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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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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당신 책 이제 나온대..44년 걸렸어

글쓴이 : 노천희 날짜 : 2023-01-27 (금) 14:02:30


동성로 대구백화점, 지금은 높은 빌딩이지만 그때는 단층으로 대구가구점이었는데 중앙초등, 부중 친구 구덕모 집이다. 나중에 보니 바로 그 맞은편 골목에 현승효 집이 있었다. 내가 학교가면서 매일 그 앞을 두 번 지나가도 한번도 사람이 들어가고 나가는 걸 본 적이 없는 대문이 딱 닫힌 덕모집. 부잣집이고 예뻐서 경북중 부속중 무시마들이 다 좋아하고 경중 현승효도좋아해서 밤이면 부중 무시마들 몇이 하고 그 집 앞에 진치고 있다가 하루는 승효 씨가 폭죽을 터뜨리고는 혼자만 도망가고 다른 놈들은 붙들려 덕모아버지 앞에서 꿇어앉아 벌을 섰다고 수십 년이 지나 부중 동창 무시마가 얘기해주는데 천희 니가 그런 말썽쟁이와 우짜다가 연애를 하게 되었노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덕모 집 옆 골목을 들어가면 바로 우리 학교가 나온다. 큰길도 있지만 나는 골목길을 좋아한다. 그때 학교 오며가며 키가 좀 크고 나이가 우리보다 좀 많아 보이는데 학교는 안가고 긴 작대기를 들고 다니면서 동네 꼬마들과 놀던 바보 무시마를 자주 봤는데 승효씨도 경북중에 입학식만 가고 몸이 아파 1년을 휴학 하면서 그 무시마하고 꼬마들과 맨날 같이 놀았다 했다. 공부든 싸움이든 지기 싫어하고 너무너무 못됐던 성격이 1 년을 그 무시마하고 꼬마들과 놀면서 완전 풀어졌다고 했다.

 

어느 날 대낮인데도 천지가 어둡던 날 낮잠에 푹 빠진 나를 큰오빠가 천희야 빨리 안 일나나? 학교 지각하겠다!” 소리치고 난리를 부려 비몽사몽에 책도 제대로 못 챙기고 울러매어 빈 가방이 내는 철거덕 소리에 정신이 나가 발은 땅에 닿지 않는데 헐레벌떡 뛰어갔다. 맨날 아이들이 시끌벅적 뛰어놀던 중앙초등 운동장이 휑 비어있고 교문이 꽉 잠겨있어 그제사 속은 줄 알고 휴우! 안도의 숨을 내쉬고 털레털레 돌아온 일이 있었다.

 

현승효가 군에서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울며불며 이선생 집에 갈 때도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이번에도 큰오빠가 날 놀리려고 했던 것처럼 누가 날 놀리려고 한 거짓전화였으면, 속은 줄 알고 휴우! 했으면……

 

나는 심심하면 제일극장 뒤 우리집 골목을 나서서 인근 동네 꼬불꼬불 골목을 다리 아프고 배고플 때까지 걸어 다니고는 했는데 승효씨도 쪼맨할 때 싸우고 뚜디리 맞으면 혼자 골목골목을 걸으면서 울다가 씩씩거리며 걷다가 분이 다 풀리면 소매로 눈물을 쓰윽 닦고 멀쩡한 얼굴로 집에 들어가 밥 도!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했다.

 

1970, 우리는 스무살, 서울서 대성학원 다닐 때 승효씨가 날 따라 온 날부터 대번 좋아하고 서울 골목을 다 휩쓸고 댕기다 그가 경북대 의대로 가겠다 해서 대구로 같이 내려와서는 대구의 골목을 끝없이 걸어다녔다. 돈이 없을 때는 나는 우리집으로 지는 저거 집으로 각자 밥 먹고 와서 시시덕 낄낄낄 꼴깍 넘어가며 웃으며 걷다가, 너무 심하게 놀려서 약이 오르고 화가 나서 죽어도 말을 안 하면 미치도록 답답해진 승효 무시마가 싹싹싹 빌면 억지로 푸는 척 그러면서 통행금지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집에 왔다. 아부지 보고는 맨날 도서관에 있다가 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주로 공평동, 삼덕동, 봉산동, 동인동 골목들을 요리조리 걸었다. 제일극장 뒤 우리집 골목에서 나오면 보이는 삼덕성당 가는 길에 동인호텔 앞은 얼마나 고즈넉하고 좋았는지! 부중을 가는 길도 꼬불꼬불 골목길, 크고 좋은 기와집도 좀 있었지만 다 나지막한 그냥 그렇고 그런 집들이 참 평화스러웠는데 승효씨 죽은 뒤 발길을 딱 끊어버렸다.

