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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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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마당에 온통 별가루가 뿌려져 있죠”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20)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1-01-04 (월) 22:33:09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20)  

 

716, , 1975

어제의 피로 때문에 힘이 들어 오늘은 푹 자고 일어났다. 그냥 또 종일 풀을

베고 노가다처럼 일을 했다.

 

오직 하나의 욕망이 있다면 노야를 만나는 일이다. 이젠 이곳 생활도 약간 익숙해져서 견디기에 과히 괴롭지 않다.

그저 그런 하루였다. 오후에는 배구사역을 하였다.

717, , 1975

오늘은 제헌절이라 휴무다. 더럽게도 할 일이 없으면 군바리들은 일꺼리를 만든다. 근무중대, 수송중대, 본부중대가 종일 돈따먹기 배구시합을 한다. 아침부터 깜깜할 때까지 한다. 힘도 좋다. 우리 중대가 4000원 땄다. 어제 배구 할 때 손이 좀 삐었다. 엄살로 붕대를 감고 다니니 나

보고는 오늘 배구하자는 소리 안 한다.

제상열 병장이 나를 불러 무척이나 고맙게 해준다. 제병장은 좋은 친구다.

언젠가 보답을 해야 하겠지. 이제 내 사랑 내 님이 주고 가신 이 수첩도 한

장이 남았다. 보고 싶다. 나의 천사 노야, 이제 10일만 있으면 당신을 만

나오.

까뮈는 역시 박학하고 동양인과는 특히 이 저주받은 한국에 사는 사람과는

그 역사적 배경이 너무나 달라 읽기가 어렵다. 유럽의 정신, 그 긴 철학의 역사와 문학의 역사에 가까이하지 못한 우리에겐 생소하게 느껴지는 인물도 많이 출현한다.

 

그러나 낭만주의, 초현실주의, Maxism, Dandyism 등 각 사상을 반항의 측면

에서 보는 것은 역시 위대한 발견이다. 형이상학적 반항이 줄곧 부정만 하고 긍정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외관적인 것에 불과하다. 부정이란 자신의 행동을 유도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역시 외관적이다. 그러나 이 현실을 긍정하고 있는 그대로 찬미하게 되면 그는 조만간 행동하게 된다.

내 사랑 님이 주고 가신 수첩도 한장이 대롱데롱 남았다. 나는 노야에게 많

은 얘기를 남겨야 한다. 그래야 한시도 헤어져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건강해 지겠다는 약속, 이젠 정말 훌륭한 여자, 풋냄새 나지 않고 익어

서 향내가 물씬나는 나의 숙녀가 된 것 같다. 그동안 너무 붙어 있어서 그리

고 거의 매일 보아 왔기에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난 여지껏 그냥 나의 작은 천사로만 봐 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고요

한 밤 나 혼자 노얄 생각하는 시간에 내 눈에 어리는 그녀의 모습은 이미 귀

여운 나의 공주이기엔 너무도 힘있고 강열한 여자다. 하늘아래 어느 여자가 그처럼 가슴이 넓고 따뜻하며 헌신적일 수 있을까.

4개월만에 만난 노야의 모습은 전과는 너무도 많이 변해 있었고 자신감

에 넘쳐 있었다. 사랑한다 나의 마돈나. 지금은 새벽 5, 밖에 나오니 안

개가 자욱하다. 진하게 퍼진 안개 속에서 나는 님이 계신 곳을 향해 선다. 두손을 모아지고 부모님과 노야와 형제들의 건강을 기도한다.

보편이란 모든 특수적인 것의 파괴로 결과된다. 특수의 지양이 보편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진리를 찾으려 하고 새로운 신이 될려는 모든 노력은 일체의 사실을 직관으로 본다. 그것은 지금까지 풍미하던 덕과 보편과 질서와 일체의 안보적 사실을 거부하므로 살인을 허용하게 되고 파괴를 동반한다.

