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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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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62최종회)

고귀한 사랑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다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2-10-11 (화) 08:15:51


고귀한 사랑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다

 

 

이제는 현승효를 잊고 현실에 충실하라고예?

사람들은 내가 현승효얘기를 하면 거북해 하고 불편해 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얘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터질 것 같고 벼루다가 끝내

못 했을 때는 참 허전하였다. 특히 진실한 대화를 할 만한 사람과

작정하고 하는 대화일 경우에는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하고

나도 씁쓸하였다

 

, 겉도는 대화가 너무 불편해서 내부터 속을 내보이면

별로 듣지도 안 하고 "세월이 그마이 흘렀는데 아직도 못 잊고

그카나?" 아니면 "현실에 충실해야지" 이러면 계단을 헛디뎌

철렁하는 것 같은 낭패감 이런 것이 덮쳤다. 그것도 우리와

친했던 묵은 정이 있는 사람이 그럴 때는 더 그랬다

 

2004, "나 현승효기념사업할거야" 하니 "No problem!" 하던 남편

에게 필요할 때는 거리낌없이 하게 되었고 생전 대꾸를 잘 안하는

사람이 의외로 편안하게 대꾸를 잘 해주어 뭉클 행복감을 느꼈다.

"내게 가장 절실한 것을 묻어두고 사는 것이 과연 나와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한 진정한 예의일까? "

남편이 애인 이야기를 싫어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신은 하지만

내 스스로 입이 떨어지지 않는 그 사실이 너무 싫고 이것도 못 하고

살다이 싶어 오랫동안 자존심 상했는데 내가 애인 말을 꺼내고부터

우리는 마음의 둑이 터지듯 시원해져서 확 친하게 되었다

죽은 애인의 일기장을 타이핑하면서 눈물을 질질 흘리는 내 옆에서

안쓰럽게 보다가 또 신경쓰지 말라며 태연한 척 책을 읽는다든가

해서 나는 사람의 향내를 느끼고 가슴은 감동으로 물결쳤다

 

아내를 배려해주는 사랑에서였는지, 시대 모순을 피하지 않고 깊게

끌어안고 살다가 끝내 목숨을 잃은 동시대의 한 청년에 대한 예의

였는지 하여튼 나는 남편에게 인간애 동지애를 느끼고 지금은

그에게 올인하게 되었다

 

세째언니는 "승효 이야기가 나오면서 네가 눈물짓는 것을 보고 충격

을 받았다. 그 동안 승효 일은 역사에 맡기고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

는 줄로만 알았다" 하는데 그게 추억으로만 간직할 일인가?

 

,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책이 나오고도 둘 사이가 아무렇치도

않은 것을 보고 두째언니는 나와 남편을 동키호테 같다 하고

모두들 이제는 잊고 김서방과 행복하게 살라 한다. 남편과는 이미

진정한 소통이 되어 잘 살고 있는데 그칸다.

어린 시절 스쳐 지나가던 불쌍해 보이는 사람들도 문득문득 떠오

르고 가슴이 아려오는데 죽도록 사랑하던 사람을 국가의 폭력으

로 그렇게 잃었는데 잊으라는 말 한마디에 잊어질 수 있다고 생

각하는가? 덮어놓고 잊어라는 말을 하지 말아주면 좋겠다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라는 개인은 수없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만들어졌고 더욱이

내 몸과 마음을 온통 차지하던 사람, 끝없이 우주의 비밀을 찾으려

하고 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고민하고 사유하고

연민으로 사랑하던 사람, 내게는 모든 사랑의 원형이 된 그 사람을

털어버리고 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사랑은 하나의 대상만을 향한 것이 아니고 죽을 때까지 지속해야

하는 '활동'(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이라 하는데 내가 가장

잘 아는 그토록 지고한 사랑을 싹 잊고 어떤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나와 남편이 행복하지 않았을 때는 내가 애인을 품고 있어서가 아

니다. 애인이 없었던 사람들도 다 겪는 갈등, 아니 갈등 때문이 아

니고 대부분의 아내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소통의 문제 때문이었다

사랑이 강열한 낭만적 감정만이 아니라 만족스런 관계를 위한 관심

배려 돌봄 판단 결단 행동이다”(에릭 프롬) 이라면 나와 내 남편은 늘 사랑

했다고 말할 수 있다

 

, 2004년부터 공개적으로 현승효를 알리는 일을 하고 다니는 나를

기분나빠하지 않는 내 남편에게 고마워 하라고 한다. 이 남자도 참

좋은 사람, 감동도 주고 내게 영감도 불러일으켜 주어 내가 영감재이

라고 부르지만 이것 때문에 고마워 하라는 건 잘 받아들여지지 않

는다.

