그 전에 무리해서 오실 일이 없잖소. 사랑하오, 노야. 불빛이 어두워 눈이 피로하오. 안녕.

 

 

****내님께

낮에는 두시간 가량 탁구를 쳤더니 다리가 아파요. 얼마 만에 해보는건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오늘도 소식이 없고 아무리 마음을 가라 앉히려 해도 시시각각 더해오는 불안감에 미칠것 같군요. 별일 없겠지요? 혹시 우리가 민가로 찾아들어간 것 땜에 뒷탈이 났는지 더 이상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안되는데.

 

만사를 제껴놓고 달려갈까 합니다. 이번 금요일까지 기다려 보고 소식이 없으면 토요일 새벽차를 타고 가겠어요. 이제 더는 당신이 고통받는 거 참을 수가 없어요.

 

어제 당신과 중대장님께 편지 띄웠어요. 중대장님께는 벌써 세번째 글이 됩니다. 저는 잘 있고 밥도 악착스레 해먹습니다.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기쁨이란 제가 어느 여자보다도 건강해지는 게 아니겠어요. 만날 때마다 부탁한 밥 잘먹으라는 말이 당신이 곁에 없으니까 뼈에 사무쳐 옵니다. 운동도 이제 뭐든지 하라는 것은 즐겨 하겠어요.

 

혼자 쭈그리고 앉아 저녁을 먹고 있으려니 제 친구가 놀러 왔어요. 여고동창인데 이곳에 있는 여중에 근무하고 있어요. 여기는 학교가 많은 읍이라 선생하러 와 있는 동창들도 더러 있어 적적할 일은 없어요. 당신만 생활이 나아졌다 하고 편지만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면 뭐가 부족하겠어요.

 

개구리 울음소리가 제 방까지 크게 들립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 박혀 있고 신비스런 은하수가 길게 깔려 있는 아름다운 밤입니다. 친구를 바래다 주고는 집 앞 개울물에 얼굴을 씻고는 한참을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저 별보다도 더 빛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당신은 절 지켜주니 뭐가 두렵겠어요. 당신을 차지한 저는 세상이 눈 아래 보이고 잘나 하는 사람을 보면 흥! 하고 조소가 나옵니다.

 

내 마음은 애타는 갈망으로 마구 흔들리고 있는데 세상은 너무나 평온하고 밤은 고요히 깊어 갑니다. 빨리 소식받고 싶어요.

791975, 노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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