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13년 8월 15일 광복절 행사 이후 지켜만 보고 있던 워싱턴 한인 연합회 린다 한 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일본 정부가 직접 나섰으니 버지니아주 한인들이 단합 대회를 열어야 하며, 워싱턴 한인연합회 사무실에서 그 모임을 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했다. 이에 린다 한 회장은 흔쾌히 승락했다. 하긴 그 상황에서 동해 병기 캠페인의 도움 요청을 거절할만한 사람은 워싱턴 지역 한인 중에는 단 한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며칠 후 워싱턴 한인연합회 사무실에서 버지니아주 한인 단체 단합 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많은 단체장들과 관심 있는 개인들, 그리고 워싱턴 지역 기자 및 특파원들이 함께 했다. 모두들 일본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을 두려워하며 걱정을 하고 있기에 필자는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동안 ‘미주 한인의 목소리’ 임원들과 한인들이 2년 넘게 철저한 준비를 해왔으니 일본 정부와 한번 싸워볼만 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버지니아주의 15만 한인들이 하나로 결집된 모습을 정치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필수입니다. 모든 한인들이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또 워싱턴 지역 기자들과 특파원들에게 버지니아주 동해 병기 법안에 대해 최대한 대대적으로 보도를 해서 버지니아주 한인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과 타주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도 긴박한 상황을 알리고, 한민족이 간접적으로나마 버지니아주 한인들을 지원하고 캠페인에 동참(同參)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주의회 상원 교육위 소위원회 동해 병기 법안 심의 및 표결(2014년 1 월 13 일)
매일같이 밤을 꼬박 새우며 버지니아주 상하원 의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타당성 자료 및 한인들의 목소리를 전해 왔던 필자와 ‘미주 한인의 목소리’ 임원들은 데이브 마스덴 민주당 상원 의원과 긴밀한 논의 끝에 동해 병기 법안 심의 및 표결 일정을 급히 정하기로 했다. 상원 교육위 소위원회의 동해 병기 법안 심의 및 표결 일정을 갑작스레 잡은 것이다. 하루 전 일정을 확정 지었기 때문에 일본의 로비스트들은 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법안 심의 당일 아침에 알게 됐다. 전략적이고 기습적인 법안 심의 및 표결 일정이라 일본측 로비스트들이 참석 못하기를 바랐다.
회의가 시작되자 데이브 마스덴 의원이 발언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주 공립학교에서 학업에 사용하고 있는 모든 교과서에 왜곡된 바다 이름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잘못된 교과서를 수정하기 위해 버지니아주 15만의 한인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법안을 상정해 달라고 했고 나는 타당성 자료를 면밀하게 검토해보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결심하고 법안을 상정했습니다. 법안 내용을 잘 살펴보고 모든 의원들이 찬성해주기를 바랍니다.” 그 후 마스덴 상원의원은 “그동안 버지니아주 동해 병기 캠페인을 주도해 온 ‘미주 한인의 목소리’ 피터 김 회장을 소개합니다”라며 필자를 소개했다 (첨부: 92-2페이지).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난 후 필자는 6명의 교육위 상원 의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해란 이름은 대한민국 선조들이 2000년 넘게 사용해 왔고 대한민국 애국가 첫 구절에도 들어가 있을 만큼 중요한 바다 이름입니다. 대한민국 5000년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바다 이름인데 일제시대인 1929 년에 전세계 지도에서 사라지고 일본해로 표기돼 오늘날까지 전세계 사람들이 잘못된 바다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85년 동안 전세계 사람들이 배우고 가르치며 사용해 왔기 때문에 일본해를 완전히 빼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에 ‘동해’란 이름을 ‘일본해’와 함께 표기해 어린 학생들에게 있는 그대로 진실되고 올바른 역사와 바다 이름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버지니아주에 살고 있는 15만의 모든 한인들은 공립 학교에서 한인 2세, 3 세들과 타민족 학생들이 동해라는 바다 이름을 배우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 하고 있으니 의원님들께서 동해 병기 법안에 찬성해 주기를 호소합니다.”
캐리코 소위원장이 회의장 전체를 둘러보며 “법안에 반대 의견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지만 회의실은 조용했다. 그런데 그때 일본 정부가 고용한 로비스트가 부랴부랴 회의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의원들에게 “저는 ‘맥과이어 우즈’ 로펌의 부사장 시어도어 아담스입니다. 우리 로펌은 일본 정부로부터 동해 병기 법안을 좌절시켜 달라고 정식 고용되었습니다. 일본 정부의 입장은 1929 년부터 전세계 모든 나라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바다를 일본해로 배우고 가르치며 사용해 왔는데 갑자기 버지니아주 공립학교에서 일본해를 동해와 함께 병기하면 전세계인들에게 혼란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바다 이름은 일본해 단독 표기로 계속해서 유지돼야 하며 미국 국무부에서도 혼란을 야기시키는 문제 때문에 일본해 단독 표기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연방정부에서 정해 놓은 정책이 있는데 버지니아 주의회에서 동해 병기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여러모로 부적절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니 동해 법안에 의원들의 반대표를 호소하는 바입니다”라고 말했다.