 

모든 시련을 다 이겨냈다고 안도하고 있을 때, 둘이 너무 좋아하고

있을 때 날벼락을 맞은 듯 졸지에 잃은 충격과 트라우마는 아무리

세월이 가도 조금도 바래어지지 않고, 민주화가 된 시대에 공식적인

명예회복은 커녕 우주보다 큰 존재인 한 개인을 그렇게 죽임으로

몰고 간 국가와 대학당국이 잘못했다 미안하다 말 한마디 없어

나라도 붙들고 살아야지 하는 결심이 더 굳어져 가고

수십년이 지나 내가 참을 수 없어 미친 듯이 다니기 전에 어느 구석

에서도 그의 죽음을 애석해 한다는 말 한마디 들어볼 수 없어 이럴 수

가 있나 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2004331일 한겨레신문에 처음으로 의대학우 신인식이

현승효의 죽음과 1년 후배 심오석의 행방불명문제를 제기한

인터뷰를 한 것을 뒤늦게 보았다

그리고, 현승효를 추모하는 일을 하는 날 조금이라도 찜찜해 하는

마음이 한구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남편과 애초에 깊은

관계를 맺을 일이 없었고 살아있는 자의 최소한의 의무를 하는 것을

왜 고마워 해야 해? 하는 마음이 든다.

"우리의 사랑은 시공을 초월하였어요" 하는데도 이 남자가

"나 노선생 필요해요, 결혼하고 싶어" 할 때는 이것저것 재지않고

얼른 받아드렸다. 나는 살아야 하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거지

그도 나도, '남편은 이래야 돼, 아내는 저래야 돼' 하는 거 없다.

나는 여전히 ''로 싸울 일 있으면 사리지 않고 싸우고 그의

감성과 고민에 민감하게 대응해주고 따뜻한 품이 돼 주려고 할

뿐이다

내 책을 읽은 후 사람들은 이제 과거는 추억으로 묻어버리고

현실에 충실하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압니다. 내가 행복하

게 살기를 바라는 진심에서 하는 말인 것을.

 

나는 현실에 충실하지 않았던가? 내 앞에 놓인 생, 나는 한번도

피하지 않았다. 멀쩡하게 할 거 다 하며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오랜 세월 아침에 깨면 가슴이 휑하고 눈물은 그냥 줄줄 흐르고

힘들 때도 많았다. 정신상담도 받을까 여러번 생각했지만 내보다

누가 나를 더 잘 알겠노 싶어 내가 나에게 그랬다.

"천희야, 뭐가 그리 죽겠노? 내한테 다 얘기해봐라"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해서 돈걱정에서도 좀 해방되고 절망감에

휩싸일 정도로 아프던 몸도 좀 건강해지자 본격적으로 내 문제에

집중했다.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일, 내 자신조차도 대면하기

두려웠던 것, 나를 정면으로 보는 일,

"한번 니 꼴리는대로 다 해봐라!"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이 내가 나의 현실에 충실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그 많은

세월이 걸렸던 것이었다. 그것은 먼저 온전한 ''를 찾는 일이었

'나의 고통'을 돌봐주는 일이었다

 

그 대답이 책을 내는 일이었고 남편의 적극적인 협조로 이루게

되어 한꺼번에 내 문제와 남편과의 문제, 대화기피증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화를 안하는지 못하는지 나의 숨통을 막던

문제도 풀게 되었다.

무반응으로 일관하다가 꼭 물어야 할 일이 있으면 맨날 하는

말이라고는

"뭘 그리 알려고 해?"

"따지지 마라"

"몰라, 당신이 알아서 해" 이것 뿐이다

 

이럴 수가? ! 그 후 반응이 있던 없던 편지를 써서 주다가 끝내는

", 내가 얼매나 재민는 여자인데 니는 고 재미도 못 보고, 아이

고 잘났다" 했는데

 

어럽쇼, 책 말을 꺼내고부터는 매사 심드렁하던 눈이 반들반들해지고

당장 새 노트북을 사오더니 한글을 깔아주고 삐떡하면 불러대도

총알같이 달려와 봐주고, 먹을 거 갖다주고, 2년만에 완성된 원고

를 들고 한국에 갔다 온 뒤에도 "어떻게 되어 가" 묻기도 하고 드디

어 책표지 견본이 두개 오니 "이게 나는 더 좋아" 의견도 말하고,

 

또 현승효의 삶과 사랑을 쓰는 윤동수 작가가 "노천희선생님과 마

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니 "당신이 한국

에 나가봐라 왜" 그러고 다녀오니 "보고싶어서 죽을 번 했어"

끌안기도 하며 자신만의 표현들, 날 가슴 떨리게 하는 말들을

자연스레 잘 한다

 

 

내게 '현실'이란 순간순간 깨어있는 나의 생각의 흐름' 바로

이 순간 내가 '느끼고 있는 것',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 말'

이 순간 내 몸이 '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내게 절실한 것은 무엇인가 이거다 할 때까지 골똘히 생각하고

내 자신부터 믿고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말하였다.

사람은 너무 오랫동안 갈등을 가지고 살 수 없으며 어떻게 해서

라도 해소해야 하고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온몸과 영혼으로 체험한 현승효라는 남자는 치열하게 살아

가는 그 모습과 그 사랑과 그 모든 것으로 인해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 진한 감동을 주는 사람이어서 나는 내 죽는 날까지 자꾸 말하여

지상에 그 고귀한 사랑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다. (200710)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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