 

20073월에 윤동수작가가 현승효의 삶과 사랑을 소설로 쓰고 싶다면서 현승효를 아는 사람들을 남한 구석구석 다 찾아가 취재하면서도 뉴욕 사는 나와는 메일로만 주고받다 노선생님과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그러더라 하니 남편이 당신이 한국 나가봐라 왜 하는 게 아닌가. 그라까? 둘만 알고 서울에 비밀잠행 1 주일을 윤작가와 자는 시간만 빼고 서울과 대구를 현승효와 발길 간 곳은 다 찾아다녔는데 30 년 만에 가보니 세상에! 우리가 요리조리 걷던 그 정든 골목들, 집은 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완전히 딴 세상이 되어 있었다.

 

삼덕성당 앞 정구장에서는 달밤에 내가 노래도 하고 동인호텔 맞은편 골목 안 빈터에서는 희미한 가로등 아래서 둘이 붙잡고 부르스 춤이라면서 일렁일렁거리기도 했는데, 정구장도 호텔도 다 없어졌다. 호텔 마당에 있던 멋드러진 소나무가 지금은 식당인지 카페가 된 집 마당에 털 빠진 학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멀쑥하게 서있고, 그 유서 깊던 몇몇 동네들이 거짓말같이 싹 없어져 버리고 수천 개의 옷가게, 구두 가게, 식당, 커피집으로 변한 좁은 거리에는 그때는 우리 둘만이 어깨를 감싸고 허리를 감고 다녔는데(한 번씩 업어달라 해서 업히기도 하고) 남여 젊은이 다 손을 잡고 허리를 감고 걸어가고 있었다. 빙글빙글 눈이 어지럽도록 많은 남여가 꼭 붙어서 지나가는 속에서 금방이라도 그가 날 놀리려고 숨어 있다가 탁 튀어나올 것 같아 미칠 것 같았다.



 


내가 갑자기 보고 싶다며 불각 중에 찾아올 때 우리집 골목에서 영보야! 자기 친구 이름을 우렁차게 불러대고, 방에 누워 있으면 제일극장에서 영화음악이 다 들리는 우리집도, 무더운 여름밤 빨간 장미가 활짝 핀 자기 집 담벼락에 날 붙여 세우고는 노야 요 잠깐만 있어 봐래이 내 금방 나오께 하고 혼자 저거 집에 쏙 들어가서는 갑자기 금지된 장난 영화에 나오는 로망스피아노 소리가 나서 놀래키고는 어느새 앞에 서서 흐흐 웃고 있던 그 골목. 몇 달을 내 몰래 연습해서는 깜짝 쳐주던 피아노 소리가 황홀하였던 그의 집 골목에 있던 집들도 다 없어져 버렸다. 국민학교 여름방학 때인가 본 진 케리와 시드니 챠키리스(이름 앞에 꼭 백만불짜리 다리'가 붙던)가 나온 영화 브리가둔 Brigadoon 은 주민 하나가 마을을 빠져 나가면 살고 있던 사람들이나 부산하던 마을이 싹 사라져 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걸 보고 난 뒤 내 머릿속도 가슴속도 휑하니 뚫어져 텅 비었는데 그 많은 집들이 없어진 걸 보고서도 그랬다.

