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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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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21)

하얀 달빛이 성령처럼 머리위에 부서지다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1-01-20 (수) 16:51:12


하얀 달빛이 성령처럼 머리위에 부서지다

 

818, , 1975

완연한 가을이다. 하루의 고된 일과를 치루고 환자들에게 시달리다 저녁이

되어 동산에 한 10분 올라와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달이 그렇게

맑고 청명할 수가 없다. 시원함과 부드러움이 온 하늘과 산, 강물, 계곡에

꽉꽉 차있다. 보름달빛에 부서지는 강물은 펄펄 뛰는 비늘같이 생동하고 달

과 같이 흐르는 몇조각 구름은 마치 환상처럼 흐른다. 이 아름다움 속에 눈

을 감으면 따스한 노야가 내 몸에 기대어 오는 착각이 들고 눈을 감고 있어

도 주위의 정경이 환하고 달도 더욱 환하다.

밤에 보초를 서면서 남산동(노야 어머님)과 신천동 부모님께 편지를 쓰다.

노야에게서 소식이 없어 걱정이 된다. 또 어디가 아픈 건 아니면 좋겠다.

내 사랑 나의 천사 어디에 너 같은 인어가 있을까. 이런 밤에 쏟아지는 달

빛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온몸은 달빛에 젖어 축축해지고 천사의 노래를 듣

고 있으면 나에게 노야가 있음을 주에게 감사드린다.

820 1975

지금은 한낮이다. 정말 일기가 더럽게 쓰여지지 않는다. 고향에서는 편지도 없다. 답답하다. 노야가 보고싶다. 아마 날 많이 보아서 보고싶은 생각이 아

직은 덜한 모양이다. 매일 계속되는 사역에 치료실 일까지 겹쳐 짬이라고는

나지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가 후딱후딱 지나가고, 욕얻어 먹고 이곳을 빠져

나가고 싶다. 오늘은 점심이 모자라 밥을 굶었다. 그래서 살짝 뒷 마을로

가서 한그릇 사먹었다.

내 사랑 내 생명, 널 먼 곳에 두고 이렇게 와 있는 나. 널 그리워 하며 너의 손길을 상상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운 모습. 어젠 공수를 갔던 동료

들이 돌아왔다. 고생하던 얘기, 여러가지 얘길 들려준다. 나의 의지가 이렇

게 약해 졌는가? 나의 넘치던 생명력이 이렇게 미약해 졌는가?

 

무척이나 아파하고 고통과 무력감 속에서 신음하는 어린 병사들, 그들에게

힘이 될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날 그리워하고 내 사랑에 눈물겨워 한다.

온몸에 뒤덮힌 allergy에 신음하며 울부짖는 병든 자의 슬픔. 주여!

저들을 고통에서 구해 주소서.

 

오늘은 구름이 낮게 깔리고 멀리 산들도, 산에 싸여 누워있는 마을도 마치

잠든 것 같은 그런 날이다. 내 왼편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의 고동도 무척이나 여리게 들린다. 그리운 얼굴들, 어머니 아버지 선생님들 친구들.

그리고 나의 생명 노야. 너의 눈길 손길 하나하나 마치 보석처럼 내 몸에

새겨져 있고 박혀있다.

모든 것에 절망한 사람은 종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절망에서

이끌어 내는 것은 정열이다. 자기 자신이 그렇게 지리멸렬하다는 절망감

에서 반동적으로 생긴 반항심이 필사적으로 그것으로부터 탈출하게 한다.

오후엔 타는 듯한 태양 아래에서 축구를 하다. 오랫만에 부지런히 뛰었더니

몸이 피곤하다. 군에 입대하고 오늘 날까지 늘 잠이 부족하여 조는 일이 많

. 그리고 졸음이 덮칠 때는 퍽 고통스럽다. 오늘 오후에 떠나는 환자들은

나에게 편지를 하마고 한다. 나도 섭섭하다. 그들의 무운을 빈다.