718, , 1975

님이 주신 수첩이 다 되어 오늘 새로 시험지를 오려 묶었다. 이 종이를 다 채우고 나면 노야가 오리라는 기대에 가슴이 뛴다. 새벽 안개가 자욱이 끼여 있더니 종일 날씨가 무덥고 텁텁하다. 아침은 건빵으로 때웠다.

군의 규칙이 1개월에 몇번은 건빵으로 식사를 대용한다고 한다. 차라리 편해서 좋다. 오늘은 작업이 없으니 쓸데없는 교육을 한답시고 사람을 질질 끌고 다닌다.

어린 병사들은 참 잘한다.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깔깔 웃기도 한다. 난 그들

처럼 되기엔 역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듯 하다. 오늘은 아무리 찬스를

보고 짬을 낼려고 해도 기회가 안 난다. 이 정도의 노력, 이 정도의 집념이

라면 어딜 가더라도 책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몹시 덥고 불쾌지수가 높다. 거기다 모자도 안 쓰고 쭈그리고 다니자니 짜증이 난다.

 

언젠가 내 사랑이 준 글의 한 귀절이 생각난다. 바쁘고 힘든 하루를 마치 저녁의 그 평온한 순간을 위해 사는 것 같다고, 하기야 그 몸에 돈을 버는 생활 교직 생활이 얼마나 고달푸랴. 그리고 못난 놈의 애인인지 약혼자인지, 똥걸레 같은 친굴 그토록 그리워하고 또 마음도 써야하니 심신의 피로가 오죽하겠는가. 지금은 19일 새벽 5시이다. 밖에 나와 죄스러움에 송구함에 머릴 처박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난 언제나 내 주의로 만사를 생각한다. 노얀 내 사랑만 먹고 살 수 있으니 우린 그렇게 아름답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며 지낼 수 있으려니 하고 생각해 왔다. 사실 나의 천사도 그러하리라. 그러나 세상을 봐라. 저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들을 봐라. 마치 사람을 흥정하고 거래하는 물건처럼 정을 주다가 계산이 안 맞으면 돌아서 버린다. 그런데 노얄 봐라. 아름답고 천사같은 사람을 난 이토록 애를 먹인다.

노야를 생각만 하면 내 자신이 그렇게 못나고 못 생길 수 없다. 니가 뭐냐, 뭐하는 놈이기에 우리 노야 하나 행복하게 마음 편히 못 하느냐 이 병신

같은 놈아! 이런 소리가 가슴속에서 자꾸만 들려온다. 노야 용서해 주오.

이제는 정말 당신을 괴롭히지 않으리다. 안개 낀 새벽에 난 당신이 계신 곳

을 향해 꿇어 앉아 용서를 빌고 있소. 나도 이젠 철이 드는 것 같소.

저 아래 내무반에서 막 기상! 기상! 하는 소리가 들려오오. 또 내려가 봐야지. 지금쯤 당신도 출근준비 서두르겠지. 참 오늘은 연구수업하시는 날이지. 잘 해야지, 잘 할거야. 못난 놈의 천사인데 잘 해야지.

720, , 1975

나는 지금 대구로 가는 동양고속 버스 안에서 이것을 쓰고 있다. 여기는 석교 휴게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과도히 흥분은 되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 뭐라고 해야 할까…….

어제부터 도저히 내가 군인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저 할랑할랑한 처자들, 가는다란 허리, 꼭 강간을 당한 직후의 허탈감에 빠진 것 같은 저 몸무새들, 내겐 자극이 너무도 크다.

어제 오전 9시경이었다. 인사계 남상용상사가 불러서 갔더니 노야의 편지, 진미의 편지를 주고 그리고 자기에게 보낸 내 사랑의 편지도 보여 주었다.

오늘 주선생님과 노야, 진미, 영순, 수남이가 날 보러 온다고 한다. 가슴이 뛰었다. 처음에 무슨 말부터 할까. 이 생각을 하며 바닥을 쓸고 있는데 휴가 준비하란다. 벙벙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순간이 너무 빨리 온거다.