 

너무 허전하였는지 뉴욕에 돌아온 날 꿈을 꾸었다. 삼덕동 순인이 집 골목 입구, 분식집 앞에서 겨울이면 입던 까만 오바를 입은 승효씨와 빨간 오바를 입은 나는 마주보고 코가 닿을 듯이 몸을 밀착하고 눈만 맞추고 있었는데 유리창 안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하얀 무명 한복을 입은 아주무이가 흘끔흘끔, 아이고 얄궂어라! 딱 붙어 서있는 우리를 남사시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한없이 이윽이 날 바라보던 승효씨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길래,

 

왜 그래?” 하니 그는 기운이 하나 없는 소리로

너무 보고 싶어서그랬다.

자기, 죽은 줄 알지?” 했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그래도 나를 느끼지, 그지?” 하니 또 끄덕끄덕.

우리가 서로 느끼면 되잖아하고 난 뒤 이 대화가

정말인가 퍼뜩 깨어 얼른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313분이었다.

 

유신독재철폐운동 주도하며 맨날 내보고는 다 죽어도 자기는 절대 안 죽는다더니 의대에서 제명되자 75221일에 바로 논산훈련소로 끌려가, 헤어져 있는 동안 자기를 느끼라면서 들킬까봐 공포 속에서도 1분만 틈 나면 품속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깨알같이 쓴 일기문,

 

이 종이에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져 갈 때 노얄 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져간다는 것이 나의 커다란 기쁨이 아닐 수 없고 내 가슴은 야릇한 흥분에 떨린다. 내가 노야에게 줄 수 있는 것이란 이렇게 남기는 나의 얘기와 거리 시간을 초월해서 노야에게 날아가는 나의 사랑의 연가뿐이다.”

 

작은 수첩 일기문 10개와 둘이의 편지문을 내가 2004년부터 2년간 매일 퇴근 후 워드에 쳐넣어 2006년에 서울 가서 윤작가에게 맡긴 후, 200771일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책이 삶이 보이는 창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그날 밤 그의 꿈을 꾸었다. 그전에 꾼 꿈에서는 그는 눈도 뜨지 못하고 몸은 만신창이였고 입 속이 다 너덜너덜 헤어져 내가 떠먹여주는 흰죽을 겨우겨우 받아먹더니 그날 밤 꿈에서는 생시같이 활달하고 거침 없고 장난기 많은 승효씨 그대로였다.

 

자기의 일기를 책으로 낸 걸 그는 너무 쭈굴시러워 했다. 내가 한 번씩 사람들 앞에서 좀 모자란 말을 한다거나 오버하는 행동을 할 때는 남사시러워 이크! 하며 고개를 살짝 돌리고 손가락 셋으로 얼굴을 가리는데 꿈에서도 고대로 하더니 , 노야 니야 그러고 싶겠지!” 노야를 우째 말리겠노 하듯 낄낄 웃었다.

 

데이트 한다고 따라다니느라 눈이 쾡 들어가고 비실비실하는 꼴을 보고 미워죽을라 하더니 한 번은 링겔을 사서 지기 집에 데리고 가서 맞혀주고는 죽구재비야 하면서 또 골목골목을 다니며 전날 밤 밤새 읽은 책 이야기를 다 해주었다.

 

인간이란 그 모양에 있어 요상하고 아름다우며 그 사유는 어떻게 해서 그처럼 오묘한지 또 그 작은 눈으로 우주를 다 담고, 그 머리로 인간의 가슴을 읽을 때 마치 하늘의 별을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야.”

 

그런 말을 하면서 내 눈을 들여다보며 신기해, 신기해를 연발했다. 어떨 때는 어떻게 이렇게 아는 것도 많을까 놀라워 자기 뭐 되고 싶어?” 물으면 초등 1학년처럼 착한 사람!” 그랬다. 나는 밤늦도록 데이트하고 와서는 자기 바쁘고 일어나서는 꼼짝도 안 하고 데이트 하는 시간만 기다리는데 그는 밤을 새워 읽고 생각한 것을 그 다음 날 또 다 말해 주면 어쩌면 내 애인은 이렇게 아는 것도 많을까! 새롭게 놀라서 자기 나중에 뭐 되고 싶어? 착한 사람! 하루는 맨날 하던 착한 사람이 아니고 노야, 30전에 책 한 권을 내고 싶어, 인간 이성의 진보를 한발짝이라도 앞으로 내딛게 하는 그런 책.”