로비스트의 발언을 조용히 듣고 있던 찰스 캐리코 소위원장은 로비스트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버지니아 주 의회에서 상원 의원들이 동해 병기 법안을 심의 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로비스트는 매우 당혹한 표정으로 “아!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절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의원님들은 당연히 이 동해 법안을 심의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미 연방 정부의 입장이 일본해 단독 표기인데 지방 정부인 버지니아 주 의회에서 동해 병기 법안을 통과 시킨다면 엄청난 혼선(混線)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주장입니다. 존경하는 여러 의원님들은 당연히 법안을 심의할 권한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찰스 캐리코 소위원장은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해 병기 법안을 공동 상정하고 교육위 소위원회 소속인 리처드 블랙 의원(위 사진)이 법안에 대한 찬성 발언을 했다. “우리는 지금 버지니아 주 의회에 있지 않습니까? 버지니아 주내의 교육 이슈로 법안 심의를 하고 있는데 왜 연방 정부의 입장을 우리가 신경써야 합니까? 또 지방 정부의 법안 심의 절차를 방해하고자 외국 정부가 많은 돈을 들여 로비스트를 고용하는 것은 무슨 상황입니까? 이것은 일본 정부가 명백한 내정 간섭을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 상원 의원들은 미 연방 정부의 입장과 일본 정부의 주장보다는 버지니아주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데이브 마스덴 상원의원은 한인들이 동해 병기 법안 통과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증명해 보여주기 위해 심의에 참석한 한인 단체장들을 차례로 소개했다. 워싱턴 통합노인연합회 우태창 회장, 워싱턴 한인연합회 린다 한 회장, 버지니아한인회 홍일송 회장, 리치먼드한인회 김상균 회장, 미주 한인의 목소리 은정기 상임 위원장 등을 소개할 때마다 상원 의원들과 방청객들은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난 후 캐리코 소위원장이 다른 의견이 있느냐고 물었다. 회의실이 조용하자 캐리코 소위원장은 “그럼 표결을 시작합니다”라고 공표했다 (첨부: 142-1 ~ 142-2 페이지).
곧이어 6 명의 상원의원들이 만장일치로 동해 병기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6 명의 상원의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리처드 블랙, 찰스 캐리코, 스티브 뉴먼, 마미 로크, 재닛 하웰, 토마스 개렛.
너무나도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필자와 은정기 위원장은 우태창 회장과 복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법안을 부결시켜 달라고 강력히 주장했던 로비스트가 필자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피터! 나 알아 보겠는가? 나는 너의 버지니아 사관학교 동창이다. 나도 네가 버지니아 사관학교 출신인지 공화당 당대표인 토미 놀먼트 상원의원을 통해서 어제서야 알았다.” 필자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다가 “응! 그러고 보니 너의 옛날 얼굴이 기억나는 듯하다. 반갑다. Brother Rat”이라고 말했다.
버지니아 사관학교에 입학하면 1학년 때는 아무도 사람 취급을 해주지 않고 “쥐새끼(Rat)”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동창들끼리는 서로 쥐새끼 형제들(Brother Rat!)이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냈다. 필자는 로비스트에게 “헤이! 그런데 일본 정부가 이 정도로 노골적으로 방해 공작을 할지 우리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너도 알다시피 일본해를 완전히 동해로 바꾸자는 것도 아니고 병기를 하자는 것인데 일본 정부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또한 너희 로펌이 교육적으로 올바르고 정당한 법안을 좌절(挫折)시키기 위해 고용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담스는 “나도 교육적으로는 동해 병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우리 로펌이 이미 계약을 해 버렸으니 최선을 다해 동해 병기 법안을 저지하는 데 힘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라. 이건 절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단지 나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려는 것뿐이다. 너의 동해 병기 법안 통과가 성공하기를 빌겠다”고 했다. 필자 역시 “고맙다. 절대 개인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 너도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나도 최선을 다해 동해 병기 법안을 꼭 통과 시킬 것이다. 반갑다. 이렇게 이런 자리에서 다시 만나보게 돼서”라고 인사한 후 복도를 걸어 건물 밖으로 빠져 나왔다.
어찌 됐든 막강한 일본 정부와의 맞대결 1차전에서 우리 한인들이 완벽한 대승을 거뒀다. 필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흠! 일본 정부도 별것 아니네. 세계 경제 대국이며 로비력이 엄청나게 막강하다는데 그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안을 만장 일치로 통과 시키다니…” 필자는 이런 생각으로 만족감을 느끼며 리치먼드에서 워싱턴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계속>