 

 

****사랑하는 나의 님

어제 편지 기뻤습니다. 잘 있다는 그 너무나 상투적인 말에 얼마나 위안을

받는지 모른답니다. 많이 힘들지는 않으나 날씨가 더우니 맥이 없어지기는 아이들이나 선생들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제가 편지 자주 하는 것 싫으세요? 그럴리야 없겠지요. 미안해서 그러신다면 조금도 그러실 것 없어요. 당신도 무슨 방법이든 그곳 생활에서 유일한 낙을

찾듯 저 역시 유일하게 찾은 즐거움이 있는 거예요. 당신을 그리며 쓰는 이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좀 훌쩍이고 나면 기분도

한결 좋아지고 피곤한 것도 훨씬 나아집니다. 밥 잘 해먹고 있으니 조금도 염려마세요.

 

오늘 남상사님이 보내주신 편지는 감격해 하며 읽었습니다. 지난 번 엉뚱한

전보가 날아와 되돌려 보냈더니 남상사님 편지를 보고서야 제가 참 둔한 것

을 알았습니다. 어딜 가나 당신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얼마나 고맙고

복이 많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저도 새로운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

음으로 대하기로 결심 했습니다.

 

막 퇴근하려는데 진미가 전화했습니다. 시험을 오늘 마쳤다면서 토요일 일찍 주선생님과 영순 수남 진미가 당신 보러 간다며서 같이 가자구요. 나같은 멋

대로인 사람도 공직에 매이니 어쩔 수가 없군요. 제 마음은 막 이리 뛰고 저

리 뛰고 난리 났습니다.

 

당신 보고싶은 마음이사 그대로 달려가고 싶습니다만 학교일을 생각하니……

.제 마음이 어떠 하리라는 것 당신은 너무 잘 아시지요.

이리저리 대보고 내일 전화한다 했어요. 고마운 사람들! 사랑스러운 사람들!

잘 다녀오시라고 기도했어요.

 

집으로 오는 길은 초록의 들판과 저 멀리 검으스레한 산들, 하늘. 구름 너무도 아름다운 저녁입니다. 밤이면 우리집 마당에 온통 별가루가 뿌려져 있죠.

집을 발이 닳도록 돌아다니며 구한 보람이 있네요. 당신만 좀 더 가까이 계신다면……

1975715, 노야.


Perseid_Meteor.jpg


 

 

(이날 동대구에서 고속버스로 주선생님과 영순 진미 수남이와 저는 서울로

해서 당신을 만나러 갔습니다. 어머님이 김밥을 싸주셨습니다. 서울에 내려 선생님은 다음 날 부대로 오시기로 하고 우리는 이리 저리 버스를 옮겨 타고

부대 앞에서 내려 면회신청을 하고 기다리는데 도무지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어두워 질 때까지 기다리다 할 수 없어 남상사님댁을 찾아갔더니 당신은 대구로 갔다 하는군요. 그것도 모르고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기만 했다니, 이럴 수가! 우리는 맥이 빠졌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집으로 갔다 해서 다행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루 밤을 자고 다음 날 우리에게로 오신 선생님과 대구로 돌아 왔습니다. 집에 갔더니 당신은 싱글벙글 웃으며 우리를 맞이 하더군요.)

8141975

정말 오랜 만에 쓰는 일기다. 720일 날 10일의 말미를 얻어 집에 다녀

온 후 오늘까지 그 날의 여파와 8월 초순에 2번이나 이곳을 다녀 간 노야, 그리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나가는 하루 일과와 무엇보다 좀 나아진 생활(그건 습관이 되고 길들여진 생활에서 오는 나태한 타성에서 그렇게 느

끼는 것이겠지만) 그만치 하루가 나에게 주는 무위가 이 일기를 중단케 한

것 같다. 그렇게 사람의 심리란 간사한 것 같다. 역시 삶의 지혜와 느낌의

강도는 고생 속에서 깊어 지는 것 같다.