 

1976426: “요 며칠간은 나에게 깊이 기억할 만한 날들이다. 드디어 딴 철인들의 사고가 아니라 나의 사색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그것은 자유와 투쟁이란 2개의 개념이다. 노야, 드디어 나의 책 주제를 잡았고 조금씩 써 나가고 있소. 요즈음은 이 작업으로 온몸과 가슴과 마음이 환희에 들끓고 있다오. 곧 만나면 내 설명해 드리리다.”

 

나이 30이 되기 전에 하나의 이치를 발견하고 책으로 묶고 싶다더니 생각이 잘 안 풀릴 때는 답답하여 자신의 몸을 찢고 싶도록 괴롭다가 생각이 풀리면 희열에 몸을 떨며 썼다더니. 그 책이 나온다 한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강제징집 되기 전부터 읽고 사유하여 군에서도 온갖 핍박 받으며 계속 하다가 764월에 쓰기 시작하여 775월 말까지 쓰고는 그 몸서리나게 추운 겨울들도 다 보내고 제대 4개월 앞둔 629일 안 가도 될 구보 훈련을 불쌍한 병사들과 함께 뛰겠다며 폭염에 30Kg 완전군장 10km, 거의 골인 지점에 다 와서 오후 4시에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한 채 30일 새벽 1시에 숨이 멎었단다.

 

그해 여름, 찌는 듯한 방안에 콕 처박혀 원고지에 깨알같은 글자를 죽을힘을 다해 옮겨 쓰기 시작한 후 44년이 되었다. 원본노트 1권과 2, 3권 앞부문까지 이 꽉 깨물고 독한 마음 내어 200자 원고지 1279매까지 쓰다가 진이 빠져버렸다. 책 출판을 위한 첫 걸음이었다.

 

이 친구는 왜 죽어서 노선생 속을 썩여요? 나 노선생하고 결혼하고 싶어 하는 새로 온 음악선생과 결혼을 해버리고 10개의 일기문수첩은 내가 간직하고 회향원본 노트 8권은 LA 살다 82년도에 한국에 잠시 나온 수남이에게 줘서 그때 유타대에서 공부하고 계시는 승효씨 큰형에게 전달해 달라 했다.

 

20066월에 일기문을 워드에 입력을 마치는 그 날, 서울에 나가 출판사에 맡기고 큰형이 계시는 국민대 총장실로 회향의 인간학적 원리원본노트를 찾으러 갔다. 잠깐만 있으라 하시는 데 보니까 옆방에 쌓아 둔 박스 더미를 몇몇 청년들이 장갑을 끼고 하나하나씩 열어서 조심조심 찾고 있었다. 찾았습니다! 누가 외치는 소리에 뛰쳐 들어갔다. 24년간 날 떠나있었던 그의 백골, 부들부들 떨며 품에 꼬옥 끌어안으니 오열이 터져 나왔다. 온몸이 울었다.

 

그날 박영숙, 류종렬, 석원호씨 부부를 만나 원본노트를 보여드렸더니 숙연해하고 종렬 씨의 눈은 벌겋게 되는 것을 흘낏 봤다. 영숙씨가 컴퓨터에 입력할 분을 찾아본다고 하셨다. 출판을 위한 두 번째 걸음이었다.

 

이렇도록 긴 세월이 걸릴 줄 몰랐던 그 난삽한 육필 원본, 대학노트 8권을 오정희씨가 2006 년 겨울 두 달을 죽을 고생하며 매달려 쳐넣고(얼마나 힘들었을까, 알아 먹지도 못하는 깨알 같은 글자를), 교열 보실 분을 찾는 동안 12권을 내가 병가 1주일 내어 교열 보고, 이건재 사장님과 사모님은 일주일을 새벽기도에 정리하실 분을 점지해 주십사 하나님께 간청하셨는데 1주일 되는 날 아침에 두 분이 동시에 이길종 장로님!”하고 소리쳤다 하시는 게 아닌가! 이길종 선생님께서(책이 나오면 꼭 보고 싶다 하셨는데) 1차 교열보시고, 큰형께서 2008년 여름에 2차 교열 마치셨다.