밤에 대동강이란 TV 연속극을 잠시 보다. Terrorist란 걸 생각하다.

Terror란 일종의 니힐리즘에서 유래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개인적 테러행위는 니힐리즘 속에서 (그것은 어떤 절대가치 신의 부정, 새로운 원리에의 도전이다.) 그 행위의 타당성을 용인 받는다. 그들은 기꺼이 목숨

을 그들의 목적과 바꾸려고 의도하며 대부분의 진정한 Terrorist는 무관한 사람의 생명엔 과도할 정도로 신경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문세광이란 친구가 권총을 택한 이유도 이 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 Terrorist란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쳐서 새로운 원리에 근접하려는 일종의 허무적 이상주의자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821, , 1975

어쩌면 달이 저토록 달이 밝을 수 있을까. 지금 이 글은 달빛 아래에서 어

깨에 총을 메고 넋을 잃고 달을 쳐다보며 쓰고 있다. 온 천지가 은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은 광경, 이제 또 한시간 후이면 날이 새고 하루가 시작되

겠지.

 

오늘은 무척 바쁘고 재수없는 하루였다. 열쇠를 잃어버려 오전엔 그놈을 찾

으러 돌아 다니고 치료실에 둔 반항적 인간이란 책까지 도둑맞아 몹시 불

쾌한 하루였다. 아마 훔쳐간 놈은 그 책을 읽지 못할거다. 바보같은 새끼.

오늘은 종일 고름을 짰다.

오후에 치료실 청소 미비로 뭉둥이로 맞다. 그건 재수좋은 일이다. 나에게 청결함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노야가 무척 보고싶다. 아니 편지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애절하고 아름다운 달을 쳐다보고 있으면 보초서고 있는 나를 노야가 저 나무 아래에서 손짓하며 불러내는 것 같아 나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노야가 나를 안아주는 것 같다.

살며시 눈을 뜨면 하얀 달빛이 성령처럼 내 머리 위에서 부서지고 있고,

의 긴 그림자가 땅에 누워 있다.

내 사랑, 나의 천사, 나의 달빛 노여! 당신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 계시옵니까. 그립군요.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편하고 아름다운 하루였습니까. 건강하신지 걱정이옵니다. 나는 10분도 짬이 나지 않습니다.

책을 볼 시간은 전혀 없군요. 그러나 저토록 황홀한 달빛이 있으니 머리의 목마름을 가슴의 충일로 메우고 있습니다. 막 지나가는 한조각 먹구름이 옥

쟁반을 덮어버려 수첩의 글씨가 보이지 않는군요. 나의 사랑 노여, 안녕,

내일 또 만나요.

822, , 1975

무척 짜증나는 하루였다. 날씨는 더워 찐득거리고 실수를 해서 욕얻어먹고 잠

은 오고 왜 그런지 힘이 무척 드는 하루였다. 그리고 기다리는 소식은 없다.

종일 짜증이 나고 고통스럽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며 이것이 나에게 인내를 키워준다, 이렇게 나는 강해지고,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인내하며 사는데

하며 참고 자위 하며 보낸 하루였다. 정들었던 환자들이 사단으로 후송을 갔다. 종일 책 볼 짬은 10분도 나지 않는다. 몸은 전보다야 편해졌으나 이건

너무 혹사다.

나의 천사가 보고프다. 우선 이번 달을 참고 견딜 각오가 처음부터 되어 있으

니까 또 기회를 보는거다. 괴롭고 짜증나고 고달픈 하루였으나 밤이 되면 온 누리에 정적이 오고 또 하늘과 산허리엔 보름달이 떠오른다. 그땐 짧은 시간

이나 조용히 묵념 합장하고 부모님과 노야의 건강을 빈다. 그 몇 분의 평화를

위해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김정호 중대장이 전출을 가게 되는 모양이다. 1지대 지대장이 후임으로 올 것 같다. 노야 오늘은 제발 편질 주오. 걱정이 되오. 지금은 불침번 시간이다.