이 한달 간의 공백기의 생활은 정말 행복한 날들이었다. 유성처럼 시간이 무

척 빨리 흐른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누구의 말대

로 인간에게는 神性이 없기 때문이고, 인간에게 신성이 있다면 인간은 인간

을 사랑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 신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타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하루 일과는 치료계를 맡고 부터는 몸은 한결 편해 졌으나 시간적인

여유는 전보다 더욱 없어져서 한 장의 책도 읽기가 어려워 졌다. 환자들의

피와 고름을 짜고 그들과 부대끼며 하루를 보낸다. 깜박깜박 지나가 버리는 하루다. 노야의 사랑과 얼마 있지 않으면 이곳을 떠나게 되리라는 나의 기대

로 이런 바쁜 일과를 감사히 감수하고 있고 보람과 기쁨도 느끼고 있다.

즘은 사역이 더욱 가중된다. 7명이 공수훈련에가 버려서 일손이 더욱 바빠졌

.

사랑하는 이는 지금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늘을 흐르는 무수한 별들

의 모습을 볼 때엔 노야의 눈을 생각한다. 그날 천서리에서 헤어지던 노야의 눈빛을 생각한다. 마치 유성처럼 반짝이는 노야의 눈빛, 난 이때까지 그토록 아름다운 눈을 보지 못했다. 노야가 떠나간 후에도 노얀 노상 내 곁에 있다

는 환각에 빠져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금 보는 까뮈의 책은 무척이나 어렵다. 그리고 그의 해박함이 주는 즐거움

과 가슴을 튀워주는 얘기는 나의 우주관을 더욱 넓게 해주고 있고 어떨 땐

내 가슴을 떨리게 한다. 외계와 인간의 구별은 자의식에 있다는 이야기,

외계란 자의식이 그것을 파악하고 있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요, 자의식은

존재하기 위해서 그것을 파악하려면 그것은 존재치 않게 된다.

즉 관념성이 된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자의식은 필연적으로 욕구가 된다. 허나

이 욕구는 충족되어야 하며 자의식은 의식으로 외계의 물질이 아니라 의식

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인간은 동물적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인정 받을

수 없다. 인간은 다른 인간으로부터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타인이다.

 

동물에 있어서 최상의 가치란 것은 생명의 보존이기 때문에 의식이 인간적

가치를 가지려면 이 본능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으면 안된다. 즉 인간은 죽

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의 가

치를 확신하는 것이다.

817, , 1975

거의 옛날과 같은 정열과 심정으로 일기를 쓸 수 없다. 사랑하는 나의 천사 노여!. 어제는 벗 인식이가 이 먼 곳을 왔다 가서 조금 전에 천서리에서 작

별을 했다오. 당신과 그렇게도 같이 가 보고 싶었던 이포로 가서 밤을 세워

술을 마시고 얘기하다가 당신도 너무 잘 아는 옛날의 우리의 버릇이 나와

이포서 돈이 다 떨어져서 고생을 했다오. 인사계님께 2000, 환자에게 2000

원 빌려 겨우 변을 면했다오. 하하! 인제는 실속을 차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소.

오늘도 일요일인데 벌써 계속해서 5번이나 군대 라면을 먹지 않았소. 아마

나처럼 면회를 많이 오는 이도 없을 것 같소. 당신의 못난 情人은 어딜 가도 유명한가 보오. 인식이와 온 천지와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이포의 언덕에 앉아서 서로의 젊음을 얘기했다오.

 

지금은 황혼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저녁이오. 교회의 언덕에 앉아 당신을 생각

하며 부족한 나의 사람됨을 반성하며 그리고 나의 신앙이 깊지 못한을 애닯

아 하면서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오.

내 친구들은 누구나 당신을 무척이나 칭찬하고 우리를 축복해주고 있소.

아마 당신이 없다면 나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소. 그 친구와 골골

에서 흘러나와 강물을 이리저리 일렁이게 하고 사라지는 가을 바람에 옷깃을 펄럭이며 우린 하루 밤 묵을 곳으로 돌아 왔다오. 노야 내 사랑, 이 해맑은

가을 저녁에, 가을 하늘 석양의 낙조를 보며 당신을 바라보고 서 있다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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