 

함종호 선생이 이걸 가본을 만드셔서 2009 1, 류종렬 선생과 세 분 칸트와 헤겔 연구자들과 김찬수선생과 출판기획회의를 하셨다면서 류 선생이 쓰신 회의록을 보내주셨다. 모두 다 읽고 오셨더라 해서 놀랐다. 그 후 함 선생이 애를 많이 쓰셨는데도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진전이 없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안부 메일을 보내면 미안해 하셔서 자꾸 연락을 하기도 민폐 같아 하지 않았다.

 

지인 몇 분이 안타까워하시며 철학 전공하신 분들을 소개해 주셔서다 찾아가도 맡아주시겠다는 말을 못 들었다. 혼자 읽다가 마다가 걱정인지 도무지 잠충이가 잠도 잘 못자겠고 . 생각만이라도 하고 앉아 있어야겠다 싶어 결단을 내리고 2016년 연말에 은퇴를 했다.

 

2017년 여름에 함종호 선생을 다시 찾아가니 날 진드기라 하면서 이제는 자신이 승효 형 책작업을 할 준비가 된 것 같다 하셔서 원본노트와 파일을 다 드렸다. 또 아주 훌륭한 분을 만나 철학공부를 하고 있다며 그 분을 보여 준다며 현대사상연구소로 데려가 주셨다. 홍승용 선생과 부인 이현주님, 홍선생은 천상 남산골 샌님공부만 하시는 분 같고, 현주님은 품이 넓은 분 같으셨다. 헤어질 때 현주씨와 나는 한참을 꼬옥 껴안았다. 지금도 그 따뜻함, 푸근함, 든든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나 혼자라도 읽으며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20193월에, 청천벽력 소식이 우리의 천사 둘째 언니가 폐암 4기란다. 바로 한국 나가서 두 달을 언니 곁에 꼭 붙어 있을 때 언니가 천희야, 승효 책 꼭 내래이, 27 살 묵은 사람이

우째 그래 썼는공!” ! 1년이야 버티겠지 했는데 언니는 531일 숨을 거두셨고 언니가 하신 말은 내게 다시 의지가 솟게 하였다.

 

뉴욕으로 떠나기 전, 함 선생 얼굴이라도 보고 갈려고 서성로 4.9인혁재단을 찾아갔다. 잠겨있어 무작정 밖에 서서 기다리다 재단 원영민씨를 만나게 되었는데 내게 또 청천벽력 소식을 전한다. 함종호 선생이 현대사 강의를 너무 열정적으로 하다 쓰러지셨다는 게 아닌가. 한 세상 살아내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몸과 마음을 얼마나 쏟아부었길래! 얼마나 절망이 되고 무서웠을까, 가여우셔라. 아무하고도 연락을 안 하신다 해서 알았심다 기운이 쑥 빠져서 앉아 있는데 놀랍게도 함종호 선생이 전화를 하셨다. 제가 거기로 갈께요! 소리치니 오는 길이 어렵다 하시면서 생각해 보겠다고 잠깐 끊고 있으라 하더니 다시 전화해서 영민씨하고 영천농장으로 오라고 하시잖아. 목소리도 여전하고 세심한 마음 씀씀이도 하나 다르지 않았다. 다음 날 폭우를 뚫고 영민씨 차로 달려가 함 선생을 만났는데 모습도 여전하시고 걸음걸이도 눈여겨봤는데 모르겠고, 칼국수도 한그릇 다 비우시고, 목소리에 기운이 좀 없는 것 외에 위중해 보이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제가 승효 형 책을 안 해서 벌 받았나 봐요, 너무 방대해요.” 그런 말씀 마시고 얼른 다 돌아와 강의도 하시고 활동도 하셔야지요. 종호씨는 꼭 다시 일어 서실거야!