이제 5분 후면 동료들을 깨워야 한다. 창 밖에는 새로운 하루를 알리는 햇살

이 밝게 비치고 있소. 당신의 건강을 하나님께 빌면서 하루를 맞아야겠소.

정신의 갈증이 채워지지 않아 머리가 텅비어 가는 것같아 신경질이 나오.




823, ,1975

그런대로 만족한 하루였다. 약간의 시간과 약간의 지식을 얻은 하루였기 때문이다. 오전에 치료실에 있으려니 논산 훈련소의 동기 안승복이 음낭수종

으로 왔다. 놈의 얼굴도 고생과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어 왠지 내가 죄스러

웠다.

정말 오랜만에 역사철학을 조금 읽었다. 중국에 관한 장에서 國體란 보편적 원리의 구현이다라는 시종일관된 이야길 읽다. 여기서 보편적 원리란 실체성 주관적 자유(개체성) 와의 통일이며 위의 양자는 대립되고 구별되며 후자는

자체의 내적 반성에 의해 전자 속에서 자유를 발견하며 동시에 자신을 구현

해야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한사람 (황제)만이 자유이며 위의 양자는 전혀 구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중국에는 오직 고대와 근대에서 일관된 정체성만

이 있어 왔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황제만이 자유이며 모든 인민은 황제 앞에 평등이다. 그러나 자유가 박탈된 상태이기 때문에 노예나 자유민과의 구별은 뚜렷하지 않고 내적 반성

에 의한 정신적 내면성을 획득하지 못한 유아적 사고 형태에 있기 때문에 그

들 인민들에겐 명예감이 없다. 명예감이 없기에 그들은 비굴하며 사기를 잘 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징계는 있어도 형벌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징계란 단지 교정에만 전념하는 것이며 그에게 반성적 내면성을 요구치 않는

것을 말하며 형벌이란 심령적 양심을 취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헤겔은 중국의 종교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종교란 정신의 내면

적 본질을 자기 안에서 표상한다는 의미에 있어서의 정신의 내면성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일체의 권력 즉 정치를 비롯한 외계와는 무관한 내적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인은 그 정신적 유형이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도 외계와 완전히 자유인 형태를 취할 수 없었고 神政 일체의 양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헤겔은 불교의 중국에서 막강한 포교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중국인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神性을 획득치 못했고 주관적 자유를 인지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 를 최고의 이념으로 삼는 불교가 그들에

게 널리 파고들 수 있었다고 한다. 절대적 를 최고의 이념으로 삼는다면 실존철학적 견지에서 본다면 그것은 니힐리즘의 궁국이다. 그러나 불교에

있어서 자아와 아집에서 초탈 내지는 초월하여 즉 살신을 함으로써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는 것은 ( 불교에 대해서는 노야가 잘 알고 나는 잘 모르지만)

동시에 완전한 새로운 경지의 창조에 들어가는 것이고 완전한 니힐리즘의

극복이 된다.

일체의 이 사바세계의 기준을 헛되고 공허한 것으로 보는 것은 순진무구할

뿐 아니라 순수 니힐리즘의 단초적 발단을 제시한다. 여기서 끊임없는 고행

으로 불타는 정진하여 모든 인간사와 연을 끊음으로써 오히려 인간사(세계)

위에 자신을 올려 놓는다. 여기서 불타는 완전한 니힐리즘의 극복을 보여주

고 그것은 인간을 이번엔 역으로 창조와 갱생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상이

불교를 보는 나의 견해다.

니힐리즘에서 시작한 것이 오히려 그 초극을 쟁취한 불교가 어떻게 중국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을까? 헤겔은 중국인의 유아적 정신유형에 이유를 두고 있

으나 과연 그럴까? 니힐리즘이란 반항의 청년의 그리고 오성의 재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중국인이 받아들인 이 니힐리즘(결국 니힐도 아니지만) 은 절대보편에서의 절망에서 비롯된 니힐이 아니고 보편을 인지하지 못한, 느끼지 못하는 유아적 몽매 니힐에 불과한 것이기에 헤겔의 주장은 옳다고 생각한다.

