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하원에서는 공화당 의원이 법안을 상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시 한번 하원의 공화당 의원들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 그 결과 공화당 지도부이고,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구를 맡고 있는 팀 휴고 의원이 눈에 들어왔다. 하원내 서열(序列)이 3위로 높은데다 친한파로도 잘 알려진 의원이었다. 필자와 은정기 위원장은 팀 휴고 의원 선거 모금 행사에 기부금을 들고 찾아갔다. 동해 병기 법안 상정을 부탁했더니 앞서 ‘미주 한인의 목소리’에서 보내주었던 동해 병기 타당성 자료를 상세히 검토해 본 후 다시 의논하자고 했다. 그러나 팀 휴고 의원으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다.
필자와 은정기 위원장은 그 다음 선거 모금 행사에 다시 기부금을 들고 찾아가 또 한번 부탁했다. 그랬더니 팀 휴고 의원은 자기가 동해 병기 법안을 상정하면 무슨 불리한 점이 있겠느냐고 필자에게 물었다. 필자는 “당신에게 불리한 점은 하나도 없다고 봅니다. 공립학교 교과서에 역사적으로 잘못 표기된 바다 이름이 있어 이를 바로잡는 교육적인 차원의 일이며, 버지니아주에는 일본계 미국인이 그리 많이 살고 있지도 않습니다. 또한 일부 살고 있다고 해도 그들은 일본 본국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당신이 일본계 미국인들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일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팀 휴고 하원 의원은 “좋습니다. 동해 법안을 상정하겠습니다. 이 일은 버지니아주에 있는 학생들을 위해 교육적으로 옳은 일을 하는 것이겠지요”라고 확실한 답변을 해주었다. 하지만 말로 약속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항상 생각해왔던 필자는 팀 휴고 의원에게 기자 회견을 열자고 제의했다. 필자는 “기자 회견을 통해 당신이 동해 병기 법안을 상정한다는 발표를 하게 되면 한인 TV, 라디오, 그리고 신문들이 이를 일제히 보도해 버지니아주에 살고 있는 15만명의 한인들이 당신에게 고마워하고, 당신 이름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선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설득했다. 팀 휴고 의원은 이에 “좋습니다. 기자 회견을 준비해 일시를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공문을 직접 들고 가서 한인들에게 공표하겠습니다”라고 시원스럽게 답했다.
또 한번의 기자 회견을 열고 팀 휴고 의원으로 하여금 공문을 가져와 기자들 앞에서 동해 병기 법안 상정 공약을 발표하도록 했다. 팀 휴고 의원에게는 한인들의 표를 얻을 수 있어 이득이고 ‘미주 한인의 목소리’에게는 팀 휴고 의원의 확실한 공약 기록을 남기게 된 절호의 기회였다.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되고, 기록이 남았으니 팀 휴고 의원이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도 딴소리 하기 어렵게 됐다. 이제 버지니아 주 하원에서 3번째로 랭킹이 높은 팀 휴고 공화당 원내 대표가 동해 병기 법안을 상정하게 된데다 하원의 67%가 같은 공화당 의원들이니 마음이 든든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걱정거리는 상원이었다. 당시 상원은 총 40명 중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20 명씩 포진하고 있어 데이브 마스덴 민주당 상원의원 한사람으로는 많이 불안한 상태였다. 필자는 상원의 공화당 의원 20명을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처드 블랙 상원의원을 찾아내게 되었다. 블랙 상원의원은 상원 교육위 소속 의원으로 2012 년 1월 동해 병기 법안이 7 대8로 좌절되었을 때도 찬성표를 던졌던 의원이었다. 또한 블랙 의원은 미 해병대 헬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해 한국 해병대와 함께 치열한 전투를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왠지 한인들의 손을 들어줄 것만 같은 강한 느낌이 들었다.
필자와 은정기 위원장은 블랙 상원의원과 만나 대화하기로 약속을 잡은 후 기부금을 들고 찾아갔다. 필자는 블랙 의원에게 동해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고 데이브 마스덴 민주당 의원 한명만으로는 상원에서 역부족이니 공화당 의원인 블랙 의원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상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블랙 의원은 미소를 띠면서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당장 그리하겠다는 답변은 아니었다. 그의 얼굴 표정을 보니 버지니아 주 상원에 동해 병기 법안을 상정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듯 했지만 민주당의 데이브 마스덴 의원을 많이 의식하는 것 같았다. 역시 20대 20으로 박빙 상태인 상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보이지 않는 상당히 미묘한 알력 문제가 있는 듯 해 보였다.
필자는 블랙 의원에게 “그럼 좀 더 생각을 해보고 다음에 다시 만나 의논해 보도록 합시다”라고 하고 회의를 마쳤다. 필자는 사무실로 돌아와 즉시 마스덴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했다. 대화에는 몹시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잘못 얘기해서 마스덴 의원이 오해라도 하면 법안 상정이 안 될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민감한 상황인 만큼 필자는 아주 조심스럽게 마스덴 의원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 생각에 당신 혼자서는 성공적인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 같으니 공화당측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마스덴 의원도 곧바로 “맞다”며 필자와 동의를 했다. 그리고 마스덴 의원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불편한 입장이고 미묘한 갈등이 생길수도 있어 비록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한인사회의 염원인 동해 병기 법안 통과를 위해 공화당의 리처드 블랙 의원을 끌어들이는 것은 현명한 방법입니다. 그러니 한인사회가 블랙 의원을 설득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동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제가 블랙 의원과 긴밀하게 의논하고 협조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전화를 끊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블랙 의원을 만나러 갔다. 필자는 블랙 의원에게 동해 문제를 정치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교육적인 문제로, 또 한인사회를 위해서 당 이익을 떠나서 대해 주기를 호소했다. 또 일단 법안 상정을 한 후 나중에 상원 심의 및 표결 과정에서 두개의 법안을 하나로 묶어 달라고 부탁했다. 블랙 의원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다른 법안 같으면 내가 이런식으로 상정하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형제 같은 한인들이 이토록 교과서에 동해 병기를 하고 싶어 하니 내가 어떻게 반대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한인들의 염원인 동해 찾기 운동에 나도 한 역할을 하는 차원에서 동해 병기 법안을 상정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다시 한번 필자는 기자 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리처드 블랙 상원의원이 공문을 들고와 기자들 앞에서 동해 법안 상정을 공표하게 되었다. 이제는 버지니아주 상원에서 두개, 하원에서는 한개, 총 3개의 동해 법안이 상정되게 됐다. 그야말로 놀라운 성과를 일궈낸 것이었다.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에서는 서열 3위이자 공화당 원내 대표인 팀 휴고 의원이 법안을 상정하고 20대 20인 상원에서는 공화당 의원과 민주당 의원이 동일한 동해 병기 법안을 상정하게 되었으니 법안 통과 가능성은 점점 높아져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