 

전날 현대사상연구소를 찾아 갔더니 하필 화요일은 연구실이 문 닫는 날이었다. 다녀갑니다 쪽지를 남기고 훗날을 기약했는데 영천에서 아픈 마음을 안고 대구로 돌아오던중 차에 앉은 김에 현대사상연구소로 가줍시사 영민씨에게 부탁드리니 흔쾌히 들어주셨다. 내가 다녀간다는

메모를 보시니 책 걱정이 되셨던 현주님이 홍 선생 보고 당신이 맡아야겠다 하시니 내가 시간이 어디 있어 버럭하셨다 해서 언감생심 부탁할 마음을 내지 않고 있었는데 저녁 먹으러 셋이 식당에 가서 앉은 지 5분도 안 되어 홍 선생님이 느닷없이 제가 맡겠습니다 해서 아이고 깜짝이야! 선생님, 저 선생님께 책 얘기는 한 마디도 안 했심데이 하니 마녀에 홀린 것 같아.” 혼이 좀 나가신 듯한 표정까지, 아하하 웃음이 막 터져 나왔다.

 

나의 가브리엘 천사인 메신저 이현주님이 홍 샘은, 자신의 말과 마음이 법인 사람이이예요하시며 마음을 놓게 해주셨다. 그렇지만 내내 간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아이고, 그 지난한 작업을 우째 하실려고.(뉴욕에 돌아와 파일 1권부터 8권까지 손 봐서 홍선생께 보내드리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2020421일에 홍선생님 메일 받고 아, 인제는 됐구나, 인제 된 것 같아! 이 날이 너무 빨리 와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책으로 나오는 것은 걱정마십시오. 노트 4권까지 정리 마쳤습니다. 의미 있는 책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이 다듬기는 해야겠습니다. 제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일단 한 문장 한 문장 오늘의 독자들이 읽을 만하게 다듬는 것입니다. 이게 만만치 않네요. 그 다음에는 전체 틀에 맞춰 부분들을 재편하는 일입니다. 일부 중복되는 부분은 뺄 계획입니다. 추가로 책의 의의를 소개하는 글을 쓸 일도 있네요. 시간을 쏟아붓는 만큼 작품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2020426: “일차 교정이 끝나면 편집을 위해 몇 번 더 읽어야 할 듯합니다. 이제 코로나 휴가가 끝나가서 연구소가 바빠지면 일이 좀 늦어집니다. 그래도 여름 중에는 편집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선생님 공력 덕분에 현승효사상이 빛을 봅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그런데 2021213일 홍 선생이 최종본을 보낸다는 메일을 볼 때는 무덤덤, , 내가 왜 이래? 파일을 열어서 좀 읽으면서도 무덤덤, 무덤덤하게 답장 몇 줄 보내고 나서 멍하고 좀 있으니 그제서야 온몸이 떨리며 눈물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현승효 사상이라니, 만세!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하는 말을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처음 들었는데 최종본을 읽으면서 그 속담을 연발했다. 초등 1학년 때도 숙제가 하기 싫어 안 해 가던 못 말리는 농띠이 노천희 숙제를 홍 선생이 하시느라 큰 욕 보셨심대이.



76년 4월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 촬영


이봐요, 승효씨! 이 많은 걸 가만히 앉아 그냥 베끼기도 어렵겠구만 어떻게 졸병하면서 다 생각해내고 썼어? 일치, 불일치, 일치 이거 하나는 내가 다부지게 자기가 말한대로 해서 갈등이 있을 때마다 합일을 이루고 기뻐할 수 있었어. 죽을 때까지 읽어서 회향을 완성할께.

 

몰라 몰라, 회향 난 몰라, 제발 꿈에 한 번만 와줘. 노야 요 새대가리 죽구재비! 놀려먹고 낄낄 건들건들 웃어줘. 올거지?

 

노야, 날 사랑한 것을 욕되게 하지 않으리다.

 

내가 온몸과 영혼으로 체험한 현승효라는 남자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과, 그 사랑과, 그 모든 것으로 인해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 진한 감동을 주는 사람이어서 나는 내 죽는 날까지 자꾸 말하여 지상에 그 고귀한 사람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다.

(2021년 노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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