절대보편에 실망 내지 절망에서 비롯되는 니힐과 절대보편을 발견할 수 없는

곳에서 비롯되는 니힐은 그 차원과 단계를 달리한다. 나의 생각으론 이 궁극

적 니힐에서 비롯되고 그것을 훌륭하게 완성한 불교는 중국인들에겐 부분적

으로 유아적으로밖에 숙지될 수밖에 없는 심오한 것이었기에 그것은 필연

적으로 현실적이고 이 세상적인 유교로 대체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상, 월하에서 보초를 서면서 월광으로 나의 생각을 적어 보았다.

 

! 달도 밝다. 노야, 노야, 노야 사랑한다. 나의 달, 나의 생명 잘 자라우.

총 멘 어깨가 아프고 다리도 당기는구나.

 

824, , 1975

어제 밤 달밤에 눈을 혹사해서 그런지 눈이 시큼거린다. 그리고 새벽녁엔 몹

시 춥고 가을이 문턱에 왔음을 실감한다. 항상 이런 계절이 되고 달이 둥글

어지면 느끼는거지만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고 을씨년스러운 감을 금할 수 없다.

 

나는 지금 교회의 언덕배기에 앉아 있다. 교회에선 찬송가가 들려오고 강 건

너 이포가 그림자처럼 누워 있다. 기다리는 노야에게서는 편지가 오지 않아 궁금하고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날은 엄마가 보고싶다. 어머니란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스러운 고향이다. 아마 더 늙으셨겠지. 보고싶다. 어머님 그립습니다.

 

언제나 추석이 가까워지면 어린 가슴을 기대에 부풀게 하시던 모습, 손으로

뚝뚝 베어주시던 송편은 그렇게 푸짐하고 흐뭇할 수 없었다. 맛은 별로 없었

지만 말이다. 오늘 다시 어머님께 노야에게 편질 내겠다. 그리고 기다려 보겠다. 시간과 짬이 조금만 더 주어진다면 정말 바랄 게 없다. 그리고 노야

와 어머니를 뵐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많아지고……

나는 항상 이렇게 교회에 오면 들어가지 않고 밖에 앉아 있지만 조용한 찬송가 소리를 듣는다. 풀잎에 방울방울 머물다 가는 바람을 느끼고 있으면 마음의 평화를 조금씩 느낀다. 노야와 잘 차려입고 장엄한 성당에서 미사를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빌빌거리면서 오전을 보내고 오후도 그냥 그렇게 보냈다. 책도 조금 보고. 보안대 놈들이 취사장에서 사길 쳐 훔쳐온 라면을 하나 슬쩍 해왔다. 밤에 먹어야지. 하하. 군대생활이란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재미있는 일이다. 오늘 밤에는 편지 써야지.

역사철학은 인도 정신을 보았다. 몽상적 정신의 나라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곳에선 깨어 있을 때에 인간이 느끼는 자기와 외계와의 구별이 없다. 즉 대상과의 대립과 구별을 통해서 외계에 하나의 체계와 질서를 인지하고 동시에 자기도 외계의 일항으로서 외계와 관련된 개별성으로 인지하는 오성적 인식 능력이 없다.

 

그래서 모든 감정적인 것이 정신 속에서 자유를 발견하고 그 통일 정제되는

것 같은 것은 인도에선 없다. 그래서 감정적인 것이 오히려 신적이 되고 정

신을 감정적인 것 속에 포함해 버린다.

 

범신론도 그렇다. 모든 것을 (개개의 사물들) 그 구형을 소실하지 않은 채

그 자체 그대로 신적이다. 그래서 감정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을 포함한다는

것은 정신적인 것이 규칙적인 것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되어 버리고 신도 보

잘 것 없는 것으로 된다. 따라서 신적인 것도 유한적인 것으로 되어 엉망

진창이 되어버